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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34화 (34/273)

34화

합격자를 단숨에 탈락 위기로 몰아넣은 돌발라운드가 시작된 다음 날, 오전.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연습실에 이성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아아.”

연습실엔 누군가 먼저 도착해 가볍게 목을 풀고 있었다.

아직 다음 본선 무대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벌써부터 나와 연습하는 참가자가 있다니.

참으로 기특한 마음씨를 가진 참가자에게 성현은 덤덤하게 접근했다.

“요하야.”

성현이 마주한 참가자는 다름 아닌 요하였다.

“형!”

요하는 성현을 보자마자 일어나 반겼다.

그러더니 궁금증에 휩싸인 눈빛으로 성현에게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연습실엔 왜 부르신 거예요?”

그렇다.

돌발라운드 참가자가 아닌 김요하가 이곳 연습실에 온 이유는 다름 아닌 성현의 부름 때문.

아직 다음 본선 라운드까지는 시간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요하는 단순히 홀로 연습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게 아니었다.

어젯밤 성현으로부터 연습실에 와줄 수 있냐는 연락을 받았고, 요하는 이유도 묻지 않고 수락했다.

아마 자신의 실력을 트레이닝 시켜주려는 줄 알았던 모양.

하지만, 성현의 진짜 목적은 단순한 트레이닝이 아니었다.

성현은 순순한 표정의 요하를 바라보며 사뭇 진지하게 물었다.

“나랑 무대 하나 준비해볼래?”

“무대요? 본선 라운드 이미 끝난 거 아니에요?”

본선이 끝나고 별도의 공연 일정은 전달받은 게 없었다.

때문에 요하는 성현이 말하는 무대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고,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성현은 이에 직설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너만 동의한다면 돌발라운드에 참가해 볼 생각이야.”

돌발라운드라면 현재 은별이 강제로 참가 당하게 된 무대다.

그 배경에 요하는 마음의 짐을 덜어놓지 못한 상태였다.

자신을 빛내주느라 은별 자신에겐 신경 쓰지 못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요하는 안 그래도 가능하다면 은별을 돕고 싶은 심정이었다.

허나 요하는 그 전에 성현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었다.

“누나들도 있는데 왜 저랑 하시려는 거예요?”

요하의 생각으로는 서지현이나 임하나가 자신보다 더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가 그런 생각을 가지는 건 오직 겸손해서 하는 말만은 아니었다, 요하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그는 아직 아무것도 다듬어진 것이 없었다.

반면에 서지현과 임하나는 자신에 비해 무대에 능숙해 보이는 참가자들이었다.

성현은 자신 없어 보이는 요하를 올곧게 바라봤다.

“이번 돌발라운드에서 정해진 장르가 록이라서.”

“록이요?”

성현의 말에 요하는 더욱 의아했다.

처음 성현과 마주했던 잠실 예선장.

그때도 성현은 요하에게 ‘록’이라는 장르를 언급했었다.

정작 김요하 본인은 록에 대해 깊은 지식이 없었는데 말이다.

갑작스런 제안에 요하가 당황해하자 성현은 확신에 찬 눈빛으로 답해줬다.

“내가 봤을 때 넌 록 보컬로서 충분히 포텐을 가지고 있어. 특히 네 목소리. 네 목소린 록이랑 가장 잘 어울리니까.”

성현의 말에 요하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돌발라운드 미션에 참가해서 지면 추가 참여 팀은 500캐시를 잃는다.

거기다 장르도 자신이 처음 해보는 록.

자신으로 인해 그저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만 줄 게 뻔했다.

그러니 당연히 바로 거절하는 게 맞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하는 왠지 모르게 이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요하는 곧 스스로 그 이유를 찾아낼 수 있었다.

본선 1라운드에서 성현과 함께한 임하나의 무대가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

성현과 임하나가 준비한 무대는 본선 1라운드에서 김요하의 뇌리에 가장 인상 깊게 남은 무대였다.

‘정말 즐거워 보였어.’

어제 무대 위에서 밝게 빛나던 임하나의 표정은 정말 잊을 수가 없었다.

한번의 실수가 치명적인 서바이벌 오디션에서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니.

요하의 생각으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보통은 오디션에서 살아남기 위한 비장한 각오가 얼굴에 조금은 묻어나기 마련이다.

본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성현과 무대를 같이 한 임하나는 달랐다.

임하나는 음악에 뛰어들어 마음껏 자신의 발로 누비고 다녔다.

그런 무대를 만들어낸 건 바로 성현이었다.

락은 요하에게 있어 전혀 손에 익지 않은 장르였다.

하지만 예선장에 이어 오늘 역시 요하에게 ‘락’을 언급하는 성현이다.

요하는 그가 왜 자신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해졌다.

왠지 모르게 알 수 없는 믿음도 느껴졌다.

혹시 자신도 이성현과 함께한다면 임하나처럼 되지 않을까.

‘나도 경험해보고 싶어.’

요하 역시 음악을 좋아해서 이곳에 왔다.

하지만 음악을 들으며 무대를 즐길 시간은 오히려 줄었다.

그래서 더욱 임하나의 무대가 부러웠다.

그는 애초에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했다.

그러니 자연스레 무대 경험이 없을뿐더러 이번 서바이벌이 인생 첫 무대다.

어쩌면, 이번이 아니라면 요하는 자신만의 이상적인 무대에 서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결심이 서는 건 한순간의 일이었다.

“할래요.”

500캐시를 잃는다고 해도, 성현과 함께 즐거운 무대를 경험하고 싶었다.

어쩌면 그 추억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의욕으로 둘러싸인 요하의 대답에 성현은 싱긋 웃었다.

대답만으로 요하가 성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 보였다.

조은별을 구하고 싶은 마음은 변함없다.

거기에 더해 김요하가 새로운 도전에 발을 넣고 자신의 욕심도 내비친 것 또한 만족스러웠다.

이성현 본인 역시 요하의 음악을 가까이서 듣고 이야기해보고 싶었던 상황.

눈앞에 긍정적인 요소만이 담긴 광경에 성현은 가슴을 부풀렸다.

“가자, 그럼.”

“어딜요?”

성현은 곧장 자신의 외투를 챙기며 연습실을 당차게 나섰다.

그의 당당하고도 으쓱한 모습에 요하는 어리둥절한 채 그의 뒤를 따랐다.

***

연습실 내에서는 한참 조은별과 박남길이 열을 내는 중이었다.

연습실의 분위기는 한없이 차가웠다.

그만큼 조은별과 박남길의 연습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이딴 무대 컨셉 없이도 충분하다고.”

“일단 들어나 보시고 결정하라고요.”

무엇이 마음에 안 드는지 박남길은 시도 때도 없이 화를 냈다.

허나 이 모습에 이미 내성이 생기기라도 한 듯이 조은별도 평소와 달리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문제의 원인은 박남길의 고집이었다.

이미 한참 전부터 조은별이 자신이 편곡해온 방향과 박남길의 스타일에 대해 설명을 했지만, 박남길은 도통 들어먹질 않았다.

이에 조은별도 더 이상 고분고분하게만 이야기할 수 없게 된 것.

“플레인하게 가자고 플레인. 이 박남길이 목소리로 충분히 록 스피릿을 보여줄 수 있다니까?”

“본부장님 보컬은 록이랑 안 어울린다고 몇 번을 말씀드려요. 록이 남극에 있으면 본부장님 목소린 북극에 있다고요. 알겠어요?”

“이야, 조은별이 회사 밖이라고 막 나가네. 상사가 말을 하는데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지 않나.”

“직급 떠나서 프로듀서로서 할 일을 할 뿐입니다. 받아들이기 싫으면 애초에 저랑 팀을 하지 말았어야죠.”

“아 마음대로 해. 나도 내 맘대로 할 테니까.”

박남길은 뒤에 있던 소파에 드러누우며 허세를 부렸다.

여기가 회사 안도 아니고, 그의 한결같은 태도는 여기서도 변하지 않았다.

“그래요. 마음대로 하세요.”

조은별도 밤샌 탓에 몸도 지치고 피곤한 상태. 박남길의 투정을 무한정 받아줄 수 없었다.

은별도 자신의 음악적 가치를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 박남길에게 끌려다닐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프로듀서로서 자신의 감각과 능력을 믿고 자신의 할 일만 열심히 할 생각이었다.

두 사람의 끈질긴 줄다리기는 계속됐다.

이를 찍고 있는 김인호 AD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러다 둘 다 떨어지겠구만.’

물론 두 참가자가 떨어진다 해서 당장 김인호에게 타격이 있는 건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지금까지 커다란 화제성을 불러일으킨 건 아니었으니까.

그는 현 상황을 기록하기 위해 보고서를 펼쳤다.

똑똑.

그런데 그때 누군가 연습실 문에 노크를 하더니 안으로 들어왔다.

동싣에 김인호는 놀란 표정밖에 지을 수 없었다.

연습실 안으로 모습을 드러낸 이가 다름 아닌,

“이성현 참가자 여긴 왜......?”

김인호 본인이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참가자, 이성현이었으니까.

성현의 등장에 놀란 건 김인호 AD뿐만이 아니었다.

미디 건반 앞에 앉아있던 조은별 또한 벌떡 일어나 성현을 쳐다봤다.

“성현 씨. 여긴 왜 오셨어요?”

“은별 씨 보러요.”

“저를요?”

갑작스러운 일들로 김인호는 또다시 눈이 뜨였다.

그가 또다시 화젯거리를 품고 온 낌새를 느꼈다.

김인호는 카메라맨에게 두 사람을 곧바로 찍으라고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카메라 영상에는 그들의 모습이 담기기 시작했다.

“은별 씨. 그리고 박남길 씨.”

성현의 불음에 지금까지 소파에 누워있던 박남길이 어정쩡 몸을 일으켰다.

“이번 돌발라운드 무대에 함께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연습실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당황한 포즈를 취했다.

그때,

“누나 저도 같이요!”

성현의 뒤에 숨어있던 요하도 조은별을 향해 손을 흔들며 외쳤다.

“아…….”

조은별은 혼자 외로운 싸움이 될뻔한 상황에 등장해준 그들에게 고마움이 들기도 전에 너무 놀라 아무 말도 안 나왔다.

그러자 박남길이 이번에도 선수치고 나섰다,

“뭐, 우리야 말리진 않겠지만 팀에 피해를 주지 않게 열심히 하라고.”

성현은 그런 박남길을 깡그리 무시하고 조은별에게 물었다.

“은별 씨는요? 싫어요?”

싫을 것까지야 없지만, 은별은 마음이 복잡했다.

성현과 요하가 도와준다면 물론 힘이 되고도 남는다, 하지만 진다면 그들이 500캐시라는 적지 않은 캐시를 내야 한다는 걸 은별 또한 숙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아무리 그들이 직접 탈락하지 않는다 해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터.

그렇기에 그녀는 일원들에게 선뜻 먼저 도움을 청하지 못했었다.

“진심이세요?”

“네. 은별 씨 때문에 하는 거 아니에요. 요하랑 제대로 된 록 무대 해보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이런 모습의 성현을 한두 번 본 게 아니기에 은별도 신뢰가 들었다.

그렇기에 그녀도 그의 진심을 알고 신중히 고민했다.

성현이 단순히 록 무대를 해보고 싶어서 은별을 도와준 게 아니란 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의 도움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고심 끝에 그녀는 입을 열었다.

“매번 신세 지는 거 같아서 미안해요.”

조은별도 자신의 이기심에 괜히 찔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성현은 별것 아니라며 웃어 보였다.

이윽고 성현은 김인호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김인호는 갑작스러운 성현의 합류 덕에 이번 라운드도 재밌게 흘러가길 벌써부터 기대하는 눈치였다.

“AD님. 들으셨죠? 이번 돌발라운드 미션 참가하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PD님한텐 제가 말씀드릴게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그는 성현의 제안을 마다하지 않고 이 사실을 알리려 빠르게 연습실을 나섰다.

“그럼 저랑 요하도 다시 연습실로 가볼게요. 이제 제대로 무대 준비해야 해서.”

“네. 서로 파이팅해요.”

조은별은 다시 의지를 다잡으며 심기일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

“피디님 이성현 참가자가 돌발라운드 미션 참가한답니다.”

“그 싹수 있는 놈?”

“네.”

한동균 메인 PD가 그의 말을 듣자마자 재밌다는 듯 웃어댔다.

그때, 갑자기 작가가 와서 무언가를 알리자 김인호와 한동균은 모두 깜짝 놀란 듯 눈이 커졌다.

“이걸 여기서 쓴다고?”

“네. 방금 연락 왔어요.”

“재밌는 놈일세.”

한동균은 만족스럽다는 듯 힘찬 박수를 보냈다.

한편, 한껏 상기된 김인호가 재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저 이성현 참가자한테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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