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33화 (33/273)

33화

퇴장하라는 말에 본선장에 모여있던 참가자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자신과 관련된 일이 아니기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됐다.

모두 각자 앞으로 일어날 일만을 생각하며 빠르게 본선장을 빠져나갔다.

“은별 씨, 괜찮겠죠?”

아직 본선장에 남아있는 조은별을 성현이 계속 바라봤다.

그 둘의 모습이 모두 걱정되어 서지현이 물었다.

그러자 성현은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애써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괜찮을 거예요. 강한 사람이니까.”

“괜히 미안하네요. 요하랑 저 때문에 점수 낮게 받은 거 같아서.”

“누구의 탓도 아니니까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다들 이만 갈까요.”

결과를 보았을 때부터 서지현과 요하는 은별에게 미안해했다.

자신들이 좀 더 은별에게 신경을 써줬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성현은 이후에도 있을 미션에 이번 일이 마음에 걸려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까 봐 다독였다.

거기다 아직 탈락 확정이 된 것도 아니다.

조은별이라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겠지만, 여전히 박남길이 걸렸다.

그의 성격은 이미 자신의 회사까지 퍼질 정도로 악명이 높다.

그런 자가 은별의 프로듀싱을 받아들이기나 할까.

걱정이 앞섰지만, 성현은 일행과 함께 본선장을 떠났다.

이곳에 남아있는 다 해서 도움 되는 것은 없을 테니.

“형 그럼 우리 다음 주에 2라운드 시작인 거죠?”

“응. 1주일 정도 남았으니까 그때까지 형이 말한 보컬 영상 좀 찾아보고 시간 남으면 플레이

리스트도 들어보고.”

“네!”

성현은 전부터 요하에게 보컬 테크닉을 배울 수 있도록 힘을 썼다.

보컬 테크닉을 전문적으로 다룬 영상과 함께 요하의 음색에 잘 어울리는 아티스트들의 노래들을 보여주면서 그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했다.

틈틈이 그가 이런 일들을 하는 이유는 요하의 보컬 실력을 키우고 싶어서였다.

성현은 요하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를 프로듀싱하고 싶었다.

그동안 경연을 준비하느라 시간도 안 나기도 했고, 패자부활전 탓에 떨어진 시간이 길었었다.

이제 조금 요하와 제대로 음악 얘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요하 역시 성현의 조언이 마음에 들었는지 곧장 알겠다고 대답하며 잘 따랐다.

“성현 씨, 다시 한번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저 먼저 가볼게요.”

해는 어느새 고개를 기울이며 하늘을 불그스레 물들게 했다.

임하나는 자신을 응원해주고 도움을 준 성현과 일행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 뒤로 자신을 데리러 온 부모님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 풍경에 성현의 마음 한쪽은 차갑게 시렸다.

문득, 자신의 부모님들은 저런 적이 있었던가 생각이 들었다.

“저도 버스 시간 때문에. 다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임하나가 떠나자 요하도 정류장을 향해 뛰어갔다.

이제 남은 건 서지현과 성현뿐이다.

“성현 씨는 어디로 가세요? 역으로 가시는 거면 같이 가요.”

“아, 먼저 가세요. 전 따로 볼 일이 있어서.”

이런 늦어가는 시간에 무엇이 할 게 있다는 건지.

서지현은 한참 성현의 재미없는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피식 웃었다.

“역시 걱정되는 거죠?”

주어는 말하지 않았지만 성현도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지현은 긴 생머리를 흩날리고 뒤돌아서며 말을 전했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저 대신 은별 씨 멘탈 케어 좀 부탁드려요.”

서지현까지 가고 나자 성현은 혼자 남게 되었다.

떠들썩하며 화목했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고요하게 잠잠해졌다.

허나 성현은 자신보다 더 외로운 은별이 있는 본선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

‘지금쯤 돌발라운드 미션 장르가 정해졌으려나.’

***

“돌발라운드 미션에 참가하시게 된 참가자분들은 모두 앞으로 모여주세요.”

진행요원 말에 조은별과 박남길을 포함한 돌발라운드 참여자 네 사람이 무대 위로 보였다.

가수 참가자 중 꼴찌를 기록해서 참여하게 된 박남길이야 그렇다 치자.

허나 아무 죄 없던 조은별은 온갖 안 좋은 기분에 사로잡혀 생기 없는 표정을 지었다.

박남길은 막상 조은별의 그런 무서운 표정을 보자, 지레 겁을 먹은 모양인지 은별의 눈치를 살폈다.

“이봐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아는 사람은 조은별 씨뿐인데 당신 실력 좋은 거야 나도 아니까…….”

씨알도 안 먹힐 칭찬이었다.

어차피 또 이 상황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하는 거짓말일 게 분명하다.

뭐, 그가 꼴찌를 하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니고 이런 상황을 만들게 한 건 바로 이 오디션이다.

그 누구에게도 한탄을 하지 못하는 감정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조은별은 굳은 표정을 풀지 않고 정면만 향했다.

“돌발라운드에선 양 팀 모두 공통된 장르의 노래만 선곡이 가능하며 장르는 랜덤으로 주어질 것입니다.”

설명이 끝남과 동시에 진행요원은 미리 준비한 룰렛을 돌렸다.

룰렛엔 팝, 힙합, R&B, 락 등 다양한 장르가 칸마다 적혀있었다.

그러더니 이내 한 곳에서 멈췄다.

이어서 커넥트 앱의 알람이 울렸다.

조은별은 빠르게 메시지를 확인했다.

[ ‘락’이 돌발라운드의 장르로 설정되었습니다. ]

하필 제일 꺼리는 장르가 걸려버렸다.

조은별은 차가운 표정으로 박남길을 쳐다봤다.

그는 황급히 은별의 시선을 피했다.

이 사람이 ‘락’을 할 줄 알던가?

애초에 평소 실력도 그 정도인데 잘해봤자 얼마나 잘하겠나.

“후.”

조은별이 짧고 굵은 숨을 강하게 내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더 이상 안 좋은 기분에 사로잡혀 있을 수만은 없었다.

물은 엎질러졌고, 돌이킬 수 없었다.

이왕 할 거, 제대로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마음을 다잡은 조은별이 옆에서 쭈뼛거리는 박남길을 향해 돌아서며 힘 있는 목소리로 먼저 말을 걸었다.

“연습 시간이랑 날짜 정해요. 갈 길 멀거니까 최대한 빨리 만나죠.”

***

성현은 본선장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그는 은별을 기다리면서 임하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고 있었다.

‘춤이 이렇게 매력적인 악기인 건 처음 알았어.’

성현은 오늘 있었던 무대를 곱씹으며 다시 한번 심장이 두근거렸다.

사실 오늘 무대에서 만장일치를 받을 줄은 몰랐다.

춤이라는 건 음악성을 높인다기보단 무대를 한층 더 멋스럽게 꾸며주는 데 사용되는 요소라 생각했다.

그러나 임하나는 자신의 편견과 달리 춤만으로 혼자서 무대를 꽉 채울 수 있다는 걸 알려줬다.

‘춤으로도 소리를 만들 수 있단 것도 증명했고.’

그뿐만 아니라 결과도 좋았다.

자신과 임하나 모두 1등이라는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앞으로의 무대를 프로듀싱할 때 참고되는 경험이었다.

성현은 휴대폰을 꺼내 커넥트 앱을 켰다.

무대를 통해 받은 보상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스폰서 제안이 들어온 소속사들의 제안서도 다시 한번 살폈다.

한 조항 한 조항 중요한 문장들을 속으로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계약은 서바이벌 내에서만 유효. 이미 계약된 연습생이나 프로듀서도 스폰 계약이 가능하다.’

바로 이 조항 때문에 정말 아끼는 연습생이나 프로듀서가 있다면 오디션에 내보내지 않을 터.

더 좋은 소속사에서 그들을 채가는 것이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소속사와 참가자 모두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 단 계약 파기를 원하는 쪽에서 위약금을 캐시로 지불해야 하고.’

확실히 계약 자체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노예 계약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원하면 캐시를 지불하고 계약 파기도 가능했으니까.

게다가 소속사와 스폰 계약을 맺는 건 여러 가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장비들 협찬이나 외부로부터 후원을 받을 수도 있다.

겉보기엔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성현이 게임 ‘메이크 유어 스타’를 여러 번 플레이하며 알게 된 것이 있었다.

소속사와 계약을 맺는 순간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은 포기해야 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었다.

‘제안이 온 건 기쁘지만 역시 쉽게 생각할 문젠 아니야.’

성현은 오로지 음악 때문에 이곳에 왔다.

다른 사람의 말에 흔들리는 음악이 아닌,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온전히 담은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니 당장 좋은 곳에서 제안이 온 것은 기쁘지만, 쉽게 스폰 제안을 받을 수도 없었다.

후에 펼쳐질 오디션 라운드를 생각하면, 더더욱 쉽게 내릴 수 없는 결정이었다.

성현은 일단 선택을 보류하고 휴대폰을 다시 넣었다.

‘스폰서 없이 내 힘으로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성현은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평가해봤다.

그때, 마침 본선장에서 조은별을 비롯한 남은 참가자들이 나왔다.

‘이대로 떨어지긴 아까운 사람인데.’

성현은 조은별이 탈락 위기까지 놓인 상황이 안타까웠다.

게다가 앞으로 벌어질 라운드에서는 조은별과 같이 실력 있는 프로듀서가 필요했다.

성현이 일행들을 먼저 보내고 혼자 조은별은 기다린 이유가 이것이다.

그녀의 실력은 물론 앞으로 있을 라운드에서 그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단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그녀를 돕고 싶었다.

‘돌발라운드. 참가해볼까.’

돌발라운드에 추가로 참가할 수 있는 팀은 각 팀별로 한 팀뿐이다.

그러나 패배 시 500캐시를 잃을 수 있는 리스크가 있기에 아무나 함께 하겠다고 지원하지는 않을 터.

이번 라운드 통과를 통해 공식적으로 주어진 캐시는 고작 200캐시.

캐시 얻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참가자들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다.

게다가 굳이 참여하지 않아도 다음 라운드 진출 확정이다.

괜히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가는 다음 라운드에 좋을 게 없다.

“성현 씨?”

성현이 이런저런 생각을 할 때, 본선장에서 나온 조은별이 벤치에 앉아있는 성현을 발견했다.

“어떻게 됐어요?”

성현은 최대한 상냥한 톤으로 그녀를 달래주듯 물었다.

역시나, 그녀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정해진 장르의 곡만 선택이 가능한데 하필 장르가……. 락이에요.”

“락이요?”

성현은 다시 생각에 잠겨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락’이라는 장르로 정해진 이상 다른 참가자들도 함부로 참여하기 더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락은 여러 음악 장르 중에서도 특히 매니아층이 뚜렷한 장르다.

또한, 개인 참가자가 대부분인 이곳에서 락을 특기로 하는 이들도 적다.

락이라는 장르에 확실한 자신감이 있거나, 혹은 지금까지 합격했지만 제대로 된 성과가 없어 잃을 게 없는 이들이 돌발라운드 추가 참여를 원할 것이다.

물론, 탈락 여부가 걸린 원래 돌발라운드 참가자들 입장에서 성과가 없어 추가로 참여하고 싶은 이들을 받아주지 않겠지만.

“괜찮겠어요?”

“네. 오히려 잘된 거라고 생각해 보려고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제 실력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니까.”

조은별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해주려고 기다렸다.

하지만 역시 조은별은 조은별이었다.

아이돌 데뷔 작업에서 이유도 모른 채 제외됐을 때 보였던 것과 같은 반응이었다.

그녀는 이번에도 빠르게 마음을 다잡은 듯했다.

조은별은 성현의 생각대로, 아니 성현의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정말 이대로 떨어지긴 아까운 사람인데.’

그녀가 가지고 있는 음악성과 프로듀싱 실력.

이것은 이미 주변 사람들도 다 알고 있는 장점이지만, 성현은 그녀의 강한 멘탈이 진짜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멘탈을 다잡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장르도 락이겠다, 나쁘지 않아.’

성현은 안 그래도 돌발라운드 추가 참여 여부를 고려 중이었다.

그런 와중 돌발라운드 장르가 ‘락’이라는 걸 듣고 나니 마음이 더 크게 동했다.

바로 직전 패자부활전에서 락밴드인 ‘더비기너’와 함께 곡을 만들었다.

자신감이 생길 법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게다가 승리하면 캐시 또한 덤으로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조은별 씨가 함께라면 앞으로 더 풍부한 무대를 만들 수도 있고.’

조은별은 이 오디션에 참여하기 전, 회사에서 주로 아이돌 팀을 프로듀싱하는 역을 맡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팀을 꾸리고 각 맴버들 특성에 맞도록 편곡을 잘했다.

이번 서지현과 요하의 무대만 봐도 그랬다.

분명 성현에게 부족한 장점을 지닌 프로듀서였고, 그것만으로도 그녀와 함께하고 싶은 이유는 충분했다.

‘500캐시 정도야 충분히 걸어볼 만해.’

성현은 휴대폰을 꺼내 커넥트 앱을 켰다.

돌발라운드 참여를 바로 확정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돌발라운드 참여를 확정하기 전,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커넥트 앱을 켠 성현이 들어간 탭,

[상점]

‘상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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