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32화 (32/273)

32화

참가자들은 자신의 커넥트 앱으로 온 소속사 알람을 뚫어져라 확인했다.

몇몇 참가자들은 혹시라도 제안이 사라질까, 자세한 계약 내용도 들어보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수락했다.

확실히 소속사가 있다면 오디션을 진행하는 데 유리한 게 현실이다.

이들의 분위기에 성현 일행들도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성현 씨, 어떡할까요? 아무래도 계약하는 게 낮지 않을까요?”

“형,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계약하는 모습이에요.”

임하나와 요하가 성현에게 물었다.

허나 성현은 흔들리지 않았다.

“계약은 신중하게 해도 나쁠 게 없죠. 아직 3일이나 남았으니 천천히 생각해보죠.”

그의 무덤덤한 태도에 일행들도 섣불리 소속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아직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은 많이 남았다.

성현은 조은별에게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은별 씨는 원래 소속사 제안 받아들이겠죠?”

은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엔터 입장에서 조은별 정도의 되는 프로듀서 유망주를 아무 대책 없이 자유 시장에 풀 리 없다.

“뭔가 편법을 쓰는 기분이네요.”

조은별의 표정이 좋지 못한 이유였다.

기존 소속사 외에 다른 곳의 제안을 받지 못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스폰서로부터 어떤 제안도 받지 못한 다른 참가자들의 얼굴이 눈에 밟힌 모양이다.

천성이 착한 사람인 것만은 확실하다.

“편법이라뇨. 조은별 씨 실력이 형편없었다면, 애초에 지금까지 합격하지도 못했을 거예요. 당연한 일이니, 딱히 마음 쓰지 말아요.”

성현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진심 어린 말을 던졌다.

틀린 소리가 하나도 없었다.

오디션 전 큰 소속사에 속해있던 것도, 오디션 후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도 전부 조은별의 능력이었다.

애초에 이런 소속사와 참가자 사이의 묘한 관계가 허용되는 오디션이 바로 ‘더 넥스트 슈퍼스타’다.

잠시 후, 참가자들을 지켜보던 한동균이 자신에게 다가온 작가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듣고는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잠시 후에 새로운 공지가 있을 예정이니, 이곳에서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한동균은 작가와 함께 자리를 떴다.

이에 참가자들은 다음 라운드 안내가 있으려나 하고 다시 스폰서 제안에 집중했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한동균 PD가 가져온 말은 충격이었다.

“지금부터 돌발라운드가 이뤄지겠습니다.”

한동균 PD의 말에 참가자들이 모두 반발했다.

이제 겨우 본선에서 살아남았는데 돌발라운드라니?

듣기만 해도 황당했다.

“갑자기 돌발라운드라니 이런 게 어딨어요?”

“1라운드는 이미 붙은 거 아니었나요?”

“일단 기다려보시죠.”

성현은 당황한 일행들을 진정시켰다.

그 틈에 한동균 PD는 스텝에게서 종이 하나를 건네받았다.

“이 종이엔 각 참가자들의 개인 점수를 집계한 표가 적혀있습니다.”

점수라는 말에 참가자들은 다시 침묵했다.

무슨 일을 벌이려고 점수표를 가져온 건지 알 수 없었다.

“점수 발표에 앞서 돌발라운드 미션에 대한 공지를 먼저 하겠습니다.”

띠링, 커넥트 알람이 울렸다.

그들은 곧바로 돌발라운드 미션 공지를 읽었다.

[돌발라운드]

* 미션 : 하나의 장르를 설정. 설정된 장르의 음악으로 팀 대결을 펼쳐 승리하세요.

* 조건 : 1) 최하점을 받은 프로듀서, 가수 참가자는 각각 다른 포지션의 참가자와 팀을 이뤄 진행.

2) 나머지 참가자 중, 각 포지션 하위 세 명의 참가자 중에서 파트너 선택 가능합니다.

3) 각 팀당 공연 시간 30분. 해당 시간 안에 하나의 장르를 가지고 자유롭게 무대를 꾸밀 수 있습니다.

4) 무대에 대한 평가는 모두 현장 관객의 몫. 평가에 다른 요소는 개입되지 않습니다.

5) 함께 공연을 원하는 팀(프로듀서+가수)이 있을 경우, 최대 한 팀까지 공동 공연 가능. 단, 추가 참여한 팀은 패배 시 500캐시가 차감됩니다.

* 공연 장소 : 사강대 메리홀.

* 공연 시기 : 일주일 후.

* 승리시 : 본선 2라운드 진출. 공연에서 얻은 캐시 획득.

* 패배시 : 탈락.

“아까 우리가 매겼던 점수가 여기에 쓰였던 거야?”

“최하점을 받은 프로듀서랑 가수 참가자만 참가하는 건 가봐. 우린 아니겠지?”

본선 무대를 하기 전, 한동균은 이들에게 상대 점수를 매기라고 했었다.

그 합산 점수가 이런 곳에 쓰일 줄이야.

참가자들은 모두 갑자기 생긴 미션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관심은 곧바로 최하점을 받은 사람이 누군지로 쏠리기 시작했다.

참가자들은 모두 자신만 아니길 빌었다.

“그럼 지금부터 프로듀서와 가수 참가자 중 최고점을 맞은 분과 최하점을 맞은 사람을 공개하겠습니다. 참고로 최고점 참가자에게는 추가 200캐시가 지급될 겁니다.”

한동균의 말에 몇몇 참가자들은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의 뒷말을 기다렸다.

허나 눈치 빠른 참가자들은 이미 그게 누구인지 눈치채고 조용히 있었다.

이내 뒤로 보이는 스크린에 두 사람의 이름이 떴다.

[ 프로듀서 참가자 : 이성현 ]

[ 가수 참가자 : 임하나 ]

프로듀서 참가자 중에 최고점을 받은 이성현.

그리고 가수 참가자 중에 최고점을 받은 임하나.

“축하드려요. 성현 씨 충분히 그럴만한 무대 했어요.”

조은별은 그를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그 누구도 쉽게 예상치 못한 무대로 우승을 했다.

이는 누가 봐도 훌륭했다.

“하나 씨 덕분에 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1등 축하드려요.”

서지현은 임하나를 축하했다.

임하나는 붉어진 얼굴을 애써 감추려 했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다른 참가자들도 동의를 하며 작게 박수를 보냈다.

노래 없이 오직 춤으로 만들어낸 무대가 1등이라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어떤 참가자도 반대 의견은 없었다.

그만큼 이성현과 임하나 팀의 무대는 신선하고 충격적인 무대였다.

“다들 감사합니다.”

임하나는 박수를 보내주는 참가자들에게 어안이 벙벙한 채 감사 인사를 건넸다.

이들의 축하가 끝나고, 한동균 PD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그럼 이어서 최하점을 받은 참가자 공개하겠습니다.”

잠시나마 풀렸던 본선장 분위기가 다시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모두 자신이 꼴찌가 됐을까 봐 긴장하는 분위기였다.

곧이어 결과가 공개됐다.

[ 프로듀서 참가자 : 이준우 ]

[ 가수 참가자 : 박남길 ]

이곳저곳에서 안도하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대형 스크린에 뜬 꼴찌의 이름엔 성현과 조은별도 알고 있는 이름도 있었다.

박남길 본부장.

성현과 조은별은 자연스럽게 박남길을 찾아봤다.

그는 합격했단 사실에 기뻐하다가 스크린을 확인하고는 말도 안 된다며 분에 찼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성현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본선까지 살아남은 것도 의왼데 하필 저 사람이 꼴등일 줄이야.’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예감이 좋지 않은 것이다.

돌발라운드 참가가 확정된 상황에서 이제 사람들의 관심은 누가 밑에서 세 번째로 낮은 점수를 받았느냐로 쏠렸다.

-나머지 참가자 중, 각 포지션 하위 세 명의 참가자 중에서 파트너 선택 가능합니다.

바로 이 조건 때문이다.

참가자들은 모두 저들에게 선택받지 않기 위해 눈을 피해 다녔다.

괜히 엮여봤자 좋은 꼴은 못 볼 게 뻔하다.

한동균 PD는 자신의 역할은 다 끝났다는 듯 진행요원에게 마이크를 남기고 본선장을 떠났다.

“본선 1라운드에서 최하점을 받은 참가자 두 분은 돌발라운드에 참가하셔야 합니다. 프로듀서 포지션의 이준우 참가자, 가수 포지션의 박남길 참가자 앞으로 나와주세요.”

마이크를 받은 진행요원의 지시에 이준우와 박남길은 고개를 푹 숙이고 본선장 앞으로 나갔다.

상당히 치욕스러운 상황이기에 살아남아도 살아있는 게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들은 다시 탈락 위기에 놓였다.

“함께 돌발라운드에 참가할 다른 참가자를 커넥트 앱을 통해 골라주시길 바랍니다.”

진행요원의 말과 동시에 스크린에는 선택 가능한, 즉 밑에서 점수가 낮은 세 명의 참가자들의 이름이 떠올랐다.

[프로듀서 포지션]

-진소연

-김강태

-조은별

전광판을 확인한 성현과 일행들은 일제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이름 중에 또 있는 익숙한 이름.

프로듀서 포지션에 조은별의 이름이 떠 있었다.

‘설마 했는데 운이 안 좋았어.’

실은 성현 또한 조은별의 프로듀싱 능력이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할 건 알고 있었다.

은별의 편곡 노래는 잘 짜긴 했지만 서지현과 요하를 빛내주기 위해 만든 곡이었다.

그러다 보니 성현처럼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포인트가 없었던 거다.

즉 조은별이 능력적으로 전혀 밀리지 않았으나 그 능력을 보여 줄만 한 기회가 없었던 것뿐이었다.

물론 하나하나 자세히 뜯어보면 프로듀서의 섬세한 능력이 대단하게 느껴질 거다.

그러나 적어도 무대에서는 노래가 집중된 게 맞았다.

‘애초에 팀이 올라가면 된다는 생각에 눈에 띌 생각이 없었겠지.’

성현은 조은별의 성격상 자신보다 가수들이 돋보이게 무대를 구성했을 거란 걸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빈틈을 만들어버렸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조은별 스스로도 자신의 능력을 더 보여줘야 했었던 것도 맞았다.

거기다 걱정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아직 결정된 건 없지만 꼴찌가 박남길 본부장이라니.’

꼴찌 참가자들이 누굴 택할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허나 객관적으로 조은별과 같은 회사의 박남길이 있단 것만으로 충분히 불안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박남길 참가자 함께할 프로듀서를 선택해주시길 바랍니다.”

성현이 생각에 빠진 짧은 사이 가수 참가자의 선택이 끝나버렸다.

선택을 받은 자는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이제 남은 건 박남길의 선택뿐.

가수 참가자인 박남길 역시 프로듀서 참가자 한 명을 선택해야 했다.

박남길은 진행요원 말에 푹 숙였던 고갤 들며 눈빛을 바꿨다.

이러고 좌절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판단한 것 같았다.

박남길은 의욕이 없던 전과는 다른 눈빛으로 선택할 수 있는 목록을 빠르게 훑어봤다.

그때, 그의 시선이 멈추는 곳이 있다.

‘조은별?’

조은별의 이름이 보이자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는 곧바로 조은별을 찾았고 둘은 눈이 마주쳐버렸다.

자신을 사악하리만큼 바라보는 박남길에 은별은 불안해졌다.

이윽고 박남길은 곧바로 휴대폰을 쥐며 선택을 마쳤다.

띠링-

또다시 누군가의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볼 것도 없이 조은별에게서 난 소리였다.

[돌발미션에서 박남길 참가자의 파트너로 매칭되었습니다.]

박남길은 조은별과는 오디션에 참가하기 전부터 안면이 있던 사이다.

영 좋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박남길은 아무래도 회사에서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부려먹기 쉬울 줄 알았던 생각인 듯했다.

그래서 망설임도 없이 조은별을 고른 것이고.

알람을 받은 조은별은 그저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은별 씨, 괜찮아요?”

성현은 조은별의 차가운 표정에 걱정이 되며 물었다.

그녀가 이렇게 싸늘한 반응을 보이는 건 예선 때 말로는 처음이었다.

아니, 그때도 이렇게까지 차가운 모습은 아니었다.

그의 물음에 은별은 조용히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답했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좀 억울하네요.”

조은별은 애써 화를 억누르듯 목소리가 딱딱했다.

좋은 무대를 보이며 합격했건만, 순식간에 탈락 후보자가 된 것이기에 결코 기분이 좋을 리 없지.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박남길과 팀을 이룰 생각에 조은별은 머리가 아팠다.

지금이라도 당장 박남길에게 달려가 분노를 표출하고 싶었다.

‘정신 똑바로 안 차려야 해. 여기서 이대로 떨어질 수 없으니까.’

하지만 이미 저질러진 일이다.

조은별은 애써 마음을 가다듬으며 박남길을 바라봤다.

‘내키진 않지만 잘 끌고 나가야지.’

그녀는 한참 동안 표정이 굳어있었다.

옆에 있던 성현은 그녀에게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쉽게 무너지진 않길 바라는 수밖에. 은별 씨는 강한 사람이니까.’

성현은 그렇게 은별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돌발라운드 미션에 참가하는 네 명의 참가자만 남고 합격한 참가자들은 모두 퇴장해주세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합격자들을 순간에 탈락 후보로 만들어버리다니.

역시 ‘더 넥스트 스타 서바이벌’은 무서우리만큼 잔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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