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31화 (31/273)

31화

무대를 끝낸 성현은 모든 진이 빠졌다.

그래도 싫지는 않은 기분이었다.

오히려 개운했다.

무대를 끝낸 두 팀 모두 무대 중앙에 섰고, 이내 심사 결과가 발표됐다.

그 결과, 모든 심사위원들이 성현과 임하나의 손을 들어줬다.

“말도 안 돼! 노래 한 소절 없이 어떻게 나를 이깁니까!”

정기준은 말도 안 된다며 곧바로 심사워원들에게 따졌다.

심사위원 중 가장 노련해 보이는 자가 대표로 말 한마디를 던졌다.

“정기준 참가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이 전하고 싶은 말을 전부 표현할 수 있나요?”

이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성현과 임하나의 무대는 오로지 악기 소리와 몸동작으로 모든 걸 표현했다.

결국, 정기준은 참을 수 없는 화를 억누르지 못해 먼저 무대를 내려갔다.

“축하합니다, 이성현, 임하나 참가자. 이제 대기실에 가셔도 좋습니다.”

그렇게 기분 좋은 승리를 거둔 후, 대기실로 돌아간 이성현과 임하나.

조은별을 포함한 성현의 일행들이 기다렸다는 듯 둘을 반겼다.

“성현 씨! 탭댄스라니. 생각도 못 했어요.”

“임하나 씨 춤을 잘 추는 건 알았는데 탭댄스까지 출 줄은 몰랐네요.”

“무대 완전 짱이었어요, 형.”

성현의 일행들이 축하 인사를 보내왔다.

축하의 말을 건네는 건 성현의 일행뿐만이 아니었다.

대기실에 있던 다른 참가자들도 서바이벌 오디션의 경쟁자인 것을 떠나 같은 음악인으로서 성현과 임하나의 무대에 진심 어린 박수를 보냈다.

임하나에겐 이전과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춤으로 무대를 이렇게 꽉 채울 수 있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축하드려요.”

“이야. 보는 내내 소름 돋았어요. 무대 보고 자극 많이 받았습니다. 고마워요.”

참가자들은 너나 할 거 없이 모두 성현과 임하나를 인정했다.

오랜만에 참가자들 사이에서 긴장감이 조금 풀어지며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동안 임하나를 무시해온 것과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임하나의 바람대로 춤을 통해 노래에 굴하지 않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 모양.

“임하나 씨, 믿고 잘 따라 와줘서 고맙고 고생 많았어요.”

축하 분위기가 조금 진정된 뒤, 성현이 임하나를 향해 말했다.

“아……! 고생은 뭘요. 저야말로 믿고 무대 세워주셔서 감사하죠.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임하나는 그제 서야 성현에게 제대로 된 감사 인사를 한 적이 없단 걸 생각했다.

성현이 없었다면 그녀는 이런 무대를 전혀 보여줄 수 없었을 거다.

임하나는 성현을 정식으로 마주 보며 허리를 꾸벅이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나 고마움을 느끼는 건 하나뿐만이 아니었다.

성현 역시 하나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적어도 당분간은 춤에 관해 깊은 생각을 하지 못했을 테다.

이번 무대를 통해 성현 역시 프로듀서로서 조금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임하나 씨가 음악인으로서 가지는 그 가치관. 평생 간직하길 바랄게요.”

임하나는 그의 진실된 말에 결연한 표정으로 고갤 끄덕였다.

달라진 거라면, 그녀의 표정에선 전과 없던 확신이 묻어 나왔다.

춤도 엄연히 음악을 구성하는 하나의 악기라는 게 자신만의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기에 낼 수 있는 표정이었다.

‘확실히 이번 무대가 큰 밑거름이 되겠지.’

성현은 그녀가 보여줄 앞으로의 성장이 궁금했다.

오늘 무대를 통해 임하나가 어떤 공연 무대를 보여줄지, 분명 더 좋은 무대를 보여줄 거란 사실에 확신했기 때문이다.

***

[ 본선 1라운드를 통과하였습니다. ]

[ 보상으로 캐시 ‘200’이 지급됩니다. ]

대기실엔 합격한 8팀, 총 28명의 참가자들에게 모두 보상이 주어졌다.

허나 보상은 너무나 터무니없었다.

적어도 4자리 수를 주는 줄 알았던 참가자들은 모두 불만을 터트렸다.

‘이러니 스폰서가 없인 살아남기가 힘들지.’

성현은 받은 보상을 바라봤다.

그에게도 똑같이 200캐시의 보상이 떨어졌다.

무대 경연에서 살아남기도 힘든데 보상 역시 너무 적어 겨우 긁어모아야 무대를 꾸밀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서바이벌에서 스폰서와 기업이 주는 후원의 중요도를 더 와닿게 확인할 수 있었다.

“본선 1라운드는 공식적으로 끝이 났습니다. 살아남은 참가자 여러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보상에 불만을 품던 사람들은 그래도 일단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소릴 질렀다.

한동균은 그들이 잠시 즐길 수 있게 하더니, 다시 그들의 여유를 빼앗아갔다.

“이어서 오늘 공연에 대한 스폰서들의 반응을 공개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참가자들은 잠시 놓았던 긴장의 끈에 다시 묶이게 되었다.

어찌 보면 이번 무대에서 살아남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항이었다.

한동균의 말이 끝나자마자 커넥트 알람이 울려댔다.

“각 참가자들에겐 소속사나 기업에서 간 후원이 도착해 있을 겁니다.”

사람들은 곧장 자신들의 알람을 확인했다.

혹시나 조금이라도 좋은 결과가 오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성현도 자신에게 온 커넥트 알람을 확인했다.

상당히 놀랐다.

이전처럼 꽤 많은 후원들이 도착해 있었다.

[FTT 엔터테인먼트 – 이일호 실장: 탭댄스라니. 재치있는 무대 구성이었습니다.]

[드로잉 사운드 – 김원 프로듀서: 재즈와 탭댄스의 조합이 인상 깊었습니다.]

[FTT 엔터테인먼트 – 이일호 실장이 50캐시를 후원합니다.]

[드로잉 사운드 – 김원 프로듀서가 50캐시를 후원합니다.]

.

.

이 외에도 50캐시 정도의 후원이 대여섯 개는 더 도착해 있었다.

그건 함께 무대를 한 임하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저 이렇게 후원 많이 받아본 거 처음이에요!”

임하나는 자신의 후원 목록을 보여줬다.

그녀도 자신과 비슷하게 대여섯 개 정도의 후원이 도착해 있었다.

흥분한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조은별 쪽 일원들도 각자 세 내 개의 후원을 받은 듯 보였다.

하지만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이다.

여기저기서 후원을 많이 받은 참가자들의 환호성도 들렸지만, 후원을 받지 못한 참가자들의 볼멘소리도 들렸다.

스폰서의 후원을 받는 건 당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의 시야에 들지 못했단 것이 잘못이었다.

시끄러운 장내를 한동균이 다시 진정시켰다.

“지금부터 스폰서 계약 이벤트 시작하겠습니다. 스폰서 계약 이벤트는 특정 라운드에서만 진행되는 이벤트이며, 매번 계약을 맺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란 것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한동균 PD 말에 모두가 숨을 죽이며 커넥트 알림을 기다렸다.

스폰서 계약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보상을 받지 못한 자들 중엔 이미 포기를 한 사람도 보였다.

한동균은 그런 사람들을 언급하다시피 말했다.

“모든 참가자들이 소속사로부터 스폰 제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스폰 제안을 받지 못했다 하여 실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이후에도 스폰 계약 이벤트는 나올 것이니 그때까지 열심히 하여 본인의 역량을 키우시면 됩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시작한단 말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띠링, 띠링, 알람음이 울렸다.

“지금 보이는 것이 여러분들에게 스폰을 제안한 분들의 명단입니다. 각 참가자들은 어플을 통해 스폰서를 매칭 할 수 있으며, 이제부터 어떤 선택을 내리는 가는 모두 여러분의 손에 달렸습니다.”

한동균 말에 사람들은 모두 커넥트 앱을 확인했다.

이번에도 스폰 제안을 받은 사람들은 기뻐 날뛰지만 받지 못한 사람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며 희비가 교차 됐다.

그리고 이 모습은 고스란히 카메라로 담겼다.

확실히 이런 점만 봐도 기존에 알던 오디션 프로와는 전혀 다른 ‘더 넥스트 슈퍼 스타’다.

애초에, 전 세계에 걸쳐 이렇게 막대한 금액의 상금을 내건 것부터가 평범과 거리가 멀기는 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성현은 팀원들을 먼저 챙겼다.

“다들 제의가 들어왔나요?”

“네. 네임드는 아니지만 한 군데 들어오긴 했어요.”

“저도요.”

성현은 이번엔 임하나 쪽을 보는데 임하나는 이들과 다른 웃음을 띠고 있듯 보였다.

“괜찮은 곳에서 제의가 왔나 봐요?”

“네. 큐빅 엔터에서 제의가 왔어요.”

“큐빅 엔터면 에이투비 그룹 소속사 아닌가?”

“맞아요. 주로 퍼포먼스 아이돌 키우는 소속사요.”

그녀 말대로 큐빅 엔터는 주로 댄스와 퍼포먼스 위주의 아티스트를 키우는 소속사다.

아무래도 임하나의 퍼포먼스를 인상 깊게 보고 스폰 제안을 넣은 듯싶었다.

정말이지 잘된 일이다.

성현은 이번엔 조은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휴대폰 화면만 물끄러미 볼 뿐 어떤 반응도 없었다.

“누나도 스폰 제안 오지 않았어요?”

분명 조은별에게도 알람이 울렸던 걸 기억한 요하가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자 물어봤다.

소속사에게 연락이 온 것만으로도 좋은 일인데 왜 그런 것일까.

은별은 그제야 팀원들에게 전했다.

“응. 원래 소속사에서.”

그녀는 회사에서 대표로 나온 인물이다.

원래 소속사가 아니었더라면 어떤 소속사한테서도 제안을 받지 못한 것을 뜻했다.

어찌 보면 낙하산 같은 기분이 들어 자존심이 상한 거다.

그녀 역시 성현과 마찬가지로 어떤 꼼수를 쓰지 않고 위로 오르고 싶었다.

한편, 서지현이 가라앉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성현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참가자들 중엔 원래 소속사가 있는 연습생들도 있을 텐데 다른 스폰서랑 계약 맺을 수 있는 건가요?”

“지난번에 AD로부터 연습생이 다른 소속사와 스폰을 맺어도 이에 대한 제재를 못 하는 거로 주최 측과 소속사 간에 협의가 끝난 상황이라고 들었습니다.”

즉, 기존 엔터에 소속되어 있는 가수 혹은 프로듀서들도 다른 소속사와 계약 가능하단 소리였다.

성현은 이미 게임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새로 알게 된 것처럼 일행에게 정보를 제공했다.

“그럼 소속사에서 진짜 아끼는 연습생들은 내보내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뺏길 수도 있는 거니까요.”

성현은 그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은별을 바라봤다.

그녀는 이전보다 확실히 기운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스폰 제안이 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만 봐도 받은 사람보다 받지 못한 사람이 더 많잖아요.”

실제로 스폰서 제안을 받은 사람은 드문드문했다.

성현은 은별에게 힘을 주기 위해 기운이 날 수 있는 말은 무엇이든 해줬다.

‘이번 일로 기죽지 않으면 좋겠는데.’

게다가 프로듀서 참가자는 가수 참가자에 비해 소속사 제안을 받는 것은 더 어려웠다.

그럴게, 무대 위에서는 퍼포먼스를 하는 가수들에게만 신경이 쓰이지, 그들을 뒷받침해주는 프로듀서가 눈에 띌 일은 현저히 적었다.

성현은 여전히 시무룩해 보이는 조은별을 물끄러미 봤다.

부디 이번 일을 이겨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는 이내 자신의 스폰 제안을 확인했다.

[ ‘FTT 엔터테인먼트 – 이일호 실장’이 이성현님과 함께하길 원합니다.]

[ ‘드로잉 사운드 – 김원 프로듀서’가 이성현님과 함께하길 원합니다. ]

[ ‘SH 레코딩 - 최성림 대표’가 이성현님과 함께하길 원합니다.]

물론, 성현의 경우처럼 프로듀서임에도 많은 관심을 받는 극히 드문 경우가 있지만.

성현은 무려 세 곳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거기에 그중 두 개는 네임드가 있는 소속사였다.

SH는 잘 모르지만, 대표가 직접 컨택이 왔다는 게 의미가 있었다.

아무래도 패자부활전을 통해 이전부터 관심을 받고 임팩트를 준 게 영향이 컸던 것 같았다.

“FTT랑 드로잉 사운드에서 결국 스폰 제안 왔네요. 축하해요.”

FTT엔터와 드로잉 사운드가 저번부터 후원을 보내며 성현에게 관심을 표했던 걸 서지현이 기억한 모양이다.

그녀의 말이 들린 탓인지, 임하나와 요하도 그를 축하해줬다.

그러자 삽시간에 말이 퍼져 다른 참가자들도 성현에게 모두 시선을 집중했다.

프로듀서 참가자인데 네임드가 2개나 있다고?

이미 그것만으로 그의 실력을 입증해주는 상황이었다.

“스폰 제안은 제안서를 받은 시간으로 정확히 72시간 동안만 유효하니 그 안에 신중한 선택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3일 내, 참가자들은 각자의 선택을 내려야만 한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들의 자유이기에 각각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아무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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