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29화 (29/273)

29화

처음이란 무엇이든 떨리기 마련이다.

그것이 기쁨에 찬 설렘 때문이든, 겁에 질린 두려움이든.

각기 다른 의미를 담은 떨림이 본선 1라운드가 시작된 무대와 대기실을 감쌌다.

첫 번째 대결의 첫 번째 팀이 무대가 시작됐다.

‘완전히 얼었네.’

첫 번째 팀은 가수 세 명으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각자 짝을 지어 1대1 구도를 취한 경연 순서는 철저히 무작위로 정해졌다.

의도하지 않은 채 첫 번째 순서로 정해진 팀은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다.

아직 제대로 본선 1라운드 분위기를 파악하기 전, 부산스러운 상황에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마련.

역시나 긴장에 움츠러들었던 그들은 시작부터 전주를 놓치는 실수를 범했다.

더욱이 이번 경연은 라이브 공연으로 스폰서들에게 보여진다.

작은 실수 하나만으로도 그들의 등을 돌려세울 수도 있다.

실수 이후 그 생각이 몸 전체를 지배한 듯 몇 번의 음 이탈도 보였다.

이 정도면 끝난 것과 다름없다.

가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라이브 공연이다.

공연도 하지 못하는 가수라니, 그런 사람들은 관객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

그렇게 첫 번째 공연을 마치고 내려온 참가자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어두웠다.

이윽고 두 번째 순서의 팀이 올라왔다.

첫 번째 공연을 한 팀의 망친 무대를 보고 온 탓인지, 상대적으로 편안히 무대를 이끌었다.

눈에 띄게 잘하진 않았지만, 앞 팀처럼 크고 작은 실수는 하지 않았다.

무대가 끝난 뒤 두 팀은 모두 진행요원의 안내를 받아 나란히 무대에 섰다.

그들의 앞에는 심사위원들이 앉아 평가를 적고 있었다.

오디션에서 가장 떨리는 순간이다.

평가를 마무리 지었는지 심사위원이 입을 열었다.

“한 쪽팀은 운이 상당히 좋았네요.”

“무대 퀄리티가 기대했던 것 이하군요. 본선 라운드 진출자라 나름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더 할 얘기도 없는데 바로 결과 발표 하실까요?”

두 팀의 무대를 본 심사위원들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그럴 만한 게, 두 팀 다 이렇다 할 진가를 발휘하지 못했다.

그저 한 팀이 무너져 내린 바람에 다른 팀이 올라가는 것일 뿐이었다.

평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곧장 심사위원석에 설치된 스크린에 승리한 팀의 참가자들 이름이 떴다.

예상대로, 두 번째 무대에 선 팀의 승리로 무난하게 첫 대결이 끝이 났다.

“꺄악!”

“우리 붙었어요! 대박!”

패배한 팀은 모두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흘렸다.

반면 승리한 팀의 참가자들은 모두 환호에 사로잡혔다.

허나, 심사위원은 그들의 환호에 대못을 박듯 단호하게 말했다.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마음 같아선 두 팀 다 떨어뜨리고 싶었으니까. 다음 팀 준비해주세요.”

심사위원의 싸늘한 반응에 순식간에 분위기는 얼음장이 되었다.

그 모습에 승리한 참가자들도 입을 다물고 무대를 내려갔다.

그 분위기는 모니터를 통해서 참가자들이 있는 대기실까지 흘러왔다.

그저 이번 라운드에서 승리한다고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무대는 이것으로 끝이 아님을 모두가 알고 있기에.

“생각보다 살벌하네요.”

“서바이벌이잖아요.”

성현의 덤덤한 대답에 처음 말을 뱉은 조은별을 비롯한 일원들 모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 본선 1라운드 대결은 이어졌다.

무대가 진행될수록 대기실은 점점 한산해졌다.

탈락한 자들은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으니 당연했다.

밀도는 낮아지지만, 공기의 무게는 오히려 높아진 상황.

그렇게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드디어 은별과 서지현, 김요하가 일어났다.

“이기고 오세요.”

조은별 팀의 차례가 온 것이다.

성현이 작게 응원을 보냈다.

“네. 꼭 이기고 올게요.”

“이따 대기실에서 봐요.”

“다녀올게요.”

이겨서 다시 올 것을 다짐하고 대기실을 나서는 셋.

대기실을 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별걱정은 들지 않았다.

모두 자신이 인정하고 실력이 출중한 자들이었으니까.

물론 심사위원이 그들을 어떻게 판단할지는 모른다.

다만 실수 없이 각자 본인의 힘을 다 보여주면 붙을 거라는 확신은 있었다.

잠시후, 금세 화면에 잡힌 셋.

이번 무대는 조은별이 프로듀싱을 맡고 서지현과 요하가 무대를 준비했다.

오디션 최연소 요하의 모습에 일단 시선을 끄는 데 성공했다.

화면상으로 보았을 때 그들은 모두 저마다의 긴장과 떨림을 가진 게 보였다.

부디 실수만 하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성현의 고민을 쓸어가 버리듯 노래가 흘러나왔다.

시작은 다름 아닌 요하의 솔로 부분이었다.

“우리 같이 놀자. 춤을 추며 놀자. 너와 나 손 붙잡고 놀자.”

“오….”

요하가 가진 특유의 맑으면서 탁한 음색이 귀를 깨웠다.

그 음색 때문에 참가자 몇 명이 낮게 탄식을 뱉었다.

성현도 묵묵히 모니터에 집중했다.

시작 전엔 보인 긴장된 모습 때문에 실수할 거 같아 내심 걱정됐다.

하지만 곡이 시작되니 분위기는 확실히 바뀌었다.

평소 자신이 보고 들었던 요하의 노래였다.

조은별이 택한 곡은 심플한 코드와 가사로 이루어진 노래였다.

그렇기에 더욱 편곡하기도 어려운 곡이었다.

비슷한 가사와 코드의 반복.

마치 동요와 결이 비슷한 노래였기 때문에, 오디션 무대라는 특성상 풍성하게 채워야 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곡은 조금이라도 놓친 부분이 있으면 편곡을 한 건지, 그저 기존 곡 위에 숟가락만 올리는 식으로 연주를 한 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은별은 잔잔한 피아노 멜로디와 요하의 목소리로 첫 인트로를 시작했다.

요하의 인트로가 끝나자, 그 뒤는 서지현이 이어받았다.

“너와 내가 불렀던 예쁜 노래. 그 노래를 아직도 난 가끔 떠올려.”

그녀의 시원한 가성이 하이라이트를 가로질렀다.

성현은 만족스럽게 모니터를 지켜봤다.

‘고음 질감이 확실히 좋아졌어.’

확실히 성현의 짧은 코칭만으로 서지현의 가성은 달라졌다.

그녀는 전과 달리 소리를 힘 있고 표범처럼 속 시원히 내질렀다.

대기실에 있던 참가자들은 모두 서지현의 맑으면서 파워풀한 고음을 듣고는 입을 벌렸다.

“테크닉 미쳤네.”

이미 그녀의 뛰어난 실력은 알고 있던 상황.

하지만 그보다 더 성숙해진 실력에 감탄을 뱉지 않을 수 없었다.

서지현의 파트가 끝나자 다시 요하에게로 돌아왔다.

요하 역시 자신만의 소리를 뽐내며 풋풋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읊어주듯 노래했다.

이보다 더 잘 어울릴 만한 그림은 없을 거다.

‘아무튼 영리하다니까.’

성현은 이 모든 곡을 짠 조은별에게 새삼 감탄했다.

은별은 각자가 가진 능력과 재능을 한 무대 위에서 어우러지게 했다.

요하의 맑은 음색을 돋보이게 하면서 서지현의 새로운 모습인 가성을 이용한 후렴구.

그들의 색이 섞이면서 전혀 다른 색이 만들어져 보는 재미를 더했다.

또한 그녀는 후렴구를 제외한 대부분의 파트를 편곡했다.

그러다 보니 단순 동요에 가까운 곡을 지루할 틈 없는 인디 곡으로 바꿨다.

어느새 대기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몸을 들썩이더니 후렴구를 금세 외워내 따라 불렀다.

그렇게 서지현과 요하의 무대가 끝이 났다.

심사위원들의 표정은 전과 다르게 밝게 바뀌어있었다.

“사실 걱정을 많이 했어요. 이렇게 단순한 곡일수록 편곡하기 어려우니까요. 그런데 괜한 걱정이었네요. 오히려 제가 배우고 가는 것 같아요.”

“두 사람의 케미가 상당히 돋보이는 무대였습니다. 프로듀싱 하신 분이 굉장히 디테일한 부분까지 조율을 잘하셨네요.”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결과는 볼 것도 없었다.

조은별 팀의 승리로 끝이 났고 그들의 본선 2라운드 진출이 확정됐다.

그리고 대기실에서 이를 지켜보던 성현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나랑 임하나 씨만 통과하면 되는 건가.’

***

이후로 대결 무대는 이어졌다.

성현은 자신의 무대만을 신경 쓸 게 아니라 다른 참가자들의 모습에도 집중했다.

‘비슷비슷한 무대만 계속되네.’

남은 참가자들의 무대를 모니터링했지만 특별히 느낌 있는 무대를 찾아내지 못했다.

각자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댄스곡이나 BPM이 빠른 곡을 가져왔다.

그중 발라드나 하우스 풍 음악도 한 참가자들도 있었으나 자신의 목소리나 실력에 맞지 않는 무대를 보여줬다.

아무래도 소속사의 눈에 띄기 위해서 초점을 맞춘 듯했다.

준비를 잘한 팀도 있었으나 그 수는 손에 꼽을 만했다.

“마지막 팀 준비해주세요.”

그러던 중, 드디어 때가 됐다.

스텝의 말에 정기준과 그의 프로듀서가 일어나 대기실을 먼저 나갔다.

나가기 전, 정기준은 임하나를 향해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성현과 임하나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임하나와 정기준의 대결은 가장 마지막 순서였는데, 이는 PD가 일부러 배치한 결과였다.

이번 매치로 화제를 모을 생각인 거다.

한동균 PD는 무대에 맞춘 카메라 앵글과 조명까지 직접 지시를 내리는 열정을 보였다.

이에 현장에 있던 참가자들은 모두 관심을 가지고 무대를 지켜봤다.

“이 무대가 오늘의 하이라이트 무대인 건가.”

“누가 이길지 기대된다.”

“정기준 씨가 이기지 않을까?”

“춤만 잘 춰서 이기긴 힘들지.”

모두가 임하나가 패배하고 떨어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성현과 임하나는 들려오는 참가자들의 대화를 애써 무시했다.

무엇이든 까보기 전까지는 모느는 법.

그렇게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는데 무대에 정기준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우승 후보 정기준입니다.”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전혀 긴장하지 않는 표정이다.

진심으로 임하나에게 질 거란 생각 자체를 안 했기 때문이다.

정기준은 임하나의 프로듀서가 교체됐단 말을 듣고도 신경 쓰지 않았다.

새롭게 바뀐 프로듀서가 아무리 좋은 곡과 무대를 구성해도 자신의 노래 실력으로 쉽게 이길 수 있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댄스곡을 바꿔봤자 얼마나 바꾼다고, 정기준은 장담했다.

그렇게 시작된 정기준의 노래.

그는 자신의 강점인 보컬을 살리기 위해 발라드곡을 선택했다.

‘기술적으론 거의 무결점 같은데.’

임하나와 참가자들의 말처럼 그는 실력자였다.

그의 보컬로만 보면 완벽에 가까운 무대였다.

다만 편곡 자체가 신선한 느낌을 주지 못했다.

정기준의 보컬에만 집중한 의도 같았고 실제로 정기준의 보컬 테크닉이 돋보였지만, 문제는 어떤 특색도 느껴지지 않은 무대란 거였다.

‘지루해.’

한 마디로 지루한 무대.

정기준 또한 너무 기술에만 치우치다 보니 곡 자체가 주는 감정을 전달하는 것은 간과했다. 그러다 보니 듣는 사람들에게 어떤 감동도 주지 못했다.

“백스테이지로 이동해주세요.”

뒤이어 이성현과 임하나 팀의 차례가 왔다.

성현과 임하나가 일어나자 조은별을 비롯해 서지현, 요하가 대기실 앞까지 그들을 바래다줬다.

“이기고 와요.”

“긴장하지 말고 평소대로만 하세요.”

동료들의 응원을 받은 그들은 어느 때보다 밝은 표정을 지었다.

백스테이지로 이동하자 스텝의 도움으로 셋팅을 빠르게 끝냈다.

“긴장돼요?”

임하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막상 무대에 서려니 떨리는 거겠지.

“저만 믿고 제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요. 우리 이길 수 있어요.”

성현은 임하나를 끝까지 기세를 올려줬다.

그의 확신을 가진 마음이 통했는지 임하나의 표정이 결연해졌다.

“최고의 무대 만들어봐요, 우리.”

성현과 임하나는 무대에 올라가기 전 서로 악수를 하며 서로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무대 올라갈게요.”

진행 스텝이 이제 곧 성현 팀의 공연이 시작됨을 알렸다.

자리를 잡는 데 도움을 줄 최소한의 조명이 켜졌고, 성현과 임하나가 그 옅은 불빛에 의지해 무대 위로 올라갔다.

성현은 무대 왼쪽 구석 신디 앞에, 임하나는 무대 중앙에 섰다.

세팅은 끝났다.

모든 조명이 꺼지며 완전한 암전이 찾아왔다.

이내, 좁은 공간을 비추는 밝은 조명 하나만이 무대 중앙의 임하나만을 비췄다.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 고고한 자태를 드러낸 임하나의 뒤태가, 이를 지켜보는 모든 이의 호흡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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