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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25화 (25/273)

25화

‘열심히 하는 데는 역시 다 이유가 있구나.’

성현의 눈에 비친 그녀가 드디어 왜 저렇게 열심히 하려는지 알게 되었다.

‘저 사람은 그래서 표정이 저런 거고.’

또한, 전까지만 해도 눈에 띄지 않던 파마머리 남자도 눈에 들어왔다.

임하나와 매칭된 프로듀서였다.

그의 표정은 누가 봐도 굳어있었다.

임하나의 춤은 분명 아름다웠다.

단지 억지로 임하나와 팀을 이룬 지금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다.

서바이벌 오디션에서는 춤을 메인으로 한 무대로는, 결코 노래를 메인으로 한 무대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

한참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성현에게, 은별이 뜻밖의 말을 꺼냈다.

“그래도 저 여성 참가자 춤을 대하는 태도가 상당히 마음에 들더라고요. 서지현 씨와 요하랑 팀을 안 짰으면 제안서를 넣었을 만큼요.”

“어떤데요?”

은별도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게 음악에 대한 애정이 넘쳤다.

그런 은별이 이런 반응을 보이니, 당연 궁금할 수밖에.

“프로듀서 없이 계속 혼자만 있길래 잠깐 말을 나눴거든요.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물으니까 돌아오는 대답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뭐라고 했는데요?”

“보컬과 댄스 둘 다 그저 음악을 구성하는 악기 중 하나라 생각한대요. 그래서 둘 중 뭐가 더 우월하다 평가할 수 없다면서, 자긴 춤을 좋아하면서도 보컬을 무시하지 않는대요.”

“그렇기에 더욱 증명하고 싶었던 거군요. 춤 또한 보컬에 밀리지 않는다는 걸.”

“맞아요. 춤이 그저 노래에 곁들어지는 악세사리 마냥 무시 받는 걸 참을 수 없던 거겠죠.”

조은별의 이야기를 듣자 그녀가 다시 보였다.

이전까지 그녀의 춤을 봤을 때, 또 그녀에 관한 사연을 들었을 때 흥미가 들었던 게 사실.

하지만, 딱 흥미까지였다.

하지만 방금 조은별의 말 한마디가 단순 흥미를 조금 다른 의미의 관심으로 바꿔놓았다.

‘춤도 음악을 구성하는 악기 중 하나라……. 재밌는 참가자네.’

여전히 춤 연습 중인 임하나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어쩌면, 그녀가 지금 성현의 상황에서 최고의 수가 될지도 모르겠다.

***

임하나는 한참을 노래에 맞춰 쉬지 않고 연습을 했다.

승리도 중요하지만, 자신만의 색깔을 완벽히 보여주며 제대로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머리를 질끈 묶고 몸을 움직였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버텼다.

그렇게 끝없이 춤을 추며 박자를 몸에 익히고 있을 때였다.

아까부터 영 좋지 않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프로듀서가 갑자기 음악을 껐다.

“이거로는 정기준 참가자 절대 못 이겨요.”

파마머리의 남자가 긴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애원하다시피 말을 늘여 틀었다.

“이제라도 노선 바꿉시다. 춤으로만 해서 절대 못 이긴다니까?”

그는 거의 울음을 터트릴 듯한 눈으로 임하나에게 항의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해줄 수는 없었다.

정기준에겐 이미 댄스로 승부를 보겠다고 했다.

게다가 카메라에도 전부 찍힌 상황.

이런 상황에서 댄스 말고 노래를 메인으로 무대를 꾸며 좋은 결과를 받아봤자다.

무엇보다, 그녀는 춤을 사랑했다.

이렇게까지 모욕을 받은 상황에서, 춤을 접는다는 것은 자신을 배반하는 것과 똑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단호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춤으로 하는 걸로 이미 정해졌고 못 바꿔요. 바꿀 생각도 없지만.”

그를 다독이는 게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남자는 머리를 감싸며 하염없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임하나 역시 막막했다.

이런 프로듀서라면, 될 것도 안 되겠다.

“한숨 좀 그만 쉬세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최고의 무대 만들어서 이기면 되잖아요.”

그가 이미 파트너로 정해진 마당에 푸념만 늘어놓을 수는 없었다.

하루 만에 얼굴이 꽈배기 마냥 꼬아져 도저히 의욕이 없어 보이는 그를 다시 붙잡았다.

하지만, 남자는 여전히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어디 가세요.”

“답답해서 바깥 공기 좀 쐬게요. 금방 올게요.”

프로듀서 남자는 긴 한숨을 쉬며 연습실을 나섰다.

“하아… 정말.”

그의 무기력하고 냉랭한 모습에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기쁨이든, 좌절이든 옆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전파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음악을 다시 틀고 연습을 이어갔다.

“저기요.”

그때, 언제 연습실로 들어온 건지,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임하나가 흠칫 놀라 뒤를 돌아봤다.

좀 전 파마머리 남자와는 다른 남자가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프로듀서 참가자 이성현입니다.”

대뜸 자신을 소개하는 남자를 보았다.

이전까지만 해도 마주치지 못했던 남자다.

거기다 프로듀서 참가자라니?

이미 팀은 다 짜졌을 텐데 이곳엔 왜 온 거지?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성현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그러다 문득 임하나도 급히 본인을 밝히며 인사했다.

“가수 참가자 임하나입니다.”

인사를 받은 성현이란 남자는 잠시 고요한 웃음을 지었다.

갑자기 이런 모습을 보이면 수상해 보일 테지만, 어째선지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이윽고 침묵을 깨며 던진 이성현의 말은 충격이었다.

“노래와 춤 모두 음악을 구성하는 하나의 악기에 불과하다.”

임하나 본인이 정기준에게 했던 말이지 않은가.

임하나가 의중을 알 수 없다는 듯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쳐다보자, 이성현이 뒷말을 붙였다.

“한 번도 못 해본 발상이라 신기해서요. 무슨 뜻으로 한 말이에요?”

사실 성현은 춤에 그다지 많은 관심이 있는 편이 아니었다.

당연히 무대 구성에 있어 춤이라는 요소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고,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프로듀서로서 최소한의 지식과 감은 있었다.

말 그대로 성현에게 춤은 ‘무대의 요소’ 중 하나일 뿐이었다.

무대의 요소라고 해서 얕게 보거나, 덜 중요하다고는 생각한 건 아니다.

다만 춤이 악기 중 하나가 될 거라곤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임하나의 저 말이 더욱 흥미롭게 와닿았던 거고, 왜 그런 말을 했는지가 너무나 궁금했다.

임하나는 처음 보는 성현이 살짝 경계되긴 했지만, 어려운 답이 아니기에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냥 제 생각을 말한 것뿐이에요. 보컬로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것처럼, 춤도 음악 안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야길 들려줄 수 있으니까요.”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야길 들려준다, 라.’

성현은 임하나의 말에 신선한 충격을 받은 듯, 그녀의 말을 속으로 곱씹었다,

‘뭐지? 뭔 생각을 하는 거야.’

답을 해줬음에도 아무 반응이 없는 성현을 향해 많은 감정이 담긴 눈빛을 보내는 임하나.

혹시 성현 역시 춤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는 걸까.

임하나는, 혹시 그렇다 할지라도 자신의 생각은 틀린 게 아니라고 속으로 항변했다.

춤도 그만의 멋이 있고 표현이 있다.

임하나 본인만의 고집이라면 고집이다.

한편,

‘멋있어.’

성현은 임하나가 걱정하는 생각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자신 역시 춤이 무대를 구성하는 큰 요소라 생각하긴 했지만, 그것을 악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완전히 색다른 접근법이잖아.’

무엇에 영감이라도 받은 듯 눈을 반짝이며 임하나를 바라봤다.

임하나 역시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는 성현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순간 시선이 하나로 이어졌다.

이윽고, 성현이 입을 열었다.

“재밌을 거 같아요. 춤으로만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무대.”

춤과 노래의 대결.

춤만으로, 노래를 부르는 참가자보다 더 좋은 무대를 꾸미는 것은 프로듀서인 성현에게 엄청난 흥미와 승부욕을 불러일으켰다.

‘재밌어?’

임하나 역시 성현이 내놓은 의외에 답에, 그를 향한 의심이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서로에게 흥미와 궁금증을 품고 있을 때였다.

띠링-

갑자기 무언가 반짝이더니 성현의 눈앞에 홀로그램이 떴다.

[ ‘임하나’의 정보창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아, 이게 있었구나.’

간만에 나타난 정보창에 당황했다.

조진석과 서지현, 천소울 이후 처음 뜨는 정보창이기 때문이다.

‘임하나도 게임 캐릭터였나……?’

그녀의 정체에 내심 놀랐지만, 침착히 임하나의 특성을 확인했다.

[임하나]

나이 : 24살

키/몸무게 : 160.5cm / 45kg.

포지션 : 가수

특성 : [유연한 몸놀림], [장르 불문 춤꾼], [타고난 승부욕]. [디바의 씨앗].

‘역시 춤과 관련된 특성이 많네.’

그녀의 특성을 조목조목 읽어나갔다.

그 순간,

“아?”

성현은 뭔가에 놀란 나머지 짧은 외마디를 내뱉고 말았다.

이에 임하나도 놀랐는지 한 발자국 무르며 가슴에 손을 얹었다.

대화를 하던 성현이 갑자기 시선을 허공에 두더니, 홀로 이상한 감탄사를 내뱉는 거 아닌가.

충분히 이상하게 여겨질 상황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재빨리 그녀에게 사과하며 안심시켰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는 그녀를 두고 빠르게 다시 특성을 확인했다.

여전히 그녀의 정보창에 쓰여있는, 생각지도 못한 특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 디바의 씨앗 ]

‘디바의 씨앗? 게임 할 때 봤던 특성 같기도 한데.’

기억을 되새겨봤다.

분명 ‘디바’와 관련된 특성이 여럿 본 것 같은 기억이 남아있다.

‘씨앗이라는 건, 아직 특성에 잠재력이 있다는 뜻인 건가.’

만약 그렇다는 건, 임하나가 춤만 잘 추는 댄서가 아닌 디바, 즉 가창에서도 분명한 포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안 그래도 임하나에 대해 흥미가 생기는 와중인데, 저런 특성까지 가지고 있는 걸 보니 더욱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이번 무대를 함께 준비하고 싶어.’

프로듀서로서 함께 최고의 무대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다시금 피어올랐다.

단순히 이번 라운드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자신의 손으로 직접 그녀를 더욱 성장시키고 싶었다.

“춤 한 번 제대로 볼 수 있을까요?”

만약, 임하나가 지금 성현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몸소 증명해내는 데 성공한다면 말이다.

“왜요?”

갑작스레 날아온 요청에 임하나는 동그란 눈을 얇게 떴다.

지금까지 이곳에 있던 프로듀서 중에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 사람은 없었으니까.

“당신을 프로듀싱 하려면 당신에 대해 잘 알아야 하니까요.”

자신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이미 자신은 프로듀서가 정해진 상태다.

그런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프로듀서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그 말은…….”

“네. 프로듀서 체인지를 말하는 거예요. 물론….”

성현은 임하나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도, 그 말을 잘라내며 뒷말을 이었다.

“당신의 춤이 괜찮아야겠지만.”

성현의 말에 임하나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비록 처음 만난 사이지만, 이런 성현의 자신감 있고 적극적인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물론 지금의 프로듀서도 자신의 춤을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그저 다가오지도 않은 결말에 미리 점을 찍어 둔 듯, 비관적인 모습을 일관해왔다.

춤을 메인으로 해야 하는 무대에서, 프로듀서로서 자신의 가수가 어떤 춤을 잘 추는지 확인하는 건 당연한 태도다.

허나, 원래 임하나와 매칭되었던 프로듀서에게선 그런 태도가 없었다.

그 덕에, 성현이 그녀를 대하는 태도가 더욱 진정성 있게 느껴졌다.

자신의 빛을 제대로 알아봐 줄 수도 있는 사람이 드디어 나타났으니.

‘이 사람과 함께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구나.’

임하나는 자신도 모르게 성현이라면 자신의 춤을 살려줄 곡과 무대를 꾸며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생겼다.

사람 마음이 그래서 참 신기한 거다.

별것 아닌 한 마디만으로, 듣는이에게 이 정도까지 생각을 뻗치게 하니.

‘제대로 보여주고 싶어. 이 사람과 같이 작업하고 싶어.’

비록 성현이 먼저 다가왔지만, 어느새 임하나에게 또한 이성현을 자신의 프로듀서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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