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춤.
노래에 시각적인 매력까지 더해 더욱 흥미를 가질 수 있게 하는 요소.
춤 또한 노래처럼 장르가 다양하며, 그 장르에 따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기를 끌 수 있는 퍼포먼스이기도 하다.
성현이 걸음을 멈춘 이유는, 한 여성 참가자가 추는 바로 그 춤 때문이었다.
연습실에서 홀로 연습 중인 그 여자는 춤 선이 고운 것은 물론이고, 음악에 맞춘 강약조절 역시 일품이었다.
피아노 선율이 형태를 띠게 된다면, 아마 이런 모습으로 보일 게 분명하다.
‘목을 진짜 잘 쓰네.’
여자의 손이 가녀리게 움직였다.
기품이 느껴지며 힘차게 뻗어 올랐다.
이어서 발도 움직이며 공간 활용도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파워풀한 동작과 디테일한 표현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음악보다 춤이 먼저 보인 게 얼마 만인지.
뒤이어 들려온 노래에 춤추는 모습을 전체적으로 보니 그루브가 상당했다.
그녀의 표정을 보니 음악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기보다 음악과 함께 춤을 추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그녀를 봤을까?
조은별 또한 성현의 시선을 쫓아 여성 참가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분 어제 그 여성 참가자시네요.”
조은별이 마치 아는 사람이라는 듯 말하자, 성현이 호기심을 드러내며 곧바로 물었다.
“아는 사람이에요?”
“아는 사람은 아니고 어제 일이 좀 있었거든요.”
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저렇게 열심히 연습을 하는 것에 대한 이유가 있는 걸까?
성현이 궁금해한다는 게 티난 걸까.
조은별은 성현이 더 물어보기 전, 이내 여성 참가자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어제 저 여성 참가자분이…….”
***
시간을 거슬러 바로 어제, 본선 1라운드의 첫날.
본선 장에 모인 백여 명의 사람들은 모두 본선 1라운드 미션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내 진행요원이 본선장에 들어왔다.
“곧 본선 1라운드 미션 내용이 공개될 겁니다.”
진행요원은 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진행요원의 말과 동시에 한쪽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싸우는 건가?”
“그러게요. 싸우는 소리 같기도 한데.”
“누나! 저기서 싸움 났어요.”
어느 틈에 보고 온 건지 요하가 말을 꺼냈다.
서바이벌 내에서 싸움이 일어나는 건 드문 일은 아니다.
서로 더 좋은 인재를 쟁취하기 위해 언성을 높이기도 했고, 준비한 곡이 마음에 안 든다며 팀끼리 싸우기도 했다.
허나, 지금은 미션 내용도 알려지기 전이다.
이런 상황에서 싸울 원인이라도 있던 걸까?
은별과 서지현은 요하를 따라 소란스러운 곳으로 가보았다.
그곳엔 여성 참가자와 남성 참가자가 말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공기 중에 맴도는 사나운 기운이 어느새 참가자들의 이목을 끌어당겼다.
싸움 구경만큼 재밌는 게 없는 법.
구경꾼들이 모여드는 사이, 싸움은 더 거세졌다.
“방금 그 말 사과하라고!”
“야 임하나, 너 많이 컸다? 어디 하늘 같은 선배한테 소리를 빽빽 질러대!”
도착해보니 어깨 정도로 머리를 기른, 얕게 웨이브진 장단발을 한 여자와 이마 한쪽을 드러낸 앞머리를 가진 남자가 보였다.
여성 참가자는 상당히 흥분한 상태였고 남성 참가자는 가소롭다는 듯 성가신 웃음을 짓고 있었다.
또한, 둘의 내용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서로 이전부터 안면이 있는 사이 같았다.
“그리고 사과? 내가 뭘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냐? 내가 없는 말 지어냈어? 넌 가수 아니고 댄서잖아. 노래도 못하는 네가 왜 더 넥스트 서바이벌에 나왔냐는 질문이 그렇게 기분 나쁠 말인가?”
그 뒤로 상황을 지켜보았다.
아무래도 남자 쪽에서 먼저 시비를 걸어온 듯 보였다.
남자는 오디션에 참가한 사람에게 굉장히 자존감 깎이는 말을 곧잘 해댔다.
듣고 있는 것만으로 화가 나는데 당사자는 어떻겠나.
역시 여자는 그 말에 더욱 분개했지만, 어떻게든 화를 참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며 남자를 노려봤다.
“사과하라고.”
“그러니까 내가 왜 사과를 하냐고. 얜 진짜 아직도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아네. 야 너 대학 때부터 춤 좀 춘다고 노래도 못하는 게 뭐라도 되는 것마냥 허리 꼿꼿이 세우고 다니던데 착각하지 마. 네가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넌 댄서야. 가수 못 된다고.”
“내가 왜 가수가 못 돼! 두고 봐. 나 여기서 우승해서 데뷔할 거니까.”
여자의 외침에 남자는 진심으로 어이없다는 듯 웃어댔다.
주변에 꼭 저런 사람은 한둘 있다.
남의 능력을 멋대로 평가하고, 그 사람의 길에 한계를 정해버리는 사람.
그 모습에 당장이라도 뭐라 쏘아붙이고 싶었는데, 남자가 참가자들을 둘러봤다.
“들었어요, 방금? 노래도 못하는 게 우승하겠다 한 거? 야 진짜 너랑 붙을 사람이 누군진 모르겠는데 그 사람은 횡재한 거다. 허접 댄서랑 붙으면 자동으로 올라갈 거 아니야.”
“그래? 그렇게 자신 있으면 나랑 붙자. 선배 정도는 내가 춤만 춰서 바를 수 있으니까.”
남자의 도발에 여자가 제대로 응대해줬다.
그녀가 그렇게 나올 줄 몰랐는지, 남자는 순간 굳더니 박장대소를 쳤다.
“얘가 떨어지고 싶어서 발악을 하네.”
“싫어? 쫄았나 봐? 막상 1대1 뜰려니까 질까 봐 무서워?”
더는 당할 수만 없던 여자는 어느새 우위를 점해 그를 몰아세웠다.
그녀가 자신의 머리 위에 있는 게 그렇게 싫은지, 남자의 표정이 제대로 썩었다.
“넌 네가 붙고 싶다 그러면 주최 측에서 아예, 그러세요. 그러고 붙여줄 줄 아냐? 네가 뭐라고 대결 상대를 골라! 아무튼 세상의 중심이 지인 줄 알아요.”
“오디션 떠나서 나랑 붙자고. 여기 있는 사람들한테 누가 더 잘했는지 평가하라고 해보자고.”
“내가 왜? 아, 그래. 알았다, 인심 썼다. 네가 정 원하면 다음 라운드에서 붙어줄게. 올라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
남자는 그녀의 압박에 오히려 약을 올리며, 기분나쁜 시선으로 여자를 내려다봤다.
여자는 결국 참지 못하고 그에게 다가가 제대로 한 방을 먹이려는 듯 자세를 취했다.
일촉측발의 아슬아슬한 타이밍.
뒤늦게 나타난 진행요원이 그제야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더 이상 소란 피우면 경고로 끝나지 않습니다.”
진행요원은 매우 엄격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뒤로 남자는 비열하리만큼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결국, 여자만 씩씩거리며 자리를 피하였다.
은별은 그런 여자의 모습을 쉽게 지을 수 없었다.
또한, 이 모습은 현장에 배치되었던 수많은 카메라에도 담겼다.
카메라는 이들의 광경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담아냈다.
담겨진 영상은 그대로 한동균 메인 PD에게 전해졌다.
그는 이윽고 스텝 한 명을 호출했다.
“저 두 명 데려와.”
재밌는 소스를 하나 찾은 모양이다.
***
한동균 메인 PD, 그는 본선 1라운드를 총괄하는 자였다.
서울만해도 본선장이 이곳 하나가 아니다.
본격적인 미션이 시작되기 전, 어떻게 하면 본선 1라운드부터 이곳 ‘잠실 본선장’이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을까 고민에 빠졌었다.
그의 머리에서 나온 답은 역시 하나밖에 없었다.
자극.
결국, 시청자는 자극적인 걸 좋아하게 되어있다.
‘적당한 게 없으려나. 이를테면 라이벌들의 데스매치 같은….’
눈에 불을 켜고 카메라 영상들을 살폈다.
예선을 시작해 각종 참가자들의 일상 모습도 빼놓지 않고 봤다.
서로를 이기기 위해 발악하는 모습은 여느 프로그램 못지않게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 할 라이벌 구도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한 남녀의 모습이 보였다.
한동균은 곧장 이력서를 살피며 그들의 정보를 캤다.
싸움의 주체였던 남자의 이름은 정기준, 여자의 이름은 임하나라는 걸 알아챘다.
“얘네 둘, 데려와 봐.”
한동균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스텝은 그들을 곧장 불러왔다.
“둘이 일 대 일 경연을 하고 싶은 건가요?”
메인 PD가 부른단 말에 놀란 상태인데, 이런 말을 들으니 더욱 당황스러워했다.
먼저 대답한 것은 임하나였다.
“네.”
임하나는 망설임 없이 답했고, 그 대답에 한공균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정기준을 바라봤다.
“정기준 참가자는요?”
정기준은 확고한 표정의 임하나를 보며 손을 꽉 쥐었다.
자신에게 잘도 이런 치욕을 주다니, 라는 모습이었다.
그러더니 정기준도 그렇다고 대답했다.
일이 이렇게 된 거, 여기서 싫다고 하는 것도 모양새가 빠지고 실력으로도 임하나쯤은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럼 새로운 룰을 하나 추가하죠. 정기준 씨는 노래, 임하나 씨는 춤을 메인으로 무대를 꾸민다면 판은 제가 짜드리겠습니다.”
드디어 입에 맞는 만찬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렇게 알아서 싸워주다니, 이거야 고마울 따름이지.
각각 노래와 춤에 특기가 있는 두 참가자의 라이벌 관계 형성.
데스매치로 벌어지는 이번 라운드 특성상, 이보다 시청자들을 자극할 요소는 없다.
두 사람을 이번 본선 1라운드의 메인으로 설정했다.
두 사람의 대결 구도를 재밌게 만들어볼 생각이었다.
두 사람 역시 고민을 길지 않았다.
대학 시절부터 서로 앙숙이었던 둘이기에 이미 호승심이 불붙은 상황이었다.
“할게요.”
그렇게 예상치 못한 매치가 시작됐다.
***
“이번 라운드는 특별 경연이 준비될 예정입니다.”
진행요원이 말한 특별 경연은 임하나와 정기준의 대결이었다.
진행요원은 뒤이어 참가자들에게 설명했다.
“솔로 가수와 팀을 짜야 하는 프로듀서들은 두 참가자 중 마음에 드는 참가자 있으면 제안서를 보내시면 됩니다. 단 임하나 참가자는 댄스를, 정기준 참가자는 노래를 메인으로 무대를 구성해야 하니 이점 참고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진행요원의 설명이 끝나고 본격적인 팀 짜기가 시작됐다.
본선장에 있는 프로듀서들은 모두 각각 숫자를 하나씩 랜덤으로 받았다.
숫자에 맞춰 팀을 구상해야 하기에 자신에게 맞는 가수 참가자들에게 제안서를 보내기 시작했다.
화제의 인물 중 한 명인 정기준은 빠르게 팀을 꾸릴 수 있었다.
그의 섬세한 노래 실력이야 예선에서부터 잘 알려져 있었다.
거기에 대결 상대가 춤을 메인으로 해야 하는 임하나란 사실에 프로듀서들은 쉽게 이길 수 있다고 여겼는지, 여기저기서 제안서를 보내온 것이다.
반면, 또 다른 화제 인물인 임하나는 그 어떤 프로듀서 참가자에게도 제안서를 받지 못했다.
노래가 아닌 춤을 메인으로 무대를 꾸며야 한다니, 당치도 않은 말이다.
물론 춤도 호감을 충분히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노래에 비해선 확실한 임팩트를 주기 까다로운 것 또한 사실이다.
게다가 상대는 뛰어난 가창력을 가진 정기준.
그녀가 패할 가능성이 현저히 높았다.
이번 라운드에서의 패배는 곧 탈락을 의미하기에, 아무도 임하나의 손을 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원배치상 프로듀서 참가자와 가수 참가자는 완벽하게 인원 배치가 나누어지게 돼 있다.
그렇기에 숫자 ‘1’을 받은 프로듀서 누군가 한 명은 반드시 임하나와 팀을 이룰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파마 머리를 한 남자가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임하나를 찾아왔다.
“하아. 진짜…….”
남자는 임하나에게 들릴까 말까한 작은 목소리로 낮게 욕을 뱉었다.
모든 제안서가 까인 그는 결국 선택지가 임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
남자의 머릿속엔 이미 이대로 탈락이란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제안서 보낼게요. 어차피 남은 건 우리 둘뿐이니까.”
결국, 마지막 남은 프로듀서가 울며 겨자 먹기로 임하나와 팀을 이루게 된 거다.
다시 돌아와 현재,
“그렇게 해서 저 두 사람이 붙게 된 거예요.”
조은별이 성현의 시선을 사로잡은 여성 참가자에 대한 설명을 마쳤다.
조은별의 얘길 들은 성현의 눈빛은 어째 전보다 더욱 반짝였다.
“재밌는 참가자군요.”
성현이 말하는 재미에는 여러 뜻이 내포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