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더 넥스트 슈퍼스타’ 본선 라운드가 시작되는 곳 중 하나인 ‘잠실 본선장’.
주어진 시간은 단 일주일.
그 시간 안에 자신과 잘 맞으며, 실력도 있는 자를 골라야 한다.
방심할 틈은 없었다.
본선장에 모인 모든 참가자들은 바쁘게 돌아다녔다.
가수 참가자, 프로듀서 참가자 할 것 없이 각자가 원하는 장르나 무대 스타일을 어필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 조은별 일행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아직 도착 전이래요?”
연신 시계를 확인하던 서지현이 참지 못한 듯 조은별에게 물었다.
아직까지 묵묵부답인 핸드폰을 내려다보는 조은별, 그때,
-어디예요?
이들이 기다리던 사람에게 답장이 왔다.
“왔나 봐요!”
은별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치며, 상대에게 곧장 답장을 보냈다.
“오고 있대요? 지금 어디쯤이래요?”
요하 역시 오랫동안 기다린 사람의 등장이 설레는지 재차 물었다.
“응. 이제 요 앞인 거 같은데…….”
은별이 말끝을 흐리는 사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사람.
이성현이 조은별의 시야에 들어왔다.
“성현 씨! 여기요!”
멀리 입구에 있는 성현을 향해 손을 들었다.
그 모습을 발견한 성현 역시 활짝 웃으며 조은별을 포함한 일행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형!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그 사이 살이 좀 빠진 것 같네요, 성현 씨? 패자부활전하는 동안 고생이 많았나 봐요.”
김요하와 서지현이 패자부활전에서 살아 돌아온 성현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반겼다.
이렇게 성현을 반기는 걸 보니, 확실히 성현이 지난 예선 라운드에서 기권한 게 이들 마음속에 깊이 자리하긴 했나 보다.
“다들 잘 지냈습니까. 은별 씨 통해 예선 라운드 잘 치렀다고 소식은 들었습니다.”
성현 역시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요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참 신기했다.
이들과 딱히 많은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니다.
사실상 따지고 보면, 보낸 시간이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반갑게 느껴지는 것일까.
벌써 이들의 프로듀서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영상 잘 봤어요. 마지막 무대는 저도 눈물 나더라구요.”
“형. 전 형이 패자부활전 뚫고 올라올 줄 알았어요.”
이들 역시 이성현이 패자부활전에서 찍은 영상을 본 상황.
그 어려운 미션을 어떻게 완수할까 했는데, 설마 이미 십여 년 전 해체했던 ‘더 비기너’를 무대 위에 다시 세울 줄이야.
다른 탈락자들의 영상은 각자 버스킹하는 모습이나 연예인 외의 모든 인맥을 총출동시켜 머릿수로 영상을 채우려 한 모습들이 대부분이었다.
개중엔 빽을 이용해 은근슬쩍 유명한 사람이 길거리를 지나가다 방송에 끼어든 것처럼 만든 조작 영상도 있었으나, 그런 건 곧바로 담당자에 의해 지워졌었다.
그렇게 반가운 인사를 나눈 후, 조은별이 현재 본선 1라운드 상황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미션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역시 현장 상황은 현재 몸담고 있는 참가자가 가장 잘 아는 법.
“이미 하루 만에 팀이 거의 완성되고 지금 남은 사람은 얼마 없어요. 성현 씨가 받은 랜덤 숫자가 뭐예요?”
“두 명이요. 가수 두 명과 팀을 이뤄야 해요.”
“이미 실력자들은 먼저 온 프로듀서들이 채가서 남은 가수들 중에서 그나마 괜찮은 사람을 알아봐야 할 거예요.”
어느 정도 예상한 상황이지만, 직접 들으니 그리 반가운 정보는 아니었다.
조은별의 말대로 노래를 잘하는 참가자들은 이미 짝을 이룬 상태.
“성현 씨, 찾다 보면 실력이 감춰진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같이 찾아다녀 보죠.”
조은별은 성현의 깊은 생각에 빠진 듯한 시선이 신경 쓰였는지, 바짝 다가가며 말했다.
“아니요, 그럴 고생할 것까지는 없습니다.”
성현이 옅게 웃으며, 오히려 조은별의 걱정을 달랬다.
반가운 상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비관적인 상황도 아니다.
‘예선 통과할 정도의 실력이면 충분해.’
그들의 실력이 다른 참가자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더라도, 어찌 됐든 예선을 통과한 사람들일 터.
최소한의 증명을 끝낸 이들이란 소리다.
그렇기에 프로듀싱을 전혀 못 해줄 정도의 실력은 아닐 테다.
남은 참가자들 중 그나마 괜찮은 사람들을 골라 무대만 잘 꾸밀 수 있다면 다음 라운드 진출을 충분히 노려볼 수 있다.
‘더 비기너’의 무대를 준비하면서 성현이 얻은 것은 또 하나 있었다.
‘이제 무대만큼은 자신 있으니까.’
바로 자신감.
자신이 편곡한 곡이 이미 과거 한번 정점을 찍었던 가수에게 인정받았다.
현장 관객에게는 물론, 넷상 너머의 네티즌들에게도 편곡에 대해 비난받지 않았다.
충분히 자신감을 가질만한 성과였다.
“아직 매칭이 이뤄지지 않은 참가자들은 어디에 있죠?”
성현의 물음에, 조은별이 재빨리 그들이 있는 쪽으로 안내했다.
가는 와중에 성현에게 참고하라는 듯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전 서지현 씨랑 요하랑 팀을 결성했어요.”
성현은 그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했다.
이에 조은별은 그가 어떤 오해를 할 수도 있단 생각에 다급히 말했다.
“오해하지 마세요. 친분으로 한 거 아니고 정식으로 제안서 넣고 두 사람 모두 동의해서 팀 짠 거…….”
“걱정 말아요. 오해 안 합니다.”
다급하게 말하는 은별에게 성현이 가벼운 미소와 함께 답했다.
“은별 씨 제안서라면 두 사람이 당연히 동의했겠죠. 그냥 당연한 거라서 대답하지 않았던 것뿐이에요.”
조은별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욕심, 그리고 이를 받쳐주는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성현이다.
그런 성현이 조은별을 오해할 리 없었다.
겨우 이 정도로 오해할 거였으면, 애초에 성현이 은별에게 예선 라운드를 믿고 맡기지 않았을 테다.
또한 성현이 오해를 하지 않은 또 다른 이유.
서바이벌은 서바이벌이다.
제아무리 예선 라운드에서 함께했어도 서지현과 요하가 단순히 친분 때문에 조은별의 제안서를 받아들이진 않을 것이다.
실력 없는 친분 하나만 의지한 채 움직인다면 얼마 못 가 분명 탈락하고 말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조은별이 제안한 곡과 무대 구성이 마음에 들어 팀을 짜기로 결정했을 거였다.
“직접 프로듀싱 해보니 성현 씨 말대로 요하랑 서지현 씨 보컬 하모니가 괜찮더라고요.”
“한 번 합을 맞춘 팀이니 이번 라운드도 무난하게 통과하길 기대할게요.”
성현의 말에 조은별은 구태여 반박하지 않고 고갤 끄덕였다.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요하와 서지현의 합은 괜찮았으니까.
“이쪽에 모인 사람들이 아직 매칭이 안 된 참가자들이에요.”
본선장 구석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성현에게 알렸다.
성현은 서둘러 본선장을 살폈다.
‘생각보다 조금 남았네.’
성현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적은 사람들이 남아있었다.
하나같이 불안감에 빠져 눈치 살피는 데 바빴다.
성현이라면 저런 사람들도 빛을 낼 수 있게 사포질해줄 수야 있겠지만, 그 힘을 저 사람들이 버틸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흠. 한 명 한 명 일단 노래를 다 들어봐야 하나.’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아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 또한 프로듀서로서 극복해야 하는 일이었고 이런 능력 또한 프로듀서에게 필요로 하는 능력이었다.
‘항상 원하는 가수랑만 작업할 수 없으니까.’
현실에서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일만 하지 못한다.
하기 싫은 일을 반드시 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실력을 증명해야 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성현 역시 이렇게 된 거, 주어진 상황 속에서 그나마 괜찮은 참가자를 서둘러 찾아 나섰다.
그때, 그의 시야에 함께 연습하고 있는 두 명의 남성 참가자들이 눈에 띄었다.
‘C5? 발성은 괜찮네. 끝 음처리는 최악이지만.’
두 남성 중 머리가 짧은 남자는 고음을 잘 지르긴 했지만, 호흡이 엉망이었다.
그래서 음을 찍은 뒤 남은 음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고음을 주로 쓰는 가수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다.
이번엔 남자와 함께 연습하는 모자를 쓴 남자의 보컬을 유심히 들었다.
남자의 목소리는 누가 봐도 바리톤에 어울리는 음색으로 본인도 그걸 아는지 주로 중저음의 노래를 불렀다.
‘음정이 굉장히 정확한 편이네. 구강도 잘 쓰고.’
모자를 쓴 남자는 음역대는 높아 보이지 않았지만, 구강을 사용한 공명을 잘 사용하여 중저음의 음역대로 노래를 풍부하게 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성현은 두 사람 모두 딱히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선택권은 없었다.
‘둘 다 음역대도 다르니 듀오로 팀을 짜는 게 현재로선 가장 괜찮으려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이들보다 나은 참가자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결국 고심 끝에 판단을 내린 성현은 남성 보컬 둘을 듀오로 해서 무대를 구성하기로 했다.
성현이 이들에게 다가가니, 남자 둘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곧바로 연습을 멈추고 성현을 바라봤다.
“제안서를 보내고 싶은데 성함 좀 알려주시겠어요?”
성현은 지체할 것 없이 곧바로 직구를 날렸다.
제안이 들어온 게 기쁜 건지, 다행스러운 건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빠르게 이름을 알려줬다.
“김강우입니다.”
“이주현입니다.”
두 사람의 이름을 각각 커넥트 앱에서 찾아 제안서를 보냈다.
띠링, 알람 소리와 함께 두 사람에게 제안서가 도착했다.
“무대 구성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드리자면-”
이 둘을 듀오로 해서 무대를 빠르게 구성한 제안서를 설명하려 할 때였다.
갑자기 알람소리가 두 번 연속으로 울리며 그의 설명을 끊었다.
무슨 일이지, 그새 규칙이 또 바뀌기라도 한 건가?
휴대폰을 꺼내 알람을 확인했다.
이윽고 내용을 확인하자 표정이 확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김강우 참가자와 매칭에 성공했습니다.]
[이주현 참가자와 매칭에 성공했습니다.]
[팀을 결성하시겠습니까?]
두 사람 모두 제안서를 제대로 읽지도, 성현의 설명도 듣지 않고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휴대폰에서 고갤 들어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들 얼굴엔 다급함만이 서려 있었고, 그저 빨리 팀을 이루어 연습할 생각뿐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 모습이 좋게 보일 리가 없다.
“제안서 아직 다 숙지 안 되셨잖아요.”
그들을 몰아세우듯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그러나 남자들은 뻔뻔하게 그게 무슨 대수냐는 듯 귀찮은 표정을 보였다.
“시간도 없는데 연습하면서 읽을게요.”
“맞아요. 일단 팀을 짜는 게 먼저니까요.”
어차피 서바이벌이라 살아남는 게 중요하지, 그게 뭐가 중요하냐는 말투였다.
둘의 태도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지금이라도 제안서를 무르고 싶었다.
음악가라면 응당 자신이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지, 어떤 음악이 자신과 맞을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당장 팀을 이루어 다음 라운드에 올라가는 것만이 목표인 사람들처럼 보였다.
이런 마음가짐인데 어찌 사람들의 귀와 마음을 휘어잡을 음악을 보일 수 있겠는가.
‘후우.’
성현은 새어나오는 한숨을 남몰래 삼켰다.
어쩌겠는가.
선택지가 없는 성현은 두 사람으로 팀을 이룰 수밖에 없었다.
“내일까지 곡 가지고 올 테니 오늘은 두 분이 따로 연습하세요.”
이미 선택은 끝났고 이 또한 패자부활전을 거쳐온 그의 패널티다.
성현은 싸늘한 말만 남기고 ‘더 비기너’와 곡을 할 때와 전혀 다른 마음으로 둘을 떠났다.
하루가 늦은 만큼, 빨리 곡 작업도 해야 했다.
이후, 성현은 조은별의 안내를 받아 함께 스튜디오로 향했다.
그들을 상대로 당최 무슨 곡을 만들어야 할지, 걷는 와중에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때,
“응?”
갑자기 걸음을 멈춘 성현이 고개를 돌렸다. 복잡했던 머리가, 순간 완전히 깨끗해졌다.
걸음을 멈춘 성현의 시선 끝에는, 지금껏 보지 못한 한 여성 참가자의 실루엣이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