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더 비기너’가 이번 깜짝 거리 공연을 위해 준비한 마지막 노래는 이제 후렴을 향했다.
심혁의 베이스 소리가 마음을 달래주듯 톡톡 두들겨줬다.
마치 자신이 없어도 앞에 있는 밝은 미래를 맞이해도 된다는 듯이.
후렴을 부르는 이재원의 목소리는 바이브레이션을 잘못 넣은 듯 잘게 떨려왔다.
실수가 아니었다. 울컥한 감정에 눈물이 터져 나오는 것을 애써 막아내는 이재원의 노력이었다.
목을 가다듬는 척 뒤를 돌아보니 김동우와 최훈도 눈시울이 붉어지려는 걸 참고 있었다.
천국에 갔다가 쫓겨나기라도 한 듯 우리 곁에 있어 주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그날 이후로 쭉 우리와 같이 있고 싶어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건물 틈 사이로 내비친 자연스러운 풍광이 이재원의 처진 어깨를 내리쬐고 있었다.
감명에 빠져 울컥하고 있는 건 그들만이 아니었다.
이를 보고 있는 성현 역시 눈가가 시려왔고, 손이 떨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더 비기너’ 맴버들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성현도 베이스시스트였던 심혁을 좋아했던 만큼 단순히 이 공연이 미션을 통과하기 위한 공연만은 아니었다.
그는 맴버들이 떠나간 심혁을 잘 보내주며 ‘더 비기너’ 맴버들이 새로운 시작을 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맴버와 사별하게 된 현역 그룹은 의외로 많다.
그들 모두가 각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아는 건 불가능하다.
허나 단 한 가지만은 알 수 있다.
떠나보낸 그 사람을 모두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
꿈에서라도 만나 그렇게라도 같이 무대에 오르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런 커다란 슬픔으로 인해 혹여 무대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일까 불안도 했었다.
그러나 역시 프로는 프로였다.
‘더 비기너’는 끝까지 큰 실수 없이 곡을 끝냈다.
마지막 소절을 뱉은 이재원은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무 멘트도 하지 않았지만 분명 속으로 심혁에게 말을 걸고 있을 거다.
잘 들었냐고. 잘 있냐고.
구태여 말을 뱉지 않음에 그 진심이 오히려 더 와닿았다.
여운을 주는 음악 소리와 그들의 혼을 전부 발산한 것을 끝으로 성현은 촬영을 끝냈다.
성현이 구상한 공연은 여기까지였고 마무리까지 완벽히 끝났다.
“감사합니다.”
이재원이 짧게 마무리 인사를 마쳤다.
자신들이 준비한 무대는 여기서 끝.
공연할 땐 몰랐는데 관객들의 표정을 보니 모두 감동에 벅찬 표정이었다.
심지어 그들처럼 눈물을 보인 사람들도 있었다.
가수뿐만 아니라 팬들 역시 느끼는 감정은 똑같구나.
그는 잊고 있던 사실을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다른 맴버들은 각자 악기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그들 주위에 몰려있던 사람들이 하나가 돼 소리쳤다.
“앵콜! 앵콜! 앵콜!”
사람들이 모두 한 마음으로 앵콜을 외쳐댄 것이다.
자신은 물론 맴버들 모두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당황해서 서로를 쳐다봤다.
성현 역시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연습할 때 우스갯소리로 앵콜이 나오면 어쩌냐고 넌지시 말했지만, 그게 실제로 일어날 줄이야.
사실 기대조차 안 하고 있었다.
너무나 오랜만에 무대에 선 데다가 은퇴 이후 어떤 방송 활동도 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황한 탓에 자신과 맴버들은 성현을 쳐다봤다.
그러자 성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사실 성현은 이렇게 될 거란 건 알고 있었다.
다만 생각 외의 커다란 호응에 놀랐을 뿐.
이들이 아무리 오랫동안 쉰 밴드라 해도 실력이 어디 가진 않으니까.
거기다 너튜브 영상에는 아직까지 팬들의 응원 문구가 적혀있었다.
이들은 그만큼이나 대단한 존재였다.
“김동우! 이재원! 심혁! 최훈!”
공연을 한다는 사실에 한달음에 달려온 ‘더 비기너’의 과거 팬들이 맴버들의 이름을 불렀다.
심혁의 이름까지 포함된, 모든 멤버의 이름을 말이다.
이제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을 거 같던 풍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를 들은 맴버들은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팬들의 이런 소리를 들어보는 것이 도대체 얼마 만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음. 어. 저희가 너무 오랜만에 모인 거라 준비한 곡이 없는데 아, 이걸, 어쩌나.”
슬픈 마음에 놀란 마음까지 합쳐져 목소리는 더욱 떨렸다.
하지만 팬들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는 없다.
이런 기쁜 날에 사람들을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눈물샘을 자꾸만 때리는 감정을 억누르고 말을 이었다.
그러자 관객들에게서 돌아온 마음은 하나같이 괜찮아, 였다.
자신들을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실망시킬 수 없기에 맴버들을 돌아보며 속닥거렸다.
이들도 어느새 악기를 정리하는 걸 멈추고 자신이 뒤돌아보길 기다린 듯했다.
“그럼 몇 곡만 더 불러보겠습니다. 연습 없이 하게 된 거라 실수가 많겠지만 좋게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재원의 말에 사람들이 다시 불길을 띠었다.
이들의 추가공연은 성현에게도 거대한 선물이었다.
너튜브에 올릴 영상도 무사히 찍었으니, 이제 남은 건 순수한 팬으로서 ‘더 비기너’ 노래를 즐기는 것뿐이었다.
***
‘더 비기너’의 무대가 끝나고 어느새 일주일이 지났다.
이날은 패자부활전 미션에서 주어진 기한의 마지막 날이었다.
‘더 비기너’ 맴버들과 성현은 낮부터 김동우 작업실에 모여 맥주를 마셨다.
맥주캔을 따는 소리가 이들의 축하를 알렸다.
“나 수강생 학부모들이 학원 찾아와서 싸인해 달라고 난리다? 막 와서는 6개월 치를 한꺼번에 결제하고 갔어!”
맥주를 벌컥 들이킨 최훈이 신나서 말했다.
이에 질세라, 이재원도 맥주를 까며 껴들었다.
“나도 회사에서 완전 유명인사 됐다니까? 부장이 와서는 자기 딸 준다고 싸인을 해달라지 않나.”
아무래도 이들은 다시 절정의 인기를 누리는 듯했다.
물론 그 중점엔 이성현이 있었지만.
그때 김동우의 휴대폰에 전화가 오자 발신자를 확인했다.
그런데 김동우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다른 맴버들도 번호를 확인했다.
역시나, 그들 또한 인상을 썼다.
“아 박기자님 또 전화 왔네. 재결합 생각 아직 없다니까.”
“아 나도 요즘 소속사에서 자꾸 전화 온다? 계약할 생각 없냐고.”
“까라 그래. 계약은 무슨.”
소속사란 얘기에 과거 생각이 다시 회상되는지 재원은 화를 내며 맥주를 들이켰다.
“성현아, 오늘은 조회수 몇이냐?”
김동우가 호기심에 찬 말로 묻자 성현은 바로 너튜브 조회수를 확인했다.
2주일 전만 해도 빈 깡통이었던 주최 측으로부터 받은 너튜브 채널.
지금도, 그 채널에 게시물은 단 하나.
[비긴어게인]
[조회수 2,743,897]
“270만 좀 넘었네요.”
자랑스레 이들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조회수 50만을 목표였지만, 27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해버린 거다.
그리고 그때,
띠링-
커넥트로부터 알람이 왔다.
[패자부활전 통과하셨습니다.]
[본선 라운드에 진출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합격 기준을 초월하는 성과를 이루셨군요!]
[보너스 캐시가 지급됩니다.]
.
.
단순히 라운드 통과뿐만 아니라 패자부활전에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통과하여 추가 캐시까지 받았다.
‘다시 서바이벌 시작인 건가.’
이제 다시 ‘더 넥스트 서바이벌’로 돌아갈 때가 됐다.
“붙은 거야? 축하한다 인마.”
심각한 표정이라도 내비친 듯 김동우가 휴대폰을 엿보고 말했다.
김동우의 축하에 다른 사람들도 성현의 등을 두들겨주며 격한 응원을 보냈다.
“우리가 도와줄 일 있으면 아무 때나 연락해.”
“네, 선배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뭉치기 전만 해도 거리감이 느껴지던 그였지만 어느새 가장 편한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성현은 여전히 깍듯한 모습으로 그를 대했다.
“은퇴한 가수한테 선배님은 무슨. 그냥 형이라고 해. 편하게.”
“그럼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형.”
성현은 곧바로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처음으로 같이 작업할 가수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
‘더 넥스트 서바이벌’ 잠실 본선장에 도착한 성현은 곧장 미로 같은 곳을 지나 창고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김인호 AD가 먼저 와 성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인호 AD가 이곳 본선 라운드 진행 사항을 공지하겠다는 명목으로 이성현을 불러낸 것이다.
“패자부활전 그거 반응이 꽤 괜찮더라고요.”
성현이 너튜브에 올린 영상은 ‘더 넥스트 슈퍼스타’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아직 서바이벌 방송도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은 상황.
김인호 AD가 말하는 반응의 주체는 일반 시청자가 아니었다.
‘역시. 다 지켜보고 있는 거겠지.’
성현은 그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지만, 구태여 아는 척하지는 않았다.
“이번에 보너스 받았죠? 그거 얼마나 받았어요?”
270만 조회수를 기록한 성현이 보너스 캐시를 받은 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커넥트 앱은 철저하게 주최 측에서 관리하고 있기에 PD도 AD도 참가자들의 캐시 상황을 마음대로 볼 수 없었다.
자신의 물음에 성현은 곧장 캐시 잔고를 확인했다.
[1150 캐시]
라운드 통과뿐만 아니라 보너스 캐시까지 얻을 수 있었다.
패자부활전은 역시 통과만 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라운드였다.
‘통과하는 게 어려운 거긴 하지만.’
성현이 그걸 노린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뭐 올라왔으니 다행이다.
그가 캐시를 보며 뿌듯한 표정만 봐도 꽤 많은 캐시를 받은 모양이네.
“캐시 중요한 거니까 열심히 모아 놔요.”
성현의 실력은 패자부활전으로 최소한의 증명을 해냈다.
이를 통해서 김인호AD는 이성현에게 연출자로서의 호감이 갈 수밖에 없었다.
이성현 덕에 앞으로 자신의 채널을 키울 수 있다는 확신이 점차 들었기 때문이다.
“본선 1라운드 미션은 다 확인했어요?”
“네. 전부 확인했어요.”
성현이 커넥트 앱을 실행시켜 본선 1라운드 미션 공지를 보여줬다.
[ 본선 1라운드 ]
* 미션 : 프로듀서 참가자와 가수 참가자가 팀을 이루세요. 주어진 공통주제를 가지고 팀별로 자유롭게 무대를 꾸며, 경연에서 승리하세요.
* 조건 : 1) 프로듀서 참가자에게는 구성해야 하는 팀원의 수가 랜덤으로 정해집니다.
2) 프로듀서 참가자는 가수 참가자에게 ‘합류’를 ‘제안’할 수 있습니다.
3) ‘제안’을 받은 가수 참가자는 해당 프로듀서와 팀을 이룰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4) 경연은 같은 수의 팀원을 보유한 팀 중 랜덤으로 매칭이 성사됩니다.
5) 단, 프로듀서끼리 합의가 된 경우, 지정된 팀원의 수를 교환할 수 있습니다. 교환을 원할 경우, 주최 측에 문의하세요.
* 공통주제: 사랑
* 준비 기간 : 2/7일.
프로듀서는 자신의 편곡 능력으로 자신이 원하는 가수를 섭외해야 한다.
가수는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 원하는 프로듀서의 제안을 받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이번 미션의 핵심이었다.
이게 바로 ‘더 넥스트 서바이벌’.
프로듀서와 가수는 경쟁자임과 동시에, 서로 상생하는 관계.
이것이 여태껏 다른 오디션과는 완전히 차별되는 재미를 주는 요소 중 하나였다.
“패자부활전을 통해서 온 만큼 남들보다 하루 늦게 시작하는 페널티는 감수하셔야 해요.”
사실 패자부활전은 이승 시 좋은 조건만 있는 건 아니다.
본선 1라운드 총 준비 기간은 7일.
허나 시작 날은 어제였고 성현은 하루 늦은 이틀째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하루 차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이미 팀을 만든 사람들이 수두룩할뿐더러 남은 사람들이 있다 해도 대부분 실력이 떨어지는 자들이었다.
“상관없어요.”
하지만 성현은 이런 악조건에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딱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자유롭게 팀을 짜면 됩니다. 이번에도 기대할게요.”
성현의 빛나는 어깨를 두들기며 방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