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20화 (20/273)

20화

김동우의 작업실.

김동우와 최훈이 각자 악기를 연주하며 합을 맞추고 있었다.

뒤이어 작업실 문이 열리더니 양복 차림의 이재원이 들어왔다.

“미안. 퇴근 시간 때라 길이 좀 막혀서.”

어찌나 급하게 뛰어온 건지,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

대충 땀을 닦아내는 바람에, 앞머리는 이리저리 삐죽거리며 축 처졌다.

‘어떻게 아직도 저 얼굴이냐.’

연예인은 연예인인가.

관리를 하나도 안 했다고 하는데, 저런 흐트러진 모습에서도 멋이 흘러나온다.

성현의 선망 어린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재원은 얼른 겉옷을 벗고 금방 연습 준비를 마쳤다.

“됐습니다.”

마이크 앞에 자리 잡은 이재원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럼 연습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성현은 그 끄덕임에 응답하며 자신이 만들어 온 MR을 틀었다.

첫 곡은, 어제 첫 만남에서 들려줬던 ‘we burn.’

MR이 시작되는 타이밍에 맞춰 김동우와 최훈의 연주가 얹어졌다.

가수는 안 한다지만, 그래도 아직 음악과 깊게 관련된 업종에 종사해서 그런지 금세 무리 없이 연주를 이어가는 둘.

적어도 성현의 눈에는, 김동우와 최훈 모두 전성기 모습 시절 그대로였다.

대신, 성현의 걱정은 따로 있었다.

‘자신감부터 찾으면 좋겠는데.’

다름 아닌 이재원.

그는 ‘더 비기너’가 데뷔할 때부터 팀의 리더 역을 맡았었고, 음악에 대한 이해도 가장 깊었었다.

하지만 밴드가 해체된 후 가장 오랫동안 음악을 하지 않은 것도 그였다.

때문에, 마이크 앞에서의 자신감을 잃었을 확률이 높았다.

자신감을 잃은 가수는, 자신의 실력의 절반도 보여주지 못하는 법.

‘처음엔 좀 힘들려나.’

처음만 힘들면 오히려 다행일 테다.

패자부활전 제한 시간 안에 제대로 된 실력을 보여줄 수 없을 거란 것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일단 들어보자.’

구태여 미리 걱정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

성현은 태연한 얼굴로 이재원을 바라봤다.

이재원은 노래에 맞춰 고갤 끄덕거리며 김동우와 최훈의 눈빛을 교환했다.

김동우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확실한 신호를 주었고, 재원은 그 신호를 받아 정확한 박자로 목소리를 뱉었다.

“사는 게 어려워지네- 내 맘도 답답해지네- 세상은 우릴 가두고 앞만 보고 달리라 하지.”

십 년 만에 마이크를 타고 흘러나오는 이재원의 목소리.

이재원이 첫 소절을 부름과 동시에, 이성현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래. 이거지.’

자신이 쓴 노래에 이재원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얹혔다.

그동안 바라온, 훗날 오랫동안 영광스러운 날로 기억될 이 순간.

이재원은 성현의 마음에 보답이라도 하듯, 한동안 쓰지 않던 목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십 년을 쉬었지만, 반주를 들음과 동시에 노랫말이 머릿속에 슬며시 떠올랐다.

눈을 감고 노래에만 집중하며 온 신경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성현의 미간에 주름이 점점 깊어지기 시작했다.

‘이게 십 년을 넘게 쉰 사람의 노래 실력이라고?’

첫 음부터 정확한 박자로 정확한 음으로 들어간 건 그렇다 치자.

그러나 이후로 계속 유지되는 호흡과 발성은 거의 흔들림이 없었다.

이재원은 호흡마저 하나의 악기처럼 다루었고 그것이 노래에 대한 엄청난 몰입도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목소리가 정말 그대로네.’

이재원을 대표하는 특유의 음색은 경악스러울 경지였다.

십수 년 만에 마이크를 통해 뱉어진 이재원의 목소리는, 성현이 기억하던 그 목소리 그대로였다.

성현은 이재원의 노래가 이 정도일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사람의 근육이 늙듯 성대 또한 나이가 지남에 따라 늙는다.

하물며 그는 10년을 내리 쉬며 성대 관리도 하지 않았을 터.

상식선에서 이해 가지 않았지만, 이재원이기에 또 납득이 갔다.

말 그대로 CD를 집어삼킨 목소리.

물론 워낙 오랜만에 부르는 노래다 보니 중간중간 살짝 박자나 가사가 어긋나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이는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그런 거야 연습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개선될 문제였으니까.

프로듀서로서 그의 음악을 분석해야 했지만, 때론 분석하고 싶지 않은, 분석이 필요 없는 노래도 있었다.

성현은 다른 잡생각은 모두 버리고, 온전히 노래에 몸을 던졌다.

천상의 목소리.

그것은 단순히 청아하고 맑은 소리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정말 재능이 뛰어난, 언제라도 노래를 부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를 말하는 거다.

딱 지금의 이재원 목소리가 그랬다.

거기에 김동우와 최훈의 연주까지.

더 비기너가 함께 노래를 하는 것 자체로 노래는 특별해지는 기분이다.

“아직 많이 부족하죠?”

어느새 한 곡이 끝났고, 이재원이 조금 쑥스럽다는 듯 물어왔다.

부족하기는 무슨.

지금 당장은 고칠 부분이 떠오르지 않았다.

성현은 전혀 아니라는 듯 단호하게 고갤 저었다.

“바로 다음 곡 가겠습니다.”

이어서 다음 곡을 세팅했다.

성현이 준비한 곡은 방금 곡을 포함하여 총 세곡.

아직 나머지 두 곡은 이재원이 들어보지 못한 상태였다.

“일단 곡부터 들어보세요.”

새롭게 곡을 편곡한 만큼 이들이 익숙해지는 게 우선이다.

모두 다 같이 곡을 들으며 서로 의견을 나눴다.

예전 합을 맞췄던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는 데도 시간이 걸릴 것이고, 성현이 편곡한 부분의 합도 새로 맞춰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현은, 이들이 완벽히 곡을 소화하게 될 때까지의 시간이 까마득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즐거워. 이 시간이 흘러가는 게 너무 아까울 만큼.’

정말로 이 순간 자체가 즐거웠다.

놀랍게도, 성현이 메인 프로듀서로서 제대로 된 가수와 온전히 작업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 첫 가수가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동경했던 가수다?

그러니 더욱 설레고 흥미가 생길 수밖에.

비단, 성현 혼자만의 마음이 아니었다.

김동우는 편곡된 곡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즉흥적인 기타 라인을 떠올렸다.

이를 본 최훈 또한 스틱으로 스네어를 가볍게 치며 박자를 맞추었다.

이재원도 오랜만에 불러보는 노래 가사를 흥얼거렸다.

이들 중 누구도 진심이 아닌 사람은 없었다.

***

자정 12시가 다 돼가는 시점.

작업실에 모인 그들은 장장 4시간 동안 쉬지도 않고 연습했다.

얼마나 열기가 내비쳤는지, 차가운 달빛이 들어와도 한여름처럼 뜨거운 열기에 사르르 녹아버렸다.

이재원의 와이셔츠는 다 풀어헤쳐 있었고, 머리도 제멋대로 헝클어졌다.

이제야 직장인의 모습에서 조금은 록커다운 모습으로 변했다.

다른 맴버들도 마찬가지.

각자의 앞에는 물병들이 밑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요.”

성현의 말에 ‘더 비기너’ 맴버들이 모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1시간만 더 하면 안 되나?”

“그래. 이제야 좀 삘 받았는데.”

“오랜만에 하는 연습이니 무리하면 안 돼요. 특히 재원 선배님은 앞으로 연습 기간 동안 성

대 관리 하셔야 합니다.”

아무리 이재원의 목소리가 옛날과 같다 해도 갑작스럽게 성대 근육을 쓰면 몸도 놀랄 수밖에 없다.

모든 가수들이 그렇다.

괜히 무리해서 연습을 진행했다가 성대결절이라도 걸리는 날엔 진짜 답도 없다.

무대에 못 서는 것보다 천천히 연습시간을 늘려가며 컨디션 조절을 해주는 것이 나은 판단이었다.

흔히 프로듀서들은 단순히 곡을 편곡하고 무대 메이킹을 하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게 대다수다.

그렇지만 프로듀서의 가장 큰 역할 중에는 아티스트의 컨디션 조절도 포함이 된다.

단순히 몸 상태뿐만 아니라 멘탈 케어까지 해줘야만 실전에서 완벽한 무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 성현이 말이 맞지. 오랜만에 노래했더니 괜히 더 흥분했네.”

이들 역시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을 터.

결국, 그들은 각자의 짐을 챙기며 해산 준비를 했다.

“성현이 넌 더 있다가 갈 거지?”

김동우가 다 알고 있다는 듯 옅게 웃으며 물었다.

성현 역시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성현의 진짜 작업은 사실상 이제부터 시작이다.

김동우는 그런 성현에게 열쇠를 던져주었다.

“네. 오늘 고생하셨어요, 다들.”

잽싸게 열쇠를 낚아챈 성현이, 두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렇게 연습실을 나간 ‘더 비기너’.

그들이 나간 작업실은 괜히 더 텅 비어 보이고, 더 고요하게 느껴졌다.

감상에 빠지기엔 이르다.

오늘 회의를 통해 합의된 수정 사항 마무리 작업 준비에 나섰다.

그때,

“하암- 성현 씨는 집엔 안 가요?”

오늘 역시 아무 말 없이 내내 자리를 지키던 카메라맨이 길게 하품을 늘어트리며 물었다.

“아, 카메라 설치하고 먼저 들어가세요. 전 여기서 언제 나갈지 몰라서.”

“그럼 그럴까요.”

성현의 말에 카메라맨은 곧바로 기지개를 켜고 일어났다.

그 순간, 누군가 연습실에 들어왔다.

“AD님?”

김인호 AD였다.

“‘더 비기너’라니.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같이 공연하기로 했어요. 룰에 어긋나는 건 없지 않나요? 현역 가수 아니잖아요.”

“문제 삼으러 여기 온 건 아닙니다.”

“그럼 왜…….”

성현의 말에 김인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담당하는 참가자가 패자부활전에서 ‘더 비기너’와 작업을 통해 이목을 끌고 살아남는다면, 본인의 입지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칠 테다.

괜한 흥분감에 몸이 먼저 움직였을 뿐,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이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으니, 대충 이유를 둘러대기로 했다.

“영상 언제 찍을 겁니까? 무대 기획은 짰고?”

왠지 모르겠는데 어째 그의 모습이 매우 다급해 보였다.

다급하기보단 흥분에 휩싸였다 해야 맞으려나?

“네. 있습니다.”

“말해주셔야 우리 쪽에서 미리 어떻게 준비라도 해놓을 텐데.”

“음… 그럼 우선…….”

성현은 자신이 구상한 것들에 대해 거리낌 없이 말해줬다.

이에 김인호는 메모장을 꺼내, 연신 고갤 끄덕이며 무어를 계속해서 적어 내려갔다.

성현의 설명이 끝난 뒤, 김인호는 빠르게 계산을 마쳤다.

“그날 카메라 몇 대 더 갈 겁니다. 제가 직접 현장 통솔을 맡게 될 겁니다.

주최 측에서 하겠다는데, 덧붙일 말은 필요 없었다.

“네. 그렇게 하시죠.”

***

패자부활전이 시작된 지 정확히 일주일째 되는 날.

신촌역을 상징하는 빨간 기둥 앞에서 성현은 혼자 악기를 세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성현의 모습을 카메라 한 대가 찍고 있었다.

“뭐야? 뭐 촬영 중인가 봐.”

“저 사람 누군데? 연예인이야?”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카메라도 있겠다, 악기 세팅도 하겠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호기심을 보였다.

그러나 성현은 유명인이 아니기에, 대부분 사람들은 짧게 기웃거리다 그냥 지나쳐 갔다.

혹시 몰라서 걸음을 멈추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극소수.

사람들이 그러든 말든, 세팅을 끝낸 성현은 가방에서 다시 무언가를 꺼냈다.

제작진들의 촬영과는 별개로, 패자부활전용 영상을 직접 담을 DSLR 카메라였다.

이로써, 모든 준비는 끝났다.

성현이 곧바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잠시 후, ‘더 비기너’ 맴버들이 신촌에 등장했다.

멤버 모두 외적으로 꾸민 건 딱히 없었다.

이재원은 와이셔츠 차림이었고 김동우는 츄리닝 차림, 최훈은 청바지에 티를 입었다.

연습실에서 연습하는 모습과 큰 차이 없는 모습.

최훈은 드럼 앞에 앉았고 김동우는 기타를 멨으며, 이재원은 마이크 앞에 섰다.

현장에 ‘더 비기너’가 도착하자 때맞춰 김인호 AD와 카메라 두 대가 더 들어왔다.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발걸음을 멈춘 행인들이 수군거렸다.

“연예인이야?”

“뭐지? 누구야?”

“인디 밴드? 나이 좀 있어 보이는데?”

신촌은 젊은이들이 많은 거리.

‘더 비기너’를 알아보는 이는 거의 없는 게 당연한 반응이었다.

성현도, 더 비기너도 그런 반응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음악이 시작되면 저절로 모이게 될 테니까.’

자신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