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더 비기너’ 멤버들이 카페를 나간 후 10분 정도 지났을까.
조금은 애타는 마음으로 애꿎은 태블릿만 어루만졌다.
그리고 마침내,
‘왔다.’
이재원과 김동우, 최훈이 나란히 들어왔다.
허리를 펴고 이들의 얼굴을 살폈다.
나쁘지 않은데.
표정을 보니 대강 느낌이 왔다.
그들의 눈빛에선 한때 무대 위에 올라가 공연을 할 때의 모습이 미약하게나마 느껴졌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그들의 마음을 변하게 할만한 실수를 절대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자리에 앉을 때까지 침착하게 기다린 뒤, 천천히 물었다.
“결정하셨나요?”
“곡부터 듣고 결정하겠습니다.”
이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까진, 성현이 편곡한 ‘더 비기너’의 음악이 김동우와 최훈에게 좋게 다가갔다.
그들에게 닿았듯, 이재원에게도 이 곡이 통하기를 빌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음악이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성현은 기대와 설렘을 품고, 미리 준비해놨던 태블릿 PC에서 음악을 바로 재생시켰다.
이내 조용한 카페에 성현이 편곡한 곡이 흘러나왔다.
인트로.
멜로디언만으로 연주된 간단한 멜로디 라인이 흘러나왔다.
어딘가 향수를 자극하는 심플한 멜로디가, 10초가량의 짧은 인트로를 꾸몄다.
인트로가 끝나자 기타 소리가 은은하게 깔리더니, 이내 메인 멜로디가 시작됐다.
멜로디를 들은 이재원이 순간 고갤 들어 성현을 바라봤다.
성현이 편곡한 노래의 제목은 ‘We burn’.
‘더 비기너’가 데뷔 초 직접 만들었던 곡이다.
가장 인기를 받았던 타이틀 곡은 아니었지만, 음악성이 뛰어나 평론가들에게 엄청난 호평을 받았던 곡.
무엇보다, 사회 비판적인 가사로 팬들과 젊은 사람들 사이에선 매니아 층이 상당했던 노래다.
그 노래에 절로 귀를 자극하는 멜로디언 인트로를 추가하여, 처음 노래가 나왔을 때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게끔 편곡을 한 것이다.
조금이라도 불필요한 점, 혹은 겉멋만을 위한 점들은 일절 넣지 않았다.
그렇기에, 오히려 전하고 싶은 감정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었다.
노래를 이미 들었던 김동우와 최훈도 아무 말을 꺼내지 않았다.
이재원이 어떻게 이 곡을 받아들일지, 온전히 그의 판단에 맡기기 위해.
그때,
“잠시. 음악 좀 멈출 수 있을까요.”
벌스 하나가 끝날 때쯤 이재원이 돌연 음악을 멈췄다.
고개를 갸웃한 이재원이 성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성현 씨. 당신이 편곡한 곡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뭔가 심히 고민에 빠진 모습이었다.
입술을 주먹으로 가리며 시선을 내린 이재원이 태블릿을 빤히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저리 하는지 궁금했지만, 이성현은 동요하지 않았다.
괜히 동요하는 모습을 보여봤자 곡에 대한 불안감을 보이는 것처럼 될 거다.
프로듀서가 자신의 곡에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면, 어떤 아티스트가 믿고 따라올까.
“다시. 다시 들을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잠시 침묵을 지키던 이재원이 다시 처음부터 음악을 틀어달라고 요청했다.
음악을 다시 트는 거야 쉬운 일이다.
뭣하면 음악을 다시 새로이 만들어 줄 수도 있는데 뭘.
이재원은 다시 멜로디언으로 시작되는 인트로부터 귀 기울여 들었다.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거리는 게, 본격적으로 음악을 분석하는 듯한 모습.
후렴이 끝나고 잠시 간주가 흘러나왔다.
기타 소리가 귀를 울려대는데, 이어서 낮은 음역대인 베이스 소리도 같이 들렸다.
튀지도 않고, 그렇다고 묻히지도 않는 소리로 메인 기타를 감싸는 베이스.
“이 베이스도 당신이 찍은 겁니까?”
“여기 나오는 모든 악기는 전부 제가 찍은 겁니다.”
이재원의 표정이 번쩍 띠였다.
“다시.”
어느덧 벌써 3번째. 하지만 이건 시작이었다.
이재원은 특정 구간의 반복 재생을 계속해서 요구했다.
다른 맴버들의 표정도 더욱 고조되었다.
베이스가 시작되는 구간을 몇 번이고 반복해 듣는 이재원.
그 이유를, 이 자리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혁이 스타일…….’
그렇다.
성현이 넣었다던 베이스음은, 살아생전 심혁이 연주한 스타일과 매우 비슷했다.
‘더 비기너’의 원년 베이시스트, 심혁 특유의 스타일 말이다.
“물론 미디를 통해 작업한 거라 라이브만큼 악기의 생생한 매력을 담진 못했지만 ‘더 비기
너’가 그걸 채워주면 좋겠어요.”
성현이 이 곡에 담긴 소망을 읊조리며 맴버들을 보았다.
드러머인 최훈은 어느새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찍어대며 박자를 타고 있었다.
김동우 또한 자신도 모르게 코드를 잡으며 에어 기타 연주를 했다.
이제 남은 건 이재원.
기타와 드럼이 있더라도 노랠 불러줄 목소리가 없다면 곡은 완성될 수 없다.
이재원은 여전히 망부석처럼 가만히 있었다.
“여기에 이재원 선배님. 당신의 목소릴 넣고 싶습니다.”
이재원의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성현이 다시 목에 힘을 주어 말했다.
이재원으로부터 나온 말은, 대답이 아닌 질문이었다.
“어째서 베이스를 이런 느낌으로 연주한 거죠?”
“이런 느낌으로밖엔 상상이 안 갔어요. ‘더 비기너’ 노래를 수백, 아니 수천 번은 들어서 말
이에요.”
이재원은 더 자세한 대답을 원한다는 듯, 입을 앙다문 채 성현을 응시했다.
“레이벡. 정박보다 살짝 느리게 박자를 타면서 여유롭게 튕기는 느낌. 그러다가도 소리를 다잡아야 할 때는 또 정확하고 묵직하게 치고 들어오죠. 베이스에 귀 기울여 듣고 있다 보면, 정신이 확 들 정도로.”
성현의 말에 이재원은 순간 말을 잃고 말았다.
우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성현은 심혁 스타일에 대해 모두 알고 있었다.
베이스는 여러 악기를 하나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절대 함부로 튀어서는 안 되는 소리기도 하다.
때로는 배경처럼 깔리는 베이스 소리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이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성현은 심혁 특유의 색깔로 연주한 베이스 스타일을 확실히 잡아냈다.
이로써 그저 그가 곡을 그저 베껴 쓴 것이 아닌, ‘더 비기너’ 각자의 특성을 파악해 연주를 재연한 것이 확실해졌다.
“제가 가장 좋아하던 베이시스트로부터 배운 주법이죠.”
그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 뱉은 아양 떠는 말은 전혀 아니다.
스무 살, 자신이 알던 음악의 틀을 깨고 나온 성현에게 심혁의 연주는 가랑비와 같았다.
여유롭고 느긋하면서, 어쩔 땐 클래식에서 배운 정확한 박자감을 완전히 무시한 연주.
심혁의 개성은 성현의 마음을 완전히 흠뻑 젖게 만들었었다.
이 자리 그 누구도 ‘심혁’이라는 이름을 직접적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모두가 같은 얼굴을 머릿속에 그렸다.
성현이 준비한 음악이 끝나고, 고요가 내려앉은 카페.
이재원은 잠시 고개를 숙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한데 오늘은 이만 가봐야 할 거 같습니다.”
그 말만을 남긴 채 이재원은 빠른 걸음으로 카페를 벗어났다.
당황한 최훈이 그를 따라가려 하자, 김동우가 팔을 잡으며 말렸다.
“일단 기다려보자. 쟤도 머리 복잡할 거야.”
김동우의 차분한 대처에 최훈은 자리에 앉아 긴 한숨을 쉬었다.
이제 남은 건 오직 이재원의 선택뿐이었다.
***
다음 날 오전.
김동우의 작업실에 이성현과 김동우, 최훈이 모였고, ‘더 넥스트 슈퍼스타’의 카메라맨이 이들을 찍고 있었다.
“두 시까지 오라고 하긴 했는데 올까.”
김동우가 초조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며 벽시계를 연신 흘겼다.
어느새 1시 5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성현을 비롯한 사람들은 모두 말없이 한 사람을 기다렸다.
그때,
지이잉-지잉-
조용한 작업실에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성현의 핸드폰이었다.
혹시나 하고 수신자를 확인해 보니, 기대와 달리 조은별이었다.
조은별이 무슨 잘못이냐.
성현은 얼른 전화를 받았다.
“네, 은별 씨.”
-성현 씨, 저희 지금 예선 3라운드 진행 중인데 성현 씨 말이 맞았어요. 팀별 대결이래요.
“다행이네요. 연습은 잘 되고 있나요?”
-네. 요하랑 서지현 씨가 너무 잘해줘서 프로듀싱할 맛 나요 정말. 뭐, 박남길 본부장님이 좀 거슬리긴 하는데 자기 실력이 부족한 건 알긴 아는지 군말 없이 따라오긴 하더라구요.
“잘됐네요. 은별 씨 능력이면 충분히 3라운드도 통과하고 본선갈 수 있을 거예요. 아이돌 데뷔 앨범에도 참여했던 실력인데 떨어지는 게 이상하죠.”
-너무 띄워주시는 거 아니에요? 참. 성현 씨는 어떻게 되고 있어요?
조은별에겐 패자부활전 미션 정보를 이미 알려준 상태.
쉽지 않은 난이도가 아니란 걸 알고 있는 은별이기에, 목소리에 걱정이 가득 담겼다.
그녀의 물음에 대답을 하기 위해 시계를 보았는데, 어느새 시간은 2시 정각을 가리켰다.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오지 않고 있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잘 안됐다고 말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거의 다 완성이 될 참이긴 한데.
그 순간,
끼익-
거짓말처럼 문이 열리더니,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를 본 성현의 입꼬리가 가볍게 당겨졌다.
“잘될 것 같아요. 본선에서 봐요, 은별 씨.”
성현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전화를 끊었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방금 들어온 남자를 반겼다.
“잘 오셨어요, 이재원 선배님.”
‘더 비기너’의 마지막 퍼즐 조각, 이재원이었다.
“저 음악 안 한 지 너무 오래됐어요. 하다못해 노래방도 안 간 지 한참 됐고 직장인이라 연습시간도 많이 못 냅니다. 뭐, 그래도 괜찮으면 하겠는데 당신이 생각하는 그림이 안 나올 수도 있어요.”
이재원은 확답에 앞서 마지막 걱정거리를 늘어놓았다.
오랜만에 음악을 하는 것이기에, 그의 표정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이곳에 온 이상, 적어도 음악을 하고 싶다는 의지가 있다는 건 확실했다.
“그럼 나도 걱정인데. 나도 애들이나 가르치고 있지 라이브 무대에 서는 건 해체 이후 처음이라.”
최훈이 괜히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그런 걱정은 하지 마세요.”
성현이 이들을 돌아보며 단호하게 답했다.
“어떤 경우에도, 가수와 팬들이 원하는 걸 완성해내는 것. 그게 프로듀서가 존재하는 이유니까요.”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해도 이재원은 여전히 걱정이 많았다.
뭐, 그동안 쭉 안 했던 일을 막상 하라고 하면 겁이 나긴 하겠지.
“목을 쓴 지도 너무 오래됐고… 고음이 올라갈지…….”
“걱정 그만하시고 저만 믿고 따라오세요. 최고의 모습으로 팬들 만나게 해드릴게요.”
이재원의 실력은 성현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다.
애초에 그의 실력을 못 믿었으면 그를 찾으러 가지도 않았다.
성현의 말에 이재원도 이내 웃음을 보였다.
“최고의 모습. 그 약속 꼭 지켜요.”
이재원도 마음을 굳힌 듯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독한 녀석. 네가 재원이를 설득할 줄이야. 아직도 못 믿겠다 나는.”
김동우는 결국 뜻을 이뤄낸 성현의 집념에 감탄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케이! 오랜만에 지대로 놀아 재끼자고!”
최훈은 자기가 더 기쁜지 소리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놀아 재끼기는 무슨. 제일 못 노는 녀석이.”
“제일 못 놀기는 무슨! 나 최훈 안 죽었어!”
“기억 안 나? 해운대에서 공연했을 때, 맥주 두 캔 마시고…….”
“아! 그만! 그 얘기는 반칙이지. 여기 카메라도 있는데.”
‘더 비기너’라는 밴드를 위한 무대를 진행해보자는 이성현의 말 한마디로 시작된 프로젝트.
그 말이 현실이 될 줄이야.
이성현과 ‘더 비기너’ 멤버들은 호탕한 웃음과 함께 지난 추억 얘기들을 기다렸다는 듯 재잘거렸다.
그리고 이 순간, 이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던 이가 있었으니.
“이게 무슨…….”
얼빠진 표정의 ‘더 넥스트 슈퍼스타’ 카메라맨이,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문자를 보냈다.
-김인호 AD님. 여기 일 난 거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