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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8화 (18/273)

18화

이재원이 애써 화를 삭이는 듯,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

“혁이 얘긴 꺼내지 말지.”

꺼내선 안 될 말을 해버린 듯하다.

예상하긴 했지만, 그 예상보다 조금 더 격한 반응이었다.

커피잔 안에 든 물들이 그의 감정처럼 서서히 퍼져갔다.

이재원의 표정은 커피가 엎질러진 테이블처럼 어두워지며 더럽혀졌다.

하지만 성현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밴드 내 베이스였던 심혁 씨의 교통사고 이후 소속사와 생긴 갈등 때문에 밴드가 해체됐단 사실은 이미 알고 있어요. 사망 이후에도 소속사는 밴드의 인기와 스케쥴만 신경 썼고 이에 대해 환멸을 느꼈던 거겠죠.”

“거기서 더 얘기하기만 해.”

이재원의 경고에도 성현은 여전히 멈추지 않는다.

“현재 동우 형 혼자만 프리랜서 세션으로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아세요?”

이런 상황에서 질문을 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재원은 마땅히 대답할 말이 안 떠오르는지 입을 열지 못했다.

그 역시 김동우가 맴버들이 함께 무대에 서길 원하는 마음에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있단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알 수 있었기에, 이재원은 한동안 김동우에게 연락을 취할 수가 없었다.

김동우의 그런 마음을 잘 알고 있음에도, 이재원이 결단코 무대에 서길 원치 않았던 이유.

이재원에게, 심혁이란 인물의 의미가 누구보다 남달랐기 때문이다.

이재원과 심혁은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친한 친구 사이였다.

그들은 같이 음악을 하며 꿈을 꾸고 꿈을 이뤄나가기 위해 갖은 수모를 나누었다.

그렇게 해서 간신히 만들어진 것이 ‘더 비기너.’

대한민국 락의 역사를 새로 시작하자는 의미에서 지었던 팀명.

그 팀명 덕인지, 김동우와 최훈이라는 좋은 맴버들이 들어왔고, 결과적으로도 승승장구했다.

그렇게 좋은 시너지를 발산하며 무대 위를 채워나갈 때였다.

그날도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갈 때였다.

심혁은 차를 몰며 집으로 향했다.

그때, 맞은 편에서 달려오던 대형 화물차가 주행선을 넘나들더니 그대로 심혁의 차로 돌진했다.

원인은 상대의 졸음운전.

그렇게 심현은 차마 피하지 못하였고, ‘더 비기너’는 하나의 소중한 열쇠를 잃어버렸다.

그것은 특히 이재원에게 더욱 심각하게 다가왔다.

같은 멤버 안에서도 더 특별한 관계를 쌓았던 그가 없는 무대에 서는 것이 끔찍했다.

그를 배신하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거기다 더해 소속사는 이들에게 압박만 주며 무대 위로 밀어 넣었다.

그 이후 이재원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다시피 도망을 친 것이다.

재원의 심정을 성현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는데 그와 함께했던 추억을 어떻게 기쁜 마음으로 쥘 수 있겠는가.

하지만 성현은 다른 관점으로 봤다.

“심혁 씨가 과연 ‘더 비기너’의 해체를 원했을까요?”

‘더 비기너’ 멤버 모두에게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음악을 사랑한다는 점.

어떠한 고난이 있었어도 그들은 모두 버텨내며 음악을 해왔다.

그리고 끝내 그 꿈을 이뤘다.

애초 포기할 거였다면 진작에 포기하고도 남았을 것인데 끝까지 버티며 살아남은 거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얻어낸 성공을 걷어찰 사람은 없다.

설령 그게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소속사처럼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려 그들을 세우려는 게 아니다.

이들의 진짜 모습을 다시 깨우치게 하려는 것뿐이다.

성현은 다시 그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자신의 죽음 때문에 밴드가 해체되고 음악을 포기하길 원했을까 묻는 거예요. 전 아니라고 보거든요.”

이재원의 눈빛이 흔들렸다.

확실히 이재원은 성현의 말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

성현은 말 대신에 사실을 직접 보여주어야겠다고 판단했다.

“일단 보세요.”

그에게 미리 준비한 태블릿 PC로 영상을 하나 틀었다.

영상 안에는 그들의 과거 공연 현장을 직캠으로 찍은 모습이 너튜브를 통해 올라와 있었다.

최근 영상들과 비교했을 때 말도 안 될 만큼 후진 화질이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조회수만 무려 백만이 넘어가고 있었다.

“가수는 팬을 잊었지만, 팬은 가수를 잊지 못한 것 같더군요.”

이보다 더한 증거물은 없을 거다.

이재원은 태블릿 PC 화면을 밀어 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확인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돌아오기만 해주세요!

-더 비기너 존버단 살아계십니까?

-2020년 출석 체크.

-보고 싶다, 더 비기너. 노래 안 해도 좋으니 근황이라도 알려줘.

영상 댓글엔 ‘더 비기너’ 옛 팬들이 남긴 글들로 수두룩했다.

분명 그룹도 해체하고 활동도 그동안 전혀 하지 않아 모두 잊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달랐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을 기억해주고 지금까지 그리워하고 있었다.

자신이 음악을 생각하고 있던 것처럼.

테이블에 엎질러진 커피가 모서리를 타며 한 방울씩 떨어졌다.

그들이 소속사 문제로 홀연히 떠나버린 사이, 누군가는 매일 그들의 영상을 찾아보며 그들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단 사실이 벅찼다.

이재원은 아예 태블릿 PC를 건네받고 댓글들을 정독했다.

성현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그가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는 자신들의 영상이나 댓글을 오랜 시간 의도적으로 피해왔을 것이 뻔했다.

자신들을 좋아해주던 사람들은 생각도 안 하고 돌연 활동을 중단했다.

그러니 그들에게 준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을 이렇게 다시 확인하니 홀린 듯 이를 보는 것도 당연했다.

팬들의 큰 사랑을 한번 받아본 이가, 그 사랑을 그리워하지 않을 리 없었으니까.

“팬들이 이렇게 보고 싶다는데 무대 한 번 서는 게 그렇게 어려울까요?”

성현의 물음에 이재원이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심혁 씨도 팬들이 다시 한번 ‘더 비기너’를 외쳐주길 바랄 겁니다.”

“잠시.”

이재원은 성현의 말을 서두르게 끊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겉옷과 지갑은 두고, 담배 한 갑만 손에 들고 나간 거로 보아 집에 간 건 아닌 거 같았다.

‘같은 밴드 출신 아니랄까 봐 이런 것까지 똑같네.’

성현은 처음 김동우한테 이 얘길 꺼냈을 때 김동우의 반응이 생각났다.

혹시나 헛된 말을 한 게 아닌가 했지만,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대답도 같으면 좋을 텐데.’

성현은 이재원이 마음을 돌려주길 바라며 그가 내려놓은 태블릿을 다시 집어 들었다.

***

뿌연 연기만이 주변을 흐리게 휘감고 있는 카페 밖 흡연실.

김동우와 최훈은 이재원이 어떻게 나올지 생각하면서 담배를 피웠다.

그때, 드디어 이재원이 나타났다.

그의 얼굴을 보니 말이 아니었다.

눈가는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표정은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딱 봐도 왠지 이야기가 잘 안 된 모습 같았다.

김동우와 최훈은 그저 이재원의 눈치를 보며 선뜻 말을 걸지 못했다.

어쨌든 자신들도 성현의 말대로 다시 무대에 서고 싶어서 이곳에 온 거였기 때문이다.

흡연실로 온 이재원 역시 그들처럼 아무 말도 없이 담배를 피웠다.

자욱한 안개가 그들의 심경을 대변해줬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이 지나고, 먼저 말을 꺼낸 건 김동우였다.

“재원아, 저기 내가 미안하-”

“됐어.”

이재원이 심혁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매우 잘 알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밴드 활동을 멈추려 했던 것도 이재원이었다.

이들 중에서 가장 열의를 가지며 팀을 이끈 그였기에, 얼마나 아픈 결심을 다지고 해체를 결정했던 것인지도 알았다.

알기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인 것에 대한 미안함에 사과를 하였다.

허나 이재원이 말을 끊었다.

오랜 세월 함께 음악을 해오며 동고동락했던 그들이다.

서로 어떤 생각을 할지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서로 말없이 생각에 잠겨 들었다.

담배 연기처럼 마음속에 엉킨 게 뱉어지면서 사라지면 좋으련만.

결국 막내인 최훈이 스스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말을 꺼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모르겠다. 영상 보는데 기분 괜히 이상하고. 나이 먹어서 그런가, 괜히 눈물 나더라.”

“나도 그랬어. 그거 보는데 옛날 생각나고 혁이 생각도 나고.”

“저 때 진짜 재밌었는데. 그치?”

‘더 비기너’ 맴버들은 모두 과거 추억에 잠겼다.

그들에게 일어난 일들은 끝이 없는 일상이 될 거라 생각했다.

하루하루가 즐겁고 환희에 찬 나날이었다.

모두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고 그리라 하면 그대로 옮겨 그릴 만큼 선명히 남아있었다.

분위기가 잠시 전환되었다.

흐름을 타 재원은 김동우에게 물어봤다.

“저런 앤 어디서 데려온 거야?”

“왜? 궁금해?”

“아니, 뭐 그냥.”

이재원은 괜히 뻘쭘해져 아닌척했다.

하지만 김동우는 이재원이 왜 성현에게 관심을 보이는지 알 수 있었다.

아마 자신과 똑같은 감정이 들었던 거겠지.

“우리 옛날 생각나서 그러지?”

그동안 구겨놨던 기억 조각들을 이성현이 반듯이 펴줬다.

쓸데없이 그런 일을 잘도 해주다니, 기특한 녀석.

그의 말이 통한 탓에 이재원은 조용히 고갤 끄덕였다.

“당돌하고 솔직하던데. 자기 일에 열정도 있고. 사람이 참 곧더라. 회사 다녀보니까 저런 애들 몇 없어.”

“나 찾아왔을 때도 자긴 무조건 ‘더 비기너’한테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줄 거라고 호언장담하는데 그게 또 묘하게 믿음이 가더라니까.”

“음악밖에 모르는 음악에 미친 놈이야 그냥. 우리 젊을 때 보다 더하다니까.”

예전부터 봐왔지만 정말이지, 못 말리는 녀석이다.

잠시 소란스러웠던 흡연실은 다시 침묵에 잠겼다.

이제 남은 건 이재원의 선택.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

어느새 각자 손에 쥔 담배도 거의 다 타들어 갔다.

짧아진 담배만을 뚫어지게 보던 재원은 한숨을 뱉었다.

“모르겠어. 음악 안 한 지도 너무 오래됐잖아요. 저 친구 말대로 영상까지 찍어야 되는 거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준비할지도 막막하고.”

김동우와 최훈도 이재원이 걱정하는 것이 뭔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의 공백기는 무려 10년이었다.

이제는 이렇게 카페에 있어도 아무도 알아보지도 못할 만큼 세월이 지났다.

그렇다고 괜히 영상에 달린 댓글만 보고 무작정 달려들 수도 없었다.

거기에 가장 중요한 문제도 남아있었다.

“또 혁이도 없고…….”

그의 빈자리가 너무나 컸다.

베이스 분야이긴 했지만 그의 존재감은 모두를 안전하게 이끌게 할 수 있었다.

그와는 움직이는 손목만 보아도 어떤 식으로 나갈 건지 모두 알 정도였다.

이재원이 망설이는 것을 보자 김동우가 이내 생각난 듯 한 마디 던졌다.

“너 성현이가 편곡한 곡은 아직 못 들었지?”

“응. 왜?”

“그럴 줄 알았다. 음악 들었으면 이런 고민할 틈도 없었을 텐데.”

“끝내주긴 하지.”

“왜? 노래가 어떻길래?”

최훈마저 동의하자 이재원은 성현의 노래가 궁금해졌다.

이들은 각자의 곡에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곡을 마음대로 편곡한 걸 듣고 이렇게 칭찬할 일은 드물었었다.

“일단 곡부터 듣고 결정해.”

김동우는 자신만만하게 말하며 흡연실을 나섰다.

이윽고 나머지 맴버들도 그를 따라나섰다.

흡연실 안을 가득 채웠던 담배 연기들도 어느새 다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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