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오디션장을 나온 성현은 곧장 어디론가 향했다.
너튜브 50만을 찍기 위해 준비한 계획을 곧바로 실행하기 위함이었다.
게임에서는 주인공 캐릭터만의 특전으로 여러 가지 옵션들을 선택할 수 있어 간신히 미션을 클리어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뒤늦게 프로듀싱 생활을 하고, 또 어떤 소속사에 속하지 않은 성현에게 50만을 찍을 수 있도록 도와줄 막강한 백이 있던가?
돈과 인맥을 빵빵하게 불어 넣어줄 소속사도 없는 데다, 가진 거라고는 프로듀싱 능력밖에 없을 텐데.
얼굴이라도 강동우, 권빈 급이었다면 먹힐지도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성현의 얼굴이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그가 도착한 목적지는 성수동의 한 작업실.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건물 안에 자리한 곳이었는데, 성현은 자주 이곳을 오가는 듯 익숙하게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바로 곡 작업에 들어가려는 건가 싶을 때, 성현이 도착하자마자 한 남자가 성현을 반겼다.
“왔냐? 오랜만이다.”
성현보다 머리 하나 차이 나는 키를 가진 남자가 밝은 목소리 톤으로 인사하며 빙그레 웃었다.
반응을 보니 평소 되게 친하게 지낸 모양.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해요, 동우 형.”
남자의 이름은 김동우.
그는 성현이 세션 활동을 하다 만난 사람이었다.
김동우는 해체한 지 어느덧 10년 이상 지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인기 밴드, ‘더 비기너’의 기타리스트 출신이다.
특유의 자유로우면서 분위기를 휘어잡는 화려한 소리를 내는 기타 실력이 일품이었다.
김동우는 현재 밴드 곡뿐만 아니라 포크송이나 어쿠스틱 부분에도 손을 대고 있었다.
성현도 김동우가 장르에 벽을 두지 않고 여러가지 음악을 누리고 다니는 모습에 흥미와 존경심을 가졌었다.
보통 실력 있는 자들은 자신의 틀이 만들어져 사람들에게 더욱 인정받기 위해 그 방향만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김동우는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대단한 용기를 가지고 있는 거다.
김동우는 현재까지 밴드가 해체되고도 음악을 꾸준히 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결코 자신의 음악 활동에서 밴드의 이름을 꺼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면 그 명성을 이용해 인기를 깔고 다시 올라설 수 있을 텐데.
허나 그는 오로지 자신의 음악만으로 승부를 보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한 거다.
이러니 성현이 그에게 존경심을 품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잘 지내셨어요? 안 본 사이 더 젊어지셨네요.”
“카메라 달고 온다길래 오랜만에 머리 좀 세웠다.”
어쩐지, 평소엔 록커처럼 헝클어진 머리가 윤기를 빛내고 있더라.
김동우는 오랜만에 마주하는 카메라를 살짝 어색해하면서도 스텝과도 친근하게 인사를 나눴다.
“이제 막 그 오디션 시작한 거면 바쁜 거 아니야?”
김동우는 성현에게 익히 ‘더 넥스트 서바이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이곳에 방문해도 되겠냐는 물음에 순순히 허락을 했다.
“네가 아무 이유 없이 이곳까지 왔을 리는 없을 테고 말이야.”
평소 성현의 성격상 이상한 부탁은 안 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성현의 용건이 무엇인지 먼저 확인하지도 않았던 김동우가, 이제야 성현의 목적을 물었다.
성현은 곧이어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말했다.
“작업실 좀 빌리고 싶어서요.”
이곳은 성현에게 있어 아지트와도 같은 곳이다.
성현의 자취방엔 장비들이 있긴 했으나 오래된 것들이 많아 작동이 영 시원치 않았다.
그가 종종 이곳에 드나들며 같이 작업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김동우가 어깨를 들썩이며 답했다.
“뭐 언젠 물어보고 썼다고. 마음껏 써.”
흔쾌히 성현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 김동우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성현과 스텝을 위해 커피를 타왔다.
“너 여기서 역사에 남을 기념비적인 곡 하나 만들어서 우승해라. 나중에 내가 밖에 써 붙여야지. 더 넥스트 서바이벌 참가자, 김동우 스튜디오에서 작업함. 어떠냐?”
김동우가 성현에게 커피를 건네며 농담 섞인 어조로 응원했다.
성현의 재능과 실력을 충분히 알고 있는 김동우이기에, 마냥 농담은 아니었다.
이에 성현은 그저 웃어 보였다.
오늘 이곳에서 만들 곡은 자신의 우승 곡은 아니겠지만, 다른 의미로 정말 기념비적인 곡이 될 건 확신했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 기념비적인 곡을 하나 만들 생각이긴 한데.”
“진짜? 형이 뭐 도와줄 거 없냐? 말만 해. 뭐든 다 해줄게.”
“곡 만들면 들어주세요. 꼭.”
“고작 그게 부탁이냐?”
“네.”
“싱겁긴. 알았어. 그거야 일도 아니지. 집 갈 때 문만 잘 잠그고 가라.”
그렇게 퇴장하려는데 아차 싶었는지 서랍을 뒤적였다.
“아 참, 열쇠 줘야지.”
“괜찮아요. 오늘 밤샐 거라.”
“여전하네. 그럼 아침에 보자.”
이성현의 열정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그 모습에 옛날 생각이 나는지, 김동우가 기분 좋은 미소를 띠었다.
그렇게 김동우는 성현에게 인사를 하고 작업실을 나섰다.
카메라맨 또한 작업실에 카메라를 설치한 뒤 작업실을 떠났다.
“그럼 시작해볼까.”
혼자 남은 성현은 눈을 반짝이며 편곡 작업을 펼쳤다.
***
다음 날 아침.
김동우가 작업실에 도착했을 때 성현은 아직도 미디 앞에 앉아서 작업 중에 있었다.
허나 그는 졸린 기색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진짜 밤새웠어? 독한 놈.”
김동우의 말이 들릴 새도 없다.
이성현은 막바지 스퍼트를 올리는 듯 끝까지 마우스와 키보드를 못살게 굴었다.
김동우가 새로운 커피를 타, 성현 앞에 두었을 때다.
“대충 편곡 끝났는데 지금 들어보실래요?”
“부탁이라는데 당연히 들어줘야지.”
성현이 본인이 쓰고 있는 헤드셋을 그대로 김동우에게 건네줬다.
김동우가 헤드셋을 낌과 동시에 자신이 만든 곡을 재생시켰다.
“인트로 좋네.”
음악이 마음에 드는지, 김동우가 고개를 저로 끄덕이며 리듬을 탔다.
‘역시 이성현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만족감을 드러내는 것도 잠시, 김동우의 표정이 갑자기 싸늘히 굳어져 갔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지, 손으로 눈가를 누르더니 아예 헤드셋을 벗었다.
“뭐냐.”
김동우가 낮게 물었다.
“끝까지 들어주세요. 들어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왜 골라도 하필 이 노래냐고 묻잖아. 10년도 더 된 곡을 왜 갑자기 끌고 오냐고.”
김동우가 조금 감정적인 대응을 했다.
그랬다.
이성현이 작업한 곡은 다름 아닌 김동우가 10년 전 속했던 밴드 ‘더 비기너’의 옛 곡을 편곡한 것이다.
도입부만 틀을 벗어나 손을 뎄기 때문에 눈치를 못 챈 거다.
그러나 들을수록 ‘더 비기너’ 고유의 색깔은 드러났고 원곡자인 김동우가 이를 모를 리 없었다.
김동우는 어째서 자신의 곡을 이렇게 싫어할까.
단순히 오래된 곡이라 꺼리는 건 분명 아니다.
사실 김동우에겐 ‘더 비기너’에 대한 아픈 기억이 내면에서 숨 쉬고 있었다.
성현은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에게 당당히 말했다.
“더 비기너. 다시 팬들 앞에 세우고 싶어요.”
성현은 숨겨놓은 진짜 속내를 드러냈다,
이성현은 김동우가 속했던 ‘더 비기너’의 밴드원을 다시 모으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을 무대로 세워 영상으로 찍을 생각이었던 거다.
물론 패자부활전 룰에 따르면 현역 가수는 무대에 설 수 없게 돼 있다.
하지만 ‘더 비기너’는 현역 가수가 아니다.
그들은 공식적으로 해체를 발표했고 이후에 공식적으로 어떤 활동도 하지 않고 있는 상태.
성현은 미션의 맹점을 공략한 것이다.
한창때 ‘더 비기너’의 인기는 실로 압도적이었다.
만약 성현의 계획 대로 이들 밴드를 다시 모이게 한다면, 너튜브 50만 뷰를 충분히 노려볼 수도 있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성현이 이들을 어떻게 모이게 하냐겠지만.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뭐야.”
김동우는 이성적으로 돌아와 차분하게 물었다.
성현은 아직 상황을 모르는 김동우에게 빙 돌려 말하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패자부활전 미션이 너튜브 영상 50만을 찍는 거예요.”
“이슈 하나 만들겠다고 더 비기너를 부활시키잔 거냐?”
“그게 다는 아니에요.”
성현은 김동우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진심을 다 해 말했다.
그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이런 선택을 하게 된 이유.
“제가 락을 좋아하게 된 이유. 형도 아시잖아요.”
성현의 말에 김동우에게선 답변이 오지 않았다.
성현과 처음 만날 날 성현이 김동우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이성현이라고 합니다. 저 더 비기너 때문에 락 좋아하게 됐어요. 진짜 뵙고 싶었는데. 반가워요.’
당시 성현의 말은 진심이었다.
스무 살이 되고 나서야 클래식을 벗어난 성현은 밴드 동아리에서 락을 접했다.
그때 그의 새로운 영역에 눈을 뜨게 해준 곡이 바로 이들이었다.
자유롭고 밝은 분위기의 밴드 곡은 당시 성현에게 큰 충격을 줬다.
무엇보다 사회 비판적이면서도, 청춘들에게 힘을 주는 가사는 성현에게도 많은 위로가 됐었다.
거기에 보컬, 기타, 드럼 어디 하나 빠지는 것 없는 실력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성현뿐만 아니라 당시 젊은이들이 그들의 음악에 선풍적인 인기를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들은 더 비기너 노래에 위로를 받고 열광했다.
“솔직히 말하면 패자부활전 통과하는 것 때문에 이러는 것도 틀린 말 아니에요. 하지만 패자부활전 통과하는 것만큼 간절하게 더 비기너 다시 완전체로 무대에 세우고 싶은 것도 사실이에요.”
하루아침 만에 생겨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더 비기너’ 해체 소식을 들려왔을 때 성현은 그 누구보다 아파하던 사람 중 하나였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던 현실에 볼 때마다 쓰라렸다.
언젠가 그들 무대를 다시 보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었고, 더 나아가 자신의 손으로 다시 그들의 무대를 만들어보고 싶단 생각까지 들었었다.
그 무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심장이 쿵쾅거렸다.
“형 전 ‘더 비기너’가 다시 노래하는 거 보고 싶어요.”
성현의 진심은 그 어느 때보다 확 와닿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김동우는 곧장 수락할 수 없었다.
“너도 우리가 왜 해체한 건지 이유 다 알잖아.”
성현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성현은 과거 김동우와 술을 마시다 해체 이유에 대해 물었고 김동우는 조금 망설이다가 그 이유를 설명해줬다.
술잔에 술이 따라지는 것처럼 쓰디쓴 현실이 김동우의 몸을 가득 채웠다.
“알아요. 하지만 전 그런 상처일수록 음악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성현은 떳떳이 말했다.
분명 음악을 그만둘만한 이유임은 맞았지만, 역설적으로 음악으로 극복해야 하는 이유라 생각한 거다.
무거운 마음을 떨쳐내고 부디 잊어주기를 바랬었다.
그러나 성현의 말을 들은 김동우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성현은 구태여 그를 붙잡거나 따라가지 않았다.
차분하게 그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의 성격상 이대로 가버릴 사람은 아니었다.
가볍지 않은 사안이기에, 혼자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성현의 예상대로 김동우는 10분이 지나서 다시 작업실로 돌아왔다.
그의 몸에서 짙은 담배 냄새가 나는 것을 보니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온 것 같았다.
성현 옆에 풀썩 앉은 김동우가 머릴 감싸더니 이내 마른세수를 했다.
이어 그는 오만가지 생각을 끝마친 듯 무겁게 입을 열었다.
“다시 틀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