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5화 (15/273)

15화

스탭은 성현을 복도 끝 예선장과 동떨어진 방으로 안내했다.

“이곳에서 대기하시면 됩니다.”

안을 들여다보니 역시나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하기야, 예선 1라운드를 통과한 사람 중, 자신보다 빠르게 포기한 사람은 없을 테니까.

‘이곳에서 시작되나 보군.’

탈락자라면 이런 곳에 오게 할 리는 없었다.

결국, 이번에도 성현의 말대로였다.

게임 속처럼, 이번 타이밍에 패자부활전이 있었던 거다.

여유로이 방을 둘러보았다.

그나저나, 방을 이렇게 실제로 둘러보니 감회가 새로운데.

마치 자신이 게임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게임 속에서도 탈락을 하면 이런 방으로 이동되었다.

성현은 게임 속 천소울 캐릭터를 통해 겪어봤던 패자부활전을 떠올렸다.

‘결코, 쉽지 않았지.’

패자부활전 미션은 천소울로 플레이하면서도 깨기 어려운 난이도였다.

미션을 진행하면서 몇 번이나 떨어졌는지 모르겠다.

물론, 어느 정도 숙련이 되니까 대충 천소울을 살려낼 방안도 떠올랐긴 했다.

그랬던 만큼 성현도 처음부터 패자부활전으로 본선에 진출할 생각은 없었다.

굳이 처음부터 리스크를 안고 갈 필요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예상치도 못한 룰의 존재, 그리고 천소울과의 만남 때문에 이곳에 오게 되었다.

나쁘게만 생각할 건 없었다.

덕분에 살아서 돌아갈 경우의 이점도 확실해졌으니까.

‘천소울.’

천소울의 인정을 조금이라도 받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탈락의 리스크를 걸고 도전하기에 충분했다.

패자부활전이 존재하는지도 몰랐을 천소울.

성현이 자신의 일행 전부를 데리고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겠다 말했을 때, 불신과 가소로움이 섞인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던 그 표정을 잊을 수 없었다.

다시 성현이 살아 돌아왔을 때는 어떤 표정을 지을는지.

그 얼굴을 상상하자니 벌써부터 새롭고 짜릿했다.

성현은 프로듀서로서 서지현, 김요하와도 함께 작업하고 싶지만, 천소울만큼 성현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은 없었다.

처음 듣자마자, 그렇게나 성현의 마음을 홀려버린 목소리는 처음이었으니까.

얼마나 홀렸으면, 2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한 소절만 듣고 목소리를 알아들었을까.

어쨌든 천소울과 함께 위로 올라가기 위해선 자신의 실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 타이밍이 지금이 된 것뿐이다.

천소울에게도 아마 성현이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천소울. 당신이 날 원하게 만들 거야. 당신이 날 필요로 하게 만들 거라고.’

어째 코앞에 닥친 패자부활전보다 천소울에 관한 생각뿐인 성현이다.

그러자 천소울을 얻기 위해 확실히 패자부활전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느꼈다.

보통은 오디션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나?

성현의 사고방식도 참 일반적이진 않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아.’

그저 시간이 지나길 기다리는데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 간 것이 떠올랐다.

곧바로 주머니에 서 휴대폰을 꺼내 들어 전화번호부를 뒤졌다.

애초에 패자부활전을 하기로 마음속으로 결심했을 때 어느 정도 계획을 그렸었다.

그 계획을 실행하기 전에 미리 확인할 것들이 생각난 것이다.

‘그게 되면 좋겠는데.’

그렇게 머릿속에 세워 놓은 계획들을 차근차근 확인할 때였다.

밖에서 발자국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사람들이 성현이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그들의 표정은 모두 어두웠었는데 웬 방으로 안내를 받자 모두 어리둥절한 모습을 지었다.

이들은 성현과 달리 패자부활전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렇기에 곧바로 오디션장을 떠날 거라 생각했었던 모양이다.

“뭐야. 떨어진 거 아니야?”

“뭐가 더 있는 것 같은데요. 저기요 혹시 뭐 좀 알아요?”

참가자들은 각자 이야기를 하더니 모두 가장 먼저 들어와 있던 성현에게 물어봤다.

성현은 그제서야 그들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그는 한창 휴대폰에 집중하고 있던 얼굴을 들어 그들을 마주했다.

스무 명 정도 되는 참가자들이 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혼자 있을 때는 넓고 안락했었는데 어느덧 소란스러워지더니 정신이 없어졌다.

성현은 그들이 귀찮게라도 느껴진 것인지 대충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기다리면 알게 될 것 같습니다.”

마침, 성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에 스탭들과 카메라맨들이 들어왔다.

“카메라다.”

“확실히 뭐 있긴 있나 보네!”

“패자부활전? 보통 오디션 프로에 그런 거 있던데?”

참가자들은 속속들이 자리 잡는 카메라를 보며 뭔가 있을 거란 기대감에 웅성거렸다.

이쯤까지 되면 ‘패자부활전’의 존재를 예측하는 일이 어렵지만은 않다.

그때, 방에 덩치가 크고 포스가 있는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는 참가자들 앞에 서더니 말없이 그들을 쭉 훑어봤다.

그러자 동시에 웅성거리던 참가자들은 남자가 풍기는 포스에 자동으로 모두 입을 다물었다.

남자는 작게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이내 자신이 누구인지 밝혔다.

“잠실 예선장 메인 PD 한동균입니다.”

역시, 예사 인물은 아니었다.

메인 PD가 손수 방까지 찾아오다니.

‘더 넥스트 슈퍼스타’는 특이한 방송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보통 각 예선장의 촬영은 수많은 AD들이 맡은 구역을 담당한다.

이를 총괄하는 메인 PD는 커다란 행사나 이벤트가 아니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한 메인 PD의 등장에, 사람들은 더욱 혹시나 하는 마음이 커졌다.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주듯 메인 PD의 입이 움직였다.

“여기 계신 분들은 2라운드를 탈락했지만, 특별히 주최 측의 배려로 패자부활전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겁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대가 맞았다는 생각에 일순 환호성을 질렀다.

당연했다.

이미 라운드에서 탈락하여 살아남을 방법이 없을 줄 알았는데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지다니.

실낱같은 희망이 눈에 비쳤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보세요? 엄마! 나 아직 안 떨어졌대!”

누군가는 주먹을 불끈 쥐며 의욕을 불태웠고, 누군가는 곧장 전화를 꺼내 이 사실을 알렸다.

흥분한 참가자들 사이 성현은 혼자 가만히 있었다.

게임 속에서도 분명 어려운 미션이었다.

게임의 주인공 캐릭터마저 여러 번 떨어졌단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성현은 침착함을 유지하며 이번 미션을 치를 생각만 하고 있었다.

“곧 커넥트 앱을 통해 패자부활전 미션이 공지될 겁니다.”

메인 PD 한동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에 있던 탈락자 전원에게 커넥트 알람이 울렸다.

그 소리에 흥분해 있던 사람들은 모두 조용해지더니 다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미션을 확인했다.

[패자부활전 라운드]

* 미션 : 직접 프로듀싱한 곡 혹은 직접 부른 곡을 담은 영상으로 너튜브 50만 조회수 이상을 기록하세요.

* 조건 : 1) ‘더 넥스트 서바이벌’ 주최측에서 각 참가자들에게 제공한 채널의 조회수만 인정.

2) 현역 가수 혹은 프로듀서의 영상 내(內) 등장 혹은 직접 언급 불가.

3) 음악 혹은 음악 퍼포먼스와 관련된 것 외의 영상 요소 첨가 불가.

* 제한 시간 : 2주일.

* 성공시 : 본선 라운드 진출.

* 실패시 : 탈락.

참가자들이 미션 내용을 읽어 나갔다.

좀 전까지 활기에 찬 분위기는 어디 가고 무거운 공기만이 다시 채워졌다.

사실 기대한 것 자체가 어리석었다.

어느 누가 탈락한 사람에게 쉽게 거머쥘 수 있는 이벤트를 준비하겠는가.

한편 미션을 확인한 성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행히 게임 속 미션과 달라진 내용은 없었다.

이윽고 참가자들에게 메시지가 하나씩 더 도착했다.

메시지엔 링크가 적혀있었다.

“보내준 링크는 각 참가자들에게 지급된 채널 주소입니다. 주어진 채널에 올린 영상만 조회수로 인정되니 이점 명심해주시길 바랍니다.”

한동균의 말이 끝나자마자 각자의 볼멘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50만? 이게 말이 됩니까?”

“하. 연예인도 아니고 일반인이 이런 빈 깡통 같은 채널에서 어떻게 50만을 찍어요.”

당연했다.

안 그래도 너튜브 50만 조회수를 찍는 것도 프로들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적어도 이름이 잘 알려진 연예인 정도 돼야 겨우 찍을까 말까인데, 조건엔 이를 아예 못하게 막아버렸다.

오직 음악으로만 하며 연예인을 언급하지 말라니.

게다가 한동균 메인PD가 보내준 채널은 다른 채널과도 연관이 없는 빈 깡통 같은 채널이었다.

“이건 주최 측의 배려로 선택된 분들에게 특별히 제공되는 기회지, 편의를 봐주기 위한 호의가 아닙니다. 미션 내용이 마음에 안 드신다면 지금 나가주시면 됩니다.”

한동균 메인 PD의 단호한 대응에 참가자들 이내 서로 눈치를 보더니 한숨만 푹푹 쉬었다.

미션을 확인한 성현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내용을 보니 새삼 어려운 미션이란 것이 몸에 와닿았다.

이들 중에서는 이 미션을 쉽게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돈 좀 있고 인맥이 있어 보이는 참가자들만이 겨우 이 미션을 통과할 가능성이 있으리라.

그리고 성현은 왜 주최 측에서 왜 이렇게 어려운 미션을 낸 건지 알고 있었다.

‘애초에 이번 패자부활전은 대형 소속사 연습생들을 구제하는 게 목적이니까.’

이번 패자부활전 역시 미션 내용에 공략법이 다 숨겨 있고, 메이저 소속사 출신 연습생이 그 공략법만 안다면 생각보다 쉽게 통과할 수 있다.

그렇다.

주최 측은 혹시나 이름있는 메이저 소속사 출신 연습생들의 조기 탈락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 하나로 이번 패자부활전을 만드는 수고를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메이저 소속사가 소속이 아닌 일반 참가자들은 깨기 어려운 미션을 준 것이다.

불합리하게 보일 수 있지만, 이 바닥이란 게 그렇다.

성현은 방에 모인 참가자들을 둘러봤다.

몇 명은 조용히 연락을 돌리고 있었는데 아마 저런 반응을 보이는 애들은 대형 소속사 소속일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성현과 마찬가지로 소속사가 없는 참가자들이 할 수 있는 건 절망뿐이었다.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만이 들려왔다.

“앞으로 여러분 각자에게 카메라가 한 대씩 붙어서 패자부활전 과정을 찍을 겁니다.”

메인PD 한동균은 그들이 낙담하든 말든 그들에게 각각 한 대의 카메라를 붙여줬다.

참가자들 몇 명은 촬영을 거부하는 모습도 취했다.

하지만 이미 서바이벌에 참가하기 전 촬영 동의서에 동의를 한 이상 거부할 힘은 없었다.

그렇게 결국 각자에게 족쇄와 같은 카메라가 따라다니게 되었다.

자신들의 실패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겨 TV에 방송된다는데 그걸 좋아할 사람이 있을 리가.

“패자부활전에 관한 공지사항 모두 전달했으며 참가자 전원 해산하셔도 됩니다.”

한동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현이 가장 먼저 보란 듯이 자리를 나섰다.

이번 패자부활전을 반드시 통과해내리라는 듯 강한 아우라를 풍기면서.

뒤이어 참가자들도 성현을 따라 힘없이 나갔다.

한편 가장 먼저 방을 떠난 성현의 뒷모습을 한동균 PD가 시선으로 쫓았다.

“쟤 누구야?”

한동균의 물음에 패자부활전 담당 AD가 참가자들 목록을 보더니 성현의 얼굴이 붙여진 이력서를 보여줬다.

“이성현?”

순간, 한동균은 김인호한테서 이성현에 관해 보고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왜 싹수 있단 건지 알겠구만.”

한동균이 만족스럽게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