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4화 (14/273)

14화

예선 2라운드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30분.

어차피 조은별과 나머지 참가자들 전원이 한 팀이기 때문에, 이번 2라운드에 올라가는 것까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그 후에 이어지는 남은 예선 라운드.

성현은 게임을 통해, 남은 예선 라운드의 일부를 이번 예선 2라운드 때 만든 팀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현은 30분이란 시간 동안 조은별, 서지현, 요하에게 각각 다음 예선을 통과하기 위한 짧은 팁을 주기로 했다.

“은별 씨 잠깐 얘기 좀 해요.”

우선 자신에게 가까이 있는 은별을 불렸다.

그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예선장 구석으로 향했다.

이동을 마침과 동시에 조은별이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말을 꺼냈다.

“대체 무슨 생각이세요? 무슨 생각으로 기권을 한 거예요?”

아무리 마음 쓰지 말라지만, 조은별은 도무지 성현의 선택이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다.

그녀의 모습을 보니 화를 내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가 왜 스스로를 희생하면서까지 오디션을 포기하는 건지 납득이 가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

애초에 이번 서바이벌 오디션에 대해 알고 있다고 세세한 내용을 설명할 수도 없고, 다른 사람들과도 대화를 해야 한다.

성현은 은별의 질문을 깔끔히 무시했다.

“제 걱정은 그만하고 은별 씨 역할에 집중하세요. 이번 라운드는 그냥 올라간다 쳐도 다음 라운드는 아마 팀으로 무대를 만들 가능성이 높아요.”

요점만 정확히 언급해 말하였다.

이에 은별도 이성을 되찾고 상황 파악이 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성현은 뒷말도 편히 말할 수 있었다.

“은별 씨는 프로듀서잖아요. 이번 2라운드는 쉽게 올라간다지만, 남은 예선도 쉬우리란 보장은 없어요. 그때에는 은별 씨가 이끌어가야 해요.”

이에 은별은 심히 걱정됨과 동시에 놀란 모양이다.

허나 괜히 은별에게 이런 부탁을 한 건 아니다.

성현은 은별의 실력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소속사에서 데뷔 아이돌 노래 앨범에 참여시켰을 만큼 재능과 실력을 가진 프로듀서였다.

시간만 어느 정도 주어지고 멘탈만 잘 잡아준다면 충분히 실력 발휘가 가능했다.

‘원래도 멘탈이 약한 사람은 아니니 방향성만 잡아주면 알아서 잘할 거야.’

성현이 디테일한 부분까지 조은별에게 코칭해 줄 필욘 없었다.

조은별이 아직 모르는 가수들의 특성만 조금 알려주고 러프한 방향성만 제시해도 됐다.

그녀는 충분히 멋진 무대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성현은 아직 혼란스러운 은별에게 자신이 데려온 인물들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서지현 씨는 보컬리스트예요. 기본기도 탄탄하고 특히 믹스보이스가 매력적인 참가자예요.

화성에 대한 이해도도 높고 순발력도 있어서 은별 씨가 어떤 곡을 구상하던 금방 따라올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요하는 달라요.”

“전문적인 보컬 트레이닝을 한 번도 받은 적 없다 하더라구요.”

“맞아요. 하지만 전 요하한테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무언가 있다고 생각해요. 요하가 가지고 있는 목소리요.”

은별도 다행히 그들과 안면을 튼 사이인 듯 자잘한 정보들을 알고 있었다.

또한 성현이 하는 말을 귀담아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현이 팀에서 빠진다는 현실을 부정할 바에야 어서 빨리 받아들여 앞으로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이다.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요. 요하의 음색을 살릴 수 있는 노래를 선곡하시고 서지현 씨가 이를 뒤에서 백업해주는 무대요.”

“괜찮은 것 같아요.”

조은별도 음색이란 것이 가창력, 보컬스킬 못지않게, 어쩌면 그것보다 더욱 중요할 수도 있단 걸 알았다.

때문에 성현의 말을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충고는 다음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서지현 씨 고음파트를 추가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서지현 씨가 가진 가성이 돋보일 수 있게요.”

“서지현 씨가 가성을 잘 썼나요?”

조은별은 그 사실은 들어본 적이 없다는 듯 의아해하며 물었다.

이 정보는 그녀에게서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성현은 그저 웃어 보일 뿐이다.

“잘 쓰게 될 거예요.”

지금으로서는 자신이 한 말이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더는 그가 해줄 수 있는 건 없다.

이제 남은 건 은별에게 맡길 수밖에.

은별은 아직 자신의 기량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성현은 그녀가 잘할 수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면 꼰대 중의 꼰대 박남길이 팀에 함께한다는 점.

하지만 조은별 정도의 실력과 강단이면 적어도 예선 정도는 극복할 수 있을 거다.

성현이 조은별 다음으로 찾아간 사람은 서지현이었다.

서지현 역시 구석에서 은별과 이야기하고 있는 성현을 힐끗 엿보고 있었다.

그녀 역시 마음 한구석 성현에게 조금은 의지하는 마음이 생긴 모양이다.

예선 때 성현의 조언이 없었다면, 이곳에 올라오지 못했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한편, 이성현은 서지현의 실력을 이미 어느 정도 꿰뚫고 있었다.

그렇기에 마지막으로, 서지현의 나머지 특성만 확실히 체크 할 생각이었다.

‘심금을 울리는 가성.’

서지현에겐 안정적인 보컬 말고도 가성이라는 특성이 있었다.

문제는 서지현 자체가 가성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아마 가성이 힘이 없다는 고정관념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서지현 자체가 두성과 공명을 이용한 깔끔한 진성 보컬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게임 속에서 이런 서지현의 특성을 일깨워주는 역할은 다른 캐릭터의 몫이지만, 현실에선 이성현이 직접 맡기로 했다.

“서지현 씨.”

서지현에게 다가간 성현은 밑도 끝도 없이 곧바로 물어봤다.

“혹시 가성 쓰는 법 알아요?”

성현은 이번 기회에 서지현의 특성 중 하나였던 ‘심금을 울리는 가성’을 키워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성현의 물음에 목을 풀고 있던 서지현이 당연한 걸 묻냐는 듯 성현을 쳐다봤다.

가수 지망생 치고 두성, 흉성, 가성 사용법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거 아닌가요?”

꽤나 자신 있어 보이는 말투의 서지현.

“해봐요, 그럼. 은별 씨가 앞으로 프로듀서로서 곡 구성하는 데 참고할 수 있게.”

특성을 아는 것과 실제로 들어보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을 터.

직접 들어야 도움이 될 수 있는 조언을 바로 꺼낼 수 있기에, 성현이 즉석에서 가성을 요청했다.

“크큼.”

성현의 지시가 떨어지자 서지현이 가볍게 목을 풀고는,

“난-바다가 머물던- 모래 위에 그린 그림처럼-”

곧바로 바로 가성 멜로디를 뽑아냈다.

성현이 진지한 얼굴로 서지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역시 성대 위쪽만 주로 사용하네.’

흔히들 하는 실수다.

가성을 가짜 소리라고만 생각해서 고음을 내기 위해 성대만 주로 사용하는 것이다.

목소리는 맑았지만, 힘이 없고 오래 뻗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서지현의 특성엔 분명 가성이 있지만, 그 가성을 많이 써보지 않은 모양이다.

특이한 일은 아니다.

보통 사람이 자신이 가진 장기가 무엇인지 잘 모른 채 평생을 살아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성현도 정보창을 보지 못했다면 그녀의 숨은 재능을 찾지 못했을 거다.

“여기까지.”

그는 곧바로 서지현의 노래를 멈추게 했다.

“실례할게요.”

이윽고 그녀의 손을 잡아 배 위로 가져다 댔다.

“성대가 너무 긴장해서 소리가 제대로 안 나오는 겁니다. 위가 아니라 아래를 신경 써서 다시 불러봐요. 아래쪽을 연다는 느낌으로.”

성현은 특유의 프로듀싱 실력으로 서지현을 보조해줬다.

서지현도 그의 말을 잘 따르며 새로운 방법으로 가성을 내었다.

하지만 역시 어색한 방법에 소리는 잘 나지 않았다.

재능이 있다고 해도 오랫동안 쓰지 않으면 녹슨 기계처럼 삐걱거리기 마련이다.

“다시.”

성현은 어느새 눈빛이 바뀌며 지현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만큼 앞에 일어날 미션은 쉽지만은 않을 거란 걸 알려주는 부분이었다.

다시 소리를 뱉게 시키는 성현의 말에 서지현은 몇 번이고 다시 소릴 냈다.

그 후 몇 번의 교정을 더 받은 후였다.

일반 사람들과 확연히 짧은 시간에 완벽하게 연습을 마쳐 나갔다.

얼마 안 있어 서지현은 애초에 가지고 있던 특기답게 금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성현이 더 이상 손을 대지 않아도 무리 없이 무대를 꾸밀 수 있다.

“앞으로 제가 없는 동안 은별 씨와 같이 계속 연습하면 더 좋아질 겁니다.”

“고마워요. 갑자기 이런 코치를 받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이런 서바이벌 오디션에 들어와서 심사위원이 아닌 참가자에게 조언을 들을 줄은 몰랐다.

기분이 조금 얼떨떨했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성현의 가르침에서 어떤 나쁜 의도를 발견하지 못해서일까.

오히려 이전에 자신이 신경 쓰지 않던 가성이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에 희열만을 느꼈다.

거기에 앞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펼칠 수 있을 거 같아 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성현은 마지막으로 요하에게 향했다.

시간을 보니 남은 시간은 단 5분.

그가 예상한 시간과 얼추 맞아떨어졌다.

요하는 자신이 먼저 다가갈 필요 없이 어느새 그의 곁으로 와 있었다.

“넌 형이 말한 것만 기억해. 애써 멋있어 보일 필요 없어. 기교 없이 담백하게. 알았지?”

“네, 형.”

성현은 이미 요하에게 음색과 보컬 방법에 대해 조언을 해준 적이 있다.

덕분에 요하에게는 길게 얘기할 필요는 없었다.

요하 본인도 그것을 잘 소화해냈고.

성현은 요하의 머리를 쓰다듬고 기를 살려주며 용기를 불어넣었다.

이제 남은 것은 조은별과 든든한 가수 포지션인 둘에게 모두 맡겼다.

그런 성현에게 남은 문제는 단 하나.

자신에게 던져진 패자부활전을 통과하는 것이다.

“예선 2라운드 준비시간 끝났습니다.”

진행 스텝의 말에 성현을 제외한 나머지 참가자들은 진행 스텝 앞으로 향했다.

성현은 스텝의 앞으로 향하는 팀원들을 보며 괜히 큰 숨을 내쉬었다.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결과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때, 조은별이 성현을 힐끗 뒤돌아보자 성현은 급히 괜찮다는 듯 웃어 보였다.

움직이지 않는 성현을 보곤 진행 스텝이 은별에게 다가와 그에 대해 물었다.

이에 은별은 차분히 설명을 마쳤고 성현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를 부르더니 자신이 들은 말이 맞는 건지 물어보았다.

“기권, 사실인가요?”

“네. 기권하겠습니다.”

성현의 말을 확인한 진행 스텝이, 정해진 수순 대로 오디션을 진행했다.

“16번 예선 조 대결 상대가 없으므로 전원 다음 라운드 진출입니다.”

역시, 이번에도 성현이 말한 대로 무리 없이 예선 2라운드를 통과했다.

진행 스텝의 말에 조은별을 비롯한 참가자들은 순간 기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성현을 보고는 시무룩해졌다.

“미안하면 본선까지 무조건 올라가요.”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오직 그뿐이었다.

성현의 말에 참가자들은 모두 고갤 끄덕이며 반드시 그러겠노라 다짐했다.

“탈락자는 예선장을 떠나주시길 바랍니다.”

진행 스텝의 말에 성현은 동료들을 향해 웃어 보이며 스탭을 따라 예선장을 나섰다.

그리고 이 모습을 김인호가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성현의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겨우 싹수 있는 놈 찾았다 싶었는데 기권이라니 나 참.’

일이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이미 PD에게 자랑도 해놨는데 이대로 성현이 떨어져 버리면 된통 깨질 것이 분명했다.

그는 다른 의미로 그의 앞날을 빌었다.

‘제발 살아 돌아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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