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방금 뭐라고 했어요?”
“기권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보다 더한 막장 같은 전개가 있을 리 없다.
게다가 성현은 자신이 제대로 고른 싹수 바른 참가자로 프로그램은 물론 자신의 입지까지 올려줄 인물이다.
그런 자가 기권하겠다고?
처음에야 잘못 들은 줄 알고 다시 물어보았다.
뭐, 정신줄이 놓이면 헛된 말이 나오기도 하니까.
그러나 그런 기대감을 짓밟기라도 하듯 들려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찰나에 마침 조은별이 다가왔다.
그녀는 물론 그의 말에 모든 참가자들이 당황한 모습이었다.
“죄송합니다. 저희끼리 얘기 좀 더 하고 올게요.”
조은별이 성현의 돌발행동에 대신 사과를 하였다.
그러면서 이 상황을 어떻게든 무마하려 했지만, 성현은 자신의 앞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탈락자는 어디로 가면 되는 거죠?”
노골적으로 성현을 노려보았다.
그의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해줘야겠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성현도 마다하지 않고 눈을 마주쳤다.
이 녀석, 아무리 봐도 진심으로밖에 안 보이는데.
“선택은 번복할 수 없습니다. 잘 생각하고 하세요.”
성현에게 질문하는 척 시간을 끌기 위함이었다.
그의 생각이 바뀌거나 누군가 그를 말리기를 빌었다.
당연한 일이잖아.
이제 본격적으로 그를 이용하여 방송에 나가면 시청률과 반응을 끌어올려 후원과 캐시를 얻을까 했는데!
그러니 성현의 갑작스러운 돌발행동이 반가울 리 없었다.
이미 짜둔 판이 있었는데 성현이 그걸 뒤엎고 새로운 판을 짜겠다고 나선 거기 때문이다.
끝내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선택에 대한 후회는 없습니다. 기권하겠습니다.”
“성현 씨!”
조은별이 다시 성현을 말리려 들었다.
하지만 그녀를 막아선 건 다름 아닌 김인호였다.
“따라오세요.”
그의 확고한 마음가짐에 포기라도 한 것일까?
김인호는 골치 아픈 듯 인상을 쓰더니 먼저 나갔다.
이윽고 카메라도 그의 뒤를 따라가려는데 더는 따라오지 말라는 듯 김인호가 손짓했다.
그렇게 김인호와 이성현만 방을 나선 채 문은 닫혔다.
***
김인호 AD가 성현을 데려간 곳은 화장실이었다.
김인호는 화장실에 사람을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팔짱을 끼며 말을 꺼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겁니까? 그동안 잘하더만 기권이라뇨.”
“어차피 누군가는 떨어져야 하잖아요. 그래서 그런 룰이 있는 거 아닌가요?”
제대로 옳은 말을 내뱉은 탓인지 김인호의 표정은 순간 무거웠던 눈꺼풀이 가벼워진 듯 크게 떠졌다.
그러더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는 모습이었다.
“그게, 맞긴 맞는데...... 하씨......”
김인호는 난감한 듯 머리를 박박 긁었다.
그 모습을 보니 그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시청률 때문이겠지.’
성현과 참가자들에게는 음악이라는 소재로 서바이벌을 벌였다.
반대쪽에선 PD와 AD 같이 주최 측에서 고용된 사람들에겐 시청률이라는 소재의 서바이벌을 벌이고 있다.
이건 비단 게임 속 서바이벌이 현실이 돼서가 아니었다.
엔터계라는 곳이 그랬다.
인기로 살고 인기로 죽는 곳.
대중의 무관심이 비난보다 더욱 무서운 곳이 이곳이다.
한참 혼란의 늪에 빠진 김인호의 모습에서 스텝 목걸이가 보였다.
그것을 통해 그제야 성현은 AD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김인호 AD님. 저 아직 떨어진 건 아니지 않나요?”
자신의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몸부림치던 그의 행동이 멈췄다.
그러자 김인호는 자신을 보며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모습이었다.
“보통 이런 오디션엔 패자부활전 같은 거 있던데. 아닌가요?”
그렇다.
평소 다른 오디션들을 보면 하나같이 패자부활전이 있다.
재능이 있으나 운이 없어 안타깝게 떨어진 자들을 구한다는 식으로 만들어진 방식.
허나 실은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선 꼭 넣어야 할 장치인 셈이다.
이번 서바이벌에서도 역시 패자부활전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타이밍이 바로 지금인 거다.
성현은 이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권이란 선택을 내린 것이다.
‘유일한 선택지였으니 선택이라고도 볼 수 없으려나.’
사실 기권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있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게임을 통해 이곳의 패자부활전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알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패자부활전을 택한 건 여러 조건들을 충족하기 위함이었다.
어찌 보면 유일한 선택지였을 셈이지.
첫 번째는 천소울.
천소울이 실존한다는 것을, 그리고 천소울이 2년 전 싸클에서 들었던 ‘CSW’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유는 아직 명확히 모르지만, 천소울은 현재 프로듀서에 대한 인식이 꼬여도 단단히 꼬인 상태.
앞으로 천소울과 음악을 하기 위해선,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했다.
게다가 이미 천소울에게 이와 관련된 말을 뱉어놓은 상황.
이제, 그 말을 지키는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이유는 본선 3라운드.
본선 3라운드는 혼자서 통과할 수 없는 미션이 나왔다.
그때가 되면 자신에겐 믿을 수 있는 동료, 음악인들이 필요했다.
프로듀서로서, 자신의 가수 혹은 동료 프로듀서에게 신뢰를 쌓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
만약 여기서 성현이 자신을 희생하고 패자부활전으로 올라간다면 한다면?
동료들을 전부를 위로 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그 필요한 신뢰를 얻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화제성.
이성현이 ‘더 넥스트 슈퍼스타’에 참가한 이유는 오직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그 음악을 더 많은 사람들한테 들려주기 위함이다.
서바이벌 높은 곳까지 살아남아야, 자신의 음악이 더 널리 퍼지는 것은 당연지사.
성현이 계속 위로 올라가서 자신의 음악을 보여주기 위해선 화제성을 마냥 부정할 수만도 없었다.
다른 오디션 서바이벌을 봐도 방송국에선 화제성이 있는 참가자를 밀어주고 웬만하면 그를 위로 올려주려고 한다.
왜? 시청자들이 좋아하니까.
‘더 넥스트 서바이벌’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지금 성현의 선택은 충분히 화제성을 불러일으킬 만했다.
스스로 기권을 하면서 동료들을 위로 올려 보내주겠다고 한 거니까.
한편, 패자부활전이란 말을 들은 김인호는 쉬이 입을 열지 못한 채 의아한 눈으로 이성현을 바라봤다.
‘패자부활전 있는 거 알고 얘기하는 건가?’
김인호는 그의 속을 떠보기 위해 모르는 척 질문을 건넸다.
“뭐 알고 하는 말이에요?”
패자부활전이 있는 건 오로지 관계자들만 알고 있는 사항이었다.
그런데 성현이 이를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하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관계자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는 보기 힘들었다.
관계자와 관련이 있는 자가 있다고 듣지 못했을 뿐더러, 만에 하나 있다고 한들 굳이 이렇게 리스크가 큰 선택을 할 리 없다.
김인호가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그럼 저 가볼게요. 볼일 보시고 나오세요.”
성현은 자연스레 대화를 마무리 지으며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성현이 나간 후에도, 김인호는 한참을 성현에 대해 생각했다.
“저 자식 정체가 뭐야.”
마냥 추측해서 한 말이라고 하기엔 상당한 배짱이 필요했다.
만약 패자부활전이 없는 상황이었다면 이대로 탈락을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쉽지 않을 텐데.’
성현의 말대로 패자부활전은 있다.
그리고 그가 알고 있듯 이미 탈락한 사람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대결인 만큼 결코, 쉽지 않은 대결이었다.
아무리 성현의 실력이 뛰어나다고 한들 이번만은 어느 정도 운이 필요할 거다.
이번 패자부활전은 다른 예선장에서도 탈락한 사람들이 모두 함께 치르는 대전투다.
그런 만큼 성현보다 실력이 좋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거기다 이미 성현의 프로필을 확인한바 프로듀싱 경력도 전무.
객관적인 지표로만 봤을 때 성현이 살아 돌아올 확률은 호랑이가 절벽에 떨어트린 새끼가 살아남을 정도로 희박했다.
‘그래도 살아 돌아오기만 한다면......’
팀원을 위해 스스로 기권한 참가자가 패자부활전에서 살아 돌아 온다?
이보다 더 재밌는 스토리도 없을 터였다.
거기에 살아오기만 하면 무럭무럭 자라 호랑이가 되듯 이곳을 제패할 수도 있다.
극히 낮은 확률이지만, 묘하게 성현이 그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
성현이 예선장으로 들어가자, 기다리고 있다는 듯 조은별과 서지현, 요하가 달려들었다.
“성현 씨 대체 무슨 일이에요? 기권은 대체 왜 한 거예요?”
“형. 진짜 떨어진 거예요? 저랑 같이 음악한다고 했잖아요.”
다급하게 말을 쏟아내는 그들을 보니 괜히 마음이 급해졌다.
“잠시만요, 잠시만. 다들 진정 좀 해요.”
차근차근 이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성현이 옅은 미소와 함께 이들을 진정시키며 말을 이었다.
“이게 다 같이 올라갈 유일한 방법이에요.”
“우리 때문에 그런 거면 그러실 필요 없어요. 어차피 서바이벌인데 경쟁을 마냥 피할 수만도 없잖아요.”
“나 아직 안 떨어졌어요. 앞으로도 떨어질 생각 없고.”
성현의 말에 다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쳐다봤다.
그의 말처럼 그는 아직 탈락이 아니다.
다만 탈락 위기일 뿐이지.
“자세한 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다음 라운드에서 봐요. 전 아직 여러분들이랑 더 재밌는 음악을 하고 싶거든요.”
그때 누군가 그들 사이로 껴들었다.
“나도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 않나. 다 큰 성인한테 선택을 강요할 수도 없고. 자기가 한 선택이니 자기가 책임지는 거지.”
박남길은 안타깝다는 말과 다르게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생각에 입을 씰룩거리고 있었다.
그는 혹시라도 성현과 조은별이 팀을 나눠 경쟁을 하면 자신이 떨어질까 걱정을 한 것이다.
사실 그만 아니었으면 모두가 한 팀이 되어 올라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박남길은 성현의 말이 못 미더워 그만 김인호에게 물어보았고, 그 때문에 일이 이렇게 돼버린 거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건지, 성현이 알아서 팀에서 나가겠다고 하여 대결을 할 필요도 없이 라운드 통과가 확정됐기 때문이다.
“맞아요. 박남길 씨도 꼭 위로 올라가길 바랄게요.”
박남길의 속내를 금방 알 수 있었지만 웃으며 대응했다.
솔직한 마음으론 그와 한 팀이 되긴 싫었다.
하지만 당장 그를 떨어뜨려선 안 됐다.
이 예선을 지켜보고 있을 존재들, 그리고 언젠가 보게 될 시청자들에게 굳이 나쁜 인상을 심어줄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음악이 아닌 다른 편법으로 그들의 주목이나 인기를 얻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굳이 안 좋은 인상을 남길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성현은 박남길과 조를 이룬 뒤 기권할 수도 있었지만 혼자서 팀을 나가는 선택을 한 거였다.
“예선 2라운드 준비시간 30분 남았습니다.”
남은 예선 라운드에선 이성현 본인은 참가할 수 없다.
앞으로 30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일행들이 무사히 예선을 통과하는 데 도움이 될 작은 팁을 전수해줄 수 있도록 허락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