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1화 (11/273)

11화

2년 전.

성현은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라온 한 노래를 들었을 때 받았던 그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했다.

미성이면서 묵직함이 있는 소울이 가득 담긴 음색.

분명히 한국에선 좀처럼 찾기 힘든 음색이었다.

아니 어쩌면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통틀어도 찾기 힘든 음색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특유의 리듬감과 그루브는 하나의 음악 선율이 되어 깃털처럼 자유롭게 흘러갔다.

또한 목소리에는 어떠한 기교도 느껴지지 않아 깔끔했다.

이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왜 가수로 활동을 하지 않는 거지?

성현은 들을 때마다 이런 질문이 머릿속에 메아리쳤다.

노래를 올린 아이디는 ‘CSW’.

성현은 그후 CSW라는 사람을 찾아다니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을 찾았다.

하지만, 어떤 음반을 듣거나 TV 방송을 봐도 그와 같은 음색을 가진 가수는 없었다.

일반 인디 가수로 활동하는 건가?

하지만 그러기엔 SNS라던가 인터넷엔 전혀 퍼지지 않았다.

이 정도 실력이라면, 충분히 입소문을 타고도 남았을 텐데.

결국 성현은 목소리의 주인을 찾는 데 실패했고, 얼마나 미련이 남았는지 홀로 그 남자의 목소리에 어울리는 곡을 만들었다.

하지만, 오직 한 곡에 담긴 목소리만을 들으며 그에 어울리는 곡을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의 작업 속도는 현저히 느려져만 갔고 서서히 손이 멈추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덧 지금까지 왔다.

그런데 지금, 도대체 옆방에서 무슨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것인가.

자신이 그토록 찾아다니던 목소리와 흡사한, 아니 똑같은 목소리가 ‘더 넥스트 슈퍼스타’ 예선장 옆방에서 들려오다니.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저기에 있다고?’

꿈속에 파묻힌 기억을 토대로 성현은 몸을 움직였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시간에 본능이 몸을 장악한 거다.

성현은 곧장 자신이 있는 예선장을 나가 옆방으로 달려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찌나 바람 같던지 옆을 지키던 진행요원조차 당황하여 성현을 막지 못했다.

결국, 성현은 옆방의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갔다.

“어?”

옆방 내부에 있던 스텝이 굳은 얼굴을 하고 갑자기 들어온 성현 덕에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참가자 방 가시면 안 돼요. 얼른 나오시죠.”

뒤늦게나마 쫓아온 스텝이 성현을 붙잡으려 했지만, 그에게 진행요원의 말이 들어올 리 없었다.

“잠시만요. 제발 잠시만.”

성현은 빠르게 방을 훑었다.

예선 장엔 얼마 안 남은 사람들이 각자 흩어져 연습 중에 있었다.

성현이 있는 방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딱 하나.

성현의 시선이 꽂힌 한 남자의 존재만 제외하고.

성현에게 등을 보인 채 노래를 부르며 연습하고 있는 남자.

가까이서 들으니 더욱 선명히 들렸다.

성현은 그의 뒷모습을 말없이 쳐다봤다.

‘CSW가 확실해.’

이 남자다.

자신이 그토록 찾아다니던, 프로듀서로서 꿈에 그리던 목소리의 주인공을 마침내 만나게 된 것이다.

그 남자를 제외하고, 예선 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말을 멈췄다.

성현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모두가 당황한 거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그 남자의 음악 소리로만 방 안이 채워졌다.

분위기를 완전히 압도하는 실력이었다.

“저기.”

성현은 곧바로 남자를 불렀다.

성현의 부름에, 남자는 그제야 조용해진 주변과 누군가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남자는 아무 생각 없이 뒤를 돌아봤다.

그의 얼굴이 성현의 시야 안에 그려졌고, 성현은 마치 우주 안에 버려진 듯 숨을 쉴 수 없었다.

“너, 너는......”

놀랍게도, 지난 2년 찾지 못했던 목소리의 주인은 성현에게 너무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말도 안 돼.

이 목소리의 주인이 바로 저 캐릭터, 아니 사람이었다고...?

‘메이크 유어 스타’를 하면서 수없이 함께 보내왔던 캐릭터.

노래 실력뿐만 아니라 얼굴까지 잘생겼던 게임 속 주인공.

“천소울…….”

아무도 듣지 못하는 작은 목소리로, 그 이름을 작게 읊조렸다.

예선 1라운드 당시, 조진석과 서지현을 마주했을 때 자연스럽게 떠올랐던 이름.

게임 속 캐릭터가 실존하는 거라면, 혹시 주인공 캐릭터도 있지 않을까.

자신이 가장 애정하고, 또 그만큼 열심히 키워냈던 그 캐릭터를 볼 수 있는 걸까.

그 녀석의 노래를, 현실 속에서 자신이 프로듀싱할 수도 있게 될까.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쿵쾅거렸었다.

그런데 마침내 마주하게 된 게임 속 주인공 천소울이, 2년 전 성현의 혼을 빼놓았던 목소리의 주인공이라니.

정신이 혼미한 게 당연했다.

‘그 둘이 동일인물이었다니.’

2년 동안 쫓았던 목소리의 주인이 음악 가치관, 실력, 완벽함에 대한 강박과 외모를 모두 갖춘 천소울이라니.

성현은 그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부터 멀뚱하게 천소울을 바라봤다.

아까부터 자신을 쭉 지켜보고 있는 성현을 본 소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웬 처음 보는 남자가 자신을 찾아온 게 영 이상했다.

그래도 자신을 찾아온 데는 이유가 있을 터.

소울은 성현에게 걸어갔다.

성현은 그를 누구보다 오래, 그리고 자세히 봐왔다.

물론 천소울은 자신을 모르겠지만, 그의 능력은 파악 완료였다.

‘저 녀석을 내 손으로 키우고 싶다.’

소울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걸 보니, 정신이 번쩍 들며 순식간에 욕망이 끓어올랐다.

자신의 음악 세계에 빈 공간을 채워줄 마지막 퍼즐 조각이 눈앞에 있다.

프로듀서로서 천소울은 스타가 될 수밖에 없는, 돼야만 하는 스타로 태어난 남자였다.

그리고 그 프로듀서는 무조건 자신이 돼야겠단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프로듀서로서, 평생 한 번쯤은 겪게 된다는 뜨거운 욕망.

“할 말 있습니까?”

천소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성현에게 날아왔다.

성현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그를 바라봤다.

날렵한 눈매에 금방이라도 베일 듯 매끄러운 턱선, 거기에 다부진 체격까지.

게임 속 모습보다 실물이 훨씬 나은 모습이었다.

‘아는 척하는 건 안 돼.’

천소울의 입장에서 봤을 땐 성현은 생판 모르는 남이다.

그렇기에 괜히 아는 척하며 다가가면 오히려 반감을 살 수밖에 없다.

그가 유명 연예인이나 스타였다면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는 그저 게임 속 인물일 뿐이다.

성현은 조심스레 질문하는 식으로 물었다.

“CSW. 맞죠?”

천소울이 써클에 올린 그의 닉네임을 언급했다.

그러자 천소울의 얼굴에 인상이 찌푸리며 그를 노려봤다.

무섭게 굳은 그의 얼굴에 성현이 적잖이 당황했다.

과거 작업을 언급하는 게 이렇게까지 얼굴을 굳힐 일인가?

그런데 그때, 조은별과 서지현, 김요하가 갑작스럽게 뛰쳐나간 성현을 뒤쫓아 들어왔다.

성현의 돌발행동에 모두 당황스러운 모습이었다.

“갑자기 왜 그래요? 문제라도 생긴 거예요?”

서지현이 걱정스럽게 성현에게 물었다.

성현을 쫓아온 일행 모두의 시선이 이내 성현 앞에 있는 천소울에게로 향했다.

“잠시 얘기 좀 하지.”

그 시선이 불편했는지, 천소울이 성현에게 짧게 말한 뒤 15번 예선장을 벗어났다.

“아는 지인이라서 잠깐 얘기 좀 나누고 올게요.”

성현 역시 일행에게 양해를 구한 뒤, 빠르게 천소울을 뒤쫓았다.

***

“저기요. CSW 맞죠?”

예선장을 벗어나자마자 성현이 천소울에게 확신하듯 물었다.

천소울은 여전히 표정을 싸늘하게 굳으며 그를 바라봤다.

분명히 과거에 무슨 일이 있는 건 맞나 보다.

하지만 지금은 그 과거보다 현재의 천소울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

한편 천소울은 성현을 계속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질문을 던졌다.

“CSW. 어떻게 아는 겁니까?”

“싸클에 곡 올리셨잖아요. 본인이 올린 거 아닌가요?”

성현의 물음에 천소울은 가만 입을 다물었다.

이대로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대답을 면하려는 건 아닐까 한 생각이 들었다.

천소울은 계속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동시에 성현에게서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거두지도 않았다.

잠시 후, 이 상황을 벗어날 만한 답변을 찾지 못한 듯 그는 낮게 읊조렸다.

“2년 전 올린 곡입니다. 그런데 그때 올린 연습곡만 듣고 날 알아맞혔다는 겁니까?”

“네. 무슨 문제 있나요?”

곡을 듣고 2년이나 지났는데, 음색만으로 바로 알아맞힌다는 건 웬만한 기억력이나 박자 감각이 뛰어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천소울은 성현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지금 그 말을 나보고 믿으란 겁니까?”

“진짠데. 못 믿을 이유라도 있나요?”

천소울이 이 사실을 믿지 못한다는 걸, 성현은 도리어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물었다.

성현은 별일 아니라는 듯, 순수하게 뜬 눈을 크게 깜빡이며 천소울을 바라봤다.

성현의 그런 모습에, 천소울은 이내 터무니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까지 여러 사람을 만나보았지만, 초면에 이렇게 뻔뻔스러운 말을 꺼내는 사람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당신 같으면 2년 전 한 번 들은 목소릴 단번에 알아맞혔단 소릴 믿겠어요?”

“한 번 들었단 말은 안 했는데.”

성현은 다시 한번 당당하게 대답했다.

이번에도 천소울은 의아하단 생각을 품은 표정을 지었다.

그때 그 곡 이후 천소울은 싸클에 어떠한 곡도 올리지 않았다.

때문에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못할 정도로 잊혀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곡을 한 번만 들은 게 아니라니?

천소울은 성현을 다시 뚫어지게 보았다.

그는 어떠한 거짓도 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천소울은 성현의 속을 알아보려 해도 마음속을 파고들 수 없었다.

그에게서 아무런 반응이나 행동도 보이지 않자 성현이 말을 계속 이었다.

“수천 번은 들었어요. 좋아서. 너무 내가 원하던 꿈의 그리던 목소리라서.”

그 노래를 두세 번도 아니고, 수천 번이나 들었단 말인가?

천소울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듯 입에서 아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나저나, 자신이 원하던 꿈에 그린 목소리라니.

이 남자는 무슨 목적으로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한 건지 천소울로서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도저히 거짓말 같지 않은 성현의 표정에, 천소울이 약간의 호기심을 가졌다.

그때,

[‘천소울’의 정보창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현의 눈앞으로 정보창 확인 가능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그는 드디어 확인이 가능해진 천소울의 정보창을 빠르게 읽어내렸다.

[천소울]

나이 : 24살

키/몸무게 : 183cm / 79kg.

포지션 : 가수

특성 : [올라운더], [얼굴 천재], [스폰지 습득력], [천상의 목소리], [타고난 리듬감], [완벽주의] ……, [카리스마]

‘게임 주인공다운 특성들이네.’

그의 정보창은 역시 남들과 달랐다.

끝도 없이 나열되는 특성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역시나 압도적인 천소울의 정보창이다.

이러니 뭐를 하든 대단한 무대를 소화할 수 있겠지.

특성 가장 앞에도 쓰여있듯, 천소울은 게임 속에서도 성현이 움직이고 싶은 방향대로 뭐든지 해내는 ‘올라운더’였다.

현실에서도 자신의 특성에 맞게 무엇이든 다 소화해내는 역량을 보여줄까.

벌써부터 앞으로 천소울이 들려줄 음악이 궁금해 몸이 근질거렸다.

‘이러니 어떻게 탐을 내지 않을 수 있겠냐고.’

성현의 눈에 비친 천소울은 그야말로 가수가 되라고 하늘이 내려준 영혼 같았다.

눈앞의 천소울을 프로듀서로서, 절대 놓치지 않겠노라고 성현은 굳게 다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