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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0화 (10/273)

10화

다음날.

어제와 같은 예선장에서 예선 2라운드가 시작됐다.

예선 1라운드부터 수많은 탈락자가 나온 가운데 살아남은 합격자들이 속속들이 예선장에 모여들었다.

하지만 어제처럼 들뜬 모습을 보이는 이는 많지 않았다.

바로 전날, 예선 1라운드에서 시간 안에 상대를 찾지 못해 대결을 펼치지 못한 참가자들은 따로 모였다.

그들에게 내려진 건 진행요원의 청천벽력.

그들 중 올라갈 수 있는 참가자는 단 한 명이란 거다.

이 오디션의 숨겨진 규칙을 생각지 못한 자들에게 떨어진 건 잔혹한 현실뿐.

이런 상황인지라, 당시 탈락 위기인 참가자들의 표정은 모두 검은 재를 뒤집어썼었다.

그들의 모습을 본 뒤 합격한 참가자들에겐 무슨 기분이 들었을까.

어떻게 해서든 무조건 살아남아야겠다는 강한 압박감이 심장을 억눌렀을 테다.

그렇기에 오늘 이곳을 찾은 합격자들의 얼굴이 마냥 밝지 못했다.

성현은 그 얼굴들을 지나쳐, 어제 예선 1라운드를 펼쳤던 ‘16번’ 방으로 향했다.

아직 공지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서인지,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성현이었다.

어제와 달리 휑한 예선장을 둘러보던 그때, 16번 방의 두 번째 합격자가 들어왔다.

“아.”

성현은 그 합격자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작은 감탄을 내뱉었다.

상대방 역시 성현을 발견하고는, 그대로 그에게 다가왔다.

“어제 마지막 경연에서 ‘스프링’ 불러서 합격했어요.”

조금은 쭈뼛거리는 모습으로 성현 앞에 선 아직은 앳된 고등학생 남자아이.

“역시 잘 어울릴 줄 알았어. 축하해.”

“감사합니다.”

바로 목소리만으로 성현에게 한번 제대로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심어주었던 그 아이였다.

어제, 아이는 탈락 위기에 놓인 상태에서 유일하게 평온해 보였었다.

그는 그렇게 한참을 성현의 충고를 새기며 자신만의 노래를 불렀고, 어째선지 붙은 상대마다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렇게 다가온 대망의 결승.

그는 마지막으로 성현이 제시한 스프링을 불렀고 당당히 합격한 거다.

아이는 성현에게 들릴 듯 말 듯 작게 고마움을 표했다.

설마 자신을 처음 도와준 사람을 통해서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니.

아마 이런 상황 자체가 처음이라 대화에 익숙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한테 고마워할 필요 없어. 네가 잘해서 붙은 거니까.”

성현의 말은 진심이었다.

충고를 듣고 그것을 수용하는 건 자기 자신이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바로 만드는 일도 실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 아이는 그것을 보여주었다.

자신 스스로 판단해 실력을 가다듬고 이렇게 2라운드로 올라왔으니까.

아이는 지난번 성현이 칭찬했을 때처럼 말이 없어지며 고갤 숙였다.

“이런 말 듣는 거 처음이라.”

아이의 말에 이번엔 성현도 말이 없어졌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이 아이의 모습에선 과거 자신의 모습이 강물에 비치듯 보였다.

“앞으로 자주 해줄게. 넌 음악 잘하고 재능있어. 음, 다듬지 않은 원석 같은 느낌이랄까.”

자신이 예전부터 듣고 싶어 했던 말을 이 아이에게 해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숙였던 고개를 해가 뜨듯 들어 올렸다.

전에도 그랬지만 성현에게선 진심만이 느껴졌다.

이윽고 아이는 성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부모님이 음악하는 걸 싫어하세요.”

“그럴 거 같았어.”

“......어떻게 알았어요?”

“원래 사람은 비슷한 사람을 알아보거든.”

“형도 부모님이 반대했어요?”

“너희 부모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걸? 정신 차리라고 바리깡으로 머릴 밀어버리더라니까?”

지금이야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일을 장난스레 던졌다.

그런 모습에 아이 또한 웃어 보였다.

“부모님 때문이든 외부 환경 때문이든 절대 포기하지 마. 너 정말 재능있어.”

성현은 확신할 수 있었다.

비록 아이의 노래 실력이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월등히 좋은 건 아니었다.

그저 맑으면서도 묘한 탁성을 지닌 유니크한 음색, 그것만으로도 아이는 충분히 경쟁력을 지니고 있었다.

거기다 아이러니하게도 부모님의 지원을 받지 못해 어떤 기교도 없는 발성이 아이의 허스키한 음색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원래 음악학원이나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으면 갇힌 틀에 사로잡히기 마련이지만.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형이랑 같이 작업해볼래?”

성현의 질문에 대한 답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좋아요.”

아이는 이미 성현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에게 진심 어린 충고와 재능이 있단 칭찬까지 해주는데 누가 싫어할 거냐.

게다가 그의 호기롭고 곧은 성격에 더욱 믿음이 생겼다.

한편 아이의 대답을 들은 성현은 심장이 빨리 뛰었다.

‘일단 보컬 트레이닝부터 시켜야 하나. 아니야 곡을 먼저 짜야 하나?’

마치 벌써부터 아이의 프로듀서가 된 것 같은 기분.

성현은 프로듀서로서 아이를 자신의 손으로 조각상처럼 탄생시킬 생각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아직 ‘더 넥스트 서바이벌’이 진행 중이기에, 애써 흥분을 가라앉혔다.

“이름이 뭐야?”

“요하. 김요하.”

“난 이성현. 앞으로 잘 부탁해.”

“저도 잘 부탁드려요.”

그렇게 서로 훈훈한 대화를 이어가는데 조은별과 서지현이 뒤이어 등장했다.

“성현 씨. 일찍 왔네요.”

“네. 찾을 사람이 있어서요.”

“누군데요?”

“여기 이 친구요.”

옆을 보니 어느새 요하는 자신의 뒤에 살짝 숨어있었다.

아직 낯선 사람한테는 어색함이 느껴지는 듯했다.

“김요하라고, 재능있는 친구예요. 다들 인사해요.”

성현의 소개로 조은별과 서지현은 요하에게 관심을 보였다.

처음엔 어색함을 내비치던 요하도 조금씩 문을 열어갔다.

그렇게 이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16번 방의 마지막 합격자인 박남길이 자리했고, 뒤이어 김인호 AD와 진행요원이 함께 나타났다.

순식간에 오디션장이 조용해졌다.

참가자들 모두가 대화를 멈추더니 그들에게 집중했다.

“예선 2라운드부터는 포지션을 정해야만 도전이 가능합니다. 참가자 전원 커넥트 앱을 켜주시길 바랍니다.”

진행요원 말에 참가자들 모두 일제히 휴대폰을 꺼내 앱을 켰다.

커넥트 앱을 켜자 홈 화면에는 포지션을 설정하라는 안내창이 떠 있었다.

[가수/프로듀서]

당연히 성현과 은별은 프로듀서를 택했고 서지현과 김요하, 거기에 박남길까지 가수를 택했다.

“참가자 전원 포지션 설정이 완료됐으니 예선 2라운드 미션 발표하겠습니다.”

진행요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커넥트 앱에 미션 공지창이 팝업됐다.

[예선 2라운드]

* 미션 : ‘가수’ 포지션 참가자와 ‘프로듀서’ 포지션 참가자가 조를 이뤄, 주어진 주제로 무대를 준비하세요. 오직 한 조만이 다음 라운드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심사위원으로부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조가 다음 라운드에 직행합니다.

* 주제 : 도시

* 준비 시간 : 1시간

* 성공 시 : 다음 라운드 직행 티켓

미션을 확인한 참가자들의 표정이 일순 굳었다.

조금 전까지 훈훈한 대화를 나누던 이들이,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곳은 서바이벌 오디션 현장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언제고 누군가는 떨어지고 누군가는 합격한다.

하지만, 같은 방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떨어트리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니.

예선 2라운드 역시 시작과 동시에 잔인한 숙제를 내주었다.

‘이게 더 넥스트 서바이벌이지.’

게임 속에서도 느꼈지만, 매 라운드 정말 일반적이지 않은 미션을 내주는 곳이다.

성현 외에는 아무도 모를 거다.

지금 전부에게 당황을 안겨준 예선 라운드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저 성현 씨……?”

조은별이 조심스럽게 성현을 불렀다.

이곳에 프로듀서 참가자는 단둘. 즉, 성현과 조은별이 서로 경쟁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서바이벌에 참여할 때부터 각오는 했다지만, 이렇게 빨리 성현과 등락을 다투는 경연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조은별의 표정엔 걱정과 우려, 불안함 등 많은 감정이 담겼다.

“걱정하지 말아요.”

성현의 말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우리 둘이 경쟁할 일 없을 겁니다. 전부 올라갈 수 있어요.”

성현의 말에 조은별을 비롯한 참가자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정작 성현만이 태연한 얼굴로 공지 사항을 읽으며 말을 이었다.

“조를 짤 때 반드시 프로듀서와 가수 한 명씩 짜야 한다는 조건은 없었잖아요.”

그의 말대로 조건 속엔 그런 말은 없었다.

즉, 성현은 이곳에 모인 사람들 전원이 한 조를 만들자고 한 거였다.

“그게 되면 좋겠지만 가능할까요?”

“네. 확신할 수 있어요.”

떳떳한 말투와 표정.

성현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모르는 자신감을 내보였다.

그가 이렇게 자신할 수 있는 이유에는 근거가 있었다.

그럴 것이 이미 성현은 게임에서 메인 캐릭터를 이번 예선 2라운드에서 팀으로 올려보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본선에서부터 제대로 된 음악을 보여줄 기회가 생긴다.

누군가는 편법이라고 칭할 수 있겠지만, 룰을 이용하는 것도 서바이벌 오디션 참가자의 중요한 덕목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이들과 함께 음악 작업을 하고, 그렇게 만든 음악을 더 많은 사람에게 들려줄 수 있다면, 편법이라 놀림 받는 것이 대수랴.

“전 좋아요.”

요하가 가장 먼저 성현의 말에 찬성했다.

이미 성현은 요하에게 엄청난 신뢰를 가지고 있었고 성현의 말이라면 따르고 보기로 결심했다.

요하를 시작으로 주변 다른 사람들도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뭐 조건에 없는 건 사실이니까. 해볼 만 하다고 생각해요.”

“성현 씨가 이 정도로 확신하는데 믿어봐야죠. 저도 좋아요.”

이내 서지현과 조은별도 모두 찬성했다.

이들 모두 떨어질 위험을 굳이 감수하고 싶을 리 없다.

아직 대답하지 않은 사람은 한 명, 박남길.

“박남길 본부장님 어디 갔어요?”

“제 말이 못 미더웠나봐요.”

은별의 질문에 성현이 한 곳을 보며 말했다.

그가 본 곳은 다름 아닌 김인호 AD가 있는 곳.

박남길은 그에게 무언가를 하소연하듯 묻고 있었던 거다.

그의 접근에 마냥 싫어할 줄만 알았는데 김인호 AD가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갤 끄덕이며 성현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성현은 괜히 시선을 돌렸고, 김인호는 어딘가에 전화를 하며 예선장을 나갔다.

‘뭐지. 찝찝하게.’

김인호의 조금 탐탁지 않은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며 수상함을 안겨들었다.

그때 눈치라곤 전혀 안 보이는 박남길이 떵떵거리며 돌아왔다.

“우리 전부 한 팀으로 올라갈 수 있대. 내가 물어봤는데 그런 방법도 가능하다 하더라고.”

성현의 제안을 마치 자신의 아이디어인 것마냥 생색을 부렸다.

자신이 상황을 리드하려 하는 모습으로 대놓고 보였지만, 조은별을 비롯한 서지현, 요하는 가볍게 그의 말을 무시했다.

어쨌든, 박남길도 성현의 계획에 동의했다.

그런데 그때,

“It's been a long day without you, my friend And I'll tell you all about it when I see you again”

옆방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봤다.

“성악 전공했나 봐요. 발성이 어마무시하네.”

“음색이 미쳤는데요? 한국에서 절대 안 나올 거 같은 음색이에요.”

다른 참가자들 역시 노래 실력에 감탄하였다.

중간에 미세하게 들린 목을 가다듬는 소리가 아니었으면 음반 소리라고 판단했을 정도다.

그런데 어째 성현 혼자만 표정이 심각하게 굳은 채 옆 방이 있는 벽을 무섭게 노려봤다.

‘설마 이 목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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