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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9화 (9/273)

9화

예선 1라운드를 위해 주어졌던 제한 시간은 1시간.

이성현과 조진석의 대결이 끝났을 땐, 제한 시간이 끝나기 1분여만을 앞둔 상황이었다.

더는 재대결도 불가능했다.

“연주 잘 들었어요.”

조진석이 부스에서 나와, 조금은 풀이 죽은 목소리와 함께 성현에게 악수를 내밀었다.

이전까진 자신의 실력을 믿으며 당당한 모습을 내보였지만, 지금의 그로선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쉬웠지만 깔끔히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성현의 연주에는 어느 하나 트집 잡을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임 속에서도 항상 건방지고 자신감 넘치던 모습을 보인 조진석이다.

“고마워요.”

다소 의외의 반응이었지만, 성현은 태연하게 그가 내민 손을 가볍게 맞잡았다.

그러자 손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무슨 일인가 고개를 들어보니 조진석의 눈가가 점점 눈물이 고여갔다.

“이왕 이긴 거 끝까지 올라가요.”

조진석은 힘껏 울음을 참으려 했지만 결국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성현의 손을 꽉 쥐면서 놓아주지 않았다.

“알겠으니까 이것 좀 놓으시죠.”

그 마음이야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남들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이러면 꼭 아이를 괴롭힌 어른 같잖아.

성현은 조진석이 꽉 쥔 손을 강제로 빼내었다.

그제야 조진석은 성현을 놓아주며 서러움에 북받쳐 예선장을 떠났다.

조진석뿐만 아니었다.

대결을 치르고도 승리를 거두지 못한 참가자들 또한 하나둘 예선장을 떠나갔다.

50여 명 있던 공간에는 어느덧 빈틈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고, 카운트를 알리던 화면도 0을 가리켰다.

그와 동시에, 진행요원이 나타나 라운드 종료를 알렸다.

“아직 대결을 치르지 않은 참가자는 앞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남은 건 상대를 찾지 못한 사람과 부스를 차지하지 못해 한 번도 대결을 치르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모두 진행요원의 말에 따라 앞으로 집결하였다.

“이 중에서 예선 2라운드에 올라갈 수 있는 참가자는 단 한 명. 대결은 토너먼트로 치러지며 패배 시 즉시 탈락입니다. 임의 대진표는 20분 후 발표하겠습니다.”

진행요원의 말에 예선장 안은 난리가 났다.

처음 같은 예선장에 배정된 참가자 중, 아직 한 번도 대결하지 못한 참가자가 마흔 명이 넘는다.

이 중 겨우 한 명 합격이라니.

대결을 치르지 못한 사람들의 볼멘소리와 절망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합격자분들께선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면 됩니다.”

예선 2라운드는 내일 이곳에서 다시 시작된다.

안내에 따라 예선장을 나가는 성현의 눈에 예상치 못한 참가자 하나가 보였다.

성현이 목소리가 마음에 들어 코칭을 했던 남자애였다.

‘아직 대결을 안 치른 건가?’

아이는 당장 탈락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다.

마치, 여기서 떨어져도 괜찮다는 모습처럼 느껴졌다.

성현은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왠지 그 아이한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이겨서 올라가면 좋겠네.’

성현은 아이가 어떤 가수로 자라게 될지 궁금해진 채 떠나게 되었다.

함께 위로 올라가 함께 지내고 싶었는데, 여기서 떨어지면 꽤나 아쉬울 것 같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조은별과 함께 예선장을 나왔는데, 어디선가 한껏 들뜬 시끄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예선 1라운드 붙었다니까. 야 야 그러지 말고 양주로 준비해. 오늘 같은 날에 양주 정도는 빨아줘야지.”

목소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박남길이었다.

그는 합격 사실을 여기저기 통화를 날리며 자랑해대었다.

또한,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힐끔힐끔 쳐다보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그나저나, 박남길이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예상 밖이었다.

옆에 있던 조은별이 성현의 눈빛에 담긴 의아함을 읽었는지, 알아서 궁금증을 해결해주었다.

“원래 눈치 하난 빠르잖아요. 저 부스 다시 들어가는 거 보고 와서 물어보더라고요. 패배해도 탈락한 거 아니냐고, 혹시 재대결도 가능한 거냐고.”

역시나, 실력은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 살아온 짬밥은 무시하지 못하겠다.

그런 눈치라도 많으면 좀 좋은 쪽으로 사용해줬으면 좋겠는데.

“저, 성현 씨.”

한참 박남길을 바라보고 있는데, 은별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뭔가 궁금한 게 있는 눈치인데.

“괜찮아요. 물어봐요.”

“혹시 아까 왜 또 대결한 거예요? 성현 씨는 어차피 1라운드 통과였잖아요.”

예선 1라운드 당시, 조은별은 재대결에서 승리한 뒤 부스를 나오자마자 서 있는 성현을 보고는 자신의 합격을 축하해주기 위해 온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옆에는 처음 보는 남자애가 서 있었고 그들은 동시에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그 이유가 너무도 궁금했다.

그녀의 질문에 성현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대꾸하였다.

“그냥요. 욕심이 조금 나서요.”

“승리 욕심이요?”

“아니요. 가수요. 마음에 드는 가수를 찾았거든요.”

가수? 욕심?

그의 말을 도통 이해하려 해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분명 여긴 서바이벌인데 설마 여기서도 음악 활동을 넓히려고 하는 건가?

은별에게 당혹스러운 마음이 피어났다.

당연하지, 누가 서바이벌 오디션에서 다른 사람들 키우겠다고 손 걷고 나오겠는가.

앞으로 이 서바이벌이 어떻게 벌어질지 모르는 참가자는 하지 못할 생각이다.

그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서지현이 성현을 찾아왔다.

“아까 고마웠어요. 덕분에 이번 라운드는 올라갔네요.”

서지현이 깍듯이 성현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아닙니다. 지현 씨 실력이 훌륭해서 통과하신 거죠.”

비단 성현의 조언이 아니었어도, 엄연히 알아서 예선 1라운드를 통과했을 실력이지만, 성현은 굳이 그 사실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다음 라운드도 같이 올라가요.”

“그럼 내일 예선 2라운드 때 뵐게요.”

서지현은 자신과 옆에 있는 은별에게까지 인사를 하며 예선장을 나섰다.

그녀가 멀어지자, 조은별이 성현을 빤히 바라봤다.

“조금 전 말한 탐나는 가수가 혹시 저분이에요?”

성현은 대답 대신 슬며시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뭐예요, 그 반응은? 설마 외모 때문은 아니겠죠? 성현 씨는 오직 실력으로만 가수를 판단한다고 했잖아요. 저분 노래 얼마나 잘하는데요?”

예선장을 떠나면서 은별은 그녀에 대한 정보를 계속 물어보았고, 성현은 말을 돌리느라 한참을 애써야 했다.

***

예선장에서 합격자들과 탈락자들이 갈리고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었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김인호 AD는 책상에 널 부려 있는 서류들과 태블릿 PC를 챙겨 들었다.

그리고는 스태프실에 있던 담당 PD를 찾아갔다.

담당 PD는 다리를 꼬고 각 카메라가 담은 영상들을 보고 있었다.

김인호는 그의 앞에 자랑스레 모습을 드러내었다.

“PD님 이번에 괜찮은 애들 좀 있던데요?”

“몇 번 방?”

“16번이요.”

PD는 김인호의 말을 듣고 안경을 고쳐 쓰며 마우스로 화면을 클릭하였다.

그가 화면에 띄운 것은 16번 예선장에 있는 지원자 명단이었다.

김인호는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서류에 적힌 명단을 보며 자신이 체킹한 사람들을 알려주었다.

“거기 긴 머리 여자애. 걔도 노래 잘하고.”

서지현의 프로필을 가리켰다.

그녀의 노래 실력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얼마나 좋았는지 상대가 무대를 하던 도중 포기를 선언할 정도였다.

PD도 김인호가 가리킨 서지현의 얼굴과 이력사항을 꼼꼼히 확인했다.

“얼굴은 반반하네. 나이도 어리고.”

“그리고 그 밑에 남자애. 쟤도 애가 재능은 있는 거 같은데 토너먼트 매치로 넘어간 상태입니다.”

김인호가 다음으로 가리킨 건 성현이 키우고 싶다 한 아이의 프로필이었다.

PD는 그 아이의 사진과 나이를 보고는 흥미로운 듯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나이도 어린데다 어딘가 매력이 계속 느껴졌다.

무엇보다 얼굴이 요즘 먹히는 페이스였다.

연하들보다 연상들에게 인기 많을 거 같은 미소년 정도랄까?

“연습생이야?”

PD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는 당연히 아이돌 소속사 연습생이라 생각한 듯했다.

그의 말대로 연습생이기만 했으면 인기는 물론 지명도까지 올랐을 법했다.

하지만 김인호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고갤 저었다.

“얼굴만 보면 아이돌인데 애가 포크송을 부르더라고요.”

“잘해?”

“재능이 있다고 했지 잘한다곤 안 했습니다.”

김인호 AD 말에 PD는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재능이 있다면 실력이야 앞으로 매 라운드를 진출하면서 충분히 늘 수도 있는 거였다.

이대로 탈락시키기엔 아까운 인물이다.

“일단 계속 주시해. 놓치긴 아까운 페이스네.”

PD도 김인호가 골라온 인물들에게 모두 호감을 가진 듯했다.

이어서 나머지 참가자들 프로필도 쭉 확인하는데 김인호가 잠깐 멈추라는 듯 손을 뻗었다.

“잠깐만요. 그 위에, 아니요 더 위에.”

그의 목소리가 다급함을 띠자 PD도 덩달아 손이 빨라졌다.

어느덧 김인호는 그의 자리까지 다가와서 직접 디렉팅을 하였다.

PD는 그의 말을 곧대로 따랐고 김인호가 이내 멈추라고 하였다.

“저 참가자가 대박입니다. PD님이 원하시는 싹수 있는 놈, 제가 찾았습니다.”

다른 참가자들보다 더욱 강조를 하며 설명했다.

PD는 그 모습에 김인호가 말하는 프로필을 살폈다.

“이성현?”

싹수 있는 놈이라길래 어디서 이름 좀 날렸나 했는데, 난생처음 듣는 이름에 조금 의아해하며 프로필 자세히 확인하였다.

고졸 출신에 경력이라곤 전혀 없었고 직업 또한 세션 연주자로 적혀있다.

외모 역시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싹수 있는 거 맞아?”

PD가 한껏 의아한 말투로 묻자, 김인호는 자신이 가져온 태블릿 PC로 영상 하나를 보여주었다.

영상은 성현이 조은별과 펼친 첫 번째 대결 영상이었는데 연주를 보던 PD의 얼굴도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뭐, 실력은 있네.”

“연주랑 편곡 실력은 두말할 필요 없고 얼굴도 이 정도면 반반한 거죠. 무엇보다 다른 참가자들이랑은 다르게 오디션 내내 당황하는 모습도 없고 침착하고 게임을 할 줄 아는 놈 같아 보였어요.”

“그렇단 말이지.”

그의 무대 모습에 이전과 다른 흥미를 느꼈다.

이어서 그의 프로필을 마저 내리는데 이내 눈이 방울만 하게 커졌다.

[특이 사항]

-한국대 음대 입학, 1년 후 자퇴. 이유는 알 수 없음. -

“한국대?”

한국대 음대라면 국내에선 가장 들어가기 힘든 대학 아닌가.

그러나 PD가 흥미를 느낀 지점은 그것이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서바이벌 참가자들 중에서 고학력자는 차고 넘쳤으니까.

PD가 놀란 건 입학 이후 자퇴를 했단 사실이다.

‘이거 스토리 나오겠는데.’

이유 미상의 자퇴. 충분히 흥미롭게 만들어낼 수 있는 요소였다.

물론 성현이 어디까지 올라갈지는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16번 예선에서만큼은 성현보다 더 시청자들에게 먹힐 캐릭터는 없어 보였다.

“이 친구 제대로 담아봐.”

“알겠습니다.”

역시 자신의 안목은 틀리지 않았다.

어쩌면 이 참가자로 자신의 AD로서의 영향력이 더 커질지도 모르겠다.

“이성현. 재미있군, 재밌어.”

스테프실을 나오는 김인호 AD가 썩 비슷하지도 않은 성대모사와 함께, 몸을 들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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