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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7화 (7/273)

7화

‘메이크 유어 스타’는 게임의 메인 캐릭터를 슈퍼스타로 만들기까지 여러 캐릭터와 협업을 거친다.

이 오디션은 절대 혼자의 힘으론 이겨낼 수는 없다.

그렇기에 실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 인물들과의 인맥을 쌓는 것도 중요하다.

때문에 성현도 다양한 서브 캐릭터들의 이름과 특징을 익힐 수 있었다.

그 메인 캐릭터와 많은 작업을 한 캐릭터 중 하나가 바로 서지현이었다.

‘게임 속 서지현이 여기에 나타났다고?’

그러니 자연스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사실로 그동안 묻혀두었던 기시감이 다시 솟아났다.

게임 속 오디션이 현실에 나타난 줄 알고 있던 사실이, 게임 자체가 현실이 된 꿈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무슨 공상 과학에서도 일어나지 않을 이야기란 말인가.

하나의 사실을 알고 나니 이내 다른 사실들도 눈에 들어왔다.

‘그럼 지금 서지현 앞에 저 남잔 설마?’

한 번 크게 떠진 눈은 다시 감겨 지지 않았다.

빠르게 서지현과 남자가 있는 쪽으로 가보니 역시나. 성현의 예상대로였다.

3D로 핸드폰 안에 그려져 있어야 할 존재들이 떡하니 현실 사람으로 되어 있었다.

‘조진석.’

서지현과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게임 속 캐릭터가 등장했다.

***

김인호의 시선은 성현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가장 처음 도전하더니 수준급의 연주로 주목을 이끈 첫 합격자.

그뿐만 아니다.

좋은 대결을 펼친 것뿐만 아니라 다른 참가자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여유로움까지 보여주었다.

본래라면 서바이벌이기에 조언 같은 일은 가장 쓸모없는 일일 터.

그만큼 자신에게 불리한 상대로 키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 남자는 달랐다.

말 그대로 음악을 즐기기 위해 이 오디션에 참가한 사람 같았다.

타고난 음악성뿐만 아니라 음악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

그의 모습은 천생으로부터 정해진 음악인이었다.

‘이거 어쩌면 제대로 된 소재가 될 수도 있겠는데.’

AD들에게도 운이란 것은 중요했다.

특히나 이번 라운드처럼 각각 담당하는 채널이 있다면, 그들의 인사평가는 채널 시청률과 참가자들의 화제성으로 평가받게 된다.

모든 직종이 그렇듯 인사평가는 승진과 수입에 있어 중요했고, PD 혹은 AD에게는 사람들의 이목을 이끌며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참가자들을 찾는 게 중요했다.

시청률과 화제성이 오를수록 담당 AD들의 업적도 오를 테니까.

그러나 만약 자신이 맡은 예선장에 실력과 화제성을 겸비한 참가자가 한 명도 없다면?

그럴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캐릭터를 하나 만들어 내기밖에 더 하겠나.

어떻게든 해서 초반엔 화제성을 만들 수야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실력이 없는 참가자는 떨어지게 돼 있다.

그렇기에 오래갈 수 있는 패가 되진 못한다.

‘이성현이라.’

그런 AD인 김인호에게 지정된 어장 구역에 이런 복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니.

김인호가 보기에 확실히 성현은 PD가 찾아오라고 한 싹수가 있는 놈이었다.

제대로 컨셉을 잡고 스토리를 짠다면 어쩌면 초대박을 칠 수도 있었다.

김인호는 다른 참가자들의 경연 준비 모습도 보지 않고 성현에게 집중했다.

그런데 그때 그의 특이행동이 또 보였다.

남학생과 대화를 끝낸 성현이 다시 다른 참가자에게 걸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지랖이 넓은 것이라도 한 건가? 지치지도 않나 보네.’

보통 합격을 하면 다음 라운드를 준비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게 일반적인 반응.

그러나 성현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물론 AD 입장에선 성현의 그런 태도가 더욱 마음에 들 수밖에.

김인호는 촬영 중이던 카메라맨에게 성현을 찍으라고 손짓했다.

그렇게 카메라는 자연스럽게 성현의 뒤를 쫓았다.

***

성현이 서지현의 존재를 눈치채기 조금 전.

서지현은 흉성에서 두성까지 골고루 사용하며 발성 스케일을 했다.

탄탄한 저음과 맑은 고음이 오디션장 안을 후려 다녔다.

그 때문에 연습을 하던 사람들 모두 아닌척하면서 서지현을 힐끗 쳐다봤다.

처음엔 음색 때문에 보았다면 다음은 음색과도 잘 맞는 외모에 시선이 갔다.

사람들이 자신을 보든 말든, 지현은 시선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발성 연습에 집중했다.

청아한 목소리를 연주할 때, 한 남자가 서지현의 앞에 서며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에 저절로 연습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남자를 바라보니 통이 큰 바지에 비니를 쓰고 있었다.

거기에 누가 봐도 힙합하는 사람이란 걸 알 수 있듯 체인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거기에 어째선지 자신에 대해 잘 다는 듯이 말을 걸어왔다.

“믹스 보이스를 상당히 잘 쓰네요. 보컬 테크닉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닌데.”

“아, 네.”

뭐지, 이 남자.

다짜고짜 찾아와서 이상한 말을 하고 있어.

서지현은 대충 대답하고 다시 연습에 돌입하려 했다.

하지만 마치 자신을 견제하려는 듯 남자가 다시 끼어들며 악수를 청했다.

“참가자끼리 통성명 정돈하죠. 전 조진석이고 이번에 프로듀서로 참가했어요.”

“서지현이고 가수로 참가했어요.”

“제가 노래 한 번 봐 드릴까요? 듣는 귀 하나는 또 기가 막히는데.”

“괜찮습니다. 저 연습해야 해서.”

안 그래도 빨리 곡 연습을 끝내고 대결 상대를 찾아야 하는데, 괜히 방해하며 집착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

이런 사람들은 꼭 있다.

일 핑계를 대면서 어떻게든 자신과 엮이게 하려는 뻔한 수법을 가진 자들.

서지현은 아예 노골적으로 말을 걸지 못하도록 냉소적으로 대답했다.

헌데 조진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하. 이름이 서지현이라고 했나?”

“네.”

어떠한 표정도 짓지 않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조진석은 드디어 표정에 당혹감이 서리게 되었다.

“나 몰라요? 나 얼마 전에 힙합라이프 잡지 커버도 찍었는데.”

“제가 힙합을 안 좋아해서.”

“제가 장담하는데요 그쪽 목소린 힙합을 해야 하는 목소리예요. 발라드같이 지루한 노래 말고 조금 더 그루브하면서 끈적한 노래가 더 어울릴 것 같은데. 어때요?”

괜한 참견이다.

이렇게 사람이 많이 있는 곳에 이런 사람들이 간간이 있을 줄 알았지만, 하필 자신이 만나게 될 줄이야.

서지현의 속마음을 전혀 알지 못했는지, 진석은 계속 말을 이었다.

결국,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기로 마음을 다졌는데, 누군가가 자신의 앞에 끼어들었다.

“별론데요.”

이성현이었다.

이에 진석의 표정이 넌 뭐냐는 듯이 굳어졌다.

한편, 성현은 그런 진석에게서 시선을 거둬 서지현을 바라봤다.

“이름이 서지현이라고요?”

“네. 왜요?”

“그쪽은 조진석?”

“아아, 내 팬이구나.”

곧이어 진석은 자신의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볼펜을 꺼내 들었다.

“종이 안 가지고 왔어요?”

조진석의 그 당당한 자신감에 성현은 다른 의미로 헛웃음이 나왔다.

사람이 저렇게 자존감 높기도 힘들 건데.

이에 성현이 말대답을 하려 할 때였다.

[상대방의 정보창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의 입을 막는 무언가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것은 시야를 아무리 돌려도 그의 눈을 벗어 나지가 않았다.

마치 VR 게임을 하듯 선명한 글자가 자신을 따라다니는 것이다.

‘뭐야, 이거...!’

적잖이 당황한 성현 앞에 또다시 나타나는 홀로그램.

[서지현/조진석]

도대체 이건 무슨 경우인 거지.

마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듯, 둘의 이름을 담은 홀로그램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게임 속 오디션에 이어 캐릭터들의 등장까지.

안 그래도 기시감 가득한 상황투성인데, 또 새로운 일이 벌어졌다.

순간, 성현이 머릿속으로 서지현의 이름을 떠올리자, 갑자기 성현의 앞으로 정보창이 저절로 팝업됐다.

[서지현]

나이 : 21살

키/몸무게 : 168.5cm/ 52kg.

포지션 : 가수

특성 : [심금을 울리는 가성]. [탄탄한 기본기], [화성학의 이해]

그의 앞에 놓인 글들을 보자 성현은 그제야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정말 게임이랑 똑같잖아.’

서지현의 특성과 나이와 같은 것들이 게임에서 봤던 설정들과 모두 똑같았다.

게임 속 오디션과 캐릭터가 현실이 되는 것도 모자라, 자신에게 이와 관련된 특별한 능력이라도 생긴 걸까.

이번엔 조진석의 이름을 떠올려봤다.

[조진석]

나이 : 19살

키/몸무게 : 176cm/ 66kg

포지션 : 프로듀서

특성 : [힙합 소울], [천부적인 비트 메이커], [터질듯한 자신감]

역시나 팝업되는 조진석의 정보창.

조진석의 정보창 역시 게임 속 설정 그대로다.

‘진짜 게임 속 캐릭터가 내 눈앞에 살아있어.’

성현은 서지현의 얼굴과 조진석의 얼굴을 번갈아 살폈다.

게임 속 캐릭터들이, 분명 눈앞에 실존했다.

그리고 이내 성현은 당황함과 동시에 전율을 느낄 수 있었다.

‘설마 그 녀석도……?’

연이어 두 명의 게임 속 서브 캐릭터들이 현실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성현이 평소에 각별한 애정을 가진 메인 캐릭터도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다.

그게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이봐. 당신 뭐냐니까.”

성현이 자신들의 이름만 묻고 한동안 아무 말도 없자 조진석이 언성을 높였다.

그 소리가 들려서야 성현은 지금 상황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뭐가 됐든 게임이 현실이 됐다.

그리고 자신은 이 게임의 시나리오를 알고 있고 게임 속 인물들에 대한 정보도 볼 수 있다.

게임에선 성현의 선택에 의해 캐릭터들의 음악적 업적을 달성했었다.

즉, 그 말은 이들의 재능을 게임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자신의 손으로 프로듀싱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성현은 서지현과 조진석을 번갈아 쳐다봤다.

프로듀서로서 조진석의 능력은 나쁘지 않았다.

힙합에 있어서 비트를 찍고 훅을 짜는 그의 능력은 수준급.

문제는, 그의 재능이 아니었다.

게임 속 조진석은 항상 고집을 부리고, 팀 내 불화를 키우는 인물이었다.

머릿속이 온통 ‘힙부심’이 가득한 전형적인 불통의 대상.

반면 서지현은 달랐다.

서지현은 타고난 보컬리스트로, 그녀의 목소리 자체가 하나의 악기라고 게임 속에선 표현됐다.

보컬 실력에 있어선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게다가, 게임 속 서지현은 비단 보컬 실력뿐만 아니라 다른 장점도 여럿 가지고 있다.

‘서지현의 노래를 제대로 듣고 싶다.’

실제가 된 서지현의 노래를 들어보고 싶었다.

만약 게임 속 설명 그대로라면, 프로듀서로서 탐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

그 생각에 성현의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뛰었다.

서지현과 같이 다날 수만 있다면 게임 속 문구로만 느낄 수 있었던 서지현의 대단한 퍼포먼스를 직접 볼 수 있게 된다.

직접 보는 것도 모자라, 이 서바이벌에서 함께 하게 된다면 직접 프로듀싱할 수도 있을 테다.

‘얼마나 전율이 돋을까.’

성현의 머릿속엔 어느덧 서지현과 함께 작업을 하고 서지현의 무대를 메이킹하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당장 그러기 위해선 걸림돌이 하나 있었으니.

조진석.

게임 시나리오에선, 같은 예선장을 통과한 연으로 함께하게 된 조진석의 지독한 권유 덕에 서지현은 힙합 R&B 보컬이 되어버렸다.

그게 잘 통했으면 상관없겠지만, 결과적으로 원래 가지고 있던 색과 실력을 모두 잃어버리게 된 서지현은 가치가 떨어졌다.

당시 성현은 게임 속 서지현의 진가를 되찾기 위해서 한참이나 애를 써야만 했다.

성현은 생각에 빠졌다.

운이 나쁘다면 게임 속처럼 서지현이 잘못 물들지도 모른다.

게임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더 넥스트 슈퍼스타’에 관한 정보에 의하면, 같은 예선장 출신이란 이유만으로 한동안 함께 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니까.

서지현도 서지현이지만, 그때마다 그의 고집과 싸우느라 성현 역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게 될 것이다.

“조진석 씨.”

자신의 음악을 하고 싶어 이 서바이벌에 참여한 성현이다.

조진석 같은 인물과는 엮이지 않는 게 최선.

서지현을 위해서도, 그리고 성현 본인을 위해서도.

앞으로 엮이지 않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간단했다.

“나랑 붙어요.”

아무 변수 없이 오직 음악 실력으로 겨루는 예선 1라운드.

이곳에서, 그를 떨어트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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