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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6화 (6/273)

6화

부스에서 성현과 조은별이 나오자 각자 연습에 집중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둘을 쳐다봤다.

이들 전체에서 처음 대결을 하고 나오는 둘이다 보니, 역시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하지만 이성현과 조은별은 자신들을 향한 시선을 알면서도 태연한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부스를 나오기 전, 성현이 미리 일러준 대로였다.

성현과 조은별이 태연하게 자리에 앉자, 웅성거리던 사람들도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그러더니 다시 각자의 연습으로 돌아갔다.

당장 그들에겐 다른 참가자의 승패보다는, 자신들이 살아남는 것이 먼저였으니까.

사람들의 이목이 거둬진 뒤, 조은별은 빠르게 다음 대결을 준비했다.

그런 조은별을 가만히 바라보던 성현이 말했다.

“은별 씨만 원한다면 전 재대결을 해도 상관없어요.”

“그게 무슨 뜻이세요?”

“은별 씨도 올라가고 싶을 거 아니에요.”

성현의 말뜻을 이해한 조은별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대놓고 승부를 조작해주겠단 뜻이었기 때문이다.

음악인에게 음악으로 승부를 보자는 게 아니라니.

이보다 치욕적인 조건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성현의 제안을 들은 조은별의 답은 정해져 있었지만, 다른 의미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럴게, 평소 자신이 알던 성현의 성격상 이런 제안을 할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절 무시하는 건가요?”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기분 나빴으면 미안해요.”

“동정하는 거라면 필요 없어요. 제힘으로 올라갈 거니까.”

아무리 성격이 좋다 해도 자존심을 긁어대는 말을 하면 참을 수 없다.

성현에게도 마찬가지였듯이.

조은별은 대놓고 성현에게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며 대결 상대를 구하러 떠났다.

한 번 제대로 화가 난 여자를 달래기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데, 괜찮겠지?

그러나 그녀를 보는 성현의 얼굴에는 전혀 그런 걱정 없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애초에 성현이 조은별에게 승부 조작을 제안했던 건 그녀를 테스트하기 위함이었다.

성현이 ‘메이크 유어 스타’를 통해 먼저 깨우친 건 미션만이 아니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는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만 위로 올라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즉, 참가자들이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믿을 수 있는 음악가가 필요했다.

성현은 그 첫 동료로 조은별을 점찍은 것이고.

조은별은 실력과 노력, 음악을 향한 열정까지 모두 지닌 프로듀서였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전부라면 성현의 동료가 될 수 없었다.

서바이벌이 진행될수록 이기는 것에만 혈안이 돼서 자신의 음악을 포기할 수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성현은 조은별이 가지고 있는 음악적인 자존심을 확인해보고 싶었던 거다.

그의 기대에 보답하듯 조은별은 단칼에 제안을 거절했다.

‘예선만 통과하면 함께 좋은 음악을 할 수 있겠는걸.’

비록 지금은 저렇게 화가 났을지 모르지만, 은별은 평소의 성현 모습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다시 한번 진심을 보이면 마음이 금세 풀릴 거다.

성현도 은별의 속마음을 알기에 그녀가 상대를 찾아 나서는 걸 그저 지켜보았다.

그때, 다시 성현의 귀를 사로잡는 목소리가 흘러왔다.

아까 성현이 빠져들었던 남자애의 목소리였다.

‘들을수록 마음에 든단 말이지.’

예선도 통과했으니, 여유롭게 그 아이의 노래를 자세히 듣고 싶어졌다.

성현은 이번엔 더 과감하게 그 아이의 옆으로 움직였다.

아이 역시 주변에 자신과 경쟁을 할 사람을 찾느라 눈을 돌려대었다.

그러니 성현과 눈이 마주치는 건 금방이었다.

아이는 노래를 멈추고 성현을 올려다보았다.

“저랑 대결하시게요?”

아이의 표정은 마치 익숙한 사람을 보는 것 같이 평온하였다.

아이는 성현이 아까 전부터 자신을 힐끔 보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의 순진한 물음에 성현은 고갤 가로저었다.

“프로듀서로서 흥미로웠거든. 계속 불러볼래?”

같이 경연을 할 것도 아닌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건가?

성현의 물음에 남자아이는 조금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순해 보이는 그의 얼굴에 경계를 늦추더니 다시 기타를 잡고 연습을 시작했다.

‘자작곡이네.’

아이가 만든 곡은 어쿠스틱한 잔잔한 노래였다.

코드 또한 뻔했고 가사 또한 그저 그랬다.

그러나 작곡과 작사가 별로임에도 성현이 아이에 대한 흥미를 놓지 못한 이유는 음색이었다.

미묘한 탁성이 섞인 목소리.

그 음색이 성현의 청각을 매료시켰다.

아이가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어떤 기교도 없는 날 것의 보컬 스킬이 단점이 아니라 매력으로 느껴졌다.

‘F4? 이건 좀 의외네.’

아이의 피치가 2옥타브 파까지 올라갔다.

초고음은 아니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깔끔하게 소화한 것이 신기했다.

두성과 후두 성구 전환 등 흔히 고음을 내기 위한 기술 없이도 저 정도로 깔끔하게 소리를 낼 수 있다니.

심지어 고음에서 들리는 아이 특유의 미성까지 섞이니 더욱 놀라웠다.

아이의 목소리가 십분 발휘되는 선곡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대단했다.

‘보컬 트레이닝만 조금 받으면 여기서 고음은 더 뚫을 수 있겠어. 다만 선곡이 제일 문제네.’

성현이 보기에 아이는 자신의 목소리와 어울리지 않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이의 음색과 어크스틱 포크송은 백 프로 잘 맞은 조합은 아니었다.

어색한 건 아니었지만 완벽하게 맞는 옷이 아니었다.

성현은 아이의 재능을 제대로 깨워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비록 훌륭하진 않지만, 자작곡을 준비해왔을 정도로 열의도 가지고 있다.

그의 내면에 있는 프로듀싱 욕망이 다시 꿈틀거렸다.

이 아이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키우고 싶어진 거다.

아이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을 찾아주고 거기에 맞는 보컬 코칭을 올바르게 해준다면…….

생각만 해도 성현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여태껏 그의 손으로 직접 키운 인물은 없었다.

직접 만든 곡에 직접 키운 가수의 목소리를 입히고, 수많은 대중에게 들려주는 것.

성현이 이 서바이벌에 참여한 가장 분명하고 궁극적인 이유였다.

성현은 곧바로 음악을 마친 아이에게 물음을 던졌다.

“너 혹시 데이세븐 알아?”

데이세븐. 대한민국 대표 보이밴드 중 손가락에 꼽는 팀이다.

얼굴이 많이 알려진 밴드는 아니지만 매니아 층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그룹이다.

그들은 방송 대신 주로 콘서트와 공연 위주로 하여 실력이 보증되었고, 그 명성은 일반인들 사이에도 이름만은 한 번쯤 들어봤을 팀이었다.

하지만 이 아이는 락이라는 장르에 큰 관심이 없는지, 그들에 대해 잘 모르는 듯했다.

“곡 몇 개만 알아요.”

“그럼 원우재는?”

원우재는 대한민국이 한창 힙합에 빠져 있던 시기, 유일하게 이름을 알린 싱어송라이터다.

감미로운 가사와 멜로디가 그의 주된 능력이었다.

그러니 연인들 사이에선 그의 노래가 더욱 빛을 발했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에서 원우재의 대표곡인 스프링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헌데, 이렇게 분위기가 다른 가수들을 언급한 이유는 무엇일까?

“알아요.”

“그럼, 지금 곡 말고 원우재의 스프링을 부르는 게 어때?”

원우재의 ‘스프링’ 또한 지금의 아이의 음색과 백프로 맞는 노래는 아니다.

그래도 지금 아이가 부른 잔잔하고 조용한 자작곡보다 훨씬 더 리드미컬하고 트랜디했다.

적어도 아이의 목소리가 가진 장점을 살리기엔 부족함 없는 선곡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자작곡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것부터 마음에 안 드는 듯,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왜요? 제 곡이 별로예요?”

“솔직히 말할까?”

“네.”

자신의 작품이 왜 쓰일 수가 없는지, 예술가라면 모두 그 이유가 궁금할 것이다.

그렇기에 아이도 망설임도 없이 네, 라고 대답했다.

이런 용기 있는 행동에는 그에게 힘이 되어주는 독으로 보답을 해주어야 했다.

“별로야. 코드도 뻔하고 멜로디 라인은 더 뻔해. 가사?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가사야.”

성현의 말에 아이는 예상치 못한 큰 충격을 받은 듯 말이 없어졌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런 심한 말을 들었으니 더욱 상심이 크겠지.

하지만 성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근데 가장 최악이 뭔지 알아? 그 곡이 네 보석 같은 목소릴 묻히게 만든단 거야.”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분명 독설로 가득 찬 말이었지만 전혀 아프지 않았다.

아이는 성현에게 다시 한번 말뜻을 되물었다.

“제 목소리가 좋다는 뜻인가요?”

“당연한 거 아니야? 목소리로만 치면 여기 예선장에서 너보다 좋을 사람 없을 거라 확신해.

아니 어쩌면 본선 올라가서도 손가락 안에 들 음색이야.”

채찍과 당근이 고루 섞인 성현의 말에 아이는 어쩔 줄 몰라 하였다.

단지 성현의 눈을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충격받을 일인가.”

자신은 그저 원석을 발견한 프로듀서라면 마땅히 할법한 말을 해준 것뿐인데.

이내 조금 민망해져서 볼을 긁적였다.

그러자 아이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지더니 고개를 떨구었다.

“처음 들어봤어요. 칭찬.”

“......”

아이의 말에 성현 또한 말이 없어졌다.

칭찬을 처음 들어봤다는 아이의 말만으로, 어떻게 음악을 해왔는지 대충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전문 교육을 받지 못하며 혼자 독학을 한 것엔 여러 이유가 있다.

하지만 칭찬마저 듣지 못했단 건 집안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했다는 걸 의미했다.

물론 잘못된 짐작일 수도 있지만, 성현은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었다.

이성현 그가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도, 지금 눈앞의 아이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이 아이의 실력은 성현이 보았을 때 그의 기준이 높아 깐깐하게 본 것이지.

일반인들이 들었다면 이 아이의 노래는 충분히 박수를 치고도 남았을 실력이다.

한편, 아이가 살아온 배경들과 실력에 대해 성현은 누구보다 더 깊게 알아채며 말을 이었다.

“그럼 이 말도 처음 들었겠네. 네 목소린 맑은 탁성이야. 말장난 같지? 맑고 부드러운 미성과 정반대인 것이 탁성이니까. 하지만 네 목소린 저 두 개를 합친 것처럼 중간중간 들리는 허스키함이 있어. 그게 네 목소리만의 매력인 거고.”

성현의 말에 아이가 어느새 눈을 반짝이며 듣는다.

“개인적으론 락장르가 너한테 가장 잘 맞는다 생각해. 그래서 데이세븐 곡을 추천했지만 네가 잘 모르는 것 같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네가 해왔던 노래가 어쿠스틱 포크송이라 지금 당장 장르를 바꿔서 부르는 건 무리라고 봐. 그래서 원우재의 스프링을 추천한 거야. 기존에 네가 하던 음악과 가장 비슷하면서도 리드미컬함과 트랜디함을 살릴 수 있는 노래니까.”

그런 이유에서 성현이 두 가수들은 언급한 거다.

성현의 말에 아이는 연신 눈을 반짝이며 고갤 끄덕였다.

그의 말 하나하나가 이 아이에게 있어 피와 살이 된 거다.

이제 성현의 역할은 여기까지.

자신의 얘길 듣고 곡을 바꿔 부를지 기존의 곡을 부를지는 아이의 선택이었다.

남의 조언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에 따르는 것도 올바른 방식일 수도 있다.

자고로 사람의 인생이란 어찌 될지 모르는 거니까.

표정이 벙쪄 있는 아이의 곁을 떠나기 위해 발을 움직였다.

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름이 서지현이라고 했나?”

서지현?

낯선 남자의 입에서 서지현이란 말이 나오자 곧장 소리 나는 쪽을 바라봤다.

한 남자와 여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평범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여자의 얼굴을 본 성현의 표정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저 여자는...... 그럴 리가 없잖아.’

저 외모와 서지현이란 이름.

틀림없다. 여자는 ‘메이크 유어 스타’, 게임 속 등장하는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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