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4화 (4/273)

4화

“성현 씨, 몇 번이에요?”

“전 16번이요.”

“다행이다. 저도 16번인데. 같이 가요.”

여전히 오디션장 안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때문에 순간이라도 길 잃은 미아처럼 될까 걱정됐었는데 성현과 같은 예선장이라 다행이다.

처음 가보는 길엔 혼자 가는 것보다 아는 사람과 같이 가는 것이 좋다.

16번 예선장.

그곳엔 이미 50명 정도 돼 보이는 참가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말소리로 웅웅거리는 소리가 고막을 건드렸다.

그럼에도 예선장 안은 꽤 넓었기 때문에 빽빽한 느낌이 나진 않았다.

성현과 조은별이 마지막으로 도착한 참가자였는지 그 후로 참가자는 들어오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예사롭지 않은 사람들도 간간이 보였다.

예선장에 모인 참가자들은 모두 본격적인 예선 라운드 미션을 앞두고 각자 준비를 하고 있다.

가볍게 몸을 푸는 사람으로 시작해 스트레칭을 한다든가, 조용히 음악을 듣는다거나.

심지어 프로듀서처럼 보이는 참가자들은 노트북을 꺼내 곡 작업을 하기도 했다.

마냥 쉽게만 이 오디션을 보면 안 될 것 같다.

전 국민도 아니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벌어지는 오디션.

그러니 곳곳에 숨어 살고 있는 실력자들이 대거 출연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면 허점이 찔려 곧바로 탈락할 수도 있다.

조은별 또한 이 광경에 초조해진 모양이다.

그녀는 어느새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노트에 뭔가를 열심히 필기 중에 있었다.

하기야, 은별은 회사 대표로 들어온 건데 예선부터 탈락하면 고개를 들 면목이 없을 거다.

성현은 그곳에 모인 참가자들 중 유일하게 차분히 미션이 올라오기만을 기다렸다.

따로 준비 안 해도 예선은 올라갈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어 그런 건 아니다.

게임 속 서바이벌이 시작됐다. 성현은 게임 속 첫 번째 미션이 무엇인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오히려 냉정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만약 게임 속 예선 라운드 미션과 같은 내용이라면, 해야할 것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때 귀에 꽂히는 목소리가 들렸다.

성현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으로 시선을 바꿨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건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고 있는 교복을 입은 한 소년.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애는 어쿠스틱한 밝은 노래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성현은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남자애 앞에까지 가 있었다.

‘음색 예술이네.’

남자애의 목소린 맑았지만 동시에 어딘가 탁한 느낌을 주었고 그것이 묘한 매력을 만들었다.

‘독학인가? 완전 날 것 같은데.’

성현은 프로듀서로서 어느새 아이의 목소리를 분석하였다.

아이는 흔히 보컬 트레이닝을 받은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보통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보컬리스트는 발성에서부터 일반인들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창을 하는 사람들이 피를 토해내며 맑은 소리를 내는 것처럼 말이다.

허나 남자애의 발성이나 호흡은 트레이닝을 받았다 보기엔 조금 거칠었다.

‘포크송보단 락이 더 잘 맞을 것 같아.’

성현의 머릿속은 어느새 아이의 목소리를 입힐 노래와 음표들로 가득 찼다.

분명 처음 보는 사이인데 이 정도까지 관심이 갈 줄이야.

자신도 모르게 아이의 목소리에 완전히 몰두해 있던 성현은 이내 2년 전 우연히 싸클에서 들었던 목소리 하나가 생각났다.

CSW

확실히 이 아이디였다.

단순 이니셜처럼 보인 이 아이디는 어느 날 곡을 단 하나만 툭 던지고 사라졌다.

당시 이제 막 프로듀서로의 활동을 하기 위해 잡다한 곡까지 다 듣던 성현에게도 이 곡이 들어왔다.

그날, 성현의 머릿속엔 그 사람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맴돌았고, 결국 밤을 새워가며 작곡을 했다.

비록 당시엔 프로듀싱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어설픈 곡밖엔 쓰지 못했지만, 그 목소리 자체가 성현에겐 영감을 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 반드시 자신의 곡에 써보고 싶단 강박에 사로잡혔지만 그의 목소리는 두 번 다시 들을 수 없었다.

‘꿈의 그리던 목소리.’

성현에게 있어 그 목소리는 프로듀서로서 생각한 가장 이상적인 음색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느낌이 저 남자애인 아이에게서 느껴지고 있다.

물론, 2년 전 그 목소리와 노래에 비하면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매력적인 음색이다.

2년 전 곡 하나를 올리고 사라진 그의 행방은 과연 어딨을까.

그런 생각에 잠겨있을 때, 예선장에 스탭 한 명이 닫혀있던 예선장 문을 열어젖혔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건 한순간이었고, 스텝은 본격적인 라운드를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앞으로 미션을 비롯한 오디션과 관련된 모든 공지는 커넥트 앱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니 알람은 항상 켜두시길 바랍니다.”

스탭의 말과 동시에 띠링, 커넥트 알람이 울렸다.

예선장에 모인 사람들은 일제히 빠르게 공지를 확인하였다.

[예선 1라운드]

* 미션 : 임의로 파트너를 정한 후 주제에 알맞은 곡을 선정해 대결, 한 번 이상의 승리를 거두세요.

* 주제 : 계절.

* 제한시간 : 1시간.

* 조건 : 1) ‘가수 부스’에서는 가창으로, ‘프로듀서 부스’에서는 연주로 승부를 겨룹니다.

2) 제한시간 안에 대결을 치르지 않을 시, 제한시간 종료 후 임의로 대진이 완성됩니다.

* 성공 시 : 다음 라운드 진출.

미션 알람과 동시에 예선장 정면에 설치된 타이머가 작동됐고 서바이벌이 시작됐다.

부스는 총 두 개가 있었는데 가수로 지원한 사람은 가수 부스에, 프로듀서로 지원한 사람은 프로듀서에 지원이 가능했다.

‘단 두 개의 부스와 정해진 제한 시간.’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게임 속 미션과 일절 다르지 않은 형태였다.

그는 게임을 통해 캐릭터를 여러 방면으로 키워왔다.

101번 엔딩을 볼 정도였으니까.

물론 게임 속 상황과 현실에서 일어날 상황이 앞으로도 똑같을 거란 확신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예선 1라운드에서만큼은 유리한 게 사실이다.

커넥트를 통해 전해진 미션 내용에는, 참가자들이 쉽게 눈치채지 못할 비밀이 숨어있다.

하지만, 딱 그 정도의 유리함이 전부다.

‘이 사실을 안다고 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아.’

룰의 이해도에 따른 유리함이 있다 해도, 결국 음악을 잘해야 합격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대로니까.

***

오디션 시작 전.

오디션장에 마련된 스태프실에는 담당 PD와 AD 여러 명이 모여 있었다.

PD는 AD 들이 각각 배정받은 예선장으로 가기 전 마지막 당부의 말을 하고 있었다.

“싹수 있는 애로 찾아놔. 재능 없더라도 화제성 좀 몰 거 같으면 일단 리스트에 올리고. 판단은 내가 내리니까.”

PD의 말에 AD 하나가 손을 들며 질문했다.

“없으면요?”

“없으면 만들어, 새끼야. AD 짬밥이 몇 년인데 아직도 방송을 모르니. 쯧.”

PD는 AD에게 혀를 차며 스탭실을 나갔다.

모여 있던 AD들도 재빨리 주석 같은 참가자를 캐러 다 같이 우르르 스태프 실을 나섰다.

그들 중 김인호 AD는 커넥트 앱에 뜬 예선장 번호를 확인했다.

‘16번 예선장이라. 어디 누가 있으려나.’

16번 예선장.

PD로부터 싹수 있는 참가자를 찾아 놓으란 명령을 받은 김인호 AD가 담당을 맡게 된 방이다.

말이야 쉽지, 수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혼자서 파악하라고.

거기에 실력도 있는지 없는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닌데.

김인호는 한숨을 쉬며 예선장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역시나 예상대로 예고도 없이 시작된 미션에 우왕좌왕하는 참가자들로 한산하였다.

‘뻔하구만. 여기서부턴 눈치 싸움인 거지.’

김인호는 참가자들의 불안한 표정만 봐도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상대가 정해진 것이 아닌 만큼 누구에게 대결을 신청할지 고민 중에 있을 터.

상대의 실력을 가늠할 수 없는 만큼 무작정 대결을 신청했다간 곧바로 떨어진다.

그런 무서운 상황이기에 대부분 참가자들은 먼저 나서지 않고 그저 분위기를 흘겨보았다.

김인호는 그런 참가자들을 실눈을 뜨며 유심히 관찰하였다.

우선 가장 잘 보이고 빠르게 골라낼 수 있는 외모를 먼저 보았다.

스타로서 싹이 보이는 있는 몇몇 참가자들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얼굴 반반한 애들은 많네.’

오디션 프로그램이지만 실력만큼 중요한 것이 인기다.

방송에 나갔을 때 화제성을 얻는 것이 중요한 만큼 얼굴 또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우선 꽃이 좋아야 정원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겠는가?

‘머리 스크래치야? 설마 저거?’

순간 실소를 터트리고야 말았다.

아니, 머리 뒤통수에 나이키 로고 모양으로 머리를 깎은 참가자가 있을 줄이야.

이런 오디션장에는 저런 광기 많은 특이한 사람도 많지.

김인호는 그 남자도 점찍었다.

예쁜 여자, 잘생긴 남자도 중요했지만 감초 역할을 할 웃긴 놈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참가자들 명단에서 점찍은 참가자들을 검사하고 있을때였다.

어느 새인지 한 중년의 남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AD 님이시죠? 전 박남길 기획본부장이라고 합니다.”

남자는 김인호에게 굽신거리며 명함 한 장을 건넸다.

그곳엔 ST엔터테이먼트 로고가 박혀 있었다.

박남길.

그의 이름도 명함에 적혀있다.

“그래서요?”

“여기서 할 얘긴 아니고 카메라 없는 곳에서 따로 잠깐 말씀 좀......”

박남길은 주변에 설치된 카메라를 보며 김인호 팔을 잡고 자릴 이동하려 했지만 김인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카메라 앞에서 못 할 얘기면 아예 꺼내지 마세요.”

“하하하. 아직 신참이라 이쪽 업계를 모르나 본데 저 박남길입니다? 가지마 가지마 너는 가지마~ 몰라요? 이 노래?”

자신이 과거에 히트 좀 쳤다는 식으로 곡 좀 뽐냈다.

그 곡을 알든 모르든, 김인호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까칠하시네. 알았어, 여기서 말할게.”

박남길은 주변을 살피더니 갑자기 손가락 세 개를 내밀었다.

“세 개면 돼? 응? 대신 본선까진 확실히 올려줘야 해. 알았지?”

이런 사람이 아직까지야 있다니.

뭐, 사람을 돈으로 구슬리려는 사람 같지 않은 이가 사라질 리는 없지.

“떨어지고 싶어요? 한 번만 더 이러면 그대로 탈락입니다.”

어느 때보다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그 단호한 대답에 뻘쭘해진 듯 손가락을 접고 돌아갔다.

‘얼굴 반반한 놈, 웃긴 놈, 나쁜 놈까진 찾았는데 싹수 있는 놈은 없단 말이지.’

얼굴이 반반하고 웃긴 걸로는 화제성을 몰기엔 조금 부족했다.

어차피 그들은 조연으로 소비될 터.

진짜 센터가 될 사람은 실력은 물론 매력까지 겸비한 사람이어야 했다.

‘어디 없으려나.’

어느새 끝머리까지 왔다.

미처 보지 못한 참가자를 둘러보던 그때였다.

그의 시선이 한 곳에 멈췄다.

모두가 대결 상대를 선뜻 고르지 못한 채 자기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와중, 대결 부스를 향해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

‘싹수 있는 놈.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 발견할 수도 있겠는걸.’

김인호 AD의 눈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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