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성현이 ‘메이크 유어 스타’를 알게 된 건 한 음악 커뮤니티 사이트에서였다.
그곳은 국내외 가수들의 앨범이나 노래를 듣고 각자 및 해석해서 글을 올리는 사이트였다.
가입 절차도 너무나 간단해 손쉽게 드나들 수도 있다.
그렇기에 하나의 음악을 가지고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도 들어 볼 수 있어서 이 사이트를 줄곧 이용했다.
또한 이 사이트엔 종종 자신이 만든 곡을 올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성현 역시 이곳을 통해 데뷔 아닌 데뷔를 하였지만.
그런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한 달 전, 우연히 익명의 사람으로부터 자신이 만든 음악 게임이 있다며 링크를 올린 게시물을 발견했다.
보자마자 성현은 별생각 없이 다운받았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왜 그것에 손이 갔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운명이었을까.
정식 버전이 아닌 클로즈 베타 버전이었지만 성현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했다.
그 후로 하루의 마무리를 메이크 유어 스타와 함께했다.
그리고 오늘, 아무 예고 없이 찾아온 거짓말 같은 상황.
성현이 매일같이 하던 게임 속 서바이벌이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집으로 돌아온 성현은 서바이벌 광고를 보고 또 봤다.
천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상금에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지만, 정작 성현에게 상금은 중요치 않았다.
‘내 곡을 만들고… 내 가수를 메이킹하고…….’
이것이야말로 성현이 그동안 이루고 싶어 했던 꿈이다.
정말 자신이 아는 게임 속 서바이벌이 현실이 된 거라면, 엄청난 기회임이 틀림없다.
간절한 만큼, 결코 우연이라 치부하며 넘어갈 수 없는 기회.
이번 서바이벌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아 최고의 가수에게 최고의 곡을 주는 것.
그것이 성현이 가장 욕망하는 거였다.
‘내 음악을 들려줄 수 있다.’
그저 상상하는 것만으로, 성현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두웠던 주변 풍경에 기적이 일어나듯 빛이 풍겨왔다.
드디어 세상에 그가 만든 음악을 들려줄 때가 온 거다.
성현의 손은 어느새 참가 지원서 양식 다운로드 버튼에 향해 있었다.
이윽고 그의 휴대폰에 드리워진 양식 파일을 보고 칸을 순식간에 채워나갔다.
프로듀서 이성현.
이번 서바이벌 오디션 참가를 긴 고민 끝에 확정 지었다.
***
세기의 오디션이라며, 광고가 나간 직후 곧바로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더 넥스트 서바이벌’이 시작되는 날.
이성현은 잠실 예선장으로 향했다.
“성현 씨! 이쪽이에요!”
먼저 오디션장에 도착해 있던 조은별이 멀리서부터 성현을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조은별 뒤로 보이는 원반 형태의 커다란 건물.
분명 이전까지는 없던 건물이다.
거기다 그 외관 또한 게임에서 나오는 오디션장과 똑같았다.
‘매일 공사 중이더니 이것 때문이었구나.’
어느 순간부턴가 새로운 건물을 만든다고 요란한 마찰음이 들리던 곳이다.
게임 속 오디션이 현실에 생긴 건가.
아니면 이 오디션을 만든 사람이 테스트를 위해 게임을 만들 걸까.
후자라면 이 상황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분명 돈이 넘쳐나 주체를 못 하는 사람이 만들어낸 무대일 테니까.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성현은 멀뚱히 건물만 올려다보았다.
그때, 버스에서 내린 인파가 길을 막고 있는 성현을 밀치며 빠르게 오디션장으로 향해 갔다.
꿀에 달려드는 벌과 같은 기세의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맹렬한 기운이 감돌았다.
한화로 100억.
서바이벌 오디션이 본격적으로 시작을 알렸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수많은 사람들에도 움직이지 않고 있자 조은별이 성현 쪽으로 와서 물었다.
그는 무언가에 넋을 놓은 듯 멍한 표정이었다.
“그냥요. 사람이 참 많다 싶어서요.”
설마 게임 속 일이 현실로 이뤄졌다는 말을 믿을 사람은 없겠지.
아마 정신 나간 사람으로 보이기야 더 하겠어.
성현은 은별의 질문에 말을 돌렸다.
그때, 누군가 성현의 머릴 툭 건드렸다.
“인마, 왔으면 형한테 인사부터 해야지.”
그를 부른 사람은 다름 아닌 김용식 프로듀서였다.
그런데, 이 사람도 여기 오디션에 참가하러 온 건가?
예상치도 못한 등장에 어리둥절하였다.
“형도 참가하는 거예요?”
“나? 그럴 리가 있나. 은별이 응원하러 온 거야. 우리 회사 대표로 나온 거니까 잘해야지. 안 그래?”
김용식이 조은별의 어깰 가볍게 두들기며 용기를 불어넣었다.
허나 조은별에겐 그것이 부담으로 느껴지는지 불평을 늘어놓았다.
“아무튼, 난 이만 가본다. 이성현. 넌 회사 대표는 아니지만 응원한다.”
진짜 이 정도면 회사 선후배 사이가 아니라 형, 동생 사이다.
김용식은 성현이 은별 못지않게 프로듀싱에 대한 열정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알기에 진심으로 응원하였다.
확실히 성현의 열정은 그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다.
응원을 마친 김용식이 오디션장을 떠나자 다시 은별과 성현만 덩그러니 남았다.
“이것 때문에 프로젝트 나가라 했던 거였어요.”
조은별 말뜻을 이해한 성현이 고갤 끄덕였다.
전날, 회사에서는 조은별을 업무에서 퇴출시킨 후 따로 불러내었었다.
성현이 이미 알고 있는 ‘더 넥스트 서바이벌’의 특성상, 소속사 고위 관계자들은 이 서바이벌에 대해 미리 알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회사 측은 유망주인 조은별을 참가시킬 생각에 앨범 작업에서 나가라 했던 모양이다.
‘역시, 은별 씨가 실력 때문에 작업에서 빠졌을 리는 없지.’
조은별이 아이돌 앨범 작업에서 제외된 게 이제는 이해가 간다.
그녀 정도의 실력이면 분명 이번 오디션에서 주목을 받을 수 있을 테고, 정식 데뷔는 그 후에 해도 늦지 않을 거란 판단이 따랐을 테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해봐요.”
성현은 조은별에게 악수를 건넸다.
안으로 들어가면 경쟁 상대가 될 게 뻔하기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동료로서의 악수이다.
그 의미를 알아챘는지 피식 웃으며 악수를 받고 둘은 오디션장 안으로 들어섰다.
***
중앙홀.
수많은 참가자들이 중앙 스크린을 중심으로 빙 두른 객석을 가득 채웠다.
객석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상금이 천만 달러인 만큼 밑져야 본전이다는 식으로 찾아온 사람들도 있는 듯 보였다.
“대박. SAM에서도 참가했나 봐요.”
성현과 함께 객석에 앉아있던 조은별이 중앙 스크린을 가리키며 말한다.
스크린에는 ‘더 넥스트 서바이벌’에 참여한 대기업들과 대형 소속사 로고가 떠 있었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유수의 기업과 소속사의 로고들도 보였다.
역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오디션답다.
“규모가 클 줄은 알았지만 나이크로에서도 참가할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나이크로. 굴지의 글로벌 IT 회사까지 이번 서바이벌에 참가한 것을 보며 감탄하며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가 총액 순위를 매길 때면 항상 상위권을 차지하는 글로벌 기업들이다.
그런 그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건 전무후무한 일이다.
그렇게 돈을 긁어모아도 여전히 돈을 부풀리고 싶은 모양이다.
“그러게요.”
성현은 놀라서 흥분한 조은별과 여타 다른 참가자들과 다르게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이 정도로 놀라긴 일렀다.
성현은 이런 풍경들 역시 이미 게임에서 경험해본 바였기 때문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게임 속 풍경과 달라진 건 사람들 모습밖에 없었다.
거기에 그가 알고 있는 정보에 의하면 기존 오디션에선 볼 수 없는 많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을 게 틀림없다.
그때 갑자기 객석에 있는 조명 모두 암전되더니 원형의 무대 밑에서 사회자가 올라왔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 당신도 스타가 될 수 있습니다.”
사회자 말에 객석에 앉아있는 사람들 일어나 환호하며 소릴 질렀다.
“이번 서바이벌은 전 세계 유수의 기업과 소속사가 참가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이며 가수와 프로듀서 모두가 참가하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서바이벌 오디션입니다. 서바이벌이 진행되는 동안 가수와 프로듀서는 팀을 이루기도 하지만 서로 대결을 펼치기도 하니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는 점 염두에 두시길 바랍니다.”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
모든 서바이벌 오디션의 동일 조건이다.
그러나 이전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서바이벌 오디션이란 뭘 뜻하는 건지, 성현을 제외하곤 모두 알지 못했다.
이윽고 사회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중앙 스크린에 10,000,000달러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마지막으로 가수와 프로듀서 우승자 각각에겐 천만 달러의 상금과 함께 글로벌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니 모두 최선을 다해주시길 바랍니다.”
사회자 말에 관객이 다시 한번 환호했다.
보나 마나 모두 돈에 홀려 환호하고 있는 거겠지.
“그럼 본격적인 서바이벌 진행하기에 앞서 객석에 모인 여러분들 모두 휴대폰을 꺼내 커넥트 앱을 깔아주시기 바랍니다.”
“갑자기 앱은 왜 다운받으라는 걸까요?”
“앱을 통해 참가자들 관리나 미션 공고 같은 걸 올리려는 게 아닐까요.”
지금까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앱이 사용된 경우는 없었다.
IT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새롭게 진행될 방식인 건가?
조은별은 사회자의 말에 조금 의아해 성현에게 물었다.
이미 게임을 통해 커넥트 앱에 대해 알고 있던 성현은 모르는 척 대답 했다.
“앱에 로그인하기 위해서 참가 신청서를 제출할 때 가입한 홈페이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시면 됩니다.”
객석이 순식간에 조용해지더니 모두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각자마다 아이디어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기 바빴다.
그 와중 스마트폰 조작이 쉽지 않을 나이 드신 분들은 옆에 있는 젊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기도 했다.
“로그인하자마자 보이는 촬영 허가에 대한 동의서가 보일 겁니다. 그곳에 체크하시면 본격적으로 오디션 참가가 완료되는 겁니다.”
이번 오디션에선 미션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모두 카메라로 촬영될 수 있으며, 참가자는 이에 대한 의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이 모든 것들은 이미 오디션 신청서를 낼 때 수없이 안내를 받은 것들이다.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은 모두 동의 버튼을 누르고 오디션 참가를 완료했다.
“화면 정면에 0이라는 숫자가 보일 겁니다. 이것은 캐시라는 것으로 여러분들이 서바이벌에 올라갈 때마다 얻을 수 있는 서바이벌 전용 머니라고 보시면 됩니다.”
“캐시? 이런 오디션은 정말 처음이네요.”
젊은 사람들도 적응이 되지 않을 정도로 생소한 규칙이다.
조은별은 연신 기존 오디션과 다른 서바이벌 규칙에 놀라 했다.
하지만 성현은 여전히 태연하게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그냥 있는 건 아닐 테고 아마 이번 라운드에서 중요하게 사용될 것 같으니 최대한 모아두는 게 좋을 것 같네요.”
휴대폰 어플 구성까지 게임 속에서 봐왔던 이미지랑 판박이다.
이쯤 되니 이제 이 게임 개발자의 정체가 성현에겐 더욱 궁금해졌다.
하지만 우선 눈앞의 오디션이 먼저다.
게임을 통해 캐시에 대해 알고 있는 성현은 자신도 모르는 척 은별에게 힌트를 줬다.
그제야 은별은 고갤 끄덕이며 커넥트 앱에 소개된 캐시 사용 방법에 대해 읽어 보았다.
“이걸로 상점에서 뭔가를 구매할 수 있나 봐요.”
“아마 무대 장치나 악기 같은 것이 구매 가능하지 않을까요.”
아차, 너무 아는 듯이 행동했다.
역시나 조은별은 이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떻게 알았냐는 듯 성현을 쳐다보았다.
성현은 아직 사용 방법 창을 띄우지도 않았는데 말이지.
“그냥 해본 말인데 정말인가 보네요.”
대충 이해가 되게 얼버무리며 모르는 척하려는 순간.
띠링-
객석에 있던 참가자 전원에게 동시에 커넥트 알람이 울렸다.
“지금 도착한 메시지에는 1라운드를 치르게 될 예선장 번호가 적혀있을 겁니다. 참가자 전원 각각 번호가 적인 예선장으로 이동해주시길 바랍니다.”
사회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객석에 있던 참가자들 전부가 이동했다.
그들 모두 이제까지 없던 형태의 오디션에 당황한 듯, 이동하는 내내 말이 많고 어수선했다.
이 중에서 정작 성현의 표정만 오디션장에 모인 그 누구보다 태연했다.
하지만 그의 여유는 게임을 통해 오디션을 접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특이한 오디션이지만 본질은 같아. 음악만 잘하면 되는 거야.’
성현에겐 오로지 음악, 자신의 음악을 보일 생각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