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다음 날, 역시나 빈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진행 중인 성현.
전날 그렇게 밤새도록 작업을 했음에도 성현에게선 지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운드 편집 툴을 사용해 음악을 자르고 줄이며 곡을 준비 중이었다.
그렇게 한창 신나게 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성현 씨 덕분에 저 칭찬 받았어요.”
어제와 마찬가지로 조은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하지만 어제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은별은 믹싱 작업으로 열 올리고 있는 성현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의 모습에서 싱그러운 향기가 물씬 풍겨왔다.
“이 회사에서 제 덕분에 받을 욕은 있어도 칭찬은 없을 텐데요.”
자신의 실력에 겸손을 갖추려는 건지, 아니면 진짜 말 그대로인 건지 조금 자조적인 반응을 보였다.
음악을 향한 성현의 완벽함과 집요함은 이미 회사 내에서 널리 퍼질 대로 퍼졌다.
의욕만 앞선 놈이라니, 음악의 기초도 모르면서 작업한다느니.
성현 본인도 알지 못하는 점들이 사람들의 입을 타고 전해졌다.
그 때문인지 같은 회사에 있는 프로듀서와 작곡가조차도 성현과 작업하길 꺼려했다.
그럼에도 성현은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으며 작업한 거다.
조은별과는 다른 방면으로 대단한 사람이다.
한편 은별은 그의 말에 몸을 불쑥 내밀며 대꾸했다.
“진짜라니까요? 성현 씨가 어제 알려준 대로 곡 수정했는데 전부 좋다고 난리예요.”
“살짝 손봐준 것뿐인데요, 뭘.”
성현은 딱히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칭찬은 그동안 적지 않게 들었다.
‘내가 작업한 결과물이라고 말을 안 해준 건가? 알았다면 모두 욕 한 바가지 던졌을 텐데.’
다만, 작업물이 성현의 것이라는 것을 듣기 전까지 말이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 따위한테 오래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스스로 작업한 곡이 결과를 다 알려줄 거니까.
성현은 다시 무심하게 곡 수정에 집중했다.
위아래로 흔들리는 사운드 바에 맞춰 곡이 춤추어대었다.
거기에 어째선지 은별의 입도 벌어졌다 다물어지기를 반복했다.
물론 시선이 그쪽으로 흘러갔으나 참고 일을 계속했다.
하지만... 역시 뭔가 묻고 싶은 것이 있는 모양인지 계속 거슬렸다.
“할 말 있으면 해요.”
옆에서 은별이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구는 것이 거슬려 물었다.
그제야 은별이 기다렸다는 듯 질문을 쏟아댔다.
“성현 씨가 디렉팅 해준 거라고 하니까 다들 놀라던데 회사에선 성현 씨 프로듀싱 하는 거 모르나 봐요?”
‘내가 했단 사실을 알았음에도 그런 반응을 보였다는 건가? 별일도 다 있네.’
이번에는 짐짓 놀라는 듯하더니, 이내 성현은 침착하게 답했다.
“네. 말 안 했어요. 아마 용식이 형만 알걸요.”
김용식. 회사 몰래 성현에게 작업실을 빌려주는 프로듀서 형이었다.
성현이 이 회사에 들어오고 난 후로 그 둘은 항상 함께 하는 야근 듀오가 되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일하다 보니 순식간에 친해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대화의 양과 깊이가 늘어났고, 결국 성현은 프로듀서로서의 꿈과 욕심까지 그에게 전부 말했다.
한편, 조은별은 여전히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왜 말 안 해요? 성현씨 실력이면 회사에서도 키워줄 법한데.”
“그냥요. 회사 입맛 따라 곡 쓰는 것도 싫고 아직은 다른 프로듀서들이랑 협업할 만큼의 실력은 아니라고 봐서요.”
“지금 실력이면 충분한 것 같은데...... 성현 씨 프로듀싱 시작한 지 이제 몇 년 차죠?”
“올해로 2년 차네요.”
2년. 이제껏 키운 재능이 드디어 빛을 볼까 말까가 결정되는 시간이다.
그걸 깨달은 건지 은별의 표정은 눈만 아니라 입도 동그래졌다.
성현의 프로듀싱 실력은 결코 2년 동안 배운 실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2년 동안 독학한 게 이 정도 실력이라구요?”
“네. 아직 많이 부족하다 했잖아요.”
“부족한 게 아니라 천잰데요?”
조은별의 반응대로였다.
2년 동안 전문적으로 배운 것도 아니고 독학을 한 건데 이런 퀄리티를 뽐내다니.
주변에 보이는 자신이 프로듀서라며 자랑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보다 실력이 좋았다.
하지만 조은별의 존경이 담긴 호들갑에도 성현은 그저 웃음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설마 피아노도 2년 배운 건 아니죠?”
프로듀싱 능력은 차치해도, 피아노는 절대 2년 배운 실력이 아니었다.
성현이 날 때부터 천재였거나, 아니면 잠재된 능력을 뒤늦게 깨우쳤다 해도 말이다.
사실 피아노를 친 건 걸음마를 뗌과 동시였지만, 구태여 이 사실을 말하지는 않았다.
“근데 갑자기 프로듀싱은 왜 시작하게 된 거예요?”
“군대 선임이 프로듀서 출신이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프로듀싱에 대해 알게 됐는데 처음으로 꿈이 생긴 기분이었어요.”
대한민국 대부분 남자들에게 군대는 지옥으로 기억되겠지만, 성현에게 군대 생활은 천국과도 다름없었다.
‘군악대’에 들어간 성현은 그곳에서 온갖 음악을 듣고 연주할 수 있었고 그 누구도 성현에게 태클을 걸지 않았다.
그곳에, 아버지는 없었으니까.
그중에서도 성현에게 가장 충격을 선사한 곡이 있었다.
잔잔하게 마음을 달래주는 클래식이나 위로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밴드 곡도 아니었다.
바로 당시 유행하던 걸그룹의 노래였다.
성현은 중독성 강한 훅과 벌스마다 바뀌는 악기와 장르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신세계였다.
동시에, 성현은 그곳에서 우연치 않게 프로듀서 출신 선임을 만났다.
성현은 그 선임에게 딱 붙어 여러 정보를 얻어냈다.
처음으로 트랩메이커, 탑라이너, 비트메이커 등 곡을 만드는 사람은 누가 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완성이 되는지에 대해 깨우쳤다.
그러다 보니 성현은 자연스레 ‘프로듀싱’ 작업에 대해 알게 됐다.
20살 이전의 성현이 해오던 음악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그럼 제대하고 본격적으로 프로듀싱을 배운 거네요?”
“네. 세션 활동 때문에 백프로 전념하진 못하지만 언젠가 꼭 제 손으로 최고의 아티스트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전과 달리 눈이 반짝이며 진심이 담긴 반응을 보였다.
성현은 늘 그랬다.
조금 차가운 눈빛도 음악 얘기만 꺼내면 반짝반짝 빛났다.
악기들이 하나둘 음을 쌓고, 거기에 원하는 가수의 목소리까지 얹어져 완성되는 모든 과정.
성현에겐 하나의 노래가 탄생하기까지의 그 모든 과정들이 너무 흥미로웠고 즐거움 그 자체였다.
자식을 키운다는 재미가 바로 이런 거라는 것도 음악을 통해 알게 된 그였다.
“성현 씨, 자취하세요?”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에 성현은 기침을 해대었다.
음악 활동을 하는 거랑 자취하고 있는 거랑 연관이 되는 것이라도 있는 건가?
성현은 그런 의문을 가진 채 은별을 바라보았다.
그의 놀란 시선에 은별은, 괜한 오해를 살 수 있는 질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는지 다급하게 변명을 했다.
“그게 아니라, 자취하면 돈 많이 깨지잖아요. 저도 그래서 한창 프로듀싱 배울 땐 부모님 집에 살면서 간간이 합주만 해주면서 용돈만 벌었거든요.”
아아, 그 때문이었구나.
그러고 보니 예전에 같이 작업할 때 계속 자취하고 싶다며 성현에게 괜히 찡찡거렸었다.
그때 은별은 보조 프로듀서였을 때라 아직 제대로 돈벌이를 하지 못했을 테지.
조은별의 말을 줄곧 곱씹으며 그녀의 이야기를 듣던 성현도 이내 생각에 잠겼다.
부모님 댁. 성현에게 부모님 댁이 없는 건 아니지만 결코 그곳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아버지 그런 모습은 처음 봤으니까.’
20살. 평소엔 무뚝뚝하고 침묵만 보이시던 아버지가 그렇게 화를 내시던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제대 후, 성현은 프로듀서가 되기로 마음먹은 후 부모님 댁에 제대로 찾아간 적은 없었다.
은별로 인해 잠시 예전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때 갑자기 녹음실로 김용식 프로듀서가 들어왔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표정만 봐서는 저질러서는 안 될 일을 저질러버린 것 같았다.
“은별아, 팀장님이 너 빨리 와 보래.”
“저요?”
“어 빨리 와. 지금 회사 난리 났어.”
자신이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 같이 괜히 찔려 하였다.
이렇게 다급하게 찾는 이유는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한편 김용식 프로듀서는 그 말을 끝으로 곧장 작업실을 나섰다.
뒤이어 열린 문틈 사이로는 아깐 들리지 않던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지.”
조은별은 아직도 감이 잡히지 않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났다.
그러자 조은별과 성현의 휴대폰에서 동시에 연달아 알람이 울렸다.
성현과 조은별은 동시에 휴대폰을 확인하였다.
음악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있단 단체 채팅장에서 온 연락들이다.
그곳엔 떡하니 알 수 없는 링크만이 어서 눌러보라는 식으로 떠있었다.
‘이게 뭐지?’
그들이 보낸 링크를 곧장 클릭해 보았다.
이내 한 홈페이지에 공고가 떴다.
사상 최대 오디션 서바이벌
-참가조건: 제한 없음. 가수와 프로듀서 포지션으로 나누어 진행.
-전 세계 동시다발적 진행.
-우승상금 10,000,000달러.
“이게 뭐예요?”
10,000,000달러.
원도 아니고 달러다.
이 미친 듯 보이는 금액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럴게, 한화로 약 100억이다.
사람은 돈에 가장 큰 반응을 보이는 동물이다.
조은별도 그 엄청난 상금을 먼저 확인한 듯 입이 떡 벌어졌다.
“성현 씨?”
이런 어마어마한 조건에도 옆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은별은 이 링크를 제대로 보고 있는 건지 성현을 불러보았다.
성현 역시 표정이 굳어 있었다.
너무 놀라 아무 말도 내뱉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아니다.
그는 다른 의미로 표정이 굳은 거다.
‘설마. 아닐 거야.’
전 세계에서 조금의 시간차를 두고 다발적으로 시작되는 점.
가수와 프로듀서가 동시에 참여하는 기존에 없던 독특한 형태의 오디션까지.
왠지 모르게 성현은 이 조건들이 너무나 익숙하였다.
마치 평소에도 계속 보아왔던 문구인 것처럼.
그렇다. 모두 성현이 해왔던, 지금은 할 수 없는 게임. ‘메이크 유어 스타’에 나왔던 오디션과 똑같은 조건이었다.
“저 일단 위에 올라갔다 올게요.”
조은별은 상황이 뭔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곧장 작업실을 나갔다.
성현 또한 곧장 조은별을 뒤따라 나갔다.
‘단순 기시감이겠지.’
게임에서 있던 서바이벌에 현실에서 벌어질 수는 없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게임이었으니까.
성현이 작업실에서 나오자 로비를 둘러싼 전면 유리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유리창 너머 반대 건물에 보이는 전광판을 향해 있었다.
다양한 전구들로 색을 꾸미고 있는 전광판들 사이로 성현의 심장을 푹 찌르고 들어오는 문구가 눈에 아른거렸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
오디션 이름을 보는 순간, 성현의 머릿속에 어떠한 말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단 한 번의 선택이 등 돌렸던 팬들의 마음을 훔치기도 하고, 뜨거웠던 팬심을 차갑게 돌아서게도 만든다.-
‘메이크 유어 스타’를 처음 시작할 때 나오는 문구.
성현의 인생을 바꿀 게임 속 오디션이 현실에 등장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