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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화 (1/273)

1화

프로듀서.

그 범위가 광범위하며 명확한 구분 점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음악 작곡부터 편곡, 앨범 컨셉과 무대 퍼포먼스까지 총괄 책임지는 사람을 흔히 프로듀서라고 부른다.

모든 프로듀서가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프로듀서는 스스로가 상황을 컨트롤 하고자 하는 욕구가 남들보다 강하다.

그들 중엔 완벽주의자들이 많으며 자신이 구상한 음악적 상상력을 실제로 구현하는 것 자체에서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성공한 프로듀서가 되기 위해선 좋은 음악을 만드는 예민한 귀와 스타를 알아보는 타고난 안목 외에도 완벽함에 대한 강박과 집요함이 필요했다.

“다시 가시죠.”

연습실에 울리는 성현의 말에 다른 세션 연주자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고 기타 연주자가 못 참겠다는 듯 벌떡 일어났다.

“왜 또? 이번엔 또 뭐가 문젠데?”

“기타 박자 틀렸어요.”

“정박으로 갔는데 또 무슨 소리야.”

“반의 반박 빨랐어요.”

“뭐? 반박도 아니고 반의 반박?”

기타 연주자가 어이가 없다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그 정도는 넘어갈 수 있잖아. 응? 제발 이제 그만 좀 하자.”

하지만, 성현의 태도는 완강했다.

“다시 가요.”

성현의 말에 남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럴 게, 계속 이런 말만 반복해서 연습한 탓에 몇 시간이나 지난 상태다.

성현 자신이야 상관없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정신력은 너덜너덜 해진지 오래다.

시간은 이미 자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남들은 이미 집에 있거나 집으로 가고 있을 때다.

늦은 시간이니 박자 정도는 후에 수정작업을 통해 충분히 수정해도 될 터인데, 어찌나 깐깐하게 구는 탓인지 쉽사리 보내주지 않았다.

“아무튼 이성현, 고집하고는.”

상황이 조금 살벌해지자 녹음실에 있던 프로듀서 하나가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에 성현도 귀에 착 달라붙어 있던 헤드셋을 드디어 벗어냈다.

얼마나 오랫동안 연습했는지 머리카락이 눌러 붙었지만, 그의 눈은 아직도 맑았다.

프로듀서는 성현의 머리를 한껏 헝클어트리고는 세션맨들에게 손짓을 날렸다.

마침내 떨어진 퇴근 명령이다.

본인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내린 조치이기에 성현도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다.

“형 고맙습니다. 이성현……. 너도 수고했다.”

조금 전까지 깊은 한숨을 내쉬었던 기타 세션맨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애써 눌러 담는 듯 고개를 작게 흔들며 스튜디오를 나갔다.

그 와중 성현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표정에 변화가 조금도 없다.

“오늘도 연습하고 갈 거지?”

“네. 아직 믹싱 작업 덜 끝나서.”

“곡 완성되면 형 한 번 들려줘. 좋으면 회사에 올려 볼 테니까.”

“아직 멀었는데요, 뭘.”

대화가 끝나자마자 성현은 건반 앞에서 일어나 익숙한 듯 모니터에 앉아 USB를 꽂았다.

하루하루 똑같은 일상.

모니터 화면에는 음악 파일과 함께 그의 손은 사운드 편집기에 마우스를 갖다 대는 모습이 보였다.

프로듀서는 성현을 말릴 생각도 없다는 듯이 무심하게 짐을 챙겼다.

“쓰고 뒷정리만 잘하고 가라.”

“네. 들어가 보세요.”

프로듀서는 가볍게 인사를 하며 녹음실을 나가려다 문득 멈추며 성현을 돌아보았다.

“야, 너 그 고집 절대 꺾지 마.”

“왜요?”

“프로듀서 되고 싶다며. 프로듀서는 절대 음악 앞에서 타협하면 안 돼. 너 정도 고집이면 대통령이 와도 타협 안 하겠다만.”

완벽한 작업을 위해선 욕심이 치솟아야 할 때도 있다.

프로듀서는 성현의 그런 점을 높게 평가한 거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표정의 성현을 뒤로한 채 프로듀서도 녹음실을 나섰다.

혼자 덩그러니 놓여진 녹음실 안은 작업하는 음악 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허나 이내 복도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녹음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성현 씨?”

혼자 남은 덕에 본인의 일에 집중할 수 있겠다고 했거늘.

여자의 부름에 작업에 집중하던 성현이 뒤돌아보니 조은별이 서 있었다.

조은별은 회사에서 촉망받는 프로듀서이다.

이성현과는 달리 존재감이 한없이 발산되는 모습을 한 그녀는 생긴 것과 같이 일도 열심히 하였다.

나쁘지 않은 학벌에 실력도 무난한 것보다 좀 더 앞섰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번에 데뷔할 아이돌 그룹의 곡을 프로듀싱 중에 있다.

은별이 성현을 알고 있듯 성현도 은별을 알고 있다.

세션 녹음을 할 당시 은별은 보조 프로듀서로 들어와 몇 번 같이 작업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쪽 녹음실엔 어쩐 일로 오셨어요? A&R팀에 따로 녹음실 있지 않나.”

성현은 갑작스런 그녀의 등장에 놀란 눈치였다.

조은별이 소속된 A&R팀은 이 직종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고도 남을 이름이다.

아티스트 발굴부터 육성 데뷔 전반을 책임지는 부서로 회사 내 실세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 명성에 따라 지원 역시 빵빵했다.

얼마나 좋으면 회사 내 가수들이 모두 이 팀으로 가서 노래를 녹음하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 좋은 장비가 있는 엔지니어룸을 쓸 수 있는 그녀가 이곳 세션 녹음실까지 찾아온 것이다.

“그게......”

어째서인지 은별의 표정이 묘하게 굳어진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터질지 모르는 이 바닥에선 더욱이 불길한 징조다.

“설마 데뷔가 엎어진 건가요?”

성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요. 그건 아니고 저만 작업에서 빠지래요. 데뷔는 예정대로 진행되는 거고.”

“예?”

성현이 사뭇 놀란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어두운 그녀의 얼굴만큼이나, 성현의 미간에도 주름이 잡혔다.

조은별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잘 알고 있는 성현이다.

특히 아이돌을 위한 프로듀싱에서는 성현보다도 한참 앞서있는 게 사실.

“이유는요?”

“그것도 잘 몰라요.”

조은별이 더욱 침울하게 말했다.

그럴 만도 했다. 프로듀서로서 공식적인 데뷔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이유도 없이 갑자기 엎어져 버리다니.

답답함에 따지고야 싶겠으나 따질 거리도 건지지 못한 모양이다.

그러나 이곳에 온다 해도 상황이 풀리는 건 아니다.

“여길 올 게 아니라 위에 올라가서 당장 따져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유도 안 알려주고 작업에서 제외라니.

성현이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조금은 성난 목소리로 물었다.

실력과 열정, 노력 어디 하나 꿀릴 게 없는 그녀가 아무 설명도 듣지 못하고 작업에서 빠졌다니, 프로듀서라는 같은 꿈을 향해 가는 동료로서 과한 반응은 아니었다.

하지만 은별은 고개를 옆으로 저을 뿐 그의 옆 의자에 풀썩 앉았다.

“제가 부족해서 그런 거니까 화낼 시간에 곡이라도 하나 더 만들어야죠.”

그녀의 반응에 성현은 무어라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조은별은, 성현의 생각보다도 더 강했다.

“저 같으면 화나서 일이 손에 안 잡혔을 것 같은데 대단하네요.”

그녀는 부조리한 현실에도 자신의 꿈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더욱 노력했지.

성현은 그 점 때문에 은별이 눈에 확 띄었었다.

보통은 그의 말처럼 일을 때려치울 텐데, 대단한 여자다.

이에 대한 성현의 칭찬에 조은별은 쑥스러운지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근데 성현 씨는 왜 시간까지 남아있어요? 아까 보니까 다들 집에 가고 있던데.”

“저도 개인 작업 좀 하고 들어가게요.”

“잘 됐다. 그럼 이왕 이렇게 된 거 제 작업물 좀 봐주실 수 있어요? 성현 씨만큼 잘 봐주는 사람이 없더라구요.”

성현은 은별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해주었다.

이제 막 시작하려던 참인데다, 잠시 머리도 식힐 겸 한 거다.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은별이 곧장 곡을 들려주었다.

잔잔한 키보드 선율에 리드미컬한 베이스가 어우러진 팝 발라드 곡이다.

전반적으로 곡 구성도 훌륭했고 멜로디라인도 괜찮다.

하지만 성현의 귀에는 어딘가 아쉬웠다.

‘좀 더 임팩트를 주면 좋겠는데.’

잠시 생각에 잠길 때 조은별은 성현의 평가를 기다리며 숨을 죽였다.

자신의 결과물을 남에게 보여준다는 건 언제나 떨린다.

“인트로 부분에서 피아노를 일렉트릭으로 바꿔보면 어떨까요? 베이스는 조금 더 헤비한 걸로 바꾸고. 808베이스가 적당할 거 같은데 그러려면 일단 불필요한 소리들 먼저 제거해야겠네요.”

808베이스는 낮은 음역대의 소리기 때문에 그것 자체를 강조하기 위해선 최소한의 악기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성현은 곧장 자신의 의견을 스스럼없이 뱉어내었다.

이윽고 빠르게 불필요한 악기들은 마우스 커서가 하나둘 지워나갔다.

대담하고 빠른 결정력에 조은별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감탄을 내뱉었다.

“역시 성현 씨는 감이 좋네요.”

성현이 그러 하는 것처럼, 조은별 역시 성현의 프로듀싱 능력을 인정했다.

그녀가 아이돌 프로듀싱에 강점이 있다면, 성현에게도 확실한 강점이 있었다.

다양한 장르와 소리 자체에 대한 이해, 그리고 작곡 능력.

각자의 강점이 확실하고, 또 서로가 이를 인정하다 보니 대화가 끊일 리가 있나.

그렇게 두 사람은 늦은 새벽까지 서로의 곡을 들려주고 수정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

각자의 곡을 수정하고 이런저런 음악적 얘길 하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새벽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니 쌀쌀한 바람이 이들의 열기를 식혀주었다.

회사 근처에서 자취를 하는 성현은 조은별과 헤어진 이후, 곧장 휴대폰부터 꺼내 게임 어플 하나를 켰다.

집으로 가는 길 내내 게임 속에 빠져 있던 성현.

[ 101번째 엔딩을 맞이했습니다.]

웬 게임인가 싶더니, 성현이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끝났다는 알림과 함께 안내창이 떴다.

[ ‘자유로운 음유 시인’으로, 거리의 사람들의 마음을 만져주는 훌륭한 가수가 되었습니다! ]

‘이번 엔딩은 생각보다 허무했네.’

생각보다 일찍 끝난 엔딩에 조금의 아쉬움을 느끼며 게임을 종료하려던 그때, 띠링, 게임으로부터 하나의 알람이 떴다.

[내일부로 클로즈베타 서비스가 종료됩니다.]

지금 이 시간에 이런 공지 알람이라니.

시간도 시간이지만, 그보단 공지 내용이 성현을 크게 당황하게 만들었다.

서비스가 종료된다니.

성현은 무려 101번의 앤딩을 볼 정도로 이 게임에 상당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게임이었기에 서비스 종료가 된다는 말은 무척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성현이 이토록 애정하는 게임, ‘메이크 유어 스타’.

게임 속 메인 캐릭터를 키워나가는 게임으로 유저가 순간순간 어떤 선택을 하냐에 따라 메인 캐릭터가 뒤바뀐다.

어떤 과정으로 얼마나 성장하는지 매번 바꿀 수 있는 자유도와 그에 따라 달라지는 엔딩이 매력 포인트였다.

비록 클로즈베타 서비스라 성현 혼자서만 플레이를 했던 게임이었다.

개발자 본인에게서 직접 보내진 링크로 게임을 했고, 나름 재미도 있어서 다른 사람들도 이 게임에 대해 아는 사람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게임에 대해 아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어 나만의 보물처럼 간직한 게임이다.

하기야, 성현은 이 게임을 통해 아직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대리만족도 할 수 있었다.

게임 속 메인 캐릭터를 슈퍼스타로 만들면서 초대형 프로듀서가 되는 꿈을 이룬 것 같았다.

상당히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게임 설정으로 몰입을 할 수 있었다.

거기에 성현의 선택에 따라 쭉쭉 성장하는 캐릭터는 성현에겐 친구와도 같은 존재였다.

뭣해 봐야 게임 속 존재에 불과할 뿐이지만, 그와의 유대감이 생겨 정도 많이 생겨버렸다.

‘그럼 이제 이 게임은 못 하는 건가…….’

진한 아쉬움에 공지가 뜬 게임 화면을 내려다보고 있던 그때,

띠링,

또 하나의 공지가 떴다.

[ 조만간 정식 버전이 시작됩니다. 기다려주세요! ]

성현은 본인 외에 단 한 명도 이 게임을 하는 유저를 본 적 없었기에, 클로즈베타 서비스 종료와 함께 완전히 사라질 거라 예상했다.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후우.”

정식 버전으로 찾아온다는 말에 성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성현은 그제야 핸드폰을 머리맡에 두고 밀린 잠을 청했다.

조만간 시작된다는 정식 버전이 무얼 의미하는지, 성현은 이때까지 전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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