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6) >
“3천만. 그 미만으로는 곤란합니다.”
“허, 아무리 그래도 3천만이라니. 그건 너무 후려치는 거 아닙니까?”
“그 친구 지금 현재 성적이 21타석 연속 무안타였나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MVP 출신 타자에······.”
“그렇다면 그 친구를 제외하고 다시 논의를 해볼까요?”
존 맥도웰의 이야기에 조나단 양이 순간 입을 다물었다.
‘후, 이래서 책상물림 놈들이란······.’
이전 단장이었던 케빈 맥밀란이었다면 아마 여기서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겠지. 다저스 정도의 팀이라면 5,400만 달러짜리 짐 정도는 얼마든지 지고 갈 수 있다는 자세로 말이다. 물론 이것을 단순히 조나단 양의 미숙함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었다. 조나단 양이 부임했을 때 다저스의 노쇠화는 심각했고, 그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변화를 주지 않는다면 자리를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3천만 달러. 대신 블룸버그 말고 제리 버튼을 끼워주시죠.”
“3,200만 달러. 제리 버튼 대신 블룸버그 끼워드리죠.”
조나단 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 맥밀란, 보스턴 레드삭스로? 10년 만에 다시 만나는 배터리!!]
[보스턴은 잔여 연봉 5,400만 달러 가운데 3,200만 달러의 연봉보조를 받기로 한 거로 밝혀져!!]
-지금 에드 맥밀란을 연평균 730만 달러에 쓴다고? 미친 거 아니야?-
***
에드 맥밀란이 연락을 받은 것은 늦은 저녁이었다.
“성민? 어쩐 일이야?”
“네가 필요해서.”
“엥?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메이저리그에는 5-10 룰이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에드 맥밀란은 당연히 거기 포함된다. 트레이드 자체가 선수의 승낙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흐음, 그러니까 보스턴 레드삭스의 주전 포수로 내가 필요하다 뭐 그런 소리인가?”
“에드, 화내지 말고 내 말을 끝까지 들어봐.”
“그 말을 들으니까 벌써부터 화가 날 것 같긴 한데 좋아. 일단 들어보지.”
“네 무릎은 이미 풀타임 포수를 하기에 무리야. 그리고 다저스에서는 이미 일루에 자원이 빡빡하지.”
“흥, 너희 팀이라고 뭐 다를까.”
“맞아. 하지만 우리는 지명 타자 슬롯이 있지.”
“하지만 난 포수야.”
“그래, 넌 포수지. 그러니까 네가 필요하다는 거야. 에두아르도 크루즈가 인정한 유일한 포수. 너도 알고 있잖아. 그 망할 자식이 떠난 이후 내가 얼마나 힘든지를.”
에두아르도 크루즈가 인정한 유일한 포수라는 말이 에드 맥밀란의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다.
“확실히 잭 클린턴 그 애송이는 네 공을 받기에 급급하긴 하지.”
“포수를 하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야. 내가 필요한 건 다리가 아파서 시즌 내내 절뚝거리는 에드 맥밀란이 아니라 에두아르도 크루즈가 인정한 전성기의 MVP 포수 에드 맥밀란이라고. 닷새에 하루. 나의 등판에만 포수를 해줘. 지금 리그에서 내 공을 가장 잘 받을 수 있는 포수는 바로 너잖아.”
“크흠, 뭐 그건 그렇지.”
“바로 그것 때문이야. 그렇다고 네 방망이를 아끼기는 아쉽잖아. 애초에 건강한 에드 맥밀란은 가장 강력한 MVP 후보잖아.”
“맞는 말을 참 맞게 잘하는군.”
5,400만 달러를 주고 사용하기에 에드 맥밀란은 경쟁력이 없었다. 물론 2,200만 달러를 주고 쓰기에도 경쟁력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 성민과 호흡을 맞추는 잭 클린턴과 비교 했을 때는 어떨까? 당장 에드 맥밀란의 경우 투수 구장인 다저 스타디움을 쓰고 있고 잭 클린턴은 타자 구장인 펜웨이 파크를 쓰고 있다. 그럼에도 둘의 타격 성적은 비슷하다. 둘 다 평균 미만의 타자라는 것은 동일하지만 에드 맥밀란 쪽이 그만큼 더 좋은 타자라는 뜻이다.
즉 에드 맥밀란은 잭 클린턴에 비하면 장점이 있다. 게다가 포수로서의 역량만 따진다면 에드 맥밀란쪽이 훨씬 훌륭하다. 게다가 포수로서의 출장을 30경기 정도로 한정 짓고 출장을 배려해주면서 지명 타자로만 출장을 시킨다면? 긁어볼 가치는 충분하다.
“물론 그런 걸 다 떠나서 유망주를 긁어오려는 목적이 더 크긴 했지만 말이야.”
어중간하게 나이가 찬 유망주를 처분하고 더 어리고 번호가 높은 유망주를 데리고 온다. 유망주들을 더 긁어모으고 폭발하는 타이밍을 더 뒤로 미룬다. 그때까지는 이미 이름값이 높은 선수들로 버텨 낸다. 존 맥도웰이 정한 방침이었다. 어떻게 보면 멍청한 선택이었지만, 지금 구단주 그룹이 원하는 것을 맞춰주고 장기적으로 팀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이 이상의 방법이 없다.
***
“오우, 녀석들 많이 컸구나. 삼촌 기억 나니?”
“괜히 위협적인 얼굴로 우리 애들 겁먹게 하지 말고 얼른 이리 와.”
“위협적이라니. 이 잘생긴 얼굴······.”
에드 맥밀란이 말을 하다 멈췄다.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이 녀석 디즈니 왕자 출신이다. 디즈니 랜드에 실물 본 딴 밀랍인형도 있다. 애들 데리고 디즈니 랜드 가면 왕자 옷도 입는다고 들었다. 아무리 그가 뻔뻔하다고 해도 이런 녀석 앞에서 자기가 잘생겼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뻐억!!
억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애써 웃었다. 사나이는 본래 나이를 먹는 것만큼 허세도 먹는 법이다.
“공이 너무 느려져서 헷갈렸어. 다시!!”
성민이 웃었다.
사실 경기장에서 훈련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따로 연습하자는 것 자체가 남들 앞에서 공을 놓치는 꼴을 보이기 싫다는 뜻이다. 성민은 그 자존심을 존중했다. 물론 실력이 따르지 못 하는 자존심이라면 그저 꼴불견일 뿐이지만.
-뻐엉!!
“그래!! 이거지!! 이제 슬슬 감이 오네.”
에드 맥밀란은 MVP를 차지했던 진짜배기였다. 2억 달러를 받는 선수가 무려 1년이나 엉망진창이 돼가며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결국 성민의 공을 받아냈던 독종. 몸에 기억된 경험이 있다. 그가 성민의 공을 완벽에 가깝게 받아냈다.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간다.”
“어?”
물론 가장 좋은 컨디션으로 던지는 가장 좋은 공을 받아냈던 적은 없었지만.
-뻐억!!
“야, 잠깐만. 잠깐만. 나 뼈 맞았어.”
에드 맥밀란이라면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성민이 그의 재능을 믿었다.
“어때? 공 좀 더 받을 수 있겠어?”
“더? 무리하는 거 아니야? 벌써 40개나 던졌잖아.”
“아니, 나 말고.”
“너 말고?”
“올 때가 됐는데?”
성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연습실의 문을 열고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엥? 네가 여길 왜?”
“작년부터 나한테 너클볼을 배우기 시작했어.”
라만 그레고리.
지난 34시즌을 끝내고 6+1년 1억9천만 달러에 콜로라도와 계약을 맺었던 남자. 하지만 콜로라도 로키스로 갔던 투수들이 으레 그렇듯 그 역시 두들겨 맞고, 무너지고, 부상으로 고통 받았다. 35시즌 곧바로 평자책 5.17. 36시즌은 전반기 3.47로 선방했지만 하반기를 부상으로 완전히 날려 먹었고 결국, 6년을 통틀어 소화한 이닝이 637.1이닝에 불과했다.
그리고 탬파베이에 스플릿 계약으로 돌아갔지만, 메이저를 밟지 못한 채 은퇴.
“망가진 투수의 마지막 희망이지.”
라만 그레고리가 씁쓸하게 말했다. 흉터투성이의 오른팔. 한때 98마일에 육박하던 구속은 이 흉터들과 함께 완전히 사라졌다. 이를 악물고 던져봤자 85마일이나 나올까? 한 때 사이 영을 수상했던 이 강력한 에이스는 커리어 통산 1,500이닝조차 채우지 못한 어중간한 투수로 끝났다.
그래, 1억 9천만 달러면 5대는 펑펑 써도 다 쓰지 못할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먹튀니 뭐니 아무리 욕을 먹더라도 그것은 변치 않는다. 호화 크루즈나 한 대 사서 세계 일주를 다니면 참으로 편한 인생이겠지.
하지만 가슴 속에 이글거리는 이 감정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너클볼을 배운 사람이라면 후대에게 이 공을 전수할 의무가 있는 법이지.”
“후대라고 하기에는 너무 늙은 것 같긴 하지만 말이죠.”
성민의 이야기에 라만 그레고리가 쓴웃음과 함께 답했다.
“흥, 서른다섯이면 아직 한창이지. 거, 누구냐 하여간 너클볼 던졌던 그 양반도 그것보다 더 늙은 나이에 사이 영 받고 그랬잖아. 여기 이 인간도 서른일곱에 사이 영 받았고. 원래 너클볼 투수는 서른다섯부터라고. 그러니까 허튼소리 그만하고 와서 공이나 던져봐. 내가 제대로 받아줄테니까.”
에드 맥밀란이 미트를 팡팡 두들기며 라만 그레고리를 재촉했다.
-뻐엉!!
확실히 성민의 공과 비교하면 부족했다. 그것도 매우 부족했다.
“이거 괜찮은데? 구속이 얼마나 나온 거지?”
“68.6마일.”
하지만 애초에 비교 대상이 성민인 것부터 잘못이다. 녀석은 역대 최고의 너클볼 투수이자 마흔의 나이에도 여전히 가장 강력한 사이 영 컨텐더 중 하나인 괴물이다.
“너도 성민처럼 뭐 너클볼이 두 종류 있고 그런 건 아니지?”
에드 맥밀란의 질문에 라만 그레고리가 고개를 저었다.
“하긴 그딴 게 되는 것 자체가 괴물이긴 하지. 일단 몇 개 더 보자고.”
***
“좀 어땠어?”
“그거야 너도 알잖아. 아무리 그래도 열 개중 여덟 개는 넣어야 할 것 같은데, 이래서는 실전에서 써먹기 무리지. 이건 뭐 요령 같은 거 없는 거야?”
“그런 게 있었으면 진즉에 알려줬겠지. 애초에 너클볼이라는 게 같은 곳을 노려봤자 다 다르게 들어가니까. 탄착군만 만들어지면 거기만 노리고 꾸준히 공을 던지는 연습을 하는 수밖에 없지.”
“결국, 훈련뿐이라는 건가?”
“고작 1년 만에 저만큼 한 것만 하더라도 상당한 재능이야. 애초에 본인도 한 순간에 해내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건 아니니까. 중요한 건 탄착군이 형성되더라도 그 공이 메이저에 통할지 안 통할지의 문제니까. 70, 80년 전이라면 100마일 미만이더라도 일단 너클볼이면 통했겠지만, 지금은 좀 다르잖아?”
“뭐, 그 부분이라면 저만한 공이 꾸준히 존에 들어올 수만 있다면 충분히 통할거야. 투수 구장을 홈으로 쓰는 내야 수비 좋은 팀에서 뛰면 말이지.”
에드 맥밀란의 이야기에 성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민 본인의 판단 역시 그와 비슷했으니까. 하지만······.
“그런데 내가 물어본 건 그게 아닌데? 너 말이야. 너. 공 받는 거 좀 어땠냐고. 할 수 있겠어?”
“그······, 그거야 당연히 가뿐하지. 오래간만이라 좀 적응이 덜 돼서 그렇지. 몇 번만 더 해보면 최소한 뒤로 흘릴 일은 절대 없을 거야.”
“아니, 고작 그 정도면 곤란한데. 에두아르도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잭 클린턴보다는 더 좋은 기량을 보여줘야지.”
“그, 그건 걱정하지 말라고!! 9년 만이라서 그런 거야. 나 에드 맥밀란이야. 지금 당장 은퇴해도 명예의 전당 첫 턴이 예약된 포수 에드 맥밀란!!”
“어? 그거 인터넷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랑 조금 다른데? 그 사람들 말로는 지금 당장 은퇴해도가 아니라 지금 당장 은퇴해야 라고 하던데.”
성민의 놀림에 에드 맥밀란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두, 두고 보라고!! 금방 코를 납작하게 해줄테니.”
“내 코는 괜찮으니까 인터넷에 쓸데없이 떠드는 그놈들이나 납작하게 해달라고.”
< 외전(6)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