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웃는 남자(1) >
[한 경기 만에 날아간 두 개의 퍼펙트!!]
-김성민 헤밍턴 싸움수준 ㄹㅇ실화냐? 진짜 세계관최강자들의 싸움이다. KBO에서 그 찐따같던 김성민이 맞나? 진짜 김성민은 전설이다. 김성민 아시안게임 대박치고 그 이후로 줄줄이 말아먹던 장면들이 뇌리를 스치면서 가슴이 웅장해진다.-
-난 원래 야구는 당연히 화끈한 타격전이 재밌다고 생각하던 사람이거든? 근데 안타 하나 안 나오는 경기가 이렇게 재밌을 줄은 몰랐다.-
-그거 정상임. 장담하는데 야구 160년 역사에 이런 투수전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임.-
-어제 소개팅하고 분위기 좋았는데 오늘 새벽에 야구 봐야 한다고 일찍 헤어졌다. 근데 일찍 헤어지길 잘한 듯. 진짜 오늘 경기 역대급이었다.-
-아재요. 그거 소개팅 아니라 맞선이라니까.-
-완벽한 투수랑 완벽한 투수가 싸웠지만 퍼펙트는 없었다. 하지만 단언컨대 가장 완벽한 경기였다.-
-디아고 헤밍턴 10회에 솔로 홈런 맞고 고개 푹 숙이는데, 난 분명 성민이 응원하고 있었는데 왤케 짠한지.-
-근데 진짜 디아고 헤밍턴이 대단하긴 대단했음. 보스턴 타선을 그렇게까지 막다니. 솔로 홈런 맞고 내려간 직후에 로사 가르시아 올라왔는데 그 친구도 만만한 친구가 아닌데 곧바로 두들겨 맞는 거 봐봐.-
-근데 좀 아쉽긴 했음. 디아고 헤밍턴이야 안타 맞아서 깨졌다고 쳐도, 성민이는 1이닝 더 던지고 월드시리즈 퍼펙트 가져갈 수도 있었잖아.-
-월시 퍼펙트보다 선수 몸이 더 중요하지.-
-여기서 짚고 넘어갈 팩트. 어지간한 선수라면 몸보다 월시 퍼펙트가 더 중요하다.-
-내가 지금 LA인데 직관했는데. 와, 진짜 쩔어주더라. 메이저리거들 수비도 미쳤고 투수들 뽈 던지는데 졸라 살벌함. 랄로 가야르도는 뭔가 톡 친 것 같은데 파울타구가 거의 내 앞까지 날아오고. 니들도 여유되면 직관 한 번 꼭 와라.-
-뭐야? 미국 사는 거야?-
-아니, 이거 보려고 미국 옴.-
-미쳤네. 플렉스를 이런 식으로 한다고? 비용 얼마나 듬?-
-뭐, 많이 들지는 않았음. 티켓 한 장에 큰 거 하나 정도? 월드 시리즈라 그런지 평소보다 푯값이 좀 비싸긴 하더라고.-
-인증 없으면 뭐다?-
-ㄱㄷ. 아까 다저 스타디움에서 찍은 사진 올려줌.-
각종 사이트 댓글, 커뮤니티. 그리고 SNS까지. 동엽이 한껏 인터넷으로 월드시리즈 직관을 자랑했다. 그곳에서 동엽은 거의 재벌 3세 건물주였다. 물론 현실은 오페라글라스가 필요한 4층 끄트머리 좌석과 하룻밤에 150달러나 하는 주제에 교통도 시설도 구린 호텔 방이었지만.
한참 동안 호텔 무료 wifi를 이용하여 스마트폰을 두들기던 그때.
동엽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당연히 전화는 아니었다. 원래 해외여행의 기본은 현지에서 판매하는 데이터 유심인 법이다. 보름간 사용할 번호는 본인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SNS와 연동되는 메신저다.
“성민 선배?”
-동엽아, 너 지금 미국이야? 진짜 경기 보러 온 거야?-
-네. 경기 잘 봤습니다. 선배 엄청나던데요? 퍼펙트는 조금 아쉬웠어요. 몸은 좀 어떠세요? 괜찮으신 거죠?-
-어, 당연하지. 그보다 미국에 왔으면 연락을 했어야지. 같이 밥이라도 한 끼 했을 텐데.-
-ㅎㅎ. 선배 경기하시는데 신경을 쓰게 하고 싶지 않아서요.-
-일정은 어떻게 되니?-
-이번 월드 시리즈 경기 전부 다 보고 가는 게 일단 목표입니다. 그리고 여유 되면 미국 관광도 조금 해보려고요.-
-그래? 그러면 일단 잠깐 얼굴이나 보자. 내가 밥 한 끼 살 테니까.-
-어우, 중요한 시리즈 중인데 괜히 신경 쓰지 마세요.-
-새끼가. 선배가 밥 산다고 하면 지옥 끝까지라도 따라와야지. 이제 골든글러브 유격수다 뭐 이거야?-
-앗!! 아닙니다. 그러면 염치 불구하고 감사히 먹겠습니다!!-
-그래, 소개해줄 사람도 좀 있고.-
잠시 타이핑을 멈춘 성민이 중얼거렸다.
“너 보고 싶다고 난리 치는 귀신도 하나 있지.”
-크흠, 과장이 심하군.
필 니크로가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성민이 동엽이 미국에 온 것을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놀랍게도 필 니크로는 동엽의 미국행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단지 성민의 경기 준비에 조금도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말하는 것을 참고 있었을 뿐이다.
“근데 대체 동엽이 SNS는 언제부터 보신 겁니까?”
-언제부터 본 게 아니라 그냥 우연히 인터넷 세상을 떠돌다보니······
그렇다고 하기에 박동엽의 SNS 팔로워 숫자는 8천 명에 불과했고 딱히 커뮤니티에도 화제가 되지 않았지만, 굳이 더 추궁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제 보스턴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등판은 없을 것이고 미리 만나게 해서 나쁠 게 없는 사람도 하나 있었으니까.
***
“인사해. 이쪽은 프레스톤 윌슨 감독님. 그리고 이쪽은······.”
“박동엽입니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동엽이 90도로 꾸벅 인사했다. 자기애가 넘쳐나는 프레스톤 윌슨에게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인사였다.
“정말 대단한 경기였습니다. 미국에 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뭐, 내 입으로 말하긴 조금 그렇지만 확실히 그렇기는 했지. 사실 다시 하라고 해도 또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어. 디아고 녀석도 그렇고 나도 정말 뭐에 쓰인 것처럼 뛰었지.”
“페데리코 수 선수도요.”
“아, 그렇지. 그 녀석도 정말 대단했어.”
성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본인 포지션이라고 더 감명깊게 본 눈치다.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페데리코 수 녀석의 수비가 돋보인 건 사실이었다.
“페데리코 수라. 확실히 대단한 녀석이지. 내가 뛰던 시절에 툴로위츠키나 시몬스 같은 녀석도 정말 대단했지만, 장담하건대 그 녀석은 그 이상이야. 아마 이런 식으로 10년쯤 더 뛰어준다면 녀석과 이름을 나란히 할 수 있는 유격수는 Oz정도 뿐이겠지.”
프레스톤 윌슨이 페데리코 수라는 이름에 반응했다. 그는 한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할 줄은 몰랐지만, 한국의 평균적인 고등학생들이 영어를 하는 수준으로 한국말을 쓸 줄 알았다. 사실 그 정도만 하더라도 상당히 대단한 수준이다. 그 정도면 당장 최근에 열심히 영어를 공부한 동엽의 영어 실력보다 나은 수준이니까.
“툴로위츠키나 시몬스 같은 선수들도 현역 시절에는 그런 이야기를 들었겠죠. 애초에 저런 퍼포먼스를 10년이나 꾸준히 보여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거의 무리잖습니까. 저걸 몸이 어떻게 버티겠어요.”
“뭐, 그건 그렇지.”
프레스톤 윌슨이 준비된 음식을 한입 삼키고는 동엽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미국까지 온 걸 보니, 혹시 메이저리그에 관심이 있는 건가?”
“네, 네? 아. 그러니까······.”
잠시 망설이던 동엽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경기를 보기 전이라면 더 망설였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 경기를 보면서 동엽은 자신의 욕심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뛰고싶다.’
그 대답에 프레스톤 윌슨이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메이저리그라······. 뭐 나쁘지 않지. 최근 2년간 기록을 보니 KBO에서는 최고 수준의 유격수이던데 남자라면 그 정도 꿈은 가져야지.”
“동엽이가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성공? 그거야 모를 일이지. 내가 그걸 한눈에 알아볼 눈이 있었으면 전설적인 스카우트나 단장질을 하고 있어야지. 왜 감독이나 하고 있겠나. 다만 개인적으로 추측하건대 성공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 그리고 앞으로 남은 기간을 어떻게 뛰느냐에 따라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싶군.”
사실 두 사람의 영어 대화를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동엽의 영어 실력은 최근에 열심히 공부를 했다고는 하지만 기껏해야 중학생 수준에 불과했다. 다만 일반적인 중학생 수준과 조금 달랐던 점은 그의 영어가 주로 야구에 관련된 어휘와 단어에 편중됐다는 점이었다.
대충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와 눈치로 프레스톤 윌슨의 말을 알아먹은 동엽이 질문했다.
“기준이요?”
“그래, 기준. 단순히 메이저리그에서 버티느냐. 혹은 여기서도 성공했다고 할만한 수준의 선수가 되느냐. 거기서 한 발 더 나가 올스타급 혹은 MVP급 선수가 되느냐. 그런 기준 말이야.”
성민이 프레스톤 윌슨의 말을 받았다.
“단순히 버티는 거라면 매리트가 없죠. KBO도 규모가 상당합니다. 1년, 2년짜리 100만 200만짜리 계약으로 떠돌 바에는 그냥 KBO에 남는 쪽이 금전이나 명예, 본인의 안정성까지. 모든 면에서 좋은 선택이죠. 최소한 4년 2천만. 그 정도는 돼야 미국에 오는 매리트가 있겠죠.”
“4년 2천만이라. 우습게 볼 숫자는 아니지. 최소한 솔리드 플레이어는 돼야지 받을 수 있는 금액이니 말이야.”
“가능성은 얼마나 된다고 보십니까?”
성민의 질문에 필 니크로가 눈을 빛냈다.
“글쎄, 지금 이대로라면 한 10퍼센트 정도?”
-아니다!!
성민이 웃었다.
“너무 후하신 거 아닙니까?”
-후하다니!!
본인을 앞에 두고 나누는 두 사람의 대화에 동엽이 머리를 긁적였다. 태반은 못 알아들을 대화였지만 느낌으로는 대충 굴러가는 모양새가 나쁘진 않았다.
그러면 웃어야지.
“허, 이런 말을 듣고 웃는다? 멘탈은 좋군.”
“멘탈이 좋다기보다는 그냥 바보 같긴 합니다만. 그래도 지금 이대로라는 단서를 다신 걸 보니 동엽이가 꽤 마음에 드는 것 같습니다?”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자네 사람 마음을 참 잘 읽어내는 것 같아. 그래, 뭐. 체격조건 나쁘지 않고. 기본적으로 아직 젊은 선수가 툴가이인 건 나쁘지 않지. 기술적인 완성도는 만들 수 있지만 타고난 부분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니까.”
프레스톤 윌슨이 성민의 눈치에 혀를 내둘렀다.
“부산에서 즐거움이 하나 더 생기시겠군요.”
“즐거움이 될지 고생이 될지는 닥쳐봐야 알 일이지.”
그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 속에서 동엽은 그저 웃었다. 다행인 점은 그래도 음식은 아주 맛있다는 점 정도였다.
-그래, 웃어라. 동엽아. 힘들 때 웃는 게 진짜 일류다.
***
최근 보스턴 단장 존 맥도웰에 대한 지역 여론은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어제 경기로 인해 그 나쁘지 않음은, 단순히 나쁘지 않음을 넘어 이렇게 좋아도 될까 싶을 정도로까지 발전했다.
“응? 난 아직 주문을 안 했는데?”
“항상 먹던 걸로 준비했습니다. 커피는 사장님이 특별히 구해둔 원두로 방금 뽑아낸거고요. 오늘은 서비스랍니다.”
오죽하면 퉁명스럽기 그지없던 존 맥도웰 단장의 집 근처 레스토랑에서 그에게 공짜 커피와 베이글을 제공할 정도다. 심지어 커피 맛까지 매우 훌륭했다. 작년에 내린 지 오래되어 끔찍한 맛을 내던, 이 정도면 커피에 뭔가 이상한 걸 탄 게 아닌가 의심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다.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LA 지역의 여론은 보스턴과는 정반대였다. 아니, 그 이상이다. 존 맥도웰이야 그냥 트레이드 좀 잘하고 엉망진창이던 팀 수습 잘해서 정말 오래간만에 월드 시리즈에 팀을 보낸 명 단장 정도 취급이다.
하지만 LA에서 케빈 맥밀란을 바라보는 시선은 한 마디로. ‘월드시리즈 1, 2차전 퍼펙트를 날려 먹은 머저리.’라고 설명 할 수 있었다.
물론 케빈 맥밀란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애초에 아무리 좋은 투수를 가져다 둔다고 해도 퍼펙트를 할지는 미지수다. 당장 디아고 헤밍턴이나 성민이 다시 마운드에 선다고 어제와 같은 피칭을 또 보여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그저 변명일 뿐이다. 그렇기에 보여줘야 하는 것은 승리. 그리고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반지뿐이었다.
< 웃는 남자(1)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