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강의 팀(1) >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스코어 4:0 보스턴 레드삭스의 완벽한 승리!!]
[5차전까지도 필요 없었다. 보스턴 레드삭스 시리즈 스윕!!]
[드디어 빛을 발한 보스턴 최고의 투수 유망주!! 맥스 슈피겐!! 4차전 8이닝 무실점!!]
[매튜 쿠퍼 챔피언십 시리즈 MVP로 선정!!]
-맙소사. 양키스를 상대로 챔피언십 시리즈 스윕이라고?-
-젠장!! 1차전을 홈에서 할 때만 하더라도 기뻐서 죽을 것 같았는데, 이제는 너무 아쉬운 일이 돼버렸어.-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양키스 놈들이 스윕으로 미끄러지는 꼴을 직접 보지 못했잖아. 평생을 살면서 제일 기분 좋은 광경이었을 텐데 말이지.-
-난 양키 스타디움에서 그 꼴을 직접 봤지. 장담하는데 내가 살면서 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어.-
보스턴 레드삭스의 스윕 소식에 보스턴 시내 펍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팬들은 그야말로 광분하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대체 얼마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이며, 얼마만의 월드 시리즈 진출이던가. 심지어 그 마지막 상대가 양키스 놈들이라니. 그것도 스윕이라니!!
“맥스 슈피겐 녀석. 8이닝 무실점이라니 그렇게 속을 썩이더니 드디어 한 건 해내는군.”
“확실히 맥스가 다른 타자 유망주들에 비해서 성장이 좀 더디기는 했지만 그래도 난 믿고 있었다고.”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팀에 좋은 멘토가 없었다는 점이 컸던 것 같아. 사실 탬파베이 같은 팀만 보더라도 투수코치도 투수코치지만 위에서 아래로 전해지는 뭔가가 있으니 대대로 에이스가 나오잖아.”
“맞아. 나도 그런 의미에서 성민이나 이번에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건너온 라만 그레고리 같은 선수는 아주 좋은 계기가 됐다고 생각해.”
“글쎄다, 우리 타자도 딱히 멘토라고 할 만한 선수는 없었잖아. 근데 매튜랑 랄로 터진 거 보면 난 경쟁자의 문제라고 생각함. 자기랑 같은 또래인 브라이언 보일한테 아주 제대로 자극받은 거지.”
“뭐가 됐건 장기적으로 볼 때 아주 좋은 일이야. 당장 내년에 라만 그레고리 빠지고, 후년에 성민까지 빠지면 마운드는 브라이언 보일이랑 맥스 슈피겐 둘이 책임을 져야 하잖아.”
술집에서 중구난방으로 떠들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방금 그 말을 했던 사람을 바라봤다. ‘저거 혹시 양키스 첩자 아니야?’ ‘아냐, 25년째 보스턴 응원하는 내 친구 놈인데?’ ‘25년 동안 언더커버로 있던 걸 수도 있잖아.’ 등등의 이야기와 함께 싸한 분위기가 펍 안을 감돌았다.
“물론 나도 당연히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근데 우리 팀에 돈이 그만큼이나 있을지가 걱정인 거지.”
“젠장, 그건 우리가 지금부터 가서 어? 유니폼 한 장이라도 더 사주고. 그러면 되는 거지. 우리가 양키스에 뒤질 게 뭐야. 안 그래?”
“이 친구가 아주 오래간만에 맞는 말을 하는구만.”
물론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라고 해서 모두가 그 축제를 마냥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의 승리에서 내일을 준비해야 사람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보스턴 레드삭스 전력분석팀의 경우가 그랬다.
“역시 다저스겠죠?”
“3차전까지 그렇게 이겼는데, 뭐 큰 일 없다면 다저스라고 봐야겠지.”
“그래도 이대로라면 징크스는 걱정 없겠네요.”
“징크스? 아아, 챔피언십 시리즈 스윕한 팀이 월드 시리즈 이기기 힘들다는 그 징크스.”
시니어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스윕한 팀이 월드 시리즈에서 패배하는 경우는 제법 됐다. 애초에 시리즈를 스윕 했다는 것은 현재 컨디션이 좋았건, 실력이 뛰어났건, 혹은 운이 좋았건. 하여간 그 팀이 매우 강력했다는 의미다. 게다가 7차전을 치른 팀에 비해서 나흘이나 더 쉴 수 있다. 선발 로테이션을 한 바퀴 다 돌릴 정도의 휴식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유리하게 시작한 팀이 월드시리즈에서 패배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2034년 현재까지 무려 열한 팀이 스윕으로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지만, 그 가운데 챔피언십 시리즈 스윕팀이 우승까지 차지하는 경우는 고작 두 번에 불과했다.
“뭐, 이 바닥 징크스에 예민한 거야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 하지만 지금은 징크스 같은 것보다 팔팔한 디아고 헤밍턴 쪽이 더 무섭단 말이지. 그러니 이왕이면 애틀랜타가 내일 4차전에서 발목 한 번 잡아서 5차전까지라도 좀 가서 디아고 헤밍턴 한 번이라도 더 소모하게 해줬으면 좋겠군. 물론 그보다 더 좋은 건 7차전까지 가서 만신창이를 만들어주는 거지만 말이야.”
“워워, 그보다 더 좋은 건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운 좋게 올라오는 거 아닙니까?”
“아, 그런 경우의 수도 있었네. 젠장. 머릿속에서 그건 아예 생각도 못 했어.”
“뭐, 그럴 수 있죠. 지금 다저스 상황 보면 누구나 그럴 테니까요.”
보스턴의 팬이라면 누구나 인정한다.
성민은 대단한 투수다.
단언하건대 약 30년 전, 리그를 지배했던 ‘페드로 엘 그란데’ 이후로 보스턴 투수 가운데 성민에 비견될 투수는 단 하나도 없었다. 뭔가 이렇게 이야기하니 성민이 30년 만에 나오는 투수 정도로 들리는데, 사실 페드로 엘 그란데. 그러니까 페드로 마르티네즈라는 투수가 단 년을 기준으로는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를 다툰다.
보스턴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종종 ‘1999년의 페드로 마르티네즈에게 비견될 수 있는 투수는 2000년의 페드로 마르티네즈 뿐이다.’라는 말을 하곤 했다. 이건 2할 정도는 농담이지만 8할 정도는 진담이다. 감히 그런 페드로 마르티네즈에게 비교를 한다는 것만 하더라도 그들이 성민을 얼마나 대단하게 보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보스턴 레드삭스의 전력분석팀이라면 팬심과는 별개로 현실을 가장 냉정하게 파악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단일시즌을 기준으로 역대 최강의 팀을 꼽으라면 2033년의 LA 다저스다. 그리고 만약 2033년의 LA 다저스에 비할만한 팀이 있다면 그것은 2034년의 LA 다저스다.’
이제는 전설로 남은 베이브 루스, 루 게릭, 조 디마지오, 요기 베라, 미키 맨틀, 로저 매리스의 뉴욕 양키스도.
그렉 매덕스, 톰 글래빈, 존 스몰츠로 대표되는 90년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도.
강진호, 프레스톤 윌슨, 옥타비오 도텔 등이 활약했던 00년대 뉴욕 메츠까지도.
지금의 LA 다저스와 객관적인 전력으로 비교한다면 한 수 아래다.
무엇보다 보스턴 레드삭스라는 팀에 커다란 자부심을 가진 입장에서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숫자가 말해주는 바에 의하면 이번 시즌 디아고 헤밍턴은 감히 99년의 페드로 마르티네즈에 비할만하다.
“그러니까 부디 내일 경기에서 애틀랜타가 발목을 잘 잡아주기를 기도해보자고.”
“애틀랜타도 좋은 팀이니까요. 게다가 마침 그 스윕 징크스 깨트린 두 팀 중 하나가 애틀랜타 아닙니까. 느낌 나쁘지 않아요.”
[NL 챔피언십 시리즈 4차전. LA 다저스-애틀랜타 브레이브스 9:1. LA 다저스 승리!!]
하지만 아쉽게도 그 느낌은 맞아떨어지지 못했다.
***
“야, 근데 왜 우리가 LA로 가는 거야? 이번에 올스타전 우리 아메리칸 리그가 이겼잖아. 그러면 월드 시리즈는 우리가 홈 아니야?”
LA로 날아가는 비행기.
랄로 가야르도가 옆에 앉은 매튜 쿠퍼에게 속삭였다.
“이 멍청한 새끼. 월드 시리즈에 올스타전 결과가 무슨 상관이야. 그냥 돌아가면서 하는 거잖아.”
“아, 그런가? 그러고 보니 확실히 작년에는 아메리칸 리그가 홈 어드벤티지 받았던 것 같네.”
오늘도 시작된 두 사람의 헛소리에 그 앞자리에 누워있던 에두아르도 크루즈가 한숨을 내쉬었다.
“멍청이들아. 모르면 모르는 놈들끼리 속닥거리지 말고 좀 알만한 녀석들한테 물어봐라. 랄로 네가 알고 있던 건 벌써 20년 전 이야기고. 지금은 그냥 정규시즌 승률로 한다. 뭐, 동률이면 이런저런 복잡한 룰들이 있기는 한데 이번 시즌 LA 다저스가 최다승 팀이니 그런 건 알 필요가 없지.”
비행기의 앞쪽, 가장 좋은 자리 중 하나.
성민이 조용히 눈을 감은 채 필 니크로와 잡담을 나눴다.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어차피 안될 거라고 했잖아요.’
-크흠, 아니, 그러니까.
‘브레이브스 욕 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냥 이번 시즌 LA 다저스가 너무 강했어요.’
자기 고향을 박하게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필 니크로 역시 자신의 고향 팀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다. 그렇기에 3차전까지 3연패를 당했음에도 여전히 가능성은 있다고 꿋꿋히 우겼지만, 4차전 그 깔끔한 떡실신에 뭐라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같은 시간.
필 니크로의 마음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또 다른 팀.
비록 수준은 메이저리그, 아니 마이너리그, 아니, 아니, KBO의 평균에 비해서도 무척이나 부족하지만 그래도 투지······, 근성······, 아니 하여간 그래도 뭔가는 가득한 팀의 유일한 골든글러브 후보.
“그래, 어차피 돈 벌어서 뭐 하냐. 이런 거 보고 그러면서 사는 거지. 그리고, 어? 야구 선수가 메이저리그 직접 보러 가는 거면 이거 솔직히 업무상 경비 아닌가? 수준 높은 경기를 좀 봐줘야 내 실력도 늘고 그런 거잖아. 이건 회계사한테 꼭 말해봐야겠다.”
미국행 왕복 비행기, 가는 김에 관광까지 할 생각으로 잡은 보름간의 숙박비. 그리고 무엇보다 눈알이 튀어나오게 비쌌던 월드 시리즈 티켓까지.
그것은 혼자 원룸에 자취를 하는 터라 딱히 지출이 많지 않았던 동엽의 1년 생활비에 필적하는 거금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는 항상 스스로에게 되뇄었다.
감히 메이저리그를 욕심내지는 않는다. 그냥 적당히 NPB 정도만.
사실 현재 박동엽 수준에서 MLB를 노린다고 하면 열 명 중 일고여덟 명은 비웃을 것이고 한 명은 진지하게 정신과 상담을 권유할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두 명은 애초에 동엽이 농담을 한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최고의 무대에서 최고의 선수들이 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두근거려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저녁에 잠들기 위해 침대에 누우면 ‘그땐 그렇게 했어야지.’ ‘나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들. 그리고 결국에는 그곳에서 뛰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졌다.
“후, 그래. 뭐 갔다 와서 실력 더 쑥쑥 올라가서 더 많이 벌면 되는 거잖아. 이것도 투자라면 투자잖아. 안 그래?”
지금 동엽에게는 몹시 큰돈이었다. 프로 야구 선수라면, 그것도 골든 글러브를 탄 선수라면 당연히 억대의 연봉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재작년까지 최저 연봉을 받던 동엽이다. 작년에 골든글러브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그래 봐야 연봉체계 상에서 아직 연차가 짧은 동엽이 받을 수 있는 연봉은 뻔했다.
게다가 올해 2년 연속 골든글러브가 유력하다고는 하지만 팀이 역사적인 시즌을 기록한 상황이다. 연봉이 얼마나 오를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월드 시리즈.
세계 최고의 무대. 세계 최고의 팀과 세계 최고의 선수들.
TV로는 전해지지 않는 그 현장의 생생한 플레이. 과연 지금의 나와는 얼마나 차이가 날까?
장차 탈 마린스를 꿈꾸는 마린스의 주전 유격수가 저 머나먼 미국을 향해 비행기에 몸을 실······,
“자, 잠깐만요. 분명히 여권 여기 챙겼는데. 아, 아저씨 먼저 하세요. 아, 미치겠네. 이게 대체 어딨지? 아!! 찾았다!!”
었다.
< 최강의 팀(1)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