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245화 (246/287)

< 아메리칸 리그의 패자(2) >

양키스의 지구 우승이 좌절된 직후 정말 큰 혼란이 찾아왔지만, 리암 루카스는 어찌어찌 팀을 묶어내며 다시금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가게 만들 수 있었다.

보통이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하지만 리암 루카스라는 위대한 선수가 지금까지 쌓아온 무형의 자산. 그리고 올해가 그런 위대한 선수의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점이 만들어 낸 일종의 기적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성민의 도움도 있었다.

처음 성민의 인터뷰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리암 루카스는 절망했었다. 분위기는 무르익었고 거기서 제이크 스컬리의 행동을 뻥긋만 했어도 그는 최소 15경기 이상 출장 정지로 포스트시즌을 모조리 날려 먹었을 게 뻔했다.

하지만 성민은 놀랍게도 인터뷰를 통해 제이크 스컬리의 그 개 같은 행동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동정이 아닌 동경을 받아 마땅한 사람임을 이야기했고 제이크 스컬리의 멍청한 짓거리는 그의 인터뷰에 묻혔다.

고마운 일이었다.

덕분에 양키스는 그럭저럭 남은 정규시즌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고 와일드카드 역시 꾸역꾸역 이겨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어쩌면 차라리 당시에 사건을 확실하게 매듭짓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몰랐다는 생각이 드는군.’

제이크 스컬리가 남긴 상처는 생각보다 컸다. 특히 어려운 경기를 하는 날이면 더 심각했다. 두 개로 나눠진 팬덤은 서로를 비난했다. 그들에게는 이제 처음 일이 무엇이었는지조차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서로서로 비난할 거리가 생겼다는 점뿐이었다.

게다가 선수 간에 억지로 봉합이 됐다고는 하지만 그것 역시 당장 포스트시즌을 진행 중이기에 터지지 않는 것에 불과했다. 아마 내년, 혹은 후년 리암 루카스가 떠나버린다면?

리암 루카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어느 위대한 감독이 말한 것처럼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어찌 됐건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 언제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승리다.

이기고 또 이긴다면.

그리하여 마지막 영광을 손에 넣는다면. 이 모든 문제 역시 그저 지나간 일로 남을 수 있으리라.

얼마 전 생일이 지나가 이제 만 38세.

야구 선수로는 황혼기에 접어든 노장의 방망이가 불을 뿜었다.

-딱!!

[보스턴 레드삭스 마침내 챔피언십 시리즈 상대가 결정되다!! 뉴욕 양키스가 텍사스 레인저스를 상대로 시리즈 스코어 3:2 승리!!]

***

작년에 이어 연달아 터진 대어에 사무국이 흥분했다.

아니, 어쩌면 이건 작년 이상의 대어일지도 모른다. 전국적인 인기 팀인 뉴욕 양키스와 LA 다저스의 월드 시리즈는 확실한 흥행 카드다. 하지만 최근 십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 두 팀은 너무 잘나갔다.

아무리 듣기 좋은 노래도 한두 번이다.

물론 여전히 표는 매진이고 암표의 가격은 평균 1만 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양키스와 다저스의 월드 시리즈 매치는 분명 조금씩이지만 시청률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또 다른 전국구 인기 팀인 보스턴의 부활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챔피언십 시리즈의 매치가 그 양키스와 보스턴이라니. 보스턴과 양키스의 매치. 특히 보스턴의 홈구장인 펜웨이파크에서 펼쳐지는 매치는 정규시즌 경기라고 해도 매진을 보장하는 흥행수표다.

“지금 광고 판매가 어마어마하답니다.”

“홍보 방향은 역시 그쪽으로 해야 할까요?”

“아니.”

게다가 이번에는 확실한 스토리도 존재했다.

물론 공개적으로 이번 일을 떠들기에는 좀 껄끄럽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의 팬이라면 누구나 이번 사건에 대해 알고 있다. 이건 너무 열기가 거세질까 조심을 하면 조심을 했지 굳이 부채질할 필요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것보다는 이번에 우승팀이 받을 거로 예상되는 보너스를 강조하는 쪽으로 해보자고.”

“보너스요? 하지만 사람들이 그거에 흥분할까요? 어차피 자기들이 내는 돈이 선수 보너스로 돌아가는 셈인데······.”

“어차피 경기만 괜찮으면 자기들이 내는 돈에 그렇게까지 신경 쓰는 사람은 많지 않아. 그보다 자기가 응원하는 선수들이 얼마를 걸고 싸우는지, 그 금액이 많으면 클수록 흥분하는 법이지.”

“확실히 우승 보너스 금액은 우리 쪽이 장점이 있어 보이기는 하죠.”

흔히들 북미 4대 스포츠. NFL, MLB, NBA, NHL을 살펴봤을 때 현재 고액 연봉자의 연봉 총액에서는 MLB가 으뜸이다. 리그의 전체적인 금액 규모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여기에는 약간의 함정이 있다.

최고 인기 스포츠인 NFL의 경우 정규시즌 경기가 17경기. 우승까지 한다고 해도 21경기에 불과하다. 게다가 로스터 숫자만 무려 53인에 메이저의 25인 로스터와 비교할 수 있는 액티브 로스터는 45인이나 된다. 한 경기, 한 경기의 수익성은 낮아도 경기 숫자에서 거의 10배. 그리고 그걸 나누는 선수의 숫자는 절반인 메이저리그 쪽 선수들의 연봉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물론 같은 원리로 평균 연봉에서는 로스터가 15명에 액티브 로스터가 13명인 NBA 쪽이 평균 연봉은 조금 더 높다. MLB 쪽이 서비스 타임이 더 길고, 최저연봉을 수급하는 선수가 많은 탓이다.

하지만 우승 보너스로 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작년을 기준으로 다저스는 선수들에게 무려 55만 달러의 우승 보너스를 뿌렸다. NFL의 경우는 고작 14만5천 달러. NBA도 27만 달러에 불과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대상에 감정을 이입하기 마련이다. 큰 숫자는 그들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그 숫자의 단위가 더 커질 예정이었다. 북미의 그 어떤 스포츠도 감히 상상하지 못할 만큼 커다랗게.

[MLB 포스트시즌. 10년 만에 최대 규모!! 이유는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

[추정 보너스 65만 달러 이상? 메이저리그 최저연봉을 웃도는 보너스의 주인공은 누가 될까?]

성민이 사무국의 움직임에 만족했다.

“안 그래도 슬슬 이런 기사 나올 때 됐다 싶었는데 잘됐네요.”

-잘됐다고?

“뭐, 물론 천만 달러씩 받는 놈들도 65만 달러면 큰돈이고 또, 보너스에 분발하는 건 어느 팀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더 간절한 놈들이 더 열심히 뛰지 않겠어요? 상대적으로 최저 연봉자가 많은 팀은 우리 팀이잖아요.”

보스턴은 가장 젊은 팀이다.

그리고 5년간의 서비스 타임. 그중 3년이나 연봉협상 자격이 없는 야구에서 가장 젊은 팀이라는 이야기는 고액 연봉자가 가장 적은 팀이라는 말과 일치한다.

시즌 막판의 고전. 그리고 와일드카드, 그리고 디비전시리즈를 5차전까지. 뉴욕 양키스는 쉬지 않고 달려왔다. 반면 성민은 시즌 막판 등판에서 여유를 가졌고 디비전시리즈 역시 1차전에 등판한 이후 푹 쉬었다.

체력적인 여유가 다르다.

“내일 경기는 정말 중요할 겁니다.”

-중요하지 않은 경기란 없지. 하물며 그게 포스트시즌이라면 더더욱.

“뭐 그것도 그렇지만, 지금 양키스 상황을 생각하면 기선만 제압당하면 자기들끼리 지리멸렬할 게 뻔하거든요.”

게다가 양키스가 당장을 버티기 위해 째지 않았던 상처는 안에서부터 서서히 곪아가고 있었다. 물론 그 고름이 당장 양키스라는 거인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움직임에 지장을 주는 정도는 충분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름이 차오르는 것을 잊은 채 결승점을 향해 달리는 거인에게 너의 다리가 썩어간다는 것만 인식하게 해주면 된다.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

성민의 차례가 돌아왔다.

***

SJW(Social Justice Warrior)라는 것이 있다. 사회적 정의, 혹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다. 뭐 한국어로 번역하면 프로불편러 정도 되겠다.

사실 그 말 자체는 처음에는 상당히 긍정적인 의미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극단주의자가 다 그렇듯 SJW 역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부정적인 모습이 점점 더 강조됐고 지금에 와서는 거의 멸칭에 가까운 단어로 사용된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사람이 가장 많은 곳은 역시 문화, 방송계다. 그리고 그들에게 성민은 아주 좋은 소재였다. 일단 동양인 남성이라는 점이 가점이다. 물론 동양인 남성 주제에 잘 생기고 섹시하다는 점은 큰 단점이었지만, 어쨌거나 자신들이 만드는 영상에 동양인 남성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그들의 가치관을 충족시켜준다.

“망할 새끼들.”

그렇기에 성민의 에이전시인 한센은 그들을 향해 욕설을 퍼부을 수밖에 없었다. 성민은 최근의 인터뷰를 통해 분명하게 밝혔다.

‘자신을 동양인 남성이라는 틀만으로 보지 말고 김성민이라는 인간으로 봐달라. 그러면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길을 걸어왔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의 말이 정확히 그런 뜻이었는지는 본인만 알 일이지만 한센이 생각하기에 성민의 인터뷰는 그런 뜻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이 방송, 영화계의 인간이라는 놈들은 도무지 말을 들어 먹지를 못하는 놈들이었다. 한센이 판단하기에 이놈들은 죄다 쓰레기다.

“아니, 2034년에 쿵푸를 하는 동양인이 대체 웬 말이야. 그리고 뭐? 닌자?”

휴먼 토치와 캡틴 아메리카. 심지어 스파이더맨까지 흑인이 맡는 현실에서 여전히 이 머저리들이 바라는 동양인은 딱 거기까지였다. 한센은 그들의 오퍼에 모욕감을 느꼈다.

“흥분하지 마. 머저리는 어디를 가나 있는 거고, 우리가 할 일은 그런 머저리들의 이야기가 성민의 귀까지 들어가지 않도록 해주는 일이니까.”

“보스. 근데 분명 예전에 연예계 쪽은 따로 분리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럴 생각이었지. 근데 시뮬레이션을 좀 돌려보니까 이야기가 달라지더라고. 이거 생각보다 건수가 커.”

“아니, 그래봤자······.”

“연구소에서는 성민이 아시안 버전의 채드윅 보스만과 같은 인물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어.”

“그게 누구예요?”

“블랙 팬서.”

“엥? 그 양반 요절한 양반 아닙니까?”

“요절 부분에 집중하지 말고, 흑인 최초로 백인들의 전유물이던 슈퍼 히어로 영화에 단독 주인공이었다는 점에 집중을 좀 하라고.”

현재 미국 내 아시안의 비율은 약 10.3%

최근 15년 이내에 가장 빠른 성장률을 보인 그룹이다. 흑인, 그리고 라티노들이 말해주듯 민주주의 사회에서 숫자는 곧 힘이다. 미국에서도 아시안들 역시 슬슬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에른스트가 의뢰한 연구소에서는 성민이 그 미국 내 아시안들의 상징적인 이미지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런 머저리들은 무시하고, 우리는 우리 보물을 이대로 소중하게 키울 거야. 중요한 건 당장의 돈이 아니야. 저쪽 업계에서는 명성과 명예만 있으면 돈은 따라오게 돼 있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민의 이미지를 올려 줄 작품을 골라주는 일이야.”

“지금 그런 작품이 도통 들어오지를 않으니 문제죠.”

“천천히 보자고. 천천히. 어차피 겨울이 시작되려면 한 달은 남았잖아?”

< 아메리칸 리그의 패자(2)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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