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243화 (244/287)

< 사공명주생중달(2) >

가장 먼저 난리가 난 곳은 역시 뉴욕이었다.

이번 시즌 메츠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덕분에 메츠의 팬 중에서는 프레스톤 윌슨을 비난하는 사람들 역시 존재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을 가건 그런 사람들은 존재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들의 비난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뉴욕 메츠, 프레스톤 윌슨 감독 은퇴!!]

[은퇴!! 그리고 결혼!! 프레스톤 윌슨 감독 결혼 발표!!]

[윌슨 감독!! 드디어 장가를 가다. 상대는 한국인 여성으로 알려져!!]

그리고 프레스톤 윌슨의 열애설을 가장 먼저 발표했었고, 성민의 ‘부탁’을 들어줬던 스티브 저먼은 당시에 약속받았던 대가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프레스톤 윌슨 감독과 공항에서 찍은 사진의 모자이크를 제거하는 것은 허락받지 못했다. 그 사진을 직접 본 권 여사는 화장도 제대로 안 된 사진을 전 세계에 내보낼 수 없다고 강하게 거부했다.

“아쉽군요.”

“뭐, 사진 그 자체만 원하신다면 제게 방법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척하면 척이다. 스티브 저먼은 성민의 그 ‘하지만’에 담긴 함의를 읽을 눈치가 있는 남자였다. 물론 그는 뉴욕 사람이었고 메츠의 팬이었지만 기본적으로 ‘기자’였다. 특종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이 내줄 수 있는 것은 내줄 수 있었다.

“제 장부에 크게 달아두겠습니다.”

성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인 기레기였다면 믿기 힘든 말이었지만 이 남자는 신용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기본적으로 한탕하고 뜨려는 게 아니라 이 바닥에 남아서 BBWAA의 투표원까지 노리는 남자다. 말 한마디로 빚을 지워두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8년 전 우먼 주간 특집에 인터뷰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인터뷰하실 때 사진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셨었어요. 초상권 활용에도 동의하셨고 추후 사용처에도 굉장히 관대하게 사인을 하셨던 거로 기억합니다. 그러니까······.”

“감사합니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권 여사의 소식이 알려지기 전.

스티브 저먼은 성민의 정보를 바탕으로 우먼 주간과 매우 쉬운 협상을 통해 권 여사의 사진을 사용할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미국에서 권 여사의 사진을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권리자가 된 셈이었다.

[단독 공개!! 베일에 싸인 윌슨 감독 피앙세의 정체는?]

빛과 화장 그리고 현대과학의 도움까지.

사실상 사진만 보고는 절대 동일인이라고 믿기 힘든 수준으로 변신한 권 여사의 사진과 함께 프레스톤 윌슨의 짤막한 인터뷰. 그리고 성민의 인터뷰가 들어갔다.

당연히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미국만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더 폭발적인 반응을 보인 곳은 한국이었다.

-맙소사!! 프레스톤 윌슨 감독의 피앙세가 김성민의 어머니라고?-

-뭐야? 그러면 마린스가 언플하던 게 진짜 사실이었어?-

-와, 인맥 야구 미쳤네. 아니, 감독으로 양아버지를 꽂아 넣는다고?-

-착한 인맥 야구 인정합니다.-

-김성민 레알 참 마린스인으로 인정한다. 미국에서도 보스턴 마린스에서 뛰느라 고생하는 와중에 고향 팀의 부활을 위해서 이런 큰 그림까지 그리다니.-

-갓성민. 그는 신인가!!-

-성민이 형, 형의 이런 원대한 그림도 모르고 형이 마린스 버리고 떠나는 바람에 우리가 이 모양 이 꼴이 됐다고 원망했던 30초 전의 나 자신을 크게 반성한다.-

-야 근데 지금 마린스에 프레스톤 윌슨이 감독으로 온다고 뭐가 되겠냐? 차라리 40대의 프레스톤 윌슨이 선수로 오면 가능성이 좀 생길지 몰라도. 38승 106패 팀에 감독 하나 새로 온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당연히 감독만 오면 안 되지. 전면적 지원 약속하고 팀 철밥통 공무원들 싹 날려야지. 이 팀은 기본적인 정신머리부터 개조해야 함.-

“선배, 미안해요. 숨기려던 건 아니었어요.”

“가족 일인데 미안하긴 뭐가 미안하냐. 게다가 어차피 이번 시즌 너무 조져서 내년에 내가 감독해도 뭐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 독이 든 성배도 아니고 진짜 그냥 사약이었다고. 공 감독 그 빼꼼이가 버텨볼 생각도 없이 깔끔하게 나가는 거 보면 대충 각 나오는 거지. 차라리 잘 됐어. 나도 좀 쉬고 어디 좋은 자리 알아봐야지.”

성민의 전화에 강용구가 쓰게 웃었다.

마린스 감독 자리만 보고 뛰어온 세월이 벌써 몇 년인지. 그게 코앞까지 온 상황이었다. 사실 고민도 많이 됐다. 어찌 됐건 1년이라도 감독 자리에 앉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그는 아직 50도 안 됐다. 그래, 기회는 많다.

역사상 최악의 시즌을 보낸 팀의 수석 코치라는 타이틀은 뗄 수 없게 됐지만 그래도 아직 현업에 종사 중인 지인들은 많았다. 당장 다른 팀에 코치로 일하든지, 아니면 방송에 진출해서 잠시 해설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2, 3년 정도 지나면 충분히 돌아올 수 있다.

“아뇨. 선배, 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니라니? 뭐가 아니란 소리냐?”

“마린스에 선배가 없으면 어디 팀이 돌아가겠습니까?”

아부인 게 뻔한 소리다. 하지만 아부라고 해도 이건 역시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는 멘트다.

강용구의 입꼬리가 자신도 모르게 올라갔다.

“뭐, 그건 그렇긴 하다만······.”

“솔직히 이런 상황에서 이런 말씀 드리는 거 좀 죄송스럽기는 합니다만, 전 개인적으로 선배님이 자존심은 많이 상하시겠지만 프레스톤 감독님을 조금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내가 지금 상할 자존심이 어딨냐. 게다가 프레스톤 감독님 정도면 밑에서 코치 자리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지. 나도 그 양반이 메이저에서 경기 뛰는 거 보면서 자랐어. 근데 어디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냐. 위에서도 공 감독만 짜르려고 그러겠냐? 최소한 나까지는 짜르려고 하겠지. 내가 그래도 깔끔하게 나가줘야 아래 애들이라도 멀쩡하지 않겠냐?”

“그게, 사실 프레스톤 감독님이 저한테 전화를 먼저 주셨었거든요.”

“당연히 그랬겠지. 너랑 그래도 가족인데.”

“처음에는 절대 하지 마시라고 했거든요. 솔직히 프레스톤 감독님이 메이저에서나 명감독이지 한국에 가면 초짜잖아요. 근데 한국 가면 너무 적적할 것 같다고 그러더라고요. 게다가 그때 팀이 거의 100패 다 돼갈 때라 분위기도 좀 심상치 않았고요.”

“그래서?”

“그래서 제가 만약 굳이 감독하고 싶으시면 전면적인 지원을 약속받아야 하고, 팀 내부 단속하는 데는 선배님이 꼭 필요할 거라고 말씀드렸거든요. 게다가 제가 알기론 프레스톤 감독님 같은 경우 그리 오래 감독직을 하실 생각이 없으세요.”

“지금이야 그렇겠지. 근데 어디 우리 같이 평생 야구만 한 사람들이 야구판 떠나서 살기가 쉽겠어?”

“아니, 그게 사실 저희 어머니가 아직 일하고 계시거든요. 그래서 프레스톤 감독님도 집에서 마냥 놀기 좀 적적해서 그러신 건데 저희 어머니도 후년이면 환갑이고 그러면 어머니도 은퇴하지 않겠어요?”

당장 호섭이 같은 녀석만 보더라도 평생 야구만 해서 그런지 영 말재주가 없는데 확실히 성민이 녀석은 같은 말을 해도 윗사람 자존심도 챙기고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뭔가가 있다.

성민의 이야기에 강용구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옆에서 듣던 필 니크로가 혀를 찼다.

-쯧, 아니 대체 저 녀석이 뭐가 예쁘다고 이렇게까지 해서 앉히려는 거냐?

‘적을 만들 필요는 없잖습니까. 게다가 솔직히 저 선배 능력도 제법 괜찮아서 프레스톤 감독님도 용구 선배는 안고 가는 게 좋을 겁니다.’

-능력이 괜찮기는. 저 녀석이야말로 적폐의 코어 아니냐. 이번 시즌 팀 저 모양 된 거 죄다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반절은 저 자식 탓인데.

‘적당히 성적 엉망 만들고 감독 자리 앉으려는 생각이 있었겠죠. 그게 좀 어긋나면서 저 꼴이 된 거고요. 근데 개인적으로 그건 공 감독님이 저 선배를 컨트롤 못한 잘못도 있다고 생각해요. 프레스톤 감독님이라면 적당히 감독자리 슬쩍슬쩍 흔들면서 잘 써먹으실 겁니다.’

***

[송원경 부산 마린스 사장 ‘프레스톤 윌슨 감독과는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굵직한 이야기는 거의 끝났고 이제는 세부적인 조정만이 남은 상황.’]

-매일 퇴물만 사장 자리 앉다가 젊은 엘리트가 오니까 일 추진하는 게 완전히 다르네.-

-세부적인 조정이면 연봉협상인가? 이제 거의 다 온 거 아님?-

-글쎄다. 프레스톤 윌슨 올 시즌 연봉이 180만 달러인가? 그런 거로 알고 있는데 그거 감당이 되려나 모르겠다.-

-180만 달러면 20억? 공필패가 지금까지 6억 받았다. 프레스톤 윌슨 감독 마린스 오면 20억 줄 만하지. 관중 동원 효과만 따져도 14억 건지고도 남을걸?-

-아무리 그래도 공필승 감독 무시하진 말자. 창단 최고 정규시즌 우승, 통합우승, 그리고 40년 만에 코시 우승까지 간 감독임.-

-응, 그거 다 김성민 빨 ^^ 사이 영상 투수 데리고 하면 누가 우승 못 함?-

-김성민 없을 때도 마린스를 18년 만에 준플까지 끌고 간 감독임. 장담하는데 공필승 감독 한 1년 쉬고 어느 팀이건 감독으로 무적권 돌아온다.-

-사실 나도 20억이면 팀 체질 개선도 할 겸, 선진 야구도 배울 겸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거든? 뭐 흥행성도 있을 거고. 근데 메이저에서 20억 받는 감독을 KBO에서 뛰게 하는 데 20억으로 되겠음? 게다가 프레스톤 윌슨이면 사실 돈이 아쉬운 사람도 아니라서. 메이저에서 뛰는 것도 메츠를 사랑해서 뛰는 자원봉사 수준이었거든. KBO에서 뛰려고 할까?-

-맞는 말임. 프레스톤 윌슨 커리어 내내 벌어들인 연봉이 2억 달러 가깝게 됨. 한화로 하면 거의 2천5백억임. 게다가 은퇴하고 투자해둔 주식들도 잘돼서 내가 알기론 자산이 거의 10억 달러에 가깝다고 알고 있음.-

-미친. 10억 달러? 1조?-

-ㅇㅇ-

-프레스톤 윌슨 자식 없지 않음?-

-결혼도 한 적 없는데 당연히 자식도 없지.-

-아니 결혼한 적 없어도 자식은 있을 수 있지만, 프레스톤 윌슨은 그런 것 없음.-

-김성민 이제 재벌 되는 거야? 갑자기 생긴 새아빠가 자산이 1조 원? 레알 자기 연봉은 그냥 용돈으로 쓰겠네.-

-그 용돈이 1년 250억 ㅋㅋㅋ.-

-‘아버지라고 불러보겠니?’-

-‘날 돈으로 매수하려 하는가? 모욕적이군.’-

-‘하지만 거절하기에는 너무 큰 돈이었다.’-

-근데 진지 빨고 이야기하면 김성민도 아마 재계약하면 총액 2억 달러 충분히 가능할걸? 좀 욕심내면 3억도 가능하다고 봄. 나이가 있기는 한데 너클볼 투수라는 거 고려하면 10년도 욕심낼 수 있지. 거기다가 이번 시즌 사이영상은 거의 확정이고. KBO 우승시킨 거나 작년에 월시에서 던지는 거, 뭐 기록 달린 경기들 보면 큰 경기에도 강하고.-

-개인적으로 생각해보건대 김성민이랑 프레스톤 윌슨 스왑딜 한 거 아닐까? ‘아버지 마린스를 구원해주세요. 대신 메츠는 제가 구원하겠습니다.’-

-와, 김성민 메츠 가는 상상하니까 지리네.-

-메츠 이제 망조 들었는데 메츠는 무슨 메츠임. 이제는 뜨는 해 보스턴에 뼈를 묻어야지.-

-봑 새끼가 아주 똥오줌을 못 가리고 껴드네.-

-그나저나 이렇게 되면 죽은 마린스를 미국으로 떠난 성민이가 살려내는 건가?-

[보스턴 레드삭스-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디비전시리즈 1차전. 선발은 김성민.]

< 사공명주생중달(2)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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