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242화 (243/287)

< 사공명주생중달(1) >

마침내 2034년 정규시즌이 막을 내렸다.

시즌의 막판 가장 화제가 됐던 것은 단연 양키스의 연속된 패배와 인종차별. 그리고 성민의 인터뷰였다.

-처음에는 왜 저런 딴소리나 하나 싶었거든? 근데 듣다 보니까 진짜 대단한 어머니였다는 생각이 들더라. 아니, 어떻게 1등을 한 아들한테 저런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나라면 내 아들이 눈 반짝거리면서 달려오는 순간 우쭈쭈밖에 못 해줄 것 같은데 말이야.-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를 키워내려면 저 정도는 돼야 한다. 뭐 그런 거겠지. 타고난 재능도 재능이지만 그걸 완전히 피워내는 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야.-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그건 무슨 헛소리냐. 이번 시즌 아메리칸리그 최고라면 인정할 수 있지만, 메이저리그 최고는 누가 뭐래도 디아고 헤밍턴이지.-

-그러니까 작년에 월드 시리즈는 보고 와서 하는 이야기지?-

-만약 디아고 헤밍턴이 김성민 대신 보스턴으로 왔다면 결과는?-

-운 좋게 선수들이 터진 것 가지고 무슨 헛소리야. 선수는 객관적인 기록으로 말하는 법임. 이번 시즌 성적을 보라고.-

-너희들 그거 암? 성민 한 살 때 아버지 돌아가셔서 어머니 혼자서 키운 거.-

-진짜? 와, 성민 어머니가 대단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건 상상 이상인데?-

-그러니까 지금 이게 인종차별을 당했지만, 오히려 그런 말이나 뱉는 녀석이 한심하고 불쌍하다 뭐 이런 거지?-

-글쎄, 내가 듣기에는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길을 걷고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뭐 그런 이야기 같은데?-

-너 루이스 그 뻔지르르한 개자식 옹호하는 새끼지.-

-너야말로 무식한 남부 촌놈 앤드루 말을 다 믿는 빡대가리 아니냐?-

***

“역시 성민이네.”

“그러게. 사실 처음에 보스턴으로 간다고 할 때는 걱정과 안심이 동시에 됐었는데 그 모든 게 다 허튼 생각이었어.”

“걱정과 안심?”

“이 친구가 보스턴 같은 엉망진창인 팀으로 가서 괜히 고생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 그리고 그래도 위협적인 팀으로 가는 건 아니라 다행이다 싶은 안심.”

마르타 블랑코의 이야기에 페데리코 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사실 이번 시즌 초반 보스턴과의 인터리그 때만 하더라도 이런 장면은 상상도 못 했다. 설마 그 보스턴 레드삭스가 여러 가지 트레이드 상의 이점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를 제압하다니.

“어쨌거나 좀 아쉽긴 아쉬워. 성민이 그대로 있었다면 2년 연속 월드 시리즈 우승도 더 쉬웠을 것 같은데.”

“뭐 그렇기는 하지만 성민 하나 없다고 해도 우리가 우승한다는 사실이 바뀌지는 않을 것 같은데?”

“성민을 제대로 공략할 자신은 있고?”

“에이, 나야 뭐 원래 빠따보다는 글러브 끼고 움직이는 게 특기잖아. 그건 마르타 네가 해결해줄 몫이잖아?”

“뭐래? 나도 골드글러브 수상한 이루수거든?”

“그리고 이번 시즌 홈런만 스물일곱 개를 친 리그 최고의 공격형 이루수이기도 하지. 안 그래?”

작년 LA 다저스는 리그 최강의 에이스 둘을 원투 펀치로 쓰는 사기팀이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팀을 떠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LA 다저스는 여전히 리그 최강의 팀이었다. 그들의 공격력은 작년보다 오히려 더 나아졌고, 수비 조직력은 훌륭해졌으며 무엇보다 그들의 수비 예측모델은 한층 더 정교해졌다. 이번 시즌 메이저 30개 팀을 통틀어 수비 시프트로 가장 큰 이득을 본 팀을 고르라면 단연 다저스다. 그들은 수비 시프트를 통해 리그 평균보다 약 21점을 이득 봤다. 이는 WAR로 환산할 경우 약 2.1이고 이는 다저스가 수비 시프트만으로 약 2.1승을 더 거뒀다는 의미다.

“뭐, 어쨌거나 그런 걱정을 벌써 하는 건 좀 이르지.”

“하긴, 이제 겨우 포스트시즌이 시작됐을 뿐이니까. 보스턴이 월드 시리즈까지 올라올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잖아?”

“그러니까. 우리 상대가 누가 될지는 아직 정해진 것도 아니니 느긋하게 지켜보자고.”

포스트시즌 첫 경기를 치르지 않은 것은 내셔널리그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말은 조금도 거만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LA 다저스.

이 시대 최강의 팀이었다.

***

“괜찮겠어? 나는 조금 더 천천히 와도 괜찮은데.”

“왜? 단 며칠이라도 더 자유를 맛보고 싶은 거야?”

“그 자유는 30년 넘게 충분히 맛봤으니 이제 지긋지긋하고. 그냥 자기가 아쉬움이 남을까 봐 그렇지.”

“당신은 30년이지? 난 무려 40년이야. 여기에 이 만큼 매달렸으면 난 할 만큼 했어. 이제는 인생의 2막을 살아봐야지.”

“그 2막이 영 별로면 어쩌려고? 게다가 한국에 오면 미국에 있던 것보다 더 시달릴 수도 있어. 부산에서 야구의 인기는 미국으로 따지자면 보스턴 이상이라고. 그리고 지금 자기에 관한 이야기는 한국 시리즈보다 더 뜨거워.”

“얼마 전에 100패를 찍었다고 그랬나?”

“정확히는 106패. 38승 106패야. 시즌 승률 0.264. 역대 최저승률 3위. 종전 기록이 마린스가 보유한 0.265였는데 그거 갱신했어. 마찬가지로 역대 최다패였던 97패도 무려 9경기나 갱신하면서 KBO에 다시 나오기 힘든 기록을 세웠지. 후, 설마 시즌 막판에 16연패를 할 줄이야······.”

부산 마린스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사람들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설마 100패를 하겠어? 라고 생각하면 여지없이 100패를 했고 그래도 남은 경기를 모조리 다 지겠어? 하면 모조리 다 졌다. 그래도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면 스멀스멀 피어나오던 외국인 감독에 관한 소식이었다.

[부산 마린스 차기 감독으로 외국인을?]

[부산 마린스!! 차기 감독으로 메이저리그에서도 대단한 커리어를 가진 외국인 감독을 후보로!!]

[송원경 부산 마린스 사장 ‘필요한 것은 오직 뼈를 깎는 쇄신뿐!! 필요하다면 메이저리그 현역 감독을 초대하는 일이라도 불사하겠다.’]

처음 이런 기사가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저 웃었다.

이것들 또 성적 엉망으로 나오니까 언플로 넘기려고 수를 쓰는구나. 저렇게 실컷 언플하다가 수석 코치인 강용구가 감독 자리에 앉겠지. 혹은 그래, 백번 양보해서 외국인이라는 말까지는 어찌어찌 믿어줄 수도 있다. 그런데 뭐? 대단한 커리어? 현역 감독? 웃기는 소리다. 아직 메이저 감독 경험이 없는 현역 코치만 데리고 오려고 해도 힘들게 뻔하다.

하지만 마침내 100패를 찍는 그 순간.

[부산 마린스 차기 감독 후보로 프레스톤 윌슨을?]

100패는 정말 놀라운 기록이었다. 심지어 리그에서 두 번째로 많은 돈을 쓰는 구단의 100패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최고 화제는 ‘프레스톤 윌슨’이라는 이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프레스톤 윌슨이었다.

“야, 지금 뉴스에 올라온 프레스톤 윌슨이 그 프레스톤 윌슨이겠지?”

“너 지금 제정신이냐? 그냥 어디 같은 이름을 한 다른 사람이겠지. 그 프레스톤 윌슨이 마린스에 감독으로 왜 와.”

“아니 올 수도 있지. 은퇴하고 심심하기도 할 테고 한국이면 프레스톤 윌슨 절친인 강진호의 고향이잖아. 한번 관광하는 셈 치고 올 수 있는 거 아니야?”

“너 프레스톤 윌슨 지금 뭐 하는지 모르냐?”

“반지 11개 먹고 1년 더 하고 은퇴하지 않았어?”

“너 강진호 이후로 MLB를 안 봤구만. 걔 지금 뉴욕 메츠 감독이야. 감독 달자마자 완전 개판 났던 메츠 되살려서 우승까지 시켰어. 지금 메이저리그 전체 통틀어서도 손에 꼽히는 감독이야.”

“엥? 그 프레스톤 윌슨이? 발가락에 반지 끼고 웃던 게 엊그제 같은데 메이저에서도 손에 꼽히는 명장이라고?”

“그래, 그 프레스톤 윌슨이. 근데 그런 사람이 KBO에 감독으로 오겠냐? 이건 백퍼 언플 아니면 그냥 동명이인이야.”

“그래도 마린스 100패면 진짜 똥꼬에 불붙은 건데 돈 겁나 주고 올 수도 있지 않겠어?”

“나도 제발 그랬으면 좋겠지만 냉정하게 가능성은 0%라고 본다.”

한국에서 메이저리그의 열기가 가장 강했던 것은 강진호가 아직 메츠에서 뛰었던 2010년대까지였다. 그리고 당시 프레스톤 윌슨은 강진호의 동료로 매우 유명했다. 스포츠 뉴스가 아닌 그냥 8시 뉴스 꼭지로 프레스톤 윌슨의 인터뷰가 나오던 시절도 있을 정도다. 30대 이상의 야구팬이라면 프레스톤 윌슨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리고 마침내 마린스가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완벽하게 패배하고 역대 3위. 팀 자체 최저승률이었던 0.265의 승률마저 0.001차로 갱신을 했던 바로 그날. 역사적인 106패의 그날에 KBO에서 가장 바빴던 것은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지은 재규어스의 프런트도 아니었고, 바로 와일드카드를 겨뤄야 할 돌핀스와 블레이즈의 프런트도 아니었다.

“박 기자. 진짜라니까? 내가 언제 허튼 정보 주는 거 봤어?”

“아니 강 기자님. 우리가 똥꼬에 불붙었다고 허위 정보 주고받는 그런 사입니까? 이거 조만간 보도자료 싹 나갈 거예요. 괜히 이거 안 받으면 강 기자님만 손해다.”

“미국 쪽에서도 아무 말이 없는 건 그만큼 우리가 보안을 철저히 하고 있다는 증거지. 막말로 걔들은 아직 시즌도 안 끝났는데 그런 거 돌아봐. 감독은 바로 레임덕이잖아.”

마린스의 홍보팀은 정말 머리털 나고 이렇게 바빴던 적이 없었을 만큼 빠르게 움직였다. 역사적인 106패로 쏠릴 시선을 어떻게든 분산 시켜야 했다.

“야, 이거 그 프레스톤 윌슨 맞잖아.”

“미쳤네. 프레스톤 윌슨이라고?”

“아니, 분명 프레스톤 윌슨이 메츠랑 재계약 아직인 건 맞는데. 에이, 그래도 현역 메이저 감독이 크보를 왜 와. 메츠 아니더라도 모셔갈 팀이 널렸을 텐데? 명전에 올라간 선수가 감독으로 덕아웃에 앉아주면 덕아웃 장악력 자체가 달라지잖아. 심지어 프레스톤 윌슨은 검증된 감독이고.”

“장담하는데 프레스톤 윌슨 감독으로 KBO에 데리고 오려면 연봉 50억으로도 부족할걸?”

“아냐, 기사에는 MLB에서도 연봉 20억 정도 받는다는데?”

“마이너에서 5천도 못 받는 애들 데리고 오려고 우리가 쓰는 돈이 10억이야. 근데 걔는 MLB에서 20억을 받는 애잖아.”

“와, 그러면 만약 프레스톤 윌슨이 오면 팀 내 최고 연봉자가 감독이 되는 거야? 보통이면 말이 안 되는 일인데 뭔가 마린스라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축구에는 그런 경우 흔하잖아. 뭐 야구도 그럴 수 있지.”

“축구랑 야구랑 같냐? 야구는 감독이 승리에 영향 크게 못 주는 거 유명하잖아.”

“한국 야구는 또 다르지. 게다가 마린스는 팀이 콩가루인 게 문제니까. 커리어 쩌는 외국인 감독이 와서 팀 한번 확 뒤집어엎으면 극적으로 달라질 수도 있어.”

그리고 그것은 성공적이었다.

아니, 그냥 성공적인 수준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메가히트였다.

KBO의 와일드카드 경기가 끝나고 준플레이오프 경기가 진행될 바로 그 타이밍. 한국 포털들의 스포츠 섹션 메인 페이지를 도배한 것은 한국의 최고 인기 스포츠 KBO의 가을야구 소식이 아닌 프레스톤 윌슨의 결혼 소식이었다.

< 사공명주생중달(1) > 끝

ⓒ 묘엽

작가의 말

더 좋은 글이 되도록,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만족하실 수 있는 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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