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어 맞는 매가 더 아프다(2) >
가장 먼저 난리가 난 곳은 다름 아닌 양키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제이크 스컬리가 직접적으로 불만을 표시한 곳이 자신의 팀인 양키스였던 탓이다.
게다가 일단 겉보기에는 제이크 스컬리의 명분 역시 확실했다. 벤치 클리어링 중에 심한 행동으로 다섯 경기 정지라고 하기에는 영상 속 그의 행동에 딱히 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렇기에 사무국의 일방적인 처사에 항의하지 않은 팀에 대한 불만은 충분히 나올 수 있었다.
양키스 프런트의 젊은 직원 하나가 불만을 터트렸다.
“미치겠네. 아니, 그 머저리 녀석은 우리가 자기를 보호해주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를 왜 모른답니까? 코치들이나 감독은 대체 뭘 한 거랍니까?”
“그치들 이야기로는 충분히 말을 했는데도 알아먹지를 못했다더군.”
“아니, 선수가 알아먹지를 못했으면 끝입니까? 그 양반들 돈 받는 거 그런 거 하라고 받는 거잖아요. 지금 사무국에서는 이런 식이면 공개적으로 있는 사실 그대로 까겠다고 그러고 있어요.”
“자자, 일단 진정하고. 지금 우리끼리 소리 높인다고 어떻게 되는 일도 아니잖아. 일을 어떤 식으로 해결할지를 일단 의논해보자고.”
“해결은 뭘 어떻게 해결합니까. 지금 이거 폭풍전야의 고요함이에요. 사실 앞서 보스턴이 조용히 넘어가 준 것만 해도 천운인데 이런 도발이면 거기서 당장 집단으로 이야기 나와도 이상할 것 없습니다. 무엇보다 대상이 그 김성민이었어요. 그 친구 영향력이 얼마나 큰 지 아십니까?”
“아니, 물론 나도 요즘 선수들이 SNS로 소통해서 영향력이 큰 건 잘 알지.”
“어휴. TV 좀 보시고 SNS 좀 하세요. 그 친구 영향력은 지금 그 정도가 아닙니다. 이번에 드라마 찍은 것 때문에 반응이 정말 장난이 아니에요.”
“아니, 뭐 그 드라마나 영화 정도는 다른 선수들도······.”
“그 정도 반응이 아닙니다. 이게 페이크 다큐 같은 형태의 드라마인데 현실과 맞물리면서 반응이 정말 폭발적이에요. 팔로워가 이천만에 가깝습니다.”
“그거야 아시아권 선수니까 그쪽 국가에서······.”
“그중에서 미국인만 500만입니다.”
“5······, 500만?”
긴 야근과 야식으로 푸짐하게 배가 나온 50대 직원이 입을 떡 벌렸다.
“우리 팀 리암 루카스 팔로워가 지금 720만 아니야?”
“그건 트위터랑 인스타 합친 숫자고요. 성민은 인스타만 카운트 한 겁니다.”
“뭐야? 그 녀석 무슨 팝스타야?”
“말씀드렸잖습니까. 이번에 드라마 대박 났다고요. 원래도 800만 정도 돼서 영향력이 있던 친구인데 이번 드라마로 유입된 팬들이랑 SNS 특유의 전파력 때문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무엇보다 수천만 단위의 팔로워를 가진 헐리웃 스타들이 연달아 녀석을 걸어줬고요.”
“아니!! 무슨 야구 선수가 하라는 야구는 안 하고 그런 걸 하는 거야.”
“야구를 안 하긴 뭘 안 합니까. 그 친구 이번 시즌 사이 영 수상 거의 확실한 친구잖아요.”
“허, 야구 선수가 야구에만 집중하지 않는데 사이 영이라니. 우리 때만 하더라도 정말 그런 건 상상도 하지 못 했······.”
“데릭 지터랑 강진호가 이 시대에 뛰었으면 저거랑 별 차이도 없었을 것 같은데요.”
“하긴······. 그건 또 그렇군. 그런데 잠깐만. 지금 자네 이야기는 김성민이 그 친구들 만큼 핫하다는 이야기인가?”
“장담하건대 이 페이스로 성적을 유지하면 그 이상도 가능할 겁니다.”
젊은 직원의 이야기에 현실이 직시 됐다.
이거 사무국만 걱정할 타이밍이 아니다. 어쩌면 저쪽을 더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젠장, 우선 현장 직원 통해서 감독한테 제이크 스컬리 면담 잡으라고 하고, 넌 김성민쪽 에이전시랑 이야기해봐. 난 사무국과 이야기해볼 테니까.”
“어떤 방향으로 이야기합니까?”
“인종차별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지 않는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수용해봐. 제이크 스컬리 이 미친 녀석이 공식적으로 인터뷰 번복하고 사과하게 하는 수가 있더라도 말이야. 이천만 명이 인종차별에 대해 들고 일어나면 사무국도 다섯 경기 출장 정지 정도로는 막아줄 수 없어. 그렇게 되면 진짜 재수 없으면 포스트시즌 경기까지 출장 정지라고.”
***
“보스, 이거 그냥 터트리죠?”
“뭐를? 내가 칭키 소리 들었다는 걸?”
“네, 지금 양키스 팬 놈들이 아주 의기양양해서 떠드는데, 그거 한 마디 딱 나오는 순간 상황 완전히 종료될 겁니다. 뭐 양키스 팬이 몇 명이고 어쩌고를 떠나서 애초에 동원 가능한 사람의 숫자 자체가 달라요. 게다가 이건 대의명분 자체가 보스한테 있기도 하고요. 화력 좀 모으고 여론 조성하면 사무국도 고작 다섯 경기 정지 정도로는 끝낼 수 없을 겁니다.”
작년 불미스러운 사고 이후로 성민의 SNS 관리자를 담당하고 있는 토니 이시카와가 성민에게 폭로전을 종용했다.
“보스가 직접 이야기하는 게 이미지상 좀 그러면 제가 따로 사용하는 뒷계정으로 ‘이러이런 카더라가 있더라’로 시작해도 괜찮을 겁니다. 그거 특정하기도 힘들 거에요. 평소에 구단 딱히 안 가리고 MLB쪽 뒷소식 같은 거 위주로 돌리던 계정이라서 공신력도 꽤 쌓아놨고요.”
“아니, 굳이 그럴 필요 없어. 그리고 그건 아마 나중에 또 쓸 때가 있을 거야.”
“네?”
“어차피 그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 들었던 애들이 한둘이 아니야. 걔들도 부글거리고 있고, 무엇보다 이 멍청한 새끼는 아군 하나 없이 모두를 적군으로 만드는 짓거리를 했단 말이지.”
“하지만 인터넷 여론은······.”
“그거야 어차피 팩트 하나만 나오면 손바닥 뒤집듯이 바뀔 거야. 그리고 이번 일은 확실한 결론이 나기보다 조금 더 오래 끄는 편이 좋아. 원래 후숙이 필요한 과일은 후숙을 끝냈을 때 더 달콤한 법이거든.”
필 니크로가 혀를 찼다.
-쯧, 그 멍청한 녀석. 그 정도면 이 녀석과 얽힌 것 치고는 정말 운 좋게 잘 넘어간 거였는데, 그걸 굳이 들쑤시다니.
토니 이시카와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오래 끄는 편이 좋다뇨? 물론 보스 말처럼 인터넷 여론이라는 건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히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이게 오래되면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도 그걸 믿는 애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런 종류의 바보들은 꽤 귀찮고 집요해요.”
“그렇긴 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확실한 이득이 있거든.”
“이득이요?”
***
“제이크,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경솔한 인터뷰를 한 거야?”
“경솔하다뇨. 전부 사실이잖습니까. 아니, 제가 뭐 대단한 걸 했다고 다섯 경기나 정지를 먹어야 하는 겁니까? 애초에 이런 일이 발생하면 구단에서는 제 편을 들고 항소를 해주는 게 정상 아닙니까?”
“이봐, 우리가 다섯 경기 출장 정지로 일을 막는데 얼마나 애를 쓴지나 알고 하는 이야기야?”
“애를 쓰기는. 벤치 클리어링 시작한 에두아르도 크루즈자식도 세 경기 출장정지입니다.”
“지금 벤치 클리어링이 문제가 아니잖아. 자네는 인종차별 발언을 했어. 이게 얼마나 예민한 지 몰라? 우리가 매년 교육도 하고 있잖아.”
“그거야 싸우면서 가끔 하는 욕설 아닙니까. 그게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이라고. 게다가 그 칭키 자식도 인종차별적 발언은 먼저 했다고요. 나한테 암내가 나니 뭐니 하는 소리도 하고 여기, 여기 보십쇼. 그 자식이 주먹으로 쳐서 멍든 자국이요.”
양키스의 감독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이봐, 제이크. 너 지금도 또 인종차별 발언을 했어. 만약 지금 이 대화를 사무국 사람들 앞에서 했으면 넌 무조건 15경기 이상 출장정지라고 알아?”
“하지만 인종차별 발언은 그 자식이 먼저 했다니까요?”
“그래서 그걸 들은 사람은?”
“아니, 그건 그 자식이 딱 붙어서 소곤거리는 바람에······.”
“일단 우리 프런트에서 사무국과도 잘 이야기하고 최대한 수습하는 방향으로 가기로 했어. 구단에서는 항소를 안 한 이유로 괜히 나중에 결정이 나게 되면 포스트시즌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핑계를 댈 거야. 이 정도면 너도 체면 치례는 한 셈이고. 그러니까 넌 언론 인터뷰 통해서 사무국의 결정을 존중하고 네 실수를 반성한다고 다시 발표하도록 해.”
“그렇게는 못 합니다.”
“못하긴 뭘 못한다는 거야. 너 이대로 가면 빼도 박도 못하고 15경기 이상 출장 정지야. 그리고 구단 자체에서도 징계를 할 수밖에 없어.”
“뭐라고요? 지금 저 협박하는 겁니까?”
“이봐, 제이크 정신 차리고 날 세우지 말라고. 난 지금 널 협박하는 게 아니라 네 편을 들어주고 있는 거야.”
“어쨌든 전 절대 그렇게는 못 합니다. 그 자식이 했던 이야기가 증인이 없는 것처럼 제가 했던 이야기도 증거가 없어요. 어차피 우리 팀 선수들은 제 편을 들어줄 테고 보스턴 애들이 그냥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뿐인데 꿀릴 이유가 없죠. 그 부분으로 사무국과 이야기한다면 거기서도 지금 이상의 징계는 주기 힘들 겁니다. 다만 저도 구단 입장 생각해서 구단의 발표에 다시 반박하지는 않겠습니다. 확실히 구단을 비난했던 건 저도 조금 과했다고 생각하니까요.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제이크, 제이크!!!”
제이크 스컬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당당했다. 어차피 피차간에 증거가 없는 개싸움이라면 못할 것도 없다. 뭐 그 녀석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크다지만 순수하게 야구팬만으로 한정 짓는다면 자기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어차피 그 영향력이라는 것도 공허하다. 저기 물 건너 아시아에서 좀 부글거리는 게 어떻단 말인가? 중요한 건 내가 밥 벌어 먹고사는 이곳 미국의 뉴욕인 것을.
그리고 정확히 그날 저녁.
[제이크 스컬리 5경기 징계의 실상을 밝히다!!]
[벤치 클리어링 중 인종차별 단어 사용? 다섯 경기 출장 정지는 솜방망이 처벌이었다?]
-뭐야? 인종차별 단어를 사용했다고? 프로 선수가 벤치 클리어링 중에? 이거 미친 거 아니야?-
-에이, 이거 구라인 것 같은데? 이게 만약 사실이면 다섯 경기 출장 정지 말이 안 되잖아.-
-근데 알음알음 소문이 돌고 있기는 했음. 듣기로는 당사자가 딱히 정식으로 항의를 하지 않아서 다섯 경기 처벌로 그쳤다는 말이 있더라고.-
-뭐? 그게 말이 돼? 인종차별 단어를 듣고 항의를 하지 않았다고?-
-그러니까. 이건 누가 봐도 그냥 사무국에서 자기들이 과한 징계 때려놓고 핑계 대는 것 같은데?-
-근데 이거 뉴스 쓴 애가 제법 공신력이 있는 기자임. 지난 번에 보스턴, 탬파 트레이드 제일 먼저 밝혔던 걔야.-
-뭐야? 그러면 이거 보스턴발 기사네. 언플 백퍼네. 만약 진짜 그런 일 있었으면 선수들 중 누군가가 SNS 통해서 의미심장한 멘션 남겼겠지.-
-야, 여기 봐봐. 제롬 스튜버츠가 어제 그런 거 남겼네.-
-제롬 스튜버츠?-
-어, 보스턴 이루수. 근데 팔로워도 너무 적고 멘션도 너무 모호해서 화제가 안된 듯. 근데 이거 사실 알고 보니까 존나 그럴싸한데?-
-뭐 어떻길래?-
-정의는 이뤄진다. 적혀있고 태그로 42가 적혀있음.-
-그게 뭐야?-
-42면 재키 로빈슨 등 번호잖아. 인종차별 암시 맞네.-
[제이크 스컬리 ‘황당한 소문에 당혹스럽다. 성민은 훌륭한 투수이며 양키스의 타자와 보스턴의 투수로 만났기에 다퉜을 뿐 나는 그를 존중한다.’]
필 니크로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이 녀석 자기 무덤을 너무 깊숙하게 파는군.
< 벌어 맞는 매가 더 아프다(2)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