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랜차이즈(6) >
[벌써 내년 시즌을 구상? 시즌 100패 위협 부산 마린스!!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다!!]
[통합우승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전력. 부산 마린스의 진짜 문제를 진단한다!!]
[하나가 되지 못하는 팀!! 160억짜리 구단 부산 마린스의 체질 개선을 위한 특단의 대책은?]
[더 이상 자를 머리도 없다!! 부산 마린스, 이대로 괜찮을까?]
바리깡을 사용해서 3mm로 빡빡 깎은 머리.
상무로 군대에 있을 때 헤어 스타일도 이렇지는 않았다. 옆과 뒤는 3mm로 빡빡 밀더라도 위는 12mm 정도로 층을 뒀다. 정말 죽도록 하기 싫었다. 하지만 하기 싫다고 뻗댈 수가 없었다.
젠장. 빌어먹을.
70패 즈음에는 선수 몇몇이 대표로 머리를 밀었다. 80패 때는 감독님과 코치님이 머리를 밀었다. 그리고 마침내 90패를 달성했을 때. 마린스 선수단은 전원 머리를 밀었다. 한 달 전에 머리를 밀었던 고참 선수들은 그게 좀 자라기도 전에 다시 또 박박 밀었다.
지금 사람들 헤어 스타일만 보면 여긴 거의 논산 훈련소다.
“이제 네 번 남았네.”
“어? 100패까지는 일곱 번 남았잖아.”
“그거 말고, 우리 구단 역대 최다 패 기록까지.”
“우리 97패나 했던 적이 있어?”
“어, TV에서 알려주더라. 32년 전에 했었다고. 역대 최다 패랑 동률이라던데?”
“뭐야? 그러면 우리 4패 더하면 또 뭔가 이벤트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번엔 뭐 사장님이라도 나와서 삭발해야 하나?”
“이 미친 새끼가?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낄낄거리며 농담을 주고받는 녀석들의 모습에 박동엽이 인상을 찌푸렸다.
저 빌어먹을 새끼들. 아주 염병을 하고 있다. 지금 자신이 누구 때문에 머리를 밀었는데 그걸 가지고 농담 따먹기라니. 아니, 애초에 동엽은 성적이 나쁘지도 않았다. 그냥 연대 책임이니 뭐니 하는 소리에 괜히 밉보이기 싫어서 억지로 함께 머리를 밀었다.
대체 성적과 머리 미는 게 무슨 상관인지는 의문이었지만 그래도 이게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유구한 전통이라니 뭐라 할 말도 없었다.
혹자는 정신력이 좋아진다. 뭐 그런 이야기도 있었지만 글쎄? 저 새끼들 하는 꼬라지를 보면 딱히 정신이 번쩍 들고 그런 효과는 없어 보인다.
사실 머리는 뭐 그렇다 칠 수 있다. 그래, 좀 쪽 팔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뭐 어디 클럽 같은 곳에 놀러 다니는 것도 아니고, 딱히 잘 보일 여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야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조폭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인상이 돼버리긴 했지만 그건 그렇게까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연봉.
그래, 빌어먹을 연봉이 문제다.
이번 시즌 박동엽은 놀랍게도 타격 성적에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시즌 종료까지 13경기가 남은 상황에서 588타석 507타수 139안타(2루타 21개, 3루타 3개) 29홈런 77볼넷 3몸에 맞는 볼 그리고 희생플라이 1개로 비율 스탯이 무려 0.274/0.372/0.499다. wRC+가 무려 123이나 된다. 올 시즌 유격수 골든 글러브가 확정적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유격수인데 팀에서 가장 높은 wRC+를 기록 중이다. 게다가 이 와중에 득점은 고작 51점, 타점도 62점밖에 안 된다는 점이 개그 포인트라면 개그 포인트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연봉이 상당히 인상돼야 했다. 조금 상황이 안 좋더라도 제법 인상돼야 했다. 하지만 지금 팀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 중의 최악이다. 인상? 젠장할.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고도 연봉이 깎이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다시 한번 웃고 떠드는 개자식들을 향한 분노가 새삼스럽게 타오른다.
‘저 빌어먹을 자식들 좀 빅 엿 좀 제발.’
박동엽이 이뤄질 수 없는 그 소원을 간절하게 소망했다.
***
마린스의 사장 송원경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게 정말이야?”
“이번에 스카우트 팀장으로 승진한 박경효 팀장의 이야기인데, 본인 말로는 확실한 정보원을 통해서 얻어 낸 소스라고 합니다.”
“관련된 기사 같은 거 나온 적은 있고?”
“현재까진 없습니다.”
“한국 기사 말고, 미국 쪽은?”
“그것도······.”
-쾅!!
송원경이 자신의 책상을 손바닥으로 내려쳤다.
“아니, 그 박 팀장인가 하는 사람이 뭐 얼마나 대단하길래 한국도 아니고 미국 본토 쪽에서도 이야기 하나 나온 적 없는 걸 알고 있다는 거야? 그 대단한 휴민트가 대체 누구길래.”
“그건 저도 잘······. 하지만 그 친구가 허풍은 조금 세도 빈말은 잘 하지 않는 친구고. 아 그리고 이런 기사는 있습니다.”
“프레스톤 윌슨 감독 열애설? 상대는 한국 출신? 하, 참나. 그러니까 지금 고작 이걸로 그가 뉴욕 메츠를, 미국을 버리고 한국으로 온다. 뭐 그런 소리야? 아니 좀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믿지. 프레스톤 윌슨 감독이 누구인지는 알아? 과장 조금 보태서 뉴욕 메츠 그 자체야. 왜? 강진호가 뉴욕 양키스 감독으로 간다고 하지. 차라리.”
송원경 사장의 비꼬는 말에도 단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딱히 뾰족한 수도 없고······. 무엇보다 사장님과 저는 박경효 팀장의 말을 믿고 일을 진행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닐까요?”
“그게 무슨······. 아니, 잠깐만?”
“일단 당장 뭔가 눈에 띄는 게 필요한 상황이니까요.”
송 사장이 곧바로 단장의 이야기를 이해했다. 물론 최종 책임자는 자신이겠지만 이렇게 되면 일이 잘못 풀리더라도 내세울 카드가 하나 더 생기는 셈이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커리어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야구단에 사장으로 왔던 다른 사람들과 자신은 다르다. 아직 본사에 쌩쌩한 라인이 살아 있다. 아무 일도 없던 거로 만드는 것은 무리겠지만, 면피용 카드를 내세울 수 있다면 한 번 더 기회를 얻는 것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게다가 만에 하나라도 이게 진짜 사실이라면?
‘확실히 대박이긴 하지.’
송원경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박 팀장 당장 내 사무실로 좀 올라오라고 해. 일단 이야기나 한번 해보자고.”
“알겠습니다.”
***
“그러니까 프레스톤 윌슨 감독이 이번 시즌을 끝으로 메츠랑도 재계약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들어온다?”
“네.”
송원경 사장이 미간을 찌푸린 채 자신의 안경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니까 구단 이미지 환기 차원에서 프레스톤 윌슨 감독을 한번 찔러 보고, 그걸 기사화해보자?”
박경효의 본능적인 직감이 소리쳤다.
이거 잘못 대답하면 엿 된다.
하지만 인제 와서 딴소리가 가능할 리가. 박경효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찔러 보는 게 아니라, 실제로 데리고 오는 게 어떤가 싶은 겁니다. 사장님도 지금 여론이 심상치 않은 거 잘 아실 겁니다. 13경기가 남은 상황에서 100패까지는 일곱 경기. 설사 지금부터 파이팅 있게 경기를 해서 운 좋게 100패는 면하더라도 4패만 더하면 구단 최다 패, 그러니까 역대 최다 패랑 타이기록이고, 거기서 한 경기만 더 나가도 역대 최다 패 경신입니다.”
“그건 박 팀장이 굳이 이야기 해주지 않아도 잘 알고 있고.”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마린스의 위기는 올해 만이 아니었습니다. 8888577 시절에는 이보다 더했습니다.”
“그것도 잘 알고 있고.”
“그렇다면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도 잘 아시겠네요.”
당시 마린스는 KBO 최초로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는 강수를 뒀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8888577이라는 매직 넘버를 찍던 마린스는 그의 부임과 동시에 3위를 기록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다.
“하지만 그 성공이 외국인 감독의 덕분이라는 보장은 없지. 게다가 그 시절의 KBO와 지금의 KBO는 수준이 많이 다르지.”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중요한 건 사람들의 기억이죠. 한번 성공해본 사람은 같은 방식에 더 큰 신뢰를 보냅니다. 게다가 그 시절의 KBO와 지금의 KBO가 다른 것 이상으로 불러올 감독의 수준 차는 더 크죠.”
사실이다.
당시 마린스의 감독으로 부임했던 그는 메이저리그에서는 고작 몇 개월. 임시로 감독직을 수행해본 것이 전부다. 반면 프레스톤 윌슨이라면 무려 10년에 가까운 세월을 메이저리그 감독으로 있었고 심지어 엉망진창이던 팀을 수습해서 우승까지 시켰던 경험을 가진 사람이다. 무엇보다 그는 선수로는 무려 명예의 전당에 오른 남자이며, 현역 시절 그 강진호와 같은 팀에서 함께 뛰었던 선수로 대한민국의 야구팬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유명인이기도 하다.
화제성만으로 따지자면 이 이상 가는 인선도 없다.
“메이저리그에서 감독직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오는데 과연 제안을 받아들일까?”
“애초에 프레스톤 윌슨 감독은 선수 생활 은퇴와 동시에 코칭스태프로 일을 시작할 만큼 야구광입니다. 은퇴를 선택한 것도 결혼으로 인한 한국행이라고 하니까, 한국에서 야구를 할 수 있다면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만약 설득에 실패한다고 해도 말씀하신 것처럼 당장에 화제를 돌릴 수 있는 이슈니까요.”
“설득할 자신은?”
“연봉만 충분히 맞춰주신다면 한 번 해보겠습니다.”
“연봉이라······.”
송원경 사장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래, 연봉. 무려 메이저리그 우승 경력 감독의 연봉이다. 대체 얼마를 줘야 가능할까?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박경효가 성민과 있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이 영리한 후배는 가장 좋은 이야기를 막판에 내놓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최종적인 결정에 큰 영향을 준다.
“2년 전에 공 감독님이 통합우승하시고 연 6억에 3년짜리 재계약했잖습니까.”
“그렇지. 덕분에 우리는 내년에 6억을 꽁으로 날리게 생겼고.”
“프레스톤 윌슨 감독을 데리고 오려면 KBO 감독들의 평균적인 연봉보다는 훨씬 높은 금액을 줘야 할 겁니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그 금액이 상상하신 것처럼 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메이저에서 뛰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오는데 우리가 얼마를 쓰는지는 알고 하는 이야기지?”
“물론 메이저에서 뛰는 연 8만 달러도 못 버는 선수를 용병으로 데려오는데 100만 달러씩 쓰는 게 현실이긴 합니다만, 프레스톤 윌슨 감독의 경우는 애초에 한국으로 오려는 사람에게 제안하는 거라는 점을 생각해주셔야 합니다.”
확실히 박경효의 이야기가 옳다면 그 부분에서는 일말의 가능성 정도는 있다. 하지만······.
“현역 메이저리그 감독이야. 애초에 연봉 자체가 연 8만 달러도 못 버는 마이너리거들과는 차원이 달라.”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게 메이저리그와 KBO 감독의 평균적인 연봉이라는 것이 KBO 선수와 MLB 선수의 연봉만큼 심각하게 차이가 나는 게 아니라서요. 이번 시즌 메이저리그 감독들 평균 연봉이 143만 달러입니다. 프레스톤 윌슨 감독의 경우 그중에서 180만 달러로 제법 높은 편이기는 합니다만······.”
“20억?”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확실히 걱정했던 것처럼 천문학적인 금액은 아니다. 당장 KBO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감독이 8억7천씩 받아간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아, 물론 아무 계획 없이 그만한 지출을 하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당장 이번 시즌 저희 선수단 연봉이 160억이었는데 그중에서 FA 선수들이랑 외국인 선수 연봉을 제외하면 50억 정도 됩니다. 이번 시즌 성적이 있으니 연봉 삭감을 하고, FA 선수 중에서도 재계약 들어가는 녀석들 크게 삭감이 가능할 겁니다. 게다가 코치진도 연봉동결을 하면······.”
“올해랑 비슷한 수준에서 가능하다. 뭐 그런 이야기로군. 김 단장. 저거 가능하겠어?”
“정확한 수치는 계산을 해봐야겠지만, 얼추 가능할 것 같습니다.”
“오케이. 알겠어. 그러면 이번 일은 박 팀장이 알아서 한 번 추진해봐. 김 단장은 박 팀장이 지원해달라는 거 팍팍 지원 해주고.”
***
양키스와의 시즌 마지막 시리즈.
1차전을 하루 앞둔 저녁.
성민의 스마트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뉴욕 메츠 감독님-
프레스톤 윌슨이었다.
< 프랜차이즈(6) > 끝
ⓒ 묘엽
작가의 말
여러분은 현재 정통 야구 소설 너클볼을 실시간으로 함께 하고 계십니다.
210화에 마린스가 KBO 최다패 기록은 안 가지고 있다던 문단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