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229화 (230/287)

< 프랜차이즈(5) >

2034년 9월 24일 저녁 10시 31분.

부산 마린스는 시즌 131번째 경기를 패배로 장식했다.

38승 93패.

최근 10번의 경기에서 2승 8패.

0.298의 승률은 0.290까지 떨어졌다. 36승 85패까지만 하더라도 ‘그래도 남은 경기가 23경기 남았고 그중에서 8승만 하면 되는데 설마 100패까지 하겠어?’라고 생각하던 마린스 팬들은 경기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성큼성큼 다가오는 100패의 위협 앞에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진짜 100패야? 진짜 100패야? 진짜 100패야?-

-이제 13경기 남았으니까 지금 페이스면 3승 10패 하고 41승 103패로 시즌 마감하겠네.-

-과연 우리가 40승이나 할 수 있을까?-

-우리 이번 시즌 연봉 총액 2위 실화?-

-KBO 수준 보소. 언제 이렇게 KBO 수준이 올라갔냐? 페이롤 160억짜리 팀이 압도적 꼴찌로 승률 0.290이네.-

-NPB가 이번 시즌 평균 페이롤이 250억쯤 된다고 하던데. 우리 지금 NPB에서 뛰고 있는 거 맞지?-

-이번 시즌 탬파베이 페이롤이 600억인데 승률이 0.396이더라. 우리 지금 거의 메이저급 수준에서 뛴다고 봐야지.-

-예전부터 말했지만 난 어정쩡하게 끝나느니 이번 기회에 100패 해버려서 팀이 아주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다. 돈만 처먹는 노땅들 싹 자르고, 프런트 전부 물갈이 가야지.-

-공 감독 모가지는 100패 아니더라도 확정이고, 코치진은, 어휴. 솔직히 다 모가지가 정상인데 마린스 프런트 새끼들 하는 꼬라지 보면 모르겠다.-

-마린스가 그 철밥통 공무원들 모가지를 치겠냐? 백퍼 그냥 강용구가 감독 자리 물려받겠지.-

-와, 그러니까 이제 13경기 남았는데 7승을 하면 99패로 100패 면하는 거고, 6승 하면 100패 달성인 거네? 지금까지 승률이 0.290인데 갑자기 5할 승률을 해야 한다고? ㅋㅋㅋ. 100패 각 씨게 나온다.-

-이 팀이 진짜 2년 전에 통합우승했던 팀 맞냐? 이 정도면 진짜 세계관 최강자다. 가슴이 웅장해진다.-

-김성민 하나 빠졌다고 이렇게 된다고? 아니, 그래 성민이가 등판하는 경기마다 거의 다 승리하긴 했어. 근데 그래봤자 30경기 25승이었잖아. 그래, 진짜 최악으로 쳐서 그거 25경기 전부 다 패배했다고 치자고. 그래도 60승은 해야지. 대체 왜 38승임?-

-에이스가 연패 끊어주고 팀 사기 올려주는 게 그래서 중요한 거다. 그냥 1승 1승이 다가 아니야.-

-100패 달성 일에 같이 사직 구장 불 지를 사람 구함(1/∞)-

-100패 달성 일에 같이 사직 구장 불 지를 사람 구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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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패 달성 일에 같이 사직 구장 불 지를 사람 구함(10037/∞)-

그야말로 폭동의 분위기.

당연히 마린스의 프런트뿐만 아니라, 모기업까지도 이 엄청난 사태에 비명을 내질렀다. 아니, 사실 모기업의 경우 이런 상황이 오기 한참 전부터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다.

“어떻게 하더라도 100패만큼은 절대 안 돼요. 알겠습니까?”

말은 존댓말이었지만, 태도는 달랐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눈. 그야말로 당장이라도 눈앞의 남자를 칼로 찔러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이다.

“네. 물론입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것만큼은 반드시······.”

“지금 제가 장난하는 게 아닙니다.”

본래 마린스의 사장 자리는 그룹의 파워 게임에서 밀린 임원이 마지막으로 1년 혹은 2년 정도 자신의 직장생활을 정리하는 자리였다. 시집 못 간 딸이나 장가 못 간 아들이 있으면 후딱 시집, 장가보내고 임직원 혜택 최대한 땡겨쓰고 은퇴하는 자리다.

그런데 2년 전, 통합우승으로 당시 사장이었던 김호산은 그 불문율을 깨트리고 본사의 전무 이사로 영전을 했다. 또한, 통합우승의 그 어마어마한 경제적 효과에 놀란 그룹에서는 김호산 사장의 후임 사장으로 장래가 유망한 젊은 임원 송원경을 떡 하니 앉혀 두었다.

그리고 그 장래가 유망했던 젊은 임원 송원경은 이제 당장 내년이면 목이 댕강 될지도 모르는 위험에 처하게 됐다.

“어떻게든 100패만 막으세요. 그러면 1년 정도는 더 기회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날아가면 단장님이라고 무사할 거로 생각하지 마세요. 단장님도 이제 영영 이 바닥에서는 발 못 붙이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네!!”

“뭐든 무슨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든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100패는 절대 안 됩니다. 절대요.”

저런 대화가 오고 간 것이 벌써 한 달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13경기가 남은 상황에서 38승 93패.

현실에서 눈을 돌릴 만큼 그들은 멍청하지 않았다.

“여론을 돌릴 방법을 알아봐야 해. 이제는 그것밖에 없어. 이것저것 다 소용없었던 건 알지만 당신도 살고 나도 살 방법은 그것뿐이라고. 어?”

극심한 스트레스는 언제나 탈모를 부르는 법. 공손하던 말투가 사납게 변한 것처럼 모발 역시 그러했다.

40대 후반답지 않은 풍성한 모발을 자랑하던 송원경 사장의 정수리에는 어린아이 주먹만 한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물론 단장의 모발 역시 무사하지는 못했다. 탈모를 감추기 위해 머리를 박박 밀었지만, 안쓰럽게도 탈모 지역을 제외한 곳에서 파르스름하게 자라난 머리카락들이 그의 탈모가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알려주었다.

“저, 그게 사실 한 가지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방법이 생기긴 했습니다.”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방법? 확실해?”

“네, 그게 이번에 우리 프런트 팀에 팀장으로 승진한 녀석이 가져온 방법인데요······.”

***

“선배!!”

“오, 성민아. 갑자기 무슨 일로 전화를 다 줬어? 요즘 시즌 막판이라서 한창 바쁘지 않아? 아 참, 맞다. 네 경기는 아주 잘 보고 있다. 요즘 아주 내 스트레스 해소 창구가 네 경기밖에 없어요.”

“어휴, 별말씀을 다. 그보다 선배 이번에 팀장으로 승진하셨다면서요. 제가 조금 더 자주 연락드렸어야 하는 건데. 이번에 그 소식 듣고 연락 드린 겁니다. 선물도 하나 보냈는데, 아마 좀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비행기 택배로 보냈지만 그래도 미국이랑 한국이랑 거리가 있으니까요.”

박경효의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다.

그는 가끔 TV에서 성민이 활약을 할 때마다

‘아, 성민이? 친하냐고? 당연하지. 팀에 있을 때 나를 얼마나 많이 의지했는데. 메이저 간 것도 다 내가 중간에서 열심히 일해준 덕분이야. 그냥 팀의 선수와 직원이 아니지. 원래 야구계라는 게 다 인맥이야. 고등학교 선, 후배면 엄청 끈끈한데 성민이랑 나는 그중에서도 좀 특별했지. 아, 요즘 연락하냐고? 뭐 가끔? 근데 미국이랑 우리나라랑 시차도 있고, 요즘 워낙 바쁘기도 하니까 예전만큼은 아니지.’

라며 허세를 떨곤 했다. 하지만 이렇게 성민이 직접 자신의 승진을 축하하기 위해 전화를 주다니. 그것도 한국의 시간에 맞춰서.

“별 건 아니에요. 그냥 선배가 그 좋아하던 젊은 여배우 있잖아요.”

“베키 볼튼?”

“네, 그 친구가 이번에 찍었던 영화 소품에 사인받아서 보냈어요.”

박경효가 침을 꼴깍 삼켰다.

확실히 거물이 됐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스크린에서나 보던 스타의 사인을 그것도 영화에 사용된 소품에다가 사인까지 받아서 보내다니. 새삼 성민과 자신의 차이가 더 크게 느껴졌다.

박경효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이어갔다.

“아, 뭐 굳이 그런 걸 다 챙기고 그러냐. 경기 뛰는 것만 해도 정신없을 텐데. 거기다가 지금 거긴 새벽 아니야?”

“에이, 별거 아니에요. 선배 승진했는데 가서 축하는 못 해주더라도 이 정도는 해야죠. 그리고 시간은 뭐 좀 늦긴 했는데, 딱 한국은 점심시간일 것 같더라고요. 선배 승진도 해서 바쁜데 업무시간에 전화 걸면 좀 그렇잖아요.”

“새끼, 별걸 다 신경 쓴다. 인마 형이야. 이제는 팀장이라서 파티션도 큼지막하고 담탐 가더라도 눈치 줄 사람도 없으니까 그런 건 걱정도 하지 마라.”“흐흐, 하긴 이제 선배 짬이면 프런트에서도 선배 무시할 사람이 없긴 하죠.”

“당연하지. 뭐 너야 이제 여긴 눈에 차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해. 선배 좋다는 게 뭐냐.”

“어휴, 눈에 차지도 않다뇨.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누가 뭐래도 마린스는 제 고향 아닙니까. 원래 연어도 그렇고 사람도 나중에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게 돼 있잖습니까.”

“성민이 너 설마?”

“당연하죠. 저도 나중에 마린스에서 감독 모자 한 번 써 봐야죠. 대 부경고에서 야구를 시작했으면 어? 마지막으로 마린스 감독 모자 한번 딱 쓰는 게 또 짜세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그때 되면 선배님이 딱 단장하고 계실 테니까 또 이게 각이 아름답게 잘 나오지 않겠습니까?”

“크, 역시 새끼 넌 낭만이 있어.”

“선배님, 저 부경고 117기 김성민입니다.”

성민의 넉살과 함께 두 사람이 한참 사담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요즘 아주 죽겠다니까. 아니 팀 성적 안 나오는 게 어디 스카우트 팀 잘못이냐? 우리는 시키는 대로 딱딱 잘하고 어? 분석 똑바로 해다 줘도 그거 제대로 못 받아먹은 건 윗대가리들인데 사실 나도 요새는 아주 마음만 같아서는 다른 팀으로 확 옮겨버리고 싶어. 그런데 어쩌겠냐? 부경고를 나왔으면 그래도 마린스잖냐.”

“그렇죠. 하여간 이래서 야구도 모르는 것들이 단장이니 사장이니 있으면 안 돼요. 그래도 어? 필드에서 뽈도 좀 던지고, 빠따도 좀 돌리고 흙먼지 섞인 도시락도 좀 먹어보고 이런 맛이 있어야 팀 운영이고 뭐고 제대로 하죠.”

“그러니까.”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사담의 끝은 뒷담화다. 게다가 요즘 마린스의 성적이 엉망진창이었던 만큼 뒷담화의 강도는 상당했다.

“하여간 선배님도 괜히 이런 타이밍에 팀장 자리 잡으시는 바람에······.”

“위에선 뭔가 특단의 대책 같은 걸 내놔보라고 쪼아대는데, 스카우트 팀이 어디 그런 거 내놓는 팀이냐? 그런 건 운영팀이나 전력분석팀이랑 상의해야지. 우리는 어? 고등학교랑 대학교 돌아다니기도 바빠요.”

“알죠. 근데 어쩝니까. 이 모든 게 다 선배님 능력이 워낙에 출중하신 탓인데요.”

“새끼, 하여간 잘 빤다니까. 어쨌거나 내가 요즘 그러고 있다. 덕분에 용구형도 아주 죽을라고 그래.”

“수석 코치님이요?”

“그래, 요즘 팀 분위기로는 공 감독 물러나더라도 감독 자리 무사히 받기는커녕 코치진 단체로 싹 물갈이를 해 버릴 기세야. 뭐 그럴 만도 하지. 시발 100패가 뭐냐? 100패가.”

성민이 짐짓 놀란 목소리로 답했다.

“네? 코치진을 싹 갈아치운다고요? 아니 성적 안 나오는 게 뭐 코치진 잘못이라고 그걸 싹 갈아요? 2년 전에 통합우승했을 때 코치진이랑 지금이랑 뭐가 다르다고? 게다가 코치진 싹 갈아치우면 뭐 어디서 누굴 데리고 오려고 그딴 짓을 해요?”

“뭐 다른 팀 출신에 백수로 놀고 있는 애들 데리고 오거나, 아니면 적당히 다른 팀 코치들 돈 많이 주고 빼 오겠지.”

“진짜 미쳤네. 아니 갈아치우려면 단장이랑 사장 그리고 전력분석팀 애들을 갈아치워야죠.”

“별수 없지. 눈에 확 띄는 건 코치진이니까. 게다가 걔들도 지네 자리 지키려고 그러는 거니까.”

성민이 잠시 침묵했다.

“선배······.”

“어?”

“아, 아니에요.”

“뭔데?”

“진짜 아무것도 아니에요.”

“성민아, 나 지금 막 섭섭해지려고 그런다? 대체 뭔데 그러는 거야?”

“아, 이건 진짜 말하면 안 되는 건데.”

“뭔데?”

“선배, 이거 정말 진짜 선배만 알아야 하는 비밀이에요. 이거 흘러 나가면 정말 난리나요.”

“야, 너 나 못믿냐?”

“믿죠. 믿는데 이게 워낙 중요한 일이라, 아 나도 모르겠다. 선배 진짜 저 선배 믿습니다? 그게 그러니까······.”

성민의 이야기가 이어짐에 따라 박경효의 눈도 점점 더 커졌다. 동시에 필 니크로의 웃음도 점점 커졌다.

-그래, 어떤 의미에서 저 녀석을 확실히 믿고 있긴 하지.

박경효가 입을 다물 리 만무하다는 것을.

< 프랜차이즈(5)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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