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랜차이즈(4) >
사람들은 쉽게 망각한다.
아무리 좋은 기억이라도, 아무리 나쁜 기억이라도 시간의 흐름 앞에서는 버텨내지 못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기록이라는 것을 한다.
사진으로 글로. 그리고 영상으로.
망각한 기억은 그때의 기록들을 다시 펼쳐보는 순간 되살아난다. 만약 그 순간이 인상적이었다면 인상적이었던 만큼 그 기억은 더욱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그 기사는 어느 위대한 선수의 마지막을 조명하며 시작됐다.
40대의 동양인이 다리를 절뚝거리며 홈 베이스를 밟는 사진이 있었다. 그것은 메츠 황금기의 주인공인 강진호의 마지막 득점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강진호를 홈으로 들여 보내준 안타의 주인공인 프레스톤 윌슨이 2루 베이스를 밟고 서 있는 사진이 이어졌다. 그는 결국 홈플레이트를 밟지 못한 채 내려왔다.
‘아무도 부정할 수 없었던 메츠의 황금기. 홈 베이스를 밟는 저 위대한 선수의 뒤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당시 메츠의 감독이었던 조 매든의 사진과 그가 과거의 어느 인터뷰에서 했던 발언이 이어졌다.
“강진호가 은퇴한 직후, 그의 빈 자리를 메우기는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사실 구단 내부에서는 그가 1년 정도는 더 뛰어줄 것이라고 예상했거든요. 실제로 성적은 나쁘지 않았고요. 하지만 그의 몸 상태는 도저히 시즌을 이어갈 상태가 아니었죠. 덕분에 메츠는 전면적인 재조정이 필요했습니다. 외부적으로는 우승을 노린다고 이야기했지만, 구단 내부 분위기는 일단 1년을 일단은 쉬어간다. 뭐 그런 분위기였죠.”
<프레스톤 윌슨의 43세 시즌 사진>
“우리가 이걸 이겼네?”
‘선수 프레스톤 윌슨이 마지막 우승 반지를 손에 얻던 날에 했던 발언이다. 우리는 메츠의 황금기를 기억한다. 포스트시즌에 나가는 것은 너무 당연했고, 지구 우승은 밥 먹듯이 했으며 2년에 한 번 정도는 우승해주는 것이 너무 당연했던 바로 그 시절.
그렇기에 우리는 2018시즌의 그 우승을 너무 ‘당연한 일’ 정도로 그냥 넘겼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건대, 그것은 분명 기적이었다. 그리고 그 기적의 중심에는 현역 마지막 불꽃을 불태웠던 프레스톤 윌슨이 있었다.
그는 커리어 22년 동안 2,987개의 안타와 501개의 홈런. 1년을 연장하면 3,000안타를 칠 수 있었음에도 그리고 1년 연장계약 정도는 얼마든지 얻어낼 수 있었음에도 은퇴를 선택했던 위대한 선수였다.
하지만 그가 우리에게 진정으로 위대하게 기록되는 것은 메츠 황금기의 마지막을 그가 장식했다는 것 때문이 아니다.’
<프레스톤 윌슨 50세 당시의 사진.>
‘그는 선수 생활 전체를 메츠를 오직 메츠를 위해 헌신했다. 그의 전성기 당시 메츠에서 제시한 금액보다 훨씬 높은 금액에 그를 데려가려는 팀은 무려 여섯 팀이나 됐다. 하지만 그는 메츠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의 헌신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무려 22년 동안이나 메이저리그에서 올스타급 주전으로 뛰었던 남자였다. 비록 디스카운트를 했다고는 하지만 그의 연봉 총액은 2억 달러가 훌쩍 넘어간다. 은퇴 후의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기에는 차고 넘치는 금액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제2의 인생 역시 메츠를 선택했다. 코치로, 마이너의 감독으로 그리고 마침내 메츠의 감독까지.
그가 7년 만에 뉴욕 메츠의 감독으로 돌아왔을 때, 메츠의 상태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추후 메츠의 새로운 황금기를 이끌어 갈 것이라 기대했던 4인방 가운데 데이비드 라이트는 진즉에 부상으로 은퇴했고, 신종운 역시 마의 2천 이닝 앞에 무너졌다. 제이슨 바틀렛은 팀의 대우에 불만을 표시한 채 시카고 컵스로 적을 옮겼고, 호세 레예스만이 은퇴를 앞둔 채 고군분투하던 상황이었다.
데이비드 라이트는 준비된 캡틴이었다. 강진호는 긴 시간 그를 캡틴으로 성장시켰다. 우습게도 그렇기에 호세 레예스는 전혀 준비되지 않은 캡틴이었다. 돌이켜 보건대 그는 좋은 선수였지만 좋은 리더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마지막 2년 동안 그나마 제대로 된 캡틴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프레스톤 윌슨의 공로였다.’
<프레스톤 윌슨 55세. 커미셔너 컵을 들어 올리는 사진.>
‘엉망이 된 명가가 되살아나는 데는 5년이라는 시간에 필요했다.
프레스톤 윌슨 감독은 자신의 거의 모든 시간을 팀을 위해 헌신했다. 당시의 수많은 선수가 증언한다. 프레스톤 윌슨 감독이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았는지를. 무엇보다 그는 선발 라인업에서 선수를 넣고 빼는 것조차도 선수들에게 통보가 아닌 설득을 했다고 한다.
그는 팀의 그 어떤 선수도 감히 권위에 도전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커리어를 가진 감독이었다. 그렇기에 이는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현재,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젓는 프레스톤 윌슨 감독의 사진.>
‘사람들은 21년 동안 11번이나 커미셔너 컵을 들어 올렸던 뉴욕 메츠를 기억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재의 메츠는 그 시절과는 다르다.
지난 우승 이후 프레스톤 윌슨 감독은 몇 년 동안 꾸준히 팀의 재정비를 요청해왔다. 이는 현대의 야구팀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뉴욕 양키스나 LA다저스를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메츠가 그들에 비해서 뭐가 부족하냐고.
하지만 그들은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코어라고 할만한 선수가 존재했다. 또한, 현실적인 자금력 역시 캘리포니아 마켓을 거의 독점하는 다저스나 양키스 미디어 그룹의 수익 모델이 구단 전체 수익을 아득하게 능가하는 양키스와는 감히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아, 작년에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진출하지 않았느냐고? 물론 그렇기는 하다. 하지만 본 필자가 생각할 때 그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마치 2018년 메츠의 우승처럼 말이다. 다만 당시와 달랐던 것은 프레스톤 윌슨이 선수가 아닌 감독으로 있었다는 점뿐이다.’
<넓은 집, 홀로 앉아있는 프레스톤 윌슨 감독.>
‘만 18세에 드래프트 되어 마이너에서 4년. 만 22세의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여 43세까지. 그리고 곧바로 코치진으로 시작하여 다시 현재까지.
프레스톤 윌슨이라는 사나이는 자신의 인생 전부를 오직 뉴욕 메츠를 위해 헌신했다. 그의 지난 시간은 오직 야구와 메츠뿐이었다.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프레스톤 윌슨 감독은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뉴욕 메츠를 묵묵히 지탱해온 거인이라는 사실을.
또한, 이 거인도 이제는 자신의 삶을 찾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
성민이 기사에 상당히 만족했다.
“이 정도면 잘 뽑혔는데요? 프레스톤 윌슨 감독을 잘 모르는 저도 괜히 울컥해지는 것 같아요.”
-잠깐만, 성민아 너 분명 메츠 팬이라고?
“에이, 저 메이저리그 잘 모르는 거 아시잖아요. 물론 어릴 때 강진호 선수 경기 많이 나오기는 했지만 전 그거 볼 시간에 공 하나 더 던졌죠.”
뭐, 이제는 딱히 놀라운 일도 아니다.
“어쨌거나 이 기사를 시작으로 이제 프레스톤 윌슨 감독에 관한 미담들이 쏟아지기 시작할 겁니다.”
처음 성민에게 계획을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필 니크로는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니까 프레스톤 윌슨 감독에 대한 호의적인 여론을 만들겠다고?
“네.”
-프레스톤 윌슨 감독의 은퇴에 대한 비난이 너희 어머니에게 몰리는 걸 막기 위해서 움직이겠다더니. 프레스톤 윌슨 감독이 좋은 감독이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 퍼질수록 너희 어머니에 대한 여론은 안 좋아지는 것 아니냐? 게다가 프레스톤 감독이 자기 입으로 자기 기량의 문제로 은퇴하겠다고 말하기로 약속을 하지 않았더냐.
“그렇죠. 그러니까 더더욱 이렇게 움직여야죠.”
현재 프레스톤 윌슨 감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인터넷에 부정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들 대부분은 현재 메츠의 성적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메츠 팬들의 다수인가를 생각해본다면 또 그렇지도 않다. 다수의 팬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게다가 메츠의 성적에 불만이 가득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것은 ‘현재의 성적’이다. 프레스톤 윌슨이라는 사람 자체를 봤을 때 그를 싫어하는 메츠의 팬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프레스톤 윌슨 감독님은 진짜 대단하기도 대단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조금 짠한 이미지가 있잖아요.”
-짠하다?
필 니크로가 잠시 생각해봤다. 메츠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주역 중 하나인 프레스톤 윌슨이 짠한가? 분명 그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고 야구의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거인이다. 하지만 인간 프레스톤 윌슨은?
-확실히 좀 그런 면이 있긴 하지.
조금 슬프지만 이건 긍정을 할 수밖에 없다.
그는 평생 죽어라 야구만 했다. 선수 시절에도 이렇다 할 열애설 같은 거 하나 없이 정말 죽어라 열심히 야구만 했다. 그렇다고 은퇴를 한 이후에 뭔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래도 코치 생활 초창기에는 선수 시절보다는 조금 여유가 있었지만, 메츠의 감독을 맡은 이후로는 또 여가 시간도 없이 죽어라 야구에만 집중했다.
“그러니까 바로 그걸 노리는 겁니다. 일단 이번 시즌 메츠의 성적에 관한 쓸데없는 이야기는 선수 프레스톤 윌슨과 감독 프레스톤 윌슨의 좋은 이미지로 눌러버리고 은퇴, 그리고 결혼에 관한 부분은 인간 프레스톤 윌슨의 짠한 부분으로 밀고 나가는 거죠.”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될까? 네 말처럼 선수 프레스톤 윌슨과 감독 프레스톤 윌슨의 좋은 이미지가 부각되면 메츠의 팬들은 그를 놓치는 걸 더 안타까워할 것 같은데?
“그러니까 여기서 윌슨 감독의 짠한 모습이 한 번 더 나와줘야죠. 나이를 먹으니 예전 기량이 아니다. 이제는 은퇴할 시기가 된 것 같다. 메츠의 앞날을 위해서 물러나겠다. 이렇게 되면 이번 시즌 성적에 불만을 가졌던 사람들도 만족. 그리고 프레스톤 윌슨 감독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팬들은 그의 인간적인 모습에 응원을 보내겠죠.”
확실히 말이 되는 것 같긴 한데······.
“게다가 조금은 어긋나도 사실 상관은 없어요. 어찌 됐건 저런 식으로 굴러가면 우리 엄마가 프레스톤 윌슨 감독의 은퇴를 앞당겼다 뭐 이런 이야기는 거의 안 나올 테니까요. 그보다는 ‘인간 프레스톤 윌슨’을 구제해줬다는 이미지가 더 강하게 박히겠죠.”
-하지만 프레스톤 윌슨이 이렇게 화제가 되면 너희 어머니와의 결혼도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될 텐데?
“그거야 뭐 감수해야죠. 게다가 어차피 김성민의 모친과 프레스톤 윌슨 감독의 결혼입니다. 이건 화제가 안 되려야 안 될 수가 없어요.”
성민의 이야기는 여러 가지로 말이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필 니크로는 약간의 미진함을 느꼈다. 지금까지 성민이 보여줬던 행보를 생각한다면 고작 이 정도? 라는 느낌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역시 성민은 성민이었다. 야구라면 몰라도 이런 쪽 일로는 애초에 그가 걱정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뭐, 요즘은 야구도 별걱정이 안 되기는 한다만······.
인터넷에 프레스톤 윌슨에 관한 특집 기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하는 그때, 성민이 준비한 또 하나의 카드가 발동했다.
< 프랜차이즈(4)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