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226화 (227/287)

< 프랜차이즈(2) >

“이거 내가 인터뷰라도 해야 할까?”

“아냐, 엄마. 그런 거 하면 오히려 긁어 부스럼이야. 괜히 더 시선만 잡아끄는 일이 될 거야.”

“그러면?”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봐. 내가 좀 더 알아보고 다시 연락할게.”

모든 어린 아이에게 그렇지만, 부모란 항상 커다란 담장이나 방파제처럼 든든한 존재다. 물론 어른이 되고 사회에 나와 흔들리다 보면 부모님의 커다랗던 등은 점점 작아지기 마련이지만, 성민에게 권 여사는 달랐다.

프로 야구 선수라는 직업적 ㅁ특성상 성민의 사회는 다른 사람보다 조금 협소했고, 권 여사는 보통의 부모님보다 조금 더 든든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이것은 성민에게는 처음 경험하는 매우 생소한 일이었다.

엄마가 어려움을 토로하다니.

물론 전자제품의 사용법이라든지, 자질구레한 일을 묻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인간을 상대하는 부분에서 고민하는 권 여사를 보는 것은 처음이다.

미국이라는 땅이기 때문일까?

-글쎄다.

필 니크로가 보기에 그것은 성민에게는 항상 강해야 하는 ‘엄마’인 권 여사가, 누군가에게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성민 역시도 알고 있을 것이다. 단지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을 뿐이겠지. 엄마의 행복을 비니 뭐니 멋지고 쿨한 척은 다 하고 있지만, 진심으로 엄마의 재혼을 환영할 수 있는 자식을 찾기는 쉽지 않으니까.

-그보다 대체 뭘 어쩔 생각이냐? 내가 보기엔 이건 그대로 두는 편이 훨씬 나아보이는데.

“뭐, 확실히 좀 그런 면이 있긴 하죠.”

인터넷 기사들이 나오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대수로운 기사들도 아니다. 그저 그런 기사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내용 없는 외침이다. 얼마 후면 에이전시나 구단의 항의로 싸그리 내려갈 기사에 불과하다. 물론 캡처된 사진들은 잠시 인터넷을 떠돌겠지만.

-어차피 어떤 기사가 떠도 입방아를 찧을 사람들은 찧기 마련이다. 프레스톤 윌슨이면 이미지도 좋은 편이고, 실제로 메츠를 위해 긴 시간 헌신 했지. 큰 성과도 거뒀고. 퇴임하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어차피 잠잠해질거야.

“전 오히려 그래서 좀 문제일 것 같아요.”

-뭐가?

“프레스톤 감독이야 뭐 상관이 없죠. 근데 그 아저씨 이미지가 너무 좋아요.”

-그러면 좋은 거 아니냐?

“그 이미지 좋은 아저씨가 메츠에서 영원히 은퇴를 하는데 그 원인이 우리 엄마라는 게 문제죠.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냥 조용히 구설수 없이 은퇴하면 또 모를까, 지금 이런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데요.”

확실히 성민의 말을 들으니 또 그렇다. 권 여사도 필 니크로도 지금 당장 사건이 터진 프레스톤 윌슨에게만 신경이 쓰였는데, 그 와중에 성민은 프레스톤 윌슨이 아닌 권 여사에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건 확실히······.

“무슨 수를 쓰기는 써야겠어요.”

-너희 어머니가 부탁한 건?

“그거야 영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조금만 시간 지나면 알아서 해결될 문제잖아요. 그보다 지금은 엄마가 신경 못 쓰는 부분을 케어해줘야죠. 물론 지금은 사랑에 눈이 멀어서 다 괜찮다고 그러시겠지만, 막상 또 이게 악플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요.”

-그래서 생각나는 방법은 있고?

필 니크로의 질문에 성민이 웃음으로 답했다.

***

스티브 저먼은 상당히 당황한 상태였다.

일이 이렇게 진행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애초에 그가 기대한 것은 프레스톤 감독이 직접 은퇴를 발표한 이후 관련된 기사들을 선점하는 정도? 그리고 혹시라도 구단에서 거래가 들어오면 약간의 이득을 받겠다. 뭐 그 정도의 생각이었다.

물론 지금도 이슈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다. MLB.com이나 ESPN, Fox Sports등의 대형 매체에서 다뤄지는 뉴스도 아니고, 그냥 커뮤니티에서 약간 이야기가 오가는 정도다. 하지만 그 이야기의 방향성이 별로 좋지 못했다.

혹시 이러다가 프레스톤 윌슨 감독이 은퇴 발표라도 한다면, 어차피 은퇴를 앞두고 태업을 한 게 아니냐. 뭐 이런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른다. 스티브 저먼은 어린 시절, 뉴욕 메츠를 보고 자라났다. 그런 그에게 프레스톤 윌슨 감독은 영웅이었고, 그 영웅의 말년을 자기 손으로 망가트리는 것은 그야말로 악몽 그 자체다.

“아니야, 그래도 설마 구단에서 그냥 내버려 두진 않겠지. 금방 다 내려 갈 거야. 게다가 애초에 내 기사랑은 방향성 자체가 다르잖아.”

그리고 그때, 스티브 저먼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차드 도넬리-

맙소사.

뉴욕 메츠의 홍보팀장이다.

“헤이, 스티브.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이런 게 있으면 나에게 먼저 연락을 줬어야지. 그래도 우리 사이가 그 정도는 된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유감이야. 차드. 나도 이런 식으로 일이 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어. 프레스톤 감독님이 누군가를 만나는 건 사실 좋은 뉴스잖아.”

“지금 우리 팀 상황에서는 그리 좋은 뉴스라고 볼 수가 없지.”

“젠장, 팀 상황이 그런 건 프레스톤 감독님 잘못이 아니잖아. 이번에 너희 스카우트팀이랑 전력분석팀이 환상적으로 멍청한 짓을 한 탓이지.”

“그 의견에는 나도 격하게 동의하지만, 어쨌거나 지금 상황은 그런 걸 논할 때가 아니잖아.”

스티브 저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차드 도넬리가 전화를 건 용건을 먼저 입 밖으로 꺼냈다.

“사진은 아무 곳에도 유출하지 않았어. 당장은 일이 더 커질 만한 기사는 나오기 힘들 거야.”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윌슨 감독님 단독 인터뷰를 줘.”

“뭐라고? 일을 더 키울 생각이 없다며 갑자기 그건 왜?”

“능청 떨지 마. 윌슨 감독님 올해를 끝으로 재계약 안 하시는 거 잘 알고 있으니까.”

차드 도넬리가 잠시 말을 멈췄다.

“젠장, 그건 또 어디서 어떻게 알아낸 거야?”

“그거야 알 필요 없고. 내가 얼마나 신사적으로 나왔는지 이제 좀 알겠어?”

“그래, 확실히 이 정도면 신사적으로 나왔네. 윌슨 감독님 단독 인터뷰는 내가 한 번 추진해볼게. 대신 시즌 완료되고 공식 발표 전까지는······.”

“그럴 거 아니었으면 진즉에 터트렸을 거야. 그리고 나머지는 알지?”

“그래, 겨울 트레이드 소식 들어오는 대로 너에게 제일 먼저 전해 줄게.”

추가로 사진이 유출돼서 이야기가 점점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했던 전화에서 생각보다 큰 소득과 생각보다 큰 부담을 동시에 얻었다. 정규시즌이 종료되기까지는 앞으로 보름 정도. 일단 정규시즌이 끝나면 뭐 이것저것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도, 포스트시즌 경기들에 조금 묻힐 수 있다.

수화기 너머 스티브 저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또 뭔데?”

“내가 찍은 사진이야 유출 시킨 적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지만 윌슨 감독님 너무 부주의하신 것 같더라. 다른 녀석들도 조금만 파보면 금방 나올 거야.”

“요새 너처럼 파고 다니는 녀석이 얼마나 되겠냐. 게다가 윌슨 감독님도 이제 선수 은퇴한지 20년 가깝게 돼가잖아. 아무래도 예전 같은 파급력은 이제 없잖아.”

차드의 말이 옳았다.

결국, 트래픽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더 많은 트래픽을 부르는 것은 현역 선수의 이야기였지 은퇴한 지 20년 된 스태프의 연애 따위 들이는 노력에 비해 얻을 수 있는 수확이 너무 적다.

“그러면 다 처리할 수 있지?”

“이미 다 처리했어. 어차피 내용도 없는 카더라들이었어. 변호사의 전화 한 통에 깔끔하게 다 내리더라. 커뮤니티에 당분간 이야기가 좀 나오기는 하겠지만, 어차피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괜찮을 거야.”

***

한 팀의 전설적인 선수가 떠난다. 그런데 그 이유가 여자 때문이다. 그 팀과 그 선수를 평생 동안 응원해온 팬이라면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실수하셨습니다. 조금 더 조심하셨어야죠.”

성민이 전화를 한 것은 그의 어머니인 권 여사가 아니었다. 애초에 지금 대화를 나눠야 할 상대는 그녀가 아니다. 프레스톤 윌슨 감독이다.

그가 성민의 까칠한 말을 순순히 인정했다.

“확실히 내 생각이 짧았군.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

프레스톤 윌슨의 인정에 성민이 조금은 만족했다. 의외로 자신의 실수를 솔직히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많은 경우 실수를 지적당한 사람은 사과를 하는 대신 화를 낸다. 그것이 자신의 권위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엄마를 잃어버리기 싫은 마음속 한 구석의 본능은 거부감을 표했지만, 이성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은 확실히 좋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역시 앞으로 최선의 방법은 최대한 조용하게 이슈화를 시키지 말고 떠나가는 거겠지?”

“글쎄요······.”

처음부터 그랬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조용히 은퇴하고, 사랑을 찾았다는 이야기라면 미담이니까. 하지만 사랑 때문에 은퇴를 한다? 그것도 그 해에 하필 팀 성적도 그리 좋지 않았는데? 아무리 이슈화를 시키지 않는다고 해도 곱게 보지 않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성민은 그런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무려 30년을 넘게 독수공방한 엄마의 새로운 시작이다. 이왕이면 축하와 축복 속에서 이뤄졌으면 좋겠다.

“감독님. 저희 어머니 사랑하시긴 하시는 거죠?”

“그걸 지금 말이라고. 난 내 모든 기반을 버리고 한국으로 떠날 만큼 미영을 사랑한다네. 아무리 자네라도 그 부분을 모욕하는 건 참을 수 없어.”

“그렇다면 저희 어머니가 먹을 욕, 감독님이 대신 먹고 끝내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성민의 제안에 프레스톤 윌슨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만 있다면 아주 좋지. 나야 어차피 인터넷에 악플 달리는 것 정도는 익숙하니까. 그런데 대체 어떤 방법으로?”

“더 대대적으로 때려버리는 겁니다. 감독님의 은퇴에 관한 이야기를요.”

“뭐라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그런 이야기를 들은 메츠 팬들의 반응이 어떨 것 같나? 고작 지금 이 정도에 이런 반응인데 말이야.”

“아, 물론 방식은 좀 다르게 해야죠.”

“다르게?”

“은퇴 자체는 본인의 기량 저하 때문이다. 충분히 나이를 먹었고, 이제는 은퇴를 해야 할 시기가 됐다. 그리고 한국에서 제2의 인생을 살 생각이다. 뭐 그렇게요. 감독님 자존심은 조금 상하시겠지만, 이번 시즌 성적도 있고 하니까, 사람들도 충분히 납득할 겁니다.”

성민의 이야기를 들은 프레스톤 윌슨 감독이 신음했다. 기량 저하? 은퇴를 할 시기? 그리고 이번 시즌 부진의 원인? 모두 인정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프레스톤 윌슨은 고개를 저을 수 없었다.

“그걸로 가능할까?”

“가능하게 해야죠.”

그래, 더 중요한 건 나의 자존심이 아니다. 애초에 진호와 뛰던 시절부터 자존심은 한 번 접어뒀었다. 그런데 다 늙어서 자존심은 무슨. 프레스톤 윌슨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를 끊은 성민에게 필 니크로가 물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냐? 윌슨 감독이 저런 인터뷰를 한다고 네 어머니가 좋아할 것 같으냐? 그리고 너라면 굳이 이런 방법이 아니더라도······.

“압니다. 알아요. 그냥 괜히 심술 나서 확인 한 번 해본 겁니다.”

-그러면?

“젠장. 나이 먹은 사람이 권위 의식도 없고, 명예밖에 안 남았는데 그것보다 엄마가 더 중요하다는데 이제 내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슈렉이랑 피오나 공주가 만났으니까. 동키는 그 두 사람의 해피엔딩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죠.”

성민이 투덜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 프랜차이즈(2)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