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랜차이즈(1) >
최근의 많은 기자가 20세기의 기자들이 하던 행동을 ‘구시대의 관습’이라고 생각했다. 6세대 무선 인터넷이 상용화된 지금, 이미 세상은 사물인터넷을 넘어 만물인터넷이라고 해도 될만한 상태로 접어들었다. SNS를 비롯한 인터넷망에 굳이 자신의 정보를 올리지 않더라도, 주변 사람들의 난립하는 정보만으로도 그 사람을 추적할만한 기반이 갖춰진 셈이다.
하지만 스티브 저먼은 그 흔치 않은 ‘구시대의 관습’을 추종하는 기자 중 하나였다.
“진짜 중요한 것은 저 네모난 모니터 밖에 있는 법이지.”
그가 가장 사랑하는 그의 할아버지 자이트 저먼이 했던 말이다. 물론 정작 그 말을 했던 장본인인 자이트 저먼은 만물인터넷 시대에 맞춰 4레벨 하이 오토매틱 자동차를 누구보다 빠르게 구입했으며 식구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SNS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어쨌거나 어린 시절 자이트 저먼의 이야기가 스티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 땡큐.’
그리고 지금.
스티브 저먼이 가진 ‘구시대의 관습’을 통해 기대하지 않았던 놀라운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사실 프레스톤 윌슨은 이제 스타라고 하기에는 너무 옛날 사람이었다. 그가 마지막까지 선수로 뛴 것도 벌써 20년 전에 가깝다. 물론 여전히 현역 감독이고 뉴욕이 사랑하는 남자이기는 했지만, 환갑이 넘은 노인의 연애사가 신문의 1면을 장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프레스톤 윌슨 본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까? 공항에서 정말 대놓고 여자를 만났다. 멀리 떨어져서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지만 제법 친밀하다.
설마 저 동양인 여자가 프레스톤 윌슨이 은퇴를 결심하게 된 계기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일단 준비해둔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자세한 사항은 이제부터 파보면 나올 일이다.
비록 프레스톤 윌슨이 전성기와 같은 파급력은 없다고 해도, 뉴욕 메츠를 되살린 감독이다. 단순한 연애가 아닌, 은퇴와 관련된 중요한 사건이라면 충분한 특종감이다. 스티브 저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작은 그의 주변인들부터였다.
프레스톤 감독이 자주 가는 카페, 음식점, 집 근처 마트. 사람들은 의외로 사소한 정보들을 쉽게 흘린다.
“아, 프레스톤 감독? 당연하지. 우리 가게에 무려 20년 단골이라고. 저기 사인 보이지? 저게 마지막 월드 시리즈 우승했을 때 해준 사인이야. 요즘? 요즘에도 자주 오지. 지금 자네가 시킨 그 메뉴를 아주 좋아하거든. 최근에는 글쎄, 외국에 프랜차이즈를 내 볼 생각 없냐는 이야기도 했다니까. 하하하.”
예컨대 그가 자주 가는 식당 주인의 이런 이야기라든지.
“아, 그 할아버지요? 뭐, 가끔 오죠. 점장 말로는 유명한 사람이라고 하던데 난 잘 모르는 사람이라서. 아, 오빠도 그 할아버지 팬이에요? 그 할아버지 진짜 유명한가 보네. 그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커피가 뭐냐고요? 보통은 시럽 듬뿍 넣은 라떼를 마시는데······. 아 근데 요즘에는 종종 아메리카노로 두 잔을 사가더라고요.”
이제 막 17살이나 됐을까?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것 같은 조금 멍청해 보이는 카페 아르바이트생의 이야기.
“아, 최근에 몇 가지 새로운 식료품을 사가더라고요. 소이 소스랑 소이 빈 페이스트? 그리고 토푸? 아시아 쪽 음식에 관심이 생기셨나 봐요.”
근처 식료품점 직원의 이야기까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스티브 저먼은 ‘구시대의 관습’을 추종하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시대의 방법’을 마냥 배척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프레스톤 윌슨 본인의 SNS를 뒤질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프레스톤 윌슨은 유명인이다. 그 본인이 아니더라도 그를 목격한 사람들은 SNS에 그와 관련된 글을 하나씩 남기기 마련이다.
아마 아무 이유 없이 그냥 SNS 글들을 훑었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확실한 목적성을 갖고 그와 관련된 글들을 추적했다.
“한국 사람이로군.”
그렇기에 프레스톤 윌슨이 만나는 여자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아시아 쪽 사람들의 경우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생김새는 상당히 다르다. 당연하다. 같은 아시아로 묶이지만 위도로 따지자면 거의 남유럽과 중앙아프리카 수준의 차이다.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두 사람이 목격된 식당에서도 그 증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일식, 중식, 한식. 물론 다 갈 수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뉴욕에서 더 잘나가는 식당은 일식 쪽이고, 패스트 푸드로 접하기 쉬운 음식은 중식 쪽이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한식, 그것도 미국식으로 커스터마이징 된 한식집이 아닌, 조금 더 정통에 가까운 한식집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그 한식집에서 여자가 한국말로 주문을 했다는 이야기도 존재한다. 물론 외국어를 다양하게 구사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 소개자는 강진호 선수인가?”
프레스톤 윌슨에게는 강진호라는 그의 황금기를 함께 했던 동료가 존재했다. 지금까지 여러 인터뷰를 미뤄봤을 때, 강진호가 그에게 자신의 지인을 소개해줬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문제는 강진호 주변 인물들을 대상으로 검색을 해봐도 이 여자는 도통 찾을 수가 없단 말이지.”
세상 모든 오픈된 자료들을 검색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강진호와 관련된 사진들을 대상으로 얼굴을 대조하는 프로그램을 돌려봐도 이 여자가 누구인지 딱히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가 예측하기로 아마 공식적인 발표가 나는 것은 시즌이 끝난 직후. 그리고 그의 퇴임에 관한 이야기는 그보다 더 빠르게 퍼질 수도 있다. 이제 시즌 종료까지 남은 기간은 채 한 달도 되지 않는다.
정보가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기사를 내보낼 것인가, 아니면 더 조사할 것인가. 무엇보다 이런 기사를 내보내도 될까? 메츠의 지구 우승은 물 건너 갔지만, 아직 와일드카드는 경쟁하는 상황에서 감독의 퇴임설을?
물론 특종도 중요했다. 하지만 스티브 저먼은 기본적으로 메츠 왕조를 보고 자라난 뉴욕 메츠의 팬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가 마침내 선택했다.
[프레스톤 윌슨 감독. 이번에는 정말 진지한 관계를? 상대는 한국 출신 미모의 여성!!]
프레스톤 감독의 퇴임에 관한 이야기는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팀을 뒤흔드는 너무 큰 이야기였으니까. 다만 그렇다고 이 특종을 완전히 놓칠 수도 없었다. 아마 이 기사는 지금 상황에서 그렇게 크게 화제를 불러오지는 못 할 것이다.
단지 추후로 프레스톤 감독이 직접 은퇴를 발표한다면 이와 관련된 연관뉴스를 뽑아냄으로써 트래픽을 확보하려는 정도의 생각이었다.
기사 역시 정도를 지켰다. 프레스톤 윌슨 감독의 얼굴이야 상관없었다. 하지만 상대는 민간인이었던 만큼 얼굴을 그대로 내보내지 않았다. 요즘 그까짓 거 경고? 벌금? 이라는 자세로 양아치짓을 하는 녀석들이 많다는 점을 생각할 때 매우 신사적인 자세였다.
“후, 그래도 이거 진짜 아쉽기는 너무 아쉽네.”
하지만 인터넷의 반응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
-뭐야? 우리 윌슨 감독님. 진지한 관계라고? 그러면 드디어 장가 가시는 건가?-
-그렇게 가라고, 가라고 할 때는 안 가시더니. 이제는 2세도 글렀잖아.-
-아냐, 꼭 그렇지만도 않아. 기네스 기록은 96세고, 60 넘어서 애 갖는 거 그리 드문 일도 아님.-
-강진호는 이제 곧 외손자를 보느니 마느니 하고 있는데, 우리 윌슨 감독은 이제야 2세의 가능성이 생긴 거야?-
-이제라도 생긴 게 어디냐. 그나저나 이거 나름 빅뉴스인데 진짜 화제가 1도 안 된다.-
-지금 시즌 막판인데 윌슨 감독 열애설이 대수겠냐? 그보다 우리 메츠 포스트시즌 진출이 100배는 중요하지.-
-윌슨 이 새끼, 연애 한다고 팀 관리 소홀하게 해서 올해 성적 엉망인 거 아니야?-
-개소리 자제 좀. 지금 메츠 전력으로 지구 우승을 어떻게 하냐? 솔직히 와일드카드 경쟁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지.-
-지랄. 우리 전력은 작년이랑 크게 달라진 것도 없는데 무슨 헛소리야.-
-작년에 나간 것도 기적이었다고는 생각 못하는 거냐?-
-아니, 연애랑 팀 관리랑 대체 무슨 상관? 야구 감독은 사생활도 없냐?-
-자기 일 똑바로 하면서 사생활 하면 모를까. 팀이 개판이잖아.-
-개판은 무슨? 증거 있어?-
-아직까지 재계약 안하는 거 보면 합리적 의심 아니냐? 그리고, 인터넷에 관련해서 후속 기사들도 뜨고 있네.-
그리고 정확히 다섯 시간 뒤.
놀랍게도 프레스톤 윌슨의 에이전시에서 직접 연락이 왔다.
***
“괜찮아요?”
“어? 아 걱정하지 마. 괜찮으니까. 내가 컨트롤 할 수 있어. 애초에 뭐 이런 기사 정도는 나와도 상관없었어. 내가 무슨 아이돌도 아니고, 열애설 좀 떴다고 큰일이 날 사람도 아니지.”
“하지만 사람들 반응이······.”
“아무 걱정하지 마. 이런 일 처리하라고 비싼 에이전시 쓰는 거니까. 이 식충이들 어차피 하는 것도 없이 내 돈 따박따박 받아가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일 좀 하라고 엉덩이 걷어차 줘야지.”
프레스톤 윌슨이 자신을 걱정하는 권 여사에게 큰소리를 탕탕 쳤다. 사실 별 걱정할만한 일도 아니었다. 어차피 인터넷의 댓글이야 그렇게 신경 쓸 일이 되지 못한다. 잘하건, 잘못하건 이상한 댓글은 나오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번 기사를 작성한 스티브 저먼은 그도 익히 잘 아는 기자였다. 그는 요즘 인터넷의 쓰레기들과 달리 정도라는 것을 아는 진짜배기였다. 아마 이대로 몇 년만 지난다면 BBWAA(Baseball Writers' Association of America, 미국야구기자협회)의 투표권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을 만큼 훌륭한 녀석이다.
무엇보다 녀석은 뉴욕 메츠의 지독한 팬이었다. 만약 팀을 흔들 기사라면 구단 쪽과 충분히 논의를 해서 시기를 조율해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대가로 쓸만한 특종 정도는 집어줘야겠지만, 그 정도야 겨울 시즌 트레이드 소식을 몇 시간 일찍 알려주는 거로 충분하다.
[구단과의 불화? 솔솔 퍼지는 프레스톤 윌슨 감독의 퇴임설?]
[재계약은 없다? 프레스톤 윌슨 감독, 팀 내 레임덕 가속화? 흔들리는 뉴욕 메츠?]
하지만 그런 프레스톤 윌슨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후속 기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재밌는 점은 거창한 제목들과 달리 기사를 눌러보면 딱히 근거는 찾을 수 없는 추측성 기사들이라는 점이었다.
당연했다. 애초에 기사 자체가 프레스톤 윌슨 감독의 열애설에 달린 댓글들을 보고, 그 댓글을 달고 있는 사람들이 원하는, 그 사람들이 클릭을 유도할만한 자극적인 추측만으로 쓴 트래픽을 위한 쓰레기들이었으니까.
그렇기에 프레스톤 감독은 이 모든 문제가 금방 해결될 거라고 믿었다. 그의 에이전시와 메츠 구단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집단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솔직히 말해서 굳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해도 별반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은퇴하고 한국에서 몇 년 지내면 다 잊혀질 별것 아닌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권 여사는 달랐다.
평생 동안 명예롭게 커리어를 쌓은 사람의 마지막이 이런 것은 불공평했다. 하지만 이곳은 미국.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일이 잘 해결되기만을 기도하는 것밖에.
‘아니, 어쩌면······.’
그래, 솔직히 비빌 구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절대 그럴 수는 없었다. 아들에게 도움이 되지는 못할망정 방해가 될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내 보물-
성민의 전화가 걸려왔다.
< 프랜차이즈(1) > 끝
ⓒ 묘엽
작가의 말
지각 죄송합니다 8ㅅ8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