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223화 (224/287)

< 더블 헤더(4) >

“아, 저걸 저렇게 한다고? 저건 솔직히 저건 내가 해도 저것보단 나을 것 같은데?”

물론 아니다.

그는 16세 이후로 단 한 번도 외야수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야구를 보는 관중들이, ‘내가 뛰어도 저것보단 잘 뛰겠다.’라고 소리치는 것보다는 설득력이 있긴 했다.

비록 리그는 다르지만, 그도 역시 프로야구선수였으니까.

박동엽은 심하게 맥주가 고팠다.

“아니지,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아침 여덟 시 반부터 맥주를 까는 건 좀 아니지.”

단순히 성민의 경기에 속이 답답해서가 아니었다. 그보다 그를 답답하게 하는 것은 현재 마린스의 상황이었다.

마린스는 144경기 중에서 121경기가 진행된 지금 36승 85패 승률 0.298이라는 경악할만한 성적을 기록 중이었다. 시즌 중반만 하더라도 그래도 설마 100패까지 하겠어? 싶었는데 이대로 가면 100패는 확정적이다. 아니, 100패만이 문제가 아니다. 시즌 3할 승률이 무너진다. 물론 마린스가 지금까지 많은 부끄러운 기록들을 남겨놨지만, 이건 그 부끄러운 기록 가운데서도 정말 특급 수준으로 부끄러운 기록이다.

메이저를 기준으로 대체 선수로만 이루어진 팀의 기대 승수는 48승. 약 0.296의 승률이다. 그리고 지금 마린스는 그 대체 선수로만 구성된 팀 수준의 승률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메이저리그라면 그럴 수도 있다. 가능한 일이다. 극도로 심각한 탱킹을 하는 팀에서는 2할 6푼대의 승률도 나온다.

문제는 마린스가 ‘탱킹’같은 걸 하는 팀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니, 기본적으로 KBO에서는 그런 일이 허용되지 않는다. 구단 자체가 사업체인 MLB와 달리 KBO는 여전히 야구단은 ‘모기업’의 홍보탑이라는 역할을 맡는다. 그들은 홍보비라는 명목으로 상당한 수준의 금액을 지불한다. 1년 운영비의 약 30%가량이다. 그리고 패배하는 홍보탑을 원하는 ‘모기업’은 없다.

마린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이번 시즌 총 페이롤은 187억. 2022년 시행된 샐러리캡에 따르자면 그들은 이번 시즌 사치세를 ‘내는’ 구단이었다. 매우 중요한 이야기라서 한 번 더 강조하자면 그들은 이번 시즌 사치세를 ‘내는’ 구단이었다.

KBO 10개 팀 가운데서 두 번째로 높은 페이롤.

그리고 완벽한 꼴찌.

“거기다가 내년엔 더 빡셀텐데.”

올해로 공필승 감독은 확실히 나가리다. ‘창단 최초 정규시즌 우승, 통합우승, 30년 만의 한국 시리즈 우승.’ 그럴싸한 타이틀이지만 그것도 작년과 올해 2년으로 빛이 완전히 바래버렸다.

게다가 메이저로 간 성민이 잘나가도 너무 잘나간다. 가자마자 퍼펙트에, 월드시리즈 우승에 사이 영 2위까지. 그리고 올해는 그 막장 팀에서 사이 영 1위가 거의 확실한 수준이다.

‘우승은 김성민 빨 이였다.’

이게 현재 대다수 팬의 생각이다. 뭐 사실은 사실이다. 하지만 공필승 감독이 한 일이 전혀 없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그는 마린스 주류와 비주류의 균형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다. 이제 그가 사라지면 강용구 수석 코치가 감독 자리에 오를 게 뻔하다. 비주류 중의 비주류인 박동엽으로서는 개고생의 시작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아 몰라, 시발 3년만. 딱 3년만 더 구르고 무조건 포스팅으로 어디 나가자. 그러면 될 거야.”

박동엽이 또 한 번 맥주의 유혹을 참아냈다.

***

-성민이 너 지금 앞으로 쟤랑 경기 안 뛸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거지.

‘에이, 설마요. 앞으로 인생이 얼마나 긴데, 어떻게 저 친구랑 제가 경기를 안 뛸 거라고 확신을 하겠습니까.’

필 니크로가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

‘아, 뭐. 그건 그렇죠. 올해는 이제 앞으로 등판 다섯 번 정도 남았는데 저 친구 올라와 봐야 얼마나 올라오겠어요. 게다가 루시도 저 말 해줬더니 마이너 가서 성장해서 왔잖아요. 혹시 압니까? 저 친구도 마이너에서 쑥쑥 자라서 돌아올지?’

-만약 그러다 못 돌아오면?

‘그러면 더 신경 쓸 필요 없죠. 어차피 나랑 뛸 일이 없는 건데.’

성민이 필 니크로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는 꿈에도 상상 못 한 태너 맥도날드는 그저 얼떨떨한 마음이었다.

지금까지 그의 인생에 이런 투수, 아니 이런 사람 자체가 없었다. 실수했는데 화를 내는 게 아니라, 그렇게 적극적으로 패기 있게 플레이하라고 응원을 해주다니. 이런 게 진짜 선배라는 건가?

물론 그런 얼떨떨한 마음과 별개로 그의 입은 자연스럽게 성민에게 고맙다는 대답을 보냈다. 어찌 됐건 팀의 에이스에게 밉보여서 좋을 게 없다.

오늘 그의 타순은 7번.

어찌 됐건 무조건 이번 이닝에 차례가 돌아온다.

5구째, 선두 타자의 외야 뜬공 아웃.

그리고 타석에 6번 타자인 레이 크록이 올라갔다. 이번에 자신과 함께 빅리그에 콜업 된 일루수. AAA에서는 최고 수준의 타격 성적을 기록하고 있지만 참 운이 없는 친구다. 하필 그를 막고 있는 남자가 저 랄로 가야르도라니. 부디 눈에 띄는 활약을 해서 어디 트레이드라도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에 비하자면 태너 맥도날드의 경쟁상대인 미셸 에쉬만은 해볼 만하다. 물론 여전히 그는 경쟁력 있는 좌익수이지만 나이가 많고, 계약 기간 역시 얼마 남지 않았다.

-부웅!!

“스트라잌!!”

오늘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투수로 올라 온 더블린 펠트만 녀석이 초구부터 슬라이더로 레이 크록을 공략했다. 확실히 좋은 공이다. 부럽다.

21살? 젠장, 태너 맥도날드는 21살 때 AA에서 2할 4푼을 치면서 박박 구르고 있었다.

‘아니, 그래도 워낙에 투고타저 리그였으니까······.’

어쨌거나 더블린 펠트만은 확실히 빅리그에 21살로 콜업 돼서 대뜸 선발 자리를 맡을만한 재능의 투수였다. 레이 크록 정도면 메이저 전체를 따져도 타격으로는 평균은 된다. 물론 일루수, 혹은 지명타자밖에 못 하는 23살짜리 타자 녀석이 메이저 전체 평균이라는 건 딱히 칭찬은 아니었지만.

-부웅!!

“스트라잌!!”

2구 연속 헛스윙 스트라이크.

이번에는 좀 높게 들어온 공이었는데 욕심을 낸 것 같았다. 아니면 존에 들어오는 공이라고 생각했는데, 워낙에 무브먼트가 좋아서 높게 들어왔을 수도 있다. 뭐 어느 쪽이건 간에 아무래도 레이 크록 녀석의 메이저 데뷔 첫 타석은 그리 좋은 결과로 끝날 것 같진 않았다.

-뻐엉!!

그 와중에 그래도 공 하나는 골라낸다. 그래, 인마. 파이팅이다.

그리고 네 번째.

-뻐엉!!

“스트라잌!! 아웃!!”

또 하나 골라낸답시고 지켜봤는데 그게 존에 들어와 버렸다. 멍청한 자식 같으니. 물론 슬라이더를 경계한 건 알겠지만 투 스트라이크 상황인데 이거다 싶으면 그래도 미련 없이 휘둘러는 봤어야 했다.

태너 맥도날드가 타석에 들어갔다.

덕아웃의 성민이 슬슬 자신의 차례를 준비했다.

-성민이 너 아무리 그래도 너무 기대 안 하는 거 아니냐?

‘영감님도 저놈 공 딱 보면 대충 견적 나오잖아요. 지금 흥분해서 아주 신이 났는데 저거 당장은 쉽게 안 꺾입니다. 뭐 어차피 애송이 놈이라 흥분해서 전력 질주하는 거니까, 두 번째나 세 번째쯤 가면 얻어맞겠지만요.’

지금 마운드에 선 더블린 펠트만의 피칭은 선발의 피칭이 아니었다.

100마일이 넘는 공을 던지는 건 쉽지 않다. 괜히 선발 투수들이 완급 조절을 하는 게 아니고, 긴 이닝을 먹는 것이 선발 투수의 가장 큰 미덕으로 꼽히는 게 아니다.

지금 더블린 펠트만의 공을 받는 케빈 포만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말릴 수도 없다. 저런 타입의 투수는 보통 머저리라서 괜히 건드렸다가는 탈만 난다.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실컷 던지게 내버려 두는 편이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낫다. 뭐, 운이 좋다면 5이닝, 6이닝까지도 소화할 테고 그러면 자신감도 더 붙어서 좋은 투수로 자라날 수도 있겠지.

“폭주 기관차처럼 달리는 애송이한테 끌려가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뭐라고?”

“1회부터 100마일짜리 공을 던지더니, 데뷔전이라고 아주 힘이 빡 들어갔네요.”

“헛소리하고 있네. 최고 102마일을 던지는 녀석이야. 지금도 여유롭게 던지는 거라고. 그러는 너야말로 데뷔전이라고 긴장해서 쓸데없는 소리 열심히 주절거리고 있네?”

“에이, 긴장은 무슨. 그건 어차피 직전 수비 때 멍청한 짓 하면서 날아간 지 오래고요. 지금은 그냥 그거 만회할 멋진 거 한 방 바라는 마음만으로 서 있는 거죠.”

어차피 공을 던지는 건 투수고 치는 건 타자다. 상대방의 집중력을 떨어트려야 하는 건 포수의 역할이고, 따라서 대화를 거는 것도 보통 포수다.

그런데 가끔 이런 놈이 있다. 먼저 말을 거는 이상한 놈들. 대부분 긴장해서 지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는 놈들이다.

“속구 하나 시원하게 부탁합니다. 저 자식 어차피 지금 제어도 잘 안 되잖아요.”

“던지면 칠 수는 있고?”

“그 더러운 슬라이더보다는 좀 낫겠죠.”

하지만 이 녀석은 그런 타입은 아닌 것 같다.

나름대로 심리전 같은 걸 걸어오는 건가? 그렇다면 속구, 혹은 슬라이더 중 하나만 노리고 친다는 건데.

케빈 포만이 대충 말대답을 해주었다. 그래봤자 지 손해다. 자신에게 심리전을 걸어봤자 소용없다. 어차피 볼 배합은 덕아웃에서 나온다. 입을 털면 털수록 타자 놈의 집중력이 떨어질 뿐이다.

마운드의 투수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타이밍.

타이밍을 맞춰야 한다. 100마일짜리 공이 존까지 들어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0.35초. 말 그대로 눈 깜빡할 시간이다.

판단할 시간은 고작 0.15초. 속구? 슬라이더? 사실 애초에 고민할 것도 없었다. 슬라이더 저거는 알아도 못 친다. 노려볼만한 건 그저 속구뿐이다.

-부웅!!

“스트라잌!!”

약간 빠른 스윙. 그리고 터무니없이 빗나간 공. 존을 빠져나가는 슬라이더였다. 젠장.

“에이, 속구 부탁한다고 했더니, 바로 슬라이더를 던집니까? 치사하게.”

“부탁하는 대로 던져주길 원하면 배팅센터를 갔어야지.”

“배팅센터는 돈 내고 공을 쳐야 하잖습니까. 여긴 돈 받고 치는데.”

“그러면 잔소리 말고 주는 대로 쳐야지.”

두 번째.

-부웅!!

“스트라잌!!”

2구 연속 슬라이더.

태너 맥도날드의 등에 살짝 땀방울이 맺혔다. 쫄린다.

“와, 이거 쫄리네요.”

“원래 타자라는 게 타석에 10번 들어가서 3번만 쳐도 되는 직업이잖아. 오늘 이대로 4번 쉬더라도 다음에 3번 치면 되는 거야.”

“참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문제는 과연 나에게 10번이나 기회가 올 것인가 하는 부분이긴 하지만, 뭐 어차피 긴장을 풀기 위해 입을 나불대는 것이니 그리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지금 이 녀석들은 태너 맥도날드 자신이 지금까지 속구를 노렸던 걸 알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게 생각할까? 조금 생각이라는 것을 하려던 태너가 이내 머리를 저었다. 어차피 생각해봤자 슬라이더는 못 친다. 2번이나 봤는데, 확실하다. 이건 손에서 빠지지 않는 이상 못 치는 공이다.

그래 사나이는 뚝심 있게 하나로 간다.

세 번째.

더블린 펠트만이 공을 뿌렸다.

타이밍.

고민에 시간을 쓰지 않는다. 100마일짜리 공을 때려내는 타이밍. 그리고 경험보다 살짝 높은 곳을 노리고 그대로 방망이를 휘두른다.

-딱!!

맞았다.

그런데 밀렸다. 게다가 횡무브먼트도 미쳤다. 손바닥 전체가 얼얼하다. 약한 타구. 하지만 태너 맥도날드에게는 그 약한 타구를 안타로 만들어 낼 튼튼한 두 다리가 있었다. 방망이가 공을 두들기자마자 그대로 방망이를 내려놓고 일루를 향해 질주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눈에 뵈는 것은 없었다. 시야가 극히 좁아졌다. 보이는 것은 오직 1루 베이스뿐. 그의 오른발이 1루 베이스를 밟고 지나갔다.

제발!!

“세이프.”

안타. 안타다. 데뷔전 첫 타석 안타. 망할 2회 초의 실수를 만회하는 안타. 태너 맥도날드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쟤 뭐 하냐? 내야 안타 치고 왜 저래?

‘내야 안타고 뭐고 데뷔전 첫 타석 안타잖습니까. 직전 수비에서 뻘짓도 했고. 저럴 만하죠.’

-근데 넌 왜 안타도 나왔는데 나갈 준비를 멈출 생각은 안 하는 거냐?

성민이 그저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딱!!

그리고 곧바로 내야 뜬공 아웃 공수 교대.

태너 맥도날드의 처절한 내야 안타가 무색하게 성민의 차례가 금방 돌아왔다.

< 더블 헤더(4)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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