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221화 (222/287)

< 더블 헤더(2) >

1차전 경기를 뛰었던 몇몇 선수들이 교체됐다.

체력적인 부분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흐음, 내 생각에는 앞선 1차전에다가 저것들을 집어넣고 2차전에 걔들이 나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만.

‘팀에서는 두 경기를 다잡을 생각이었겠죠. 선발 싸움으로는 제가 완전히 먹고 들어가잖습니까. 뭐 저쪽은 차세대 프론트라이너니 뭐니 해도, 어쨌든 아직 애송이니까요. 그리고 어찌 됐건 에두아르도는 저에게 붙여줬으니 뭐, 그거면 됐죠.’

-그걸로 됐다고 하기에 너클볼 투수에게 너클볼을 받을 수 있는 포수를 붙여주는 건 너무 당연한 거 아니냐?

1차전에 보스턴 선발로 뛰었던 선수는 부상에서 돌아온 부룬디 쿠치에. 그리고 상대 팀의 선발은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4선발인 조나단 디아즈였다.

그리고 이번 경기.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성민을 상대로 확장 로스터를 통해 올라온 투수인 21살의 젊은 투수. 더블린 펠트만을 올려보냈다. 2034년 중순. BA 리포트 기준. 우완 투수 가운데 No. 1. 전체로 따져도 2위에 랭크된 최고의 유망주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타자가 타석에 들어왔다.

브라이언 클락. 28세의 전성기에 들어선 타자로 낮 경기에서 4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오늘 타격감이 범상치 않다.

성민의 시선이 보스턴의 내야를 훑었다.

일루에 레이 크록, 1-2루 간에 후안 칼초, 2-3루 간에 루시 알베리. 그리고 3루에 매튜 쿠퍼.

애매하다.

내야에서 가장 든든하던 제롬 스튜버츠가 빠졌다는 점이 매우 아쉽지만 훈련할 때만 보면 레이 크록의 수비 범위는 상당하다. 제롬 스튜버츠의 빈자리를 충분히 메울 만했다.

성민과 시선을 마주친 레이 크록이 슬쩍 입꼬리를 치켜세웠다. 자신만만한 미소다. 나쁘지 않았다. 이제 막 빅리그에 올라온 녀석이 긴장해서 어리버리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저게 낫다. 뭐, 저 자신만만함이 연기인지, 아니면 진짜인지는 이제 곧 밝혀질 테지만.

브라이언 클락이 자세를 잡았다.

오늘 감이 괜찮다. 앞선 타석에서 5타석 4타수 2안타 1볼넷. 상대 투수가 허접한 것도 아니다. 부상에서 갓 돌아왔다고는 하지만, 시즌 중반까지 보스턴 레드삭스의 2선발 노릇을 하던 부룬디 쿠치에를 상대로 한 성적이다.

마운드의 성민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흔들리는 공.

존을 빠져나갈 것처럼 움직이던 60.9마일의 너클볼이 돌연 방향을 바꿔 존을 스치고 들어왔다.

-뻐엉!!

“스트라잌!!”

브라이언 클락이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공이 정말 자기 마음대로 움직인다. 이쪽으로 올 것처럼 굴더니 절묘하게 안으로 틀어박히는 건 대체 뭐란 말인가.

‘아니야, 진정하자. 이건 정말 잘 들어온 공일 거야. 모든 공이 다 이렇게 들어올 수는 없어. 그게 되면 지금까지 저 투수를 공략한 타자들은 뭐 죄다 타격의 신이게?’

두 번째.

88.9마일의 빠른 공.

-부웅!!

“스트라잌!!”

타이밍이 늦었다.

느린 공 뒤에 빠른 공. 뻔하디뻔한 정석적인 조합이었지만, 그만큼 강력했다.

‘역시 좀 지쳤나 본데요?’

-1차전 경기가 4시 40분에 끝났고, 지금 이제 7시야. 잠깐 마사지 받고 간식 먹고 쉬어줬다고 해도 2시간 만에 피로가 풀리는 건 무리지. 게다가 오늘 1차전 경기 제법 격렬했었잖아?

1차전은 무려 양 팀 합계 24점이 나온 3시간 30분짜리 경기였다.

야수들은 야수들대로 죽어라 뛰어다녔고, 불펜은 불펜대로 소모됐다. 필 니크로의 이야기처럼 고작 2시간 20분은 피로가 회복되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세 번째.

바깥쪽 높은 속구.

-뻐엉!!

‘선구안은 살아 있네요.’

-아직 거기까진 괜찮다. 뭐 그런 이야기겠지.

그리고 네 번째.

73.1마일의 빠른 너클볼.

브라이언 클락의 시선이 야구공에 못 박혔다. 초구가 떠오른다. 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다가 안으로 파고들어 오던 그 공.

그리고 지금 볼카운트는 1-2. 어차피 공 하나면 삼진이다. 길게 고민할 시간 따윈 없었다. 고작 0.15초의 시간. 브라이언 클락이 결심했다. 공의 방향을 살피고 힘차게 방망이를 휘둘렀다.

-부웅!!

“스트라잌!! 아웃!!”

존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가는 너클볼.

헛스윙 삼진.

‘하지만 조금 급한 마음이 있긴 하군요. 적당히 걷어내려는 목적으로 휘둘렀으면 그래도 파울까진 가능했을지도 몰랐는데 말이죠.’

-그거야 앞선 경기에서 결과가 워낙 좋았으니까.

성민의 피칭이 이어졌다.

성민은 8월 한 달에만 무려 다섯 경기 39이닝을 던졌다. 시즌으로 따지자면 257이닝 페이스로 공을 던진 셈이다.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수치였다.

성민은 좋은 투수이지만 철인은 아니었다. 닷새의 휴식을 받았다지만 당연히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상대가 좋았다.

2번 타자인 레이 카스트로는 고작 24살의 어린 선수였다. 물론 어리다고는 하지만 빅리그 3년 차의 어엿한 메이저리거였다.

힘 좋고, 선구안도 좋다. 실투를 쉽게 놓치지 않고 볼넷도 많이 가져간다. 홈런도 2년 연속 20홈런 이상을 기록했으며, 올해는 잘하면 30홈런도 기록할 기세다.

분명 녀석은 현재 시카고 화이트삭스 최고의 타자다.

‘하지만 저 녀석 전형적인 패스트볼 히터지.’

메이저 타자 가운데는 제법 많은 유형이다. 유달리 속구를 잘 치는 녀석들. 루시 알베리도 조금 비슷하지만, 녀석은 패스트볼 히터라고 하기에는 변형 패스트볼 계통을 쳐내는 능력이 매우 부족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녀석은 레이 카스트로처럼 한 방을 날려줄 파워가 없다. 반면 지금 타석에 선 레이 카스트로는 적당히 빗맞은 타구도 내야 밖으로 날려보낼 힘이 있다.

-딱!!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적당히’ 빗맞은 타구다.

초구로 던진 72.9마일의 빠른 너클볼을 레이 카스트로가 두들겼다. 하지만 어림없었다. 마지막 순간 성민의 고속 너클볼이 진행 방향보다 ‘명백하게 덜’ 떨어졌다.

높게 치솟은 타구가 내야를 벗어나지 못한 채 후안 칼초의 글러브로 쏙 들어갔다.

그리고 세 번째 타자를 상대로 가볍게 내야 땅볼 아웃.

성민이 1회 초를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마운드에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유망주 더블린 펠트만이 올라왔다.

만 21세의 우완 선발 투수. 젊은, 아니 어린 선수다.

타석에 보스턴 레드삭스의 1번 타자로 중견수인 닉 존슨이 올라갔다.

보통 주전 라인업을 가동할 때는 6번이나 7번을 치는 남자였지만, 오늘 상황에서 가장 1번에 어울리는 건 그가 분명했다.

빅리그 5년 차. 연봉협상을 두 차례 했고 이번 시즌 연봉은 200만 달러. 연봉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아주 대단한 선수는 아니다. 최저연봉으로 사용하고 바로 버림당하는 수준은 살짝 넘어서는 대체 선수보다는 조금 더 괜찮은 수준의 선수다.

장기적으로 중견수보다는 코너 외야수로 옮겨가야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타격 하나만큼은 중견수 중에서는 상당히 준수한 편이다.

물론 그 준수한 타격도 코너 외야수에 비하자면 조금 부족한지라, 어중간한 선수라는 점이 그의 연봉을 200만 달러로 억제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오늘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선발인 더블린 펠트만 선수 같은 경우 팀에서 굉장히 큰 기대를 하는 선수란 말이죠.]

[맞습니다. 이 선수 같은 경우 2032년 드래프트 전체 19번으로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뽑아갔던 선수인데요, 그해 가을 리그를 박살을 내고 곧바로 BA 100위 안쪽으로 꼽혔고, 곧바로 싱글A에서 커리어를 시작, 고작 2년 만에 BA 전체 2위. 투수 가운데서는 1위를 기록했습니다.]

[이 선수 나이가 고작 만 21세입니다. 심지어 생일이 지난 지 고작 사흘이라서, 공식적으로는 올해가 20세 시즌이란 말이죠.]

[6.5피트에 258파운드. 본래 드래프트 될 때만 하더라도 191파운드밖에 되지 않았는데 굉장히 크게 증량을 했고, 그게 아주 성공적으로 작용한 케이스입니다. 드래프트 당시 최고 96마일이던 구속이 101마일까지 올라갔어요.]

198센티에 112킬로. 어마어마한 근육질과 스무 살이라고 믿기 힘든 험상궂은 얼굴의 남자가 마운드에서 불퉁한 표정으로 타자를 바라봤다.

메이저리그 데뷔전.

하지만 긴장은 되지 않았다. 마이너에 있는 동안에도 리햅 등을 위해 내려왔던 빅리거와 충분히 붙어봤다. 그들은 하나 같이 더블린 펠트만의 공에 놀라며 넌 대단한 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칭찬했다.

아쉬운 것은 보스턴에서 최근 가장 핫하게 떠오르는 랄로 가야르도가 라인업에서 빠진 점이었다. 이왕이면 데뷔전에서 아주 대단한 선수를 깨부수는 것이 전설적인 커리어의 시작으로 더 어울릴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뭐 맞상대는 나쁘지 않으니까.’

그의 시선이 잠시 보스턴 덕아웃을 살폈다.

김성민.

현 아메리칸리그 최고의 투수.

그는 1회 초, 그 명성에 걸맞은 피칭을 보여줬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가 가지고 있는 아메리칸리그 최고의 투수라는 이름은 이제 곧 더블린 펠트만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 될 테니까.

초구.

절묘하게 파고드는 98.3마일의 속구.

-부웅!!

“스트라잌!!”

닉 존슨이 눈을 크게 떴다.

빠르다. 하지만 단순히 빠른 것만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닉 존슨의 방망이가 스치지도 못 했을 리 만무했으니까. 더블린 펠트만의 속구는 그 무브먼트도 매우 더러웠다.

물론 닉 존슨 역시 이미 경기 전 브리핑을 통해 알고 있는 정보다. 하지만 정보로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의 차이는 컸다. 닉 존슨은 15년 이상 축적된 경험을 가진 야구 선수다. 그의 경험에 따라 야구공을 보고 방망이를 휘두르는 것을 즉석에서 머리로 생각하여 수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두 번째.

마찬가지로 98.4마일의 빠른 공.

이번에는 닉 존슨의 방망이가 그럭저럭 야구공을 따라갔다. 하지만 정타로 연결되지는 못 했다. 3루 파울라인을 넘어가는 타구.

그리하여 순식간에 볼카운트는 0-2.

세 번째. 마찬가지로 같은 코스로 빠른 공이 날아왔다. 닉 존슨이 이를 악물었다. 저 애송이가?

-부웅!!

“스트라잌!! 아웃!!”

하지만 아니었다. 슬라이더. 그것도 존 밖으로 크게 빠져나가는 각이 큰 슬라이더였다. 전광판에 찍힌 구속은 92.1마일. 하지만 느껴지기는 훨씬 빠르게 느껴졌다. 저 커다란 키와 덩치 그리고 끝까지 끌어나오는 릴리즈 포인트가 부린 마법이었다.

더블린 펠트만이 속으로 웃었다.

마이너 시절, 자신의 슬라이더에 당한 타자들은 다들 저런 멍청한 표정을 짓곤 했다. 그리고 그것은 빅리그라고 딱히 다르지 않은 듯 싶었다.

타석에 2번 타자 매튜 쿠퍼가 들어왔다.

그는 DL에 가기 전에는 분명 대단한 타자였지만 돌아온 이후 성적이 그리 좋지 못했다. 지난 4경기에서 고작 2안타. 그것도 모두 단타로 그쳤다. 앞선 1차전에서도 5타석 4타수 무안타 1 희생플라이로 부진했다.

더블린 펠트만이 가벼운 마음으로 그의 가장 좋은 속구를 찔러넣었다.

99.2마일의 빠른 공.

그리고 그 빠른 공이, 가볍게, 그리고 날아오던 속도만큼 빠르게 반대 방향으로 날아올랐다.

-딱!!

타구 각 27도. 발사 속도 103마일.

그린 몬스터를 훌쩍 넘기는 대형 홈런이었다.

“메이저에 온 걸 환영한다. 애송이.”

“와, 누가 들으면 엄청난 베테랑인 줄? 지도 올해가 1년 차면서.”

< 더블 헤더(2)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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