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블 헤더(1) >
9월.
확장 로스터의 시기가 돌아왔다.
“이제 한 달이로군.”
“네, 이제 한 달이죠.”
보스턴 레드삭스의 8월은 훌륭했다. 100점을 만점으로 본다면 90점은 줘도 괜찮을 만큼 말이다. 다만 안타까웠던 점은, 지구 1위를 달리고 있던 뉴욕 양키스 역시 80점은 받을 성적을 기록했다는 점이었다.
애초에 8승이나 차이가 나던 상황이었다. 좁히기는 좁혔지만, 아직도 5승이나 차이가 난다. 남은 경기가 36경기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이걸 줄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했다.
“하지만 와일드카드는 충분히 가능하지.”
“현재 와일드카드 전체 승률 1위인 텍사스와도 1승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포스트 시즌에 나가는 팀은 리그당 다섯 팀. 각 지구의 1위 팀 세 팀이 디비전 시리즈에 직행하고 그 세 팀을 제외하고 가장 승률이 높은 두 팀이 와일드카드로 맞붙어 승리한 팀이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한다.
현재 아메리칸리그 최약체는 중부지구로 1위를 달리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경우 와일드카드 2위인 보스턴 레드삭스보다 1승이 더 적었다. 사실상 중부지구 팀 가운데는 와일드카드가 나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텍사스 레인저스, 보스턴 레드삭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시애틀 매리너스.
현실적으로 와일드카드를 경쟁하는 네 팀이다.
“여기 전력분석팀에서 추천하는 확장 로스터, 콜업 대상자 명단입니다.”
“어디 보자. 제이크, 코웬, 크록. 아니, 잠깐만. 태너? 이 녀석까지 대상자라고?”
“보시면 아시겠지만 최근 성적이 굉장히 좋습니다. 게다가 미셸 에쉬만의 경우 최근 체력적으로 조금 부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적절한 휴식이 필요하다는 판단입니다.”
미셸 에쉬만은 여전히 그린 몬스터를 지키는 훌륭한 외야수였다. 하지만 타석에서의 성적은 썩 좋지 못 했다. 매튜 쿠퍼가 사라진 이후, 그 자리를 메우는 내야 백업들의 타격 성적이 워낙 엉망이라 잘 부각이 되지 않긴 했지만, 그의 부진 역시 최근 보스턴의 타격이 줄어든 원인 중 하나임은 분명했다.
“물론 본인 이야기로는 단순히 감각 문제라고 합니다만, 저희의 판단에 따르자면 명백한 체력 문제입니다.”
“확실히 에쉬만이 이번 시즌 거의 결장 없이 출전하기는 했지. 하지만 태너 이 녀석이 벌써 그린 몬스터를 감당할 수 있을까? 게다가 지금 잘 돌아가는 상황에서 굳이 건드릴 필요가 있을지도 조금 의문이군. 팀 케미에 영향을 주진 않을까?”
“우선은 원정 위주로 출장을 시킬 계획입니다. 게다가 선수들의 체력적인 문제는 지금 휴식을 취해두지 않는다면 10월에 더 큰 문제로 돌아올 겁니다. 무엇보다 9월에만 더블 헤더가 무려 두 경기가 있죠.”
“어차피 매튜랑 부룬디가 돌아오면 그 부분은 어느 정도 해소되는 거 아닌가?”
“그건 맞습니다만, 아무리 후안 칼초가 좌익수까지 할 수 있다고 해도, 굳이 그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전문 좌익수인 태너를 올려보는 게 더 낫다는 판단입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존 맥도웰이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
새로운 선수들이 온다는 것은 항상 좋은 일만은 아니다. 특히나 지금처럼 팀이 한참 딱 맞춘 듯 제대로 굴러가는 타이밍에서는 더더욱.
“하지만 또 마냥 싫어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안 그래?”
“나야 싫을 것도 좋을 것도 없지. 어차피 누가 더 오건, 덜 오건 내가 하는 일은 똑같잖아? 닷새에 한 번 마운드에 올라서 녀석들 엉덩이를 걷어차 주는 거. 신경 쓰이는 건 미셸 네 쪽이겠지.”
라만 그레고리의 이야기에 미셸 에쉬만이 코웃음을 쳤다. 요즘 컨디션 난조를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는 골든 글러브를 몇 차례나 수상했던 뛰어난 좌익수다. 보스턴의 좌측 외야를 지키는 데 그만한 남자는 없다. 애송이에게 몇 번 기회를 양보한다고 밀려날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신경은 무슨. 그것보다 괜히 젊은 애들이 경쟁한다고 오버하지 않을까가 오히려 걱정이지.”
두 사람의 대화에 성민이 불쑥 끼어들었다.
“젊은 애들이 경쟁한다고 오버 하는 것도 마냥 나쁜 건 아니잖아. 요즘 보니까 맥스랑 브라이언이랑 아주 불똥 튀는 게 서로서로 좋아 보이던데.”
“아, 맥스 슈피겐이 우리 브라이언한테 일방적으로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는 거 말하는 건가?”
“워워. 라만, 네가 브라이언 보일을 아낀다고 그렇게 이야기 하면 안 되지. 대충 봐도 브라이언 녀석도 맥스 녀석한테 엄청 신경 쓰는 기색이던데 말이야.”
“라만, 그건 내가 봐도 성민 말이 맞는 것 같은데? 맥스 녀석 마이너에서 몇 달 구르더니 아주 달라졌어. 게다가 이번에 부룬디 돌아오는 건 때문에 둘 다 여간 예민한 게 아니더만.”
보통이라면 확장 로스터를 통해 올라오는 선수들은 시즌을 치르느라 지친 25인 멤버들에게 적당한 휴식을 부여하는 역할이다.
하지만 보스턴의 경우 선수단 자체가 젊었고, 오랜 하위권 생활로 모인 유망주들의 수준이 높았다. 무엇보다 이번에 함께 복귀하는 부룬디 쿠치에와 맥스 슈피겐은 부상 전의 기량만 그대로 보여준다면 확고한 주전 선수들이다. 선수단의 분위기가 크게 출렁일 수밖에 없다.
-확실히 지금 분위기만 그럭저럭 유지한다면 와일드카드는 무난할 테니 그 이후를 대비한 체력보존도 나쁜 선택은 아니지.
‘그게 무슨 소립니까.’
-응?
‘그때 말씀드렸었잖아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하, 지구 우승을 노리시겠다? 너희 지금 남은 경기가 고작 36경기인 건 알고 있지?
‘60경기 남았을 때 8승 차이였죠. 그리고 36경기가 남은 지금은 5승 차이고요. 이 정도면 해볼 만하죠.’
-그리고 양키스의 뎁스는 너희보다 두껍고 말이야.
‘뎁스만 따지면 우리도 나쁘진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AAA에서 노는 노땅들이 아니라 애송이들 위주이긴 하지만요.’
-그게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거냐?
‘그러니까 어마어마한 시너지로 확 치고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맥스 슈피겐과 브라이언 보일처럼 말이죠.’
-하여간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는 굉장히 낙천적이란 말이지.
‘마지막까지 승리를 포기하지 않는 승부사 정도로 해두죠.’
마이너에서 올라온 선수는 총 다섯 명.
그중 빅리그 무대를 한 번도 밟아본 적이 없는 선수만 무려 셋이었다.
“너무 파릇파릇한 애송이들 아니야?”
“랄로, 너도 3년 전에는 똑같은 애송이였다고.”
“3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하늘과 땅 차이지. 그러니 저 녀석들도 마찬가지일 거 아니야.”
“그래도 대충 들어보니까 다들 마이너에서는 제법 괜찮은 성적을 거뒀더만. 루시, 너 저 친구들이랑 좀 부대끼지 않았어? 다들 좀 어때?”
“그러니까 레이 크록이랑 태너 맥도날드 같은 경우 마이너 타격 성적은 저보다 괜찮았어요. 특히 레이 크록은 굉장했죠.”
“아, 그 녀석······. 그러고 보면 그 녀석도 참 운이 없는 녀석이긴 하지.”
레이 크록은 분명 빅리그 평균 이상의 타격 실력을 지닌 남자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소화 가능한 포지션은 오직 일루수뿐이다. 그리고 일루수에게 요구되는 타격 수준은 고작 빅리그 평균 이상 수준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지금 보스턴 레드삭스의 일루수는 랄로 가야르도. 리그 전체를 통틀어 수위권에 꼽힐만한 타격 실력을 지닌 MVP급 일루수다.
“그래도 덕분에 너도 조금은 쉴 수 있겠네. 지금까지 두 번인가 밖에 못 쉬지 않았어?”
“두 번이나 쉰 거지. 나의 강철 체력에는 휴식이 필요 없다고.”
젊은 선수들의 경우 자신들의 출장이 줄어든다는 것 자체를 썩 마뜩잖게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문제의 그 다섯 선수. 그리고 DL에 올라가있던 매튜 쿠퍼와 부룬디 쿠치에가 돌아왔다.
“와우, 매튜. 뭐야? 다쳤다고 누워서 초콜릿만 집어 먹은 거야? 몸이 왜 이렇게 불었어.”
“초콜릿은 무슨. 초콜릿 맛 보충제를 아주 물처럼 들이키고 운동을 한 거지. 이게 다 살이 아니라 근육이라고. 근육.”
“대체 어느 나라 근육이 그렇게 물컹한 건데?”
선수들이 매튜의 몸을 꾹꾹 눌러대며 장난을 쳤다. 그들의 이야기처럼 매튜 쿠퍼의 몸은 상당히 크게 부풀었다. 동료들은 그게 다 살덩이라 놀렸지만, 분명 골격근량 역시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다.
-저거 안 그래도 수비가 엉망인데 저래서 수비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뭐, 원래 레인지가 부족하다기보다는 글러브가 돌 글러브였던 게 문제니까, 특별히 크게 문제될 것 같지는 않네요. 게다가 루시 알베리가 후안 칼초보다는 수비 레인지가 넓으니까 충분히 커버 될 겁니다. 저 불어난 몸만큼 타격만 좀 올라갔다면 루시 녀석의 부실한 타격을 커버해줄 수도 있을 거고요.’
-매우 희망적인 관측이로군.
성민의 시선이 살짝 얼어있는 다른 선수들에게 향했다.
아니, 정정한다. 얼어있다기보다는 단단한 각오들이 보이는 얼굴이었다. 레이 크록의 시선은 랄로 가야르도에게 못 박혀 있었고 태너 맥도날드의 시선은 미셸 에쉬만에게 못 박혀 잇었다.
노골적이다.
하지만 성민은 그 노골적인 감정이 매우 좋았다. 경쟁은 선수를 조금 더 혹사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아주 좋은 자극제가 될 수 있다.
랄로 가야르도야 뭐 그런 자극제가 필요없을 수 있지만 미셸 에쉬만에게는 꼭 필요한 자극제다.
‘뭐, 꼭 자극제의 역할만이 아니라, 실제로 태너가 더 잘하면 더 좋은 일이기도 하니까요.’
성민의 시선이 앞으로 남은 경기 일정으로 향했다.
9월 중순.
양키스와의 마지막 3연전.
분명 36경기가 남은 상황에서 다섯 경기는 넘어서기 힘든 격차다. 하지만 맞대결에서 만약 모두 승리를 거둘 수 있다면? 저 3연전을 스윕으로 끝낼 수 있다면?
그래, 분명 가능하다.
새로운 마지막 한 달이 시작됐다.
***
“후, 이거 놀 때는 좋았는데, 몰아서 일하려니 아주 죽겠구만.”
더블 헤더.
같은 날에 같은 경기장에서 같은 팀끼리 두 번의 경기를 치르는 것을 의미한다.
KBO의 경우 1년 144경기라는 비교적 넉넉한 일정, 그리고 구단간의 이동거리가 짧은 이유로 9월로 우천취소 경기를 몰아버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MLB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동부 지구에서 서부 지구까지 비행기로 5~6시간씩 걸리는 이동 거리. 그리고 1년 162경기의 빡빡한 일정. 그리고 한 달에 가까운 포스트 시즌 일정까지. 만약 우천으로 경기가 취소될 경우 그들은 어떻게든 다음 날 더블 헤더를 해서라도 경기 수를 채우려 노력한다.
하지만 올해 보스턴의 경우 3연전의 마지막 경기에서 우천 취소가 된 경우가 무려 두 번이나 있었고, 그 결과 9월의 맞대결로 밀린 더블 헤더가 두 경기가 존재했다.
오늘 경기의 상대는 시카고 화이트삭스.
이번 시즌 아메리칸리그 최약체 지구인 중부지구에서도 하위권을 맴도는 팀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1차전 경기는 박빙이었는데, 이유는 확장로스터를 통해 마이너에서 올라온 선수들의 타격이 뻥뻥 터져준 덕분이었다.
덕분에 보스턴의 야수들은 정말 열심히 뛰어다녀야 했다.
-이거 좀 별론데?
‘그렇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기긴 했잖아요.’
-그러면 뭐 해. 지금 아주 한여름 소프트콘처럼 녹아내린 녀석들을 데리고 네가 경기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는데.
‘상황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지 마세요.’
-어느 부분에서 긍정적이면 될까?
‘글쎄요, 우리가 지쳤으니 상대도 지쳤을 거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두 번째 경기.
성민이 마운드에 올라갔다.
< 더블 헤더(1)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