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218화 (219/287)

< 국수(6) >

[역대 일곱 번째!! 한 시즌 2번의 노히트 노런!! 지난 2015년 이후 19년만!!]

-한 시즌 만에 노히트 노런 두 번 실화임?-

-마지막 포즈 봤냐? 미친 무슨 영화 보는 줄. 확실히 인물이 좋으니까 그림이 사네.-

-놀랄 것도 없지. 김성민 작년엔 퍼펙트도 했는데.-

-아니, 거기서 또 어떻게 그렇게 딱 투수 앞 내야 뜬공이 나오냐?-

-그거 노린 걸 수도 있음.-

-근데 퍼펙트보다는 한 시즌 노히트 노런 두 번이 더 희귀한 기록 아님?-

-그것도 그렇지.-

-노리기는. 그걸 노린다고 해낼 수 있는 능력이면 MLB에서도 0점대 투수 해야지.-

-뭐 이런 걸로 놀라고 그러냐. 성민이 KBO 시절에는 한 시즌에 퍼펙트만 두 번을 했음.-

-좆크보랑 므르브가 같냐? 가져다 댈 기록을 가져다 대야지.-

-팀이 마린스였는데?-

-아, 그러네. 마린스에서 퍼펙트는 갓직히 킹정이지.-

-보스턴 마린스 처음 갔을 때만 하더라도 미쳤나 싶었는데, 이거 이러다가 포시 나갈 듯. 지금 와일드카드 3위 아님? 1승 차이잖아.-

-성민이 LA 다저스에서 뛰어봤더니, 마린스 시절 하드캐리가 그리워져서 보스턴 레드삭스로 갔다는 것이 업계 정설.-

-실제로 보스턴을 데리고 포시 나갈 기세인 거 보니까 그걸 또 부정할 수가 없네?-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는 바로 그 순간. 터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환호성에 성민이 잠시 당황했다.

“어?”

완봉승. 물론 훌륭하긴 하다. 근데 저렇게 관중들이 죄다 기립박수를 칠 만큼 대단한 일인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아, 이걸로 8월 이달의 투수가 확정이라서 그런 건가? 이번 달 평자책이 0.45쯤 될 테니까?

-정확히는 0.46이지.

‘그거나 그거나. 어쨌든 제가 세우긴 했지만 정말 터무니 없긴 하네요. 이번 한 달로 평자책이 거의 0.5는 떨어진 것 같은데요?’

-정확히는 0.49가 떨어졌구나.

‘뭐, 그 정도면 저렇게 환호할 만도 하죠.’

-글쎄다. 그게 아닐 텐데.

‘그게 아니라고요?’

내야, 외야. 그리고 덕아웃의 선수들이 마운드를 향해 달려왔다.

“미친!! 해낼 것 같다. 같다 했는데. 진짜 해낼 줄이야.”

“한 시즌에 노히터를 두 번이나 해내다니. 이런 괴물 새끼!!”

“에, 노히트?”

그제서야 전광판의 H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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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뭔가 경기가 스무스하게 풀린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정말 노히터인데 그걸 신경을 못 쓰고 있었다고?

‘영감님 알고 계셨죠.’

-말했잖냐. 지금 여기서 너 빼고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아니, 그건 조이에 대한 제 감정이었잖아요.’

-물론 그것도 그렇고.

이건 뭔가 길 가다가 큰돈을 주운 그런 느낌이었다. 분명 성민 본인이 해낸 일이었지만, 가외로 수입이 생긴 느낌이랄까?

“성민, 축하해.”

“젠장. 성민. 이렇게 된 이상 오늘은 달려야지?”

“그래, 뭐 술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저녁 정도는 함께 해야지.”

“이봐, 다들 눈이 있으면 저기를 좀 보라고. 오늘 성민의 그녀가 온 거 안 보여? 지금 이 승리는 너희같은 시커먼 놈들이 아니라, 그녀에게 바치는 승리라고.”

미셸 에쉬만이 ‘기회다.’하고 득달같이 달려드는 선수들을 막아섰다.

성민이 잠시 고민했다.

어차피 조이와 엄마가 함께 식사를 하자고 달려들께 뻔하다. 차라리 이걸 핑계로 그걸 거절을 해볼까?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오늘은 조금 곤란해.”

“왜? 그냥 그 자리에 그녀도 부르면 되잖아. 혼자 오는 게 좀 뻘쭘하다 그러면 우리도 여자친구를 부를께. 물론 랄로 저 녀석은 부를래야 부를 사람도 없겠지만 말이야.”

“뭐 인마? 나도 마음만 먹으면 여자 한 트럭은 만날 수 있거든?”

“워워. 진정들 하라고. 조이 때문이 아니야. 우리 엄마가 날 축하하겠다고 한국에서 찾아오셨단 말이야. 그러니까 오늘은 아무래도 무리야.”

이건 오늘 하루 눈을 돌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게다가 꼭 해결해야 할 일에서 눈을 돌리는 것은 취향도 아니다.

-좋은 생각이다.

필 니크로가 성민의 선택을 지지했다.

제법 긴 인터뷰. 그리고 샤워. 라커룸에서 이어진 간단한 인터뷰. 그리고 마사지에 간단한 스트레칭까지. 모든 것을 끝냈을 때는 이미 11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돌아온 집안의 식탁에는 음식이 한가득 차려져 있었다.

“엄마? 이게 다 뭐야? 저녁은 나가서 먹으려고 했는데?”

“식당 예약하려다 관뒀다. 늦게까지 하는 식당 중에는 도통 괜찮은 곳이 없더라. 차라리 집에서 먹는 쪽이 낫겠어.”

“내가 잘 아는 식당이 괜찮은데. 뭐, 오래간만에 엄마 음식 먹는 것도 좋지. 근데 조이는?”

“오늘은 자기가 빠지는 편이 낫겠다고 빠졌어.”

“어?”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

당연히 조이와 엄마가 함께 무언가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빠지는 편이 낫겠다고 빠졌다?

이건 좋은 소식일까, 아니면 나쁜 소식일까?

“그게 무슨 소리야? 경기 때 보니까 둘이 엄청 다정해 보이던데 혹시 둘이 싸웠어?”

“얘는? 싸우기는 뭘 싸워. 참 좋은 아가씨더라. 너랑 데이트는 내일 하겠다고 먼저 호텔로 갔어. 내일 만나면 맛있는 거나 좀 사주도록 해.”

“엄마가 잔소리 안 해도 알아서 할거거든요. 근데 경기 중에 대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다정하게 한 거야? 보니까 엄청 친하게 이야기 나누던데.”

“뭐야? 경기 중에 우리를 본 거야?”

“그렇게 잘 보이는데 그럼 안 봐? 그리고 나랑 눈도 몇 번 마주쳤잖아.”

“아, 엄마는 그냥 기분 탓인 줄 알았지. 오늘 성민이 너 엄청 집중해서 던졌잖아.”

필 니크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엄청 집중하고 던지기는 던졌지. 어디에 집중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성민이 그의 말을 무시했다.

“일단 앉자. 오늘 경기 뛰느라 수고했는데 배 고프지?”

“어.”

항상 먹던 루틴대로의 음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래간만에 먹는 엄마의 맛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이거······.

“엄마, 이거 엄마가 만든 거 아니지.”

“얘는? 뭐 그렇게 당연한 걸 묻고 그러니. 엄마가 이거 만들 시간이 어딨었겠어. 근처 한인 식당에서 사온 거야. 거기 솜씨가 꽤 괜찮더라.”

“어쩐지, 엄마가 만든 거라고 하기에는 너무 맛있더라니.”

익숙한 풍경이었다.

성민의 어린 시절 그녀는 분명 슈퍼 맘이었지만, 음식까지 직접 할 시간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루에 한 끼 정도는 꼭 이렇게 서로 얼굴을 보고 앉아 식사를 했다. 비록 그 음식은 어딘가에서 포장을 해온 음식이었지만 말이다.

별거 아닌 잡담들이 오고 갔다. 그리고 준비한 음식이 거의 떨어질 무렵. 마침내 성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엄마, 할 이야기 있지.”

“어?”

잠깐의 당황.

권 여사가 짐짓 아무것도 아닌 양 입을 열었다.

“그래, 조이 제임슨이라고 했나? 그 아이 참 좋은 아이더라. 눈치도 빠르고 싹싹하고. 시트콤에 나오던 그대로의 사람이라고 해야하나? 아니 오히려 그것보다 더 좋아보이더라.”

“아니, 조이는 내가 더 잘 알아. 조이 이야기 말고. 엄마 할 이야기 있잖아.”

권 여사가 성민을 바라봤다.

마냥 어리고 마냥 약하던 그 아이가 어느새 장성하여 이역만리 타향에서 4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기립박수를 받는 사람이 돼버렸다.

어쩌면 조이의 이야기처럼 성민은 진작에 그녀의 보호가 필요 없는 사람으로 성장했는지도 몰랐다. 오직 그녀만이 그것을 몰랐을 뿐.

권 여사가 결심을 굳혔다.

“사실 엄마 프로포즈 받았어.”

각오하고 있던 일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성민은 심장이 덜커덕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민은 그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웃었다.

그 미소는 너무나도 아름다워 아주 옛날 권 여사에게 처음 결혼하자고 무릎을 꿇었던 그 남자의 얼굴을 떠오르게 했다.

30년이 넘는 독수공방.

그녀는 이미 쪼글해졌지만, 여전히 젊었던 시절과 다를 바 없이 아름다운 그 남자가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권 여사의 눈에 그녀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엄마, 축하해요.”

“성민아. 아이고 엄마가 주책이다. 왜 갑자기 눈물이 이렇게 나와서는.”

“괜찮아요. 프레스톤 감독님 제가 여러 가지로 조사해봤는데 진짜 괜찮은 사람이거든요. 근데 그러면 결혼해서 어떻게 하기로 한 거예요? 엄마가 미국에 오는 건가? 사업 다 정리하고? 내가 그렇게 정리하라고 할 땐 하지도 않던 그 사업?”

“어휴, 아니야. 그 양반이 그러는데 어차피 계약이 올해로 끝이라더라. 본인이 한국으로 오겠데.”

“네? 프레스톤 감독님이 한국으로 가겠다고 그랬다고요?”

이건 진심으로 놀랐다.

물론 프레스톤의 감독 커리어가 선수 시절처럼 전설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메츠 왕조의 붕괴 이후 그것을 지금 상태로까지 성공적으로 수습한 것은 보통 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걸 이렇게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가겠다고?

-이건 진짜 사랑이로군.

‘그러게요.’

애초에 반대할 생각도 없었지만, 이건 그냥 무조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일이었다.

“후, 엄마 근데요. 그건 힘들 것 같아요.”

“그거?”

“그 있잖아요. 엄마랑 결혼한 남자를 아들이 부르는 인칭 대명사. 그거.”

“어휴, 그건 나나 그 양반이나 바라지도 않는 일이야.”

성민이 씨익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저 구석의 음료수용 냉장고를 열었다. 선물 받았지만 지금까지 뜯지 않고 남겨뒀던 빈티지 샴페인이다.

“자, 그러면 우리 권 여사님. 드디어 국수를 드시게 생겼는데 이걸 축하를 안 하고 넘어갈 수는 없겠죠?”

“뭐야? 성민이 너 술 마시면 안 되잖아.”

“아, 물론 난 여기 이걸로.”

필 니크로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같은 날이면 뭐 샴페인 한 잔 정도는 할 법도 하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까지 알콜을 자제하고 탄산이 들어간 사과 주스 정도로 참는 모습이 기특하다.

“그래도 느낌은 괜찮지 않아요?”

“그러게.”

얇실한 샴페인 잔을 타고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왔다.

그 샴페인을 들이키며 권 여사는 마침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조이의 말이 옳았다. 성민이는 이제 더이상 내 품에서 칭얼거리던 어린아이가 아니구나. 그것은 실로 이상한 감정이었다. 무언가 대견하지만 섭섭했고, 동시에 뿌듯했다. 이제 저승에 가서도 성민 아버지에게 어깨를 쭉 펼 수 있을 것 같달까?

“엄마, 근데 그래서 이제 자녀 계획은? 다시 말하지만 난 33세 연하의 동생도 긍정합니다.”

-짝!!

등짝에 시원한 스파이크가 날아왔다.

“아주, 이놈 새끼는. 하여간에 못 하는 말이 없어.”

“아, 아파!!”

“잔말 말고 결혼식은 미국에서 한 번 한국에서 한 번 총 두 번을 할꺼니까 넌 그 두 번 다 오도록 해.”

“뭐야? 결혼식을 두 번이나 한다고?”

“그래, 미국에서는 그리 크지 않게 소소하게 할 거고, 한국에서는 좀 크게 할 생각이다.”

“당연하지. 엄마가 지금까지 낸 축의금이 얼만데. 다 회수해야지. 엄마. 파이팅!!”

“이놈 새끼가 그걸 말이라고? 그건 너 장가갈 때 받아야지!!”

“엄마, 이제 나 연봉이 250억인데?”

다 큰 아들을 몰라본 것이었을까.

아니면 다 큰 아들이 언제까지나 품 안의 자식처럼 놀아줬던 것일까.

오늘도 그렇게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두 모자의 하루가 저물었다.

< 국수(6) > 끝

ⓒ 묘엽

작가의 말

헉, 지온공님 후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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