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206화 (207/287)

< 하반기(1) >

케빈 체임벌린이 신중하게 성민의 공을 기다렸다.

여러모로 아쉬운 남자였다. 작년, 그를 처음 보는 순간 그의 나머지 커리어를 함께 할 선수라고 생각했기에 더더욱 그랬다.

‘만약 그랬더라면.’

아니다. 어차피 팀 구성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저 프런트의 일이다. 내가 아쉬워할 일이 아니다. 게다가 지금 이 팀으로도 다저스는 양대 리그 승률 1위를 달리고 있다.

케빈 체임벌린이 스스로를 달랬다.

초구.

느린 너클볼.

타이밍을 맞추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어려운 공이다.

케빈 체임벌린의 방망이가 빠르게 움직였다.

-딱!!

파울.

역시 정타를 만들기 힘들다.

그리고 두 번째. 이번에도 역시 느린 너클볼이 파울로 이어졌다.

케빈 체임벌린이 마음의 준비를 한 채 세 번째 공을 기다렸다.

아마도 속구.

성민이 자주 보여준 패턴이다.

그리고 세 번째.

성민의 손을 떠난 공이 두둥실 떠올랐다. 너클볼이다.

하지만 타이밍이 조금 달랐다. 73.9마일의 빠른 너클볼. 너클볼이라는 사실에 한번 타이밍이 흔들리고, 거기다가 지금까지 쳐내던 공보다 빠르다는 것에 한 번 더 흔들렸다.

그럼에도 케빈 체임벌린은 포기하지 않았다. 온몸을 쥐어짜 방망이를 휘둘렀다.

-딱!!

그의 방망이가 성민의 공을 건드렸다.

방망이를 그대로 내려놓고 1루를 향해 최선을 다해 달렸다. 전성기에 비하자면 많이 느려진 발이었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다고 언제나 결과가 좋을 수는 없었다.

유격수 제이크 스컬리가 빠르게 달려나와 맨손으로 공을 잡아 그대로 일루에 뿌렸다.

-뻐엉!!

안정적인 수비와 안정적인 송구.

“아웃!!”

아슬아슬 근처도 아니다. 주자가 1루까지 5미터도 넘게 남은 상황에서 안정적인 아웃. 필 니크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게 야구지.

이어지는 타자 역시 뜬 공로 잡아내며 2회 역시 삼자범퇴.

성민이 자신의 몫을 완벽하게 해냈다.

피칭을 끝내고 덕아웃에 앉아있던 디아고 헤밍턴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성민을 노려봤다. 지난번 맞대결 역시 경기를 이긴 것은 다저스였고, 승리투수가 된 것 역시 디아고 헤밍턴이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었다. 무자책 3실점. 그리고 1타점 적시타. 지난 맞대결에서 성민이 거둔 성적이었다.

‘젠장.’

지난 1년. 성민은 좋은 친구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자신이 유일하게 잘하는 야구라는 종목에서만큼은 더더욱 지고 싶지 않았다.

디아고 헤밍턴이 신경질 나는 표정으로 샤워실을 향해 먼저 자리를 떴다.

***

2이닝을 무사히 막아내고 샤워를 하고 돌아온 성민에게 이번 올스타게임의 지명타자인 Mr. 양키스. 리암 루카스가 달라붙었다.

“어땠어?”

“뭐가요?”

“올스타 수비수들을 등 뒤에 두고 경기를 하는 느낌 말이야.”

“작년에도 해봤거든요. 게다가 다저스 있던 시절에는 일상이었고요.”

“그러니까 더 물어보는 거지. 작년이라면 너무 익숙해서 못 느껴봤을 그 감각을 말이야.”

리암 루카스의 묘한 웃음에 성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확실히 좋기는 좋죠. 안심도 되고. 사실 내야 땅볼을 유도했는데 어쩔 수 없는 안타도 아니고 어설픈 수비로 놓치면 투수 입장에서는 좀 짜증나니까요.”

“그래, 바로 그거야.”

“하지만 제가 양키스에 갈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어?”

기습적인 성민의 이야기에 리암 루카스가 당황했다.

“애초에 그런 걸 원했으면 다저스에 계속 남았겠죠. 전 여기가 좋습니다. 원래 남자의 로망은 탑독을 물어뜯는 언더독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어차피 메이저 우승 반지는 이미 하나 있고. 요즘 저희 성적 보이시죠? 야구는 모르는 겁니다. 와일드카드로 올라가서 우승까지 한 팀이 없는 것도 아니고요.”

“그야 그렇지만······.”

마찬가지로 올스타전에 출장하여 3회 말 공격을 무사히 무실점으로 막아냈던 욘 마르틴이 슬쩍 끼어들었다.

“거봐. 내가 뭐라고 그랬어. 이 녀석 그런 쪽 취향이라고 말했잖아.”

“아니, 근데 그런 쪽 취향이라고 하기에는 보스턴도 충분히 빅마켓인데······.”

“에이, 아무리 언더독이라고 해도 최소한 제 몸값 정도는 보전이 돼야죠.”

“그 몸값은 아마 우리 쪽에서 훨씬 더 쳐줄 수도 있을 텐데.”

리암 루카스의 이야기에 성민이 씩 웃으며 그라운드를 슬쩍 바라봤다.

“제가 뭐 몸값만으로 움직였겠습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애들은 아직 좀 어설프긴 합니다만, 그래도 우리 팀에는 저 녀석이 있잖아요.”

-뻐엉!!

“스트라잌!!”

리그 최고의 수비형 포수.

에두아르도 크루즈가 또 한 번 멋지게 스트라이크를 만들어 냈다.

“끙, 확실히 그건······.”

[연달아 터진 시원한 홈런포!! 치열한 타격전!! 2034년 올스타전. 내셔널리그팀의 9:6 승리!!]

[김성민 2이닝 연속 삼자범퇴. 완벽한 피칭!!]

[노장들의 활약이 돋보인 올스타전!!]

[남은 시즌의 향방은? 과연 보스턴 레드삭스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수 있을까?]

-오래간만에 성민이 경기 보면서 마음이 편안했다.-

-제이크 스컬리 수비 봤냐? 개 미쳤음. 맨손으로 공을 잡는데도 불안감이 없이 편안해.-

-그래도 수비는 페데리코 수만큼은 아니지. 제이크가 하이라이트는 많이 만드는데, 수비 범위는 솔직히 좀 작잖아.-

-어찌됐건 후안 칼초 등 뒤에 두고 하는 거랑은 차원이 달랐음.-

-보스턴 유격수 어쩌면 조만간 바뀔지도······.-

-뭔데? 혹시 트레이드 소식이라도 있어? 이제 곧 데드라인이니 있을 법도 하긴 한데.-

-아니, 그건 아니고. 이번에 내가 퓨처스 올스타전을 봤거든. 루시 알베리가 완전 미쳤던데?-

-루시 알베리면 4월에 그 졸라 못해서 마이너로 다시 빠꾸한 애새끼?-

-어, 근데 3개월 사이에 각성이라도 한 듯.-

-마이너들 사이에 있으니까 그래 보인 거겠지. 걔 지금 AA뛰지 않냐? 일단 AAA나 밟고 올라오라고 하자.-

-AAA하니까 생각난 건데 맥스 슈피겐도 요즘 성적 오지던데?-

-마이너에서 여포짓 하는 놈들이 어디 하나, 둘이냐? 지금 보스턴 분위기 좋으니까 유격수만 하나 보강하고 가자. 새삼 바그너 가이탄이 아쉽네.-

-그래도 걔 보낸 덕분에 지금 지구 2위 다툼이라도 하고 있잖아. 솔직히 그 트레이드는 우리가 이득 본 트레이드지. 바그너 가이탄 아직도 마이너에 박혀있지 않음?-

-듣기로는 부상은 다 나았는데 탬파놈들이 컨트롤기간 늘리려고 박아뒀다는 듯. 걔도 지금 마이너에서 아주 날아다닌다.-

***

메이저리그에는 트레이드 데드라인 있다. 과거 2020년 이전에는 7월 31일 이후로도 한 달간 웨이버 트레이드가 가능했지만, 지난 2020년 합의 이후 웨이버 트레이드 역시 7월 31일로 통일됐다.

이번 시즌 올스타전이 열린 날짜는 7월 11일.

즉 달리고 싶은 팀이 전력보강을 할 기회는 앞으로 20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현재까지 진행된 경기의 숫자는 88경기.

남은 경기 수는 74경기다.

이제 막 절반이 지난 셈이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에 도전할 수 있는 팀과 그렇지 않은 팀은 대체로 각이 다 나왔다.

각 지구별 1위는 이미 승률 6할 이상을 기록하며 달려 나가고 있었고, 와일드카드 역시 노려볼만한 팀은 리그별로 대여섯 팀에 불과했다.

30개 팀 가운데 절반이상이 시즌을 포기해야 한다. 물론, 포기하는게 마땅한 성적임에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럴 수 없는 팀도 존재했다.

보스턴 레드삭스 같은 경우는 그 와일드카드를 노려볼만한 대여섯 팀 중 하나였다. 88경기를 진행한 상황에서 49승 39패. 뉴욕 양키스가 56승 32패로 워낙 잘나가고 있긴 했지만, 남은 경기 숫자를 고려하면 지구 우승도 영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다.

“유격수를 보강해야 합니다. 지금 후안 칼초 성적이 0.237/0.296/0.331이에요. 충분히 포스트시즌을 노려볼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건 달려야죠.”

“하지만 지금도 사치세 라인에 간당간당한 상황이라는 거 아시잖습니까. 확실한 것도 아니고 와일드카드 경쟁을 위해서 사치세 라인을 넘기자고 건의하면 위에서 받아들일지가······. 게다가 우리 후년부터는 사치세 넘어가는 게 확실한 상황인데 혹시라도 내년에 리셋을 못 하게 되면 정말 힘들어지는 수가 있습니다.”

직원들의 이야기에 존 맥도웰이 고민했다.

최근 점점 괜찮아지는 성적에 스트레스성 탈모가 조금 호전되나 싶었는데 성적이 좋아지면 좋아지는 대로 또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가 덮쳐오는 느낌이다.

“드와이언 감독님.”

“네!?”

“감독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드와이언 머피가 잠시 고민했다.

물론 그 고민의 방향은 그가 어떻게 생각을 해왔느냐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더 확실하게 감독 자리를 보전할 수 있느냐다.

선수를 보강하지 않더라도 포스트시즌을 노려볼 수 있다고 한다면 당장은 이자들 마음에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다면 그것대로 문제다.

만약, 선수를 보강한다면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확률은 올라간다.

‘잠깐만, 그러면 보강을 해놓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하면 그건 더 큰 문제잖아.’

지극히 자의적이고 자기 보신주의적인 논리 끝에 드와이언 머피가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야말로 명장의 풍모다.

“보강을 할 수 있다면 물론 좋습니다. 하지만 팀의 사정이 그렇다면, 최대한 그런 것 없이 해보겠습니다. 단언할 수는 없는 부분이지만, 지금 팀 분위기라면 충분히 도전해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혹여 이번 시즌 아쉽게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 팀은 젊습니다. 내년에는 무조건 나갈 수 있습니다.”

존 맥도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

몇몇 프런트 직원들, 그리고 드와이언 머피 감독이 사라진 회의실.

존 맥도웰이 전력분석팀장을 불렀다. 그가 보스턴에 전력분석팀장으로 있던 시절부터 함께하던 부하직원이다.

“저거, 보강 해줘도 자신 없다는 소리겠지?”

“뭐, 그렇겠죠.”

“젠장. 내가 그래서 진즉에 짜르자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그래도 무능하기는 해도 자기주장 안 내세우고 말은 잘 듣잖습니까. 어차피 감독은 선수들 다독이는게 자기 일인데요.”

“그 다독이는 일도 잘 못 하니까 그렇지.”

짜증을 내면서 자리에서 일어난 존 맥도웰이 한참 동안 태블릿을 두들겼다. 뭐 오랜 시간 함께해온 상관의 그런 모습이 익숙했던 전력분석팀장 역시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자신의 태블릿을 두들겼다.

“이건 어떨까?”

***

최근 조이 제임슨은 상당히 행복했다.

지난번에 찍었던 영화가 폭삭 망한 직후, 이래저래 영화 오디션에서 까이기만 해왔던 나날이 드디어 끝난 것이다.

특히 가장 처참했던 것은 마치 주연으로 낙점이라도 된 것처럼 굴던 녀석들이 오디션을 보라고 통지를 보내왔던 경우였다. 심지어 오디션 상대가 최근 기세를 올리고 있는 앰버였다는 점이 가장 화나는 부분이었다.

게다가 영화가 아니더라도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각종 섭외들. 그걸 다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다.

“성민이 다음다음 주에 이 근처에 원정 경기를 나온다고 했었나?”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성민이 근처로 원정 경기를 나오는 것을 체크하는 것만큼은 놓치지 않았다.

그것이 단순히 비지니스인지, 그 이상 때문인지는 그녀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

< 하반기(1)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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