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프로 선수의 하루 >
1 더하기 1은 2다. 3이나 4. 혹은 10이 되는 일은 없다.
하물며 기존 보스턴 21명의 전력이 5쯤 된다면 새로 합류한 선수들 네 명의 전력이 1이 될까 말까다.
5의 전력으로 26승 29패 하던 팀에 1의 전력이 더해졌다? 얼핏 생각할 때는 싸울 때마다 이기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6월.
보스턴 레드삭스는 그 말이 안 되는 일을 실제로 해냈다.
애초에 싸움의 승패는 그 한 끗의 차이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야구란 1번 이기고 1번 지고 나머지 1번에서 승부가 결정나는 게임이다.’라는 명언이 있다.
애초에 야구는 같은 리그를 뛰는 팀이라면 압도적이기가 쉽지 않다. 당장 AAA에서 뛰는 상위급 선수들. 일명 AAAA급이라고 불리는 선수들로만 이뤄진 팀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승률이 3할이나 된다.
크지 않은 전력 차이.
거기서 ‘대체 선수’ 수준에 가까운 선수 네 명이 사라지고, 리그 상위권의 선수 네 명이 새로 들어왔다. 그것은 단순히 그 선수 개개인의 WAR를 합산한 효과에서 끝나지 않았다.
선발이 잘 던지고 들어간 경기에서 2이닝 만에 5~6점씩 내주며 불을 지르던 불펜 대신, 평자책 2~3점대의 불펜이 공을 던졌다. 안정감이 다르다.
게다가 선발의 수준 역시 한층 높아졌다.
라만 그레고리는 그 사이 영 위너라는 이름값만큼은 아니었지만, 제법 건실한 2선발급의 피칭을 보여주었고 브라이언 보일은 기복은 조금 있었지만, 기존의 2선발이던 부룬디보다 오히려 더 나은 활약을 보여줬다.
[보스턴 레드삭스,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홈 3연전 스윕!!]
[폭주 기관차 같은 질주!! 레드삭스 파죽의 7연승!!]
“후회하게 해줄 생각입니다.”
보스턴에서 며칠의 시간을 보낸 브라이언 보일의 결심이었다.
사실 빅리그에서 트레이드는 일상이다. 애초에 구단은 사업체이고 선수들은 일종의 거래가 자유로운 자산이다. 하지만 탬파베이 레이스라는 스몰마켓의 에이스 계보를 이어갈 선수로써, 그 이전의 에이스가 너는 탬파베이 레이스 최초의 프랜차이즈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격려를 해줬던 남자로써, 아쉬운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제가 여기서 놀라운 성적을 기록한다면 그들도 나를 다시 보게 되겠죠. 당장 눈 앞에 이익처럼 보이는 일을 위해서 얼마나 큰 손해를 봤는지를 똑똑히 알게 해줄 생각입니다.”
그런 브라이언 보일의 결심에 대해서 라만 그레고리는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부정적인 감정이라도 결국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한 동력으로 삼는다면 나쁠 것은 없다. 다만 안타까운 일은, 자신이 물려받았던 탬파베이 레이스의 정신을 팀에 제대로 물려주지 못 했다는 아쉬움 정도다. 그 정신의 정수라고 할 만한 브라이언 보일이 지금 이렇게 여기서 이를 갈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가 팀에 있던 시절에 가르침을 준 것은 브라이언 보일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과연 남아있는 다른 선수들이 제대로 된 에이스로 성장해서 그것을 전달할 수 있을까?
‘뭐, 그건 이제 남은 선수들이 알아서 할 일이겠지.’
***
프로야구선수의 아침은 늦다.
명목상이라고는 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퇴근이 6시라면 프로야구선수는 아무리 빨라도 11시는 돼야 퇴근을 한다. 생활 패턴 자체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쉬는 날이라고 해서 그 밀려있는 생활 패턴을 당기는 것은 쉽지 않다. 보통의 직장인들이 그렇듯, 아니 일주일에 이틀을 쉬는 보통의 직장인들 이상으로 프로야구선수들 역시 휴식일 직전에는 격렬하게 노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물어는 봐야 하지 않을까?”
“걍 내버려 둬. 어차피 안 간다고 할 새끼야.”
“그래도 좀 그런데.”
“내가 이미 물어봤어. 안 간다더라.”
“하여간에, 저런 새끼들은 이래서 문제야. 아니, 지 좀 잘나간다고 젠체하는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어? 우리가 그냥 놀자고 이러는 거야? 요즘 우리 분위기도 별로고 하니까. 하나가 돼서 으쌰으쌰 하자고 하는 거잖아.”
“됐어. 저 새끼는 지들끼리 놀 때도 안 가는 새끼라잖아. 존나, 하는 짓만 보면 벌써 아주 우주 대 스타야. 솔직히 진짜 전국구 스타였던 성민이 형도 한국 있을 때 저 정도는 아니었다. 그 형도 마지막 1년 바짝 할 때 술은 잘 안 마셨지만 그래도 어? 같이 모여서 으쌰으쌰도 하고 그랬었다고.”
자신을 험담하는 선수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안 들리는 게 이상하다. 애초에 다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니까. 유치한 짓이다. 하지만 효과적인 짓이기도 했다. 사람인 이상 상처를 안 받을 수는 없다.
그냥 따라가서 우두커니 앉아라도 있을까?
동엽이 고개를 저었다.
권하는 술을 계속해서 무시하는 것은 분위기를 싸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술을 마시고 저들이 말하는 으쌰으쌰를 함께 한다고 해도 딱히 저 공고한 이너서클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자신과 같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실력으로 보여주는 것뿐이다. 더군다나 내일은 휴식일이다. 시간을 조금 마음대로 배분할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성민 선배 경기랑 내 휴식일이 맞아 떨어지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닌데, 이건 어떻게든 본방사수해줘야지.”
생각해보면 그의 인생에서 딱 1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1년은 동엽에게 정말 중요했다. 성민 본인이야 어떨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가 팀에 끼친 영향은 실로 막대했다.
그가 사라진 직후 급락한 팀의 성적이 그것을 증명했다.
물론 빅리그에서 사이 영 2위를 할 정도로 개인의 기량이 출중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이 성민이 사라진 마린스가 약해진 이유로 그것을 들곤 한다.
하지만 동엽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성민은 일종의 연결고리 같은 존재였다.
그것도 어디에나 들어맞는 실로 마법 같은 연결고리다.
사람은 누구나 호불호가 존재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절대 나쁜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성민은 특별한 존재였다.
팀의 모든 선수가 그를 좋아했다. 모두가 그를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했고 그 연결고리를 중심으로 2032년의 마린스는 ‘하나의 팀’이었다.
만약 2032년이 올해와 같은 분위기였다면?
동엽은 지금의 위치로 절대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느 정도 입지를 다진 지금도 이렇게 마음이 괴로운데, 하물며 이제 막 자리를 잡아야 하는 상황에서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가 이만큼 들어온다면? 안 봐도 뻔하다.
인터넷의 댓글들을 가볍게 읽어 넘겼다.
뭐 악플들은 여전히 범람한다. 하지만 성민의 이야기처럼 어차피 어떻게 해도 욕할 사람은 욕을 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오늘의 플레이에 내가 만족을 했느냐다.
나쁘지 않았지.
팀이 진 건 좀 구렸지만, 3타수 1안타 1볼넷이면 매우 준수했지.
그리고 내일 아침에는 성민의 경기를 봐야지.
저 태평양 너머. 모든 투수가 최소한 팀의 에이스인 닉 해리슨만큼 대단한 리그. 하지만, 만약에 내가 지금보다 더 나아진다면? 모든 면에서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선수가 된다면?
최소한 용을 목표로 그림을 그려야 이무기라도 그리지 않겠는가.
평소와 다를 것 없었던 동엽의 하루가 지나갔다.
***
시즌이 물처럼 흘러갔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작년 팀내 불화로 폭발했던 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끈끈하게 시즌을 이어갔다. 물론 중간중간 잡음은 있었다.
성민이 있던 내셔널리그 서부지구만큼은 아니더라도, 타선이 사실상 8명으로 구성됐던 내셔널리그와 그 자리에 지명타자라는 최고 수준의 공격력을 지닌 타자가 들어와 있는 아메리칸리그가 같을 수는 없다.
보스턴으로 온 투수들의 성적은 내셔널리그에 있던 시절과 비교해 명백하게 떨어졌다.
브라이언 보일은 에러를 범하는 내야수들의 모습에 짜증을 냈고, 야수들은 플레이하다 보면 나올 수 있는 일에 뭐 그리 짜증을 내느냐. 다른 투수들은 다 가만히 있는데. 더럽게 예민하다. 라며 투덜댔다.
“그래도 탬파베이 시절과는 다르게 공격력 하나 만큼은 화끈하잖아.”
“뭐, 그건 그렇죠.”
그런 브라이언 보일을 달래는 것은 라만 그레고리.
그리고 다른 투수들이었다.
“야, 쟤들도 사람이잖아. 우리가 컨디션 안 좋아서 형편없을 때도, 쟤들 덕분에 경기 이긴 날도 많잖냐.”
“뭐, 그건 그렇지.”
야수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중심에는 올스타급 포수인 에두아르도 크루즈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었다.
“투덜이 스머프이기는 하지만, 저 정도는 다른 팀 가도 많아. 그나마 저만큼 던지면서 투덜거리는 것도 아니고, 더럽게 못 던지면서 투덜거리기만 하는 애들이 널렸다고.”
“아무리 그래도 자기가 뭐 성민 만큼 던지고 그러는 거면 몰라도 좀 너무하잖아요.”
“야, 그거야 애초에 기준이 잘못됐지. 애초에 성민만큼 던지는 투수도 드물뿐더러, 저만큼 던지는 투수 중에서 저렇게 무던한 인간은 아예 본 적이 없다. 내가 공 받아주기 제일 편한 놈이 성민이야. 물론 공 자체는 더럽게 들어오니까 힘들지. 하지만······, 아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하나.”
“말 안 해도 압니다. 저도 똑같으니까요. 성민이 이상하게 편하고 부담이 없어지는 게 있긴 하죠.”
“그래, 바로 그거야!!”
그 사이에서 필 니크로는 점점 한가해졌다.
너클볼로 세계 정상에 설 유일한 재능이라는 말은 과언이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순수하게 재능만 따지자면 성민보다 대단한 녀석도 70억 명의 사람 중에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야구를 할 수 있는 환경, 그리고 너클볼을 선택할만한 이유, 궁극적으로 빅리그에 진출할 수 있는 조건까지.
성민은 정말로 ‘유일’ 했다.
무엇보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7월 초순.
올스타 브레이크.
당연히 작년과 마찬가지로 성민은 올스타에 선정됐다.
혼자만이 아니었다.
에두아르도 크루즈는 물론이거니와 랄로 가야르도와 매튜 쿠퍼 역시 함께 초대를 받았다. 2년 연속 올스타 출장.
한국인 투수로는 최초의 기록이었고 한국 언론에서 떠들썩하게 대서특필 될 만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이야기는 뉴스거리로 그리 대단한 트래픽을 차지하지 못 했다.
그렇다고 야구 커뮤니티에서라도 대단한 트래픽을 차지했냐면 또 그것도 아니었다.
-야, 성민이 조이 제임슨이랑 진짜 사귀는 거야?-
-당연한 거 아니야? 드라마 봤는데 두 사람 눈에서 아주 꿀이 떨어지든데?-
-조이 제임슨이 성민이 경기 직관 가는 거 종종 SNS에 남기잖아. 진짜 사귀는 거 아니면 그런 거 남기겠냐?-
-근데 또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단 말이지. 난 이거 뭔가 쇼윈도 커플 아닌가 의심이 되는데. 그렇잖아. 애초에 이거 찍은 건 올 겨울인데 그때 이렇게 눈에 꿀 떨어졌으면 지금쯤 뭔가 공식적인 소식이 나올 법도 하잖아.-
7월.
라이프 오브 헐리웃의 마지막 회차가 방영됐다.
미국은 물론이거니와 OTT 서비스를 통해서 거의 실시간으로 드라마를 시청하던 한국의 시청자들까지 마지막 성민의 등장에 크게 놀랐다.
등장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카메오로 등장하는 어느 스포츠 스타들이 그렇듯 적당히 얼굴이나 내밀 것이라 예상했지만, 성민은 그 이상이었다.
도저히 연기라고 믿기 힘든 그 다정함. 하물며 성민은 프로 연기자조차 아니었다.
-얘들아, 공식발표 나왔다. 라이프 오브 헐리웃 다음시즌 편성 완료 됐고, 성민이 정식 출연이란다.-
< 어느 프로 선수의 하루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