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201화 (202/287)

< 보강(3) >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아슬아슬한 승부였다.

미셸 에쉬만의 송구가. 그리고 후안 산초의 중계 플레이가 조금만 구렸더라면 최소 동점을 허용했을 그런 승부.

하지만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오늘 승부에서 보스턴 레드삭스가 이겼다는 점이었다.

‘거보세요. 제 말이 맞죠? 제가 우리 팀 예전보다 강해졌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런 이야기는 7:3을 7:7까지 만들고 결국 마지막에 간신히 11:10으로 이긴 팀에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만.

‘어쨌거나 이기기는 이겼잖습니까. 예전을 생각해보세요.’

-으음······, 뭐 확실히 생각하기도 싫은 그 ‘예전’과 비교하면 조금은 나아진 것 같긴 하구나.

시답잖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라커룸으로 향했다.

메이저리그의 경기 직후 인터뷰는 주로 라커룸에서 이뤄진다. 단, 다른 선수들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서 방송국 카메라는 해당 선수의 라커를 배경으로 오직 그 선수의 얼굴만을 찍을 수 있다.

또한, 사진 촬영은 금지된다.

성민의 경우 홈에서 경기를 치를 때는 라커룸이 아닌 미리 준비된 다른 장소를 주로 활용했다. 그를 촬영하고자 하는 언론의 숫자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원정 경기장인 애너하임 엔젤스였다.

이제 막 씻고 나온 선수들에게 기자들이 달라붙었다.

“네?”

“트레이드요?”

“맙소사. 지금 그게 진짭니까?”

곳곳에서 선수들의 커다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트레이드?

‘탬파베이랑 링크설 떠돌던 거 진짜였나 본데요?’

-흐음, 이거 좀 흥미롭구나.

‘일단 전 트레이드 거부권이 있으니 아닐 테지만, 이거 좀 불안하긴 하네요. 지금 분위기 괜찮게 올라가려고 하고 있는데 설마 시즌 포기하는 건 아니겠죠? 그래도 단장이라는 양반이 달리겠다고 약속까지 했는데요.’

-글쎄다. 일단 지금까지 선수 영입하고 움직였던 거 보면 달릴 생각인 건 확실해 보이기는 하는데. 일단 들어보자꾸나.

자신의 라커 앞에 선 성민에게 기자들이 달라붙었다.

“김성민 선수, 이번 트레이드 소식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어떻게 생각이라도 해보려면 그 트레이드 소식이 뭔지를 저에게 일단 말씀을 해주셔야겠죠? 제가 샤워할 때는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타입이 아니라서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급한 마음에. 설마 김성민 선수에게까지 알려지지 않은 트레이드라고는 생각을 못 했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보스턴에서 바그너 가이탄 선수와 로버트 보일 선수가 탬파베이로 이동을 하고······”

“잠깐만요. 지금 바그너 가이탄이라고 했습니까? 우리 주전 유격수?”

필 니크로가 버럭 소리쳤다.

-이 망할 자식이?

‘워워, 진정하세요. 일단 이야기를 좀 들어보죠.’

-이제 이 주만 더 참으면 저 후안 녀석 백업으로 물러나고 좀 사람 같은 녀석이 돌아올 줄 알았거늘!!

‘에이, 어차피 바그너 가이탄도 수비는 뭐 그다지 좋지 않았잖습니까. 그보다 저만한 선수들을 보내고 데리고 오는 녀석이 누군지나 좀 들어보죠.’

성민이 필 니크로를 진정시켰다.

“네, 맞습니다. 그 바그너 가이탄과 작년 드래프트 전체 2위였던 로버트 보일 선수가 탬파베이로 이동하고, 탬파베이에서 브라이언 보일 선수와 라만 그레고리 선수. 그리고 태너 뱅크와 스캇 모스 선수가 보스턴으로 옵니다.”

“브라이언 보일이랑 라만 그레고리가 온다고요? 잠깐만. 근데 태너 뱅크랑 스캇 모스면 제가 기억하기로는 탬파베이 레이스 소속이 아닐 텐데요. 설마 삼각 트레이드입니까?”

“정확히는 탬파베이 레이스가 마이애미 마린스와 먼저 트레이드를 하고 다시 그 선수를 가지고 보스턴 레드삭스와 트레이드를 했습니다.”

성민이 잠시 머리를 굴렸다.

바그너 가이탄이 빠지는 건 조금 아프다. 하지만 후안 칼초와 바그너 가이탄. 두 선수의 결정적인 차이는 수비가 아닌 공격에 있다.

후안 칼초나 바그너 가이탄이나 수비만 보면 크게 수준 차이가 나는 선수는 아니다. 바그너 가이탄 쪽이 조금 더 기복이 있는 박동엽의 완성형 같은 선수라면 후안 칼초는 안정적으로 평균에 살짝 못 미치는 선수라는 차이 정도일까?

현재 보스턴의 공격은 충분하다. 물론 더 좋으면 당연히 좋지만 그래도 더 급한 쪽을 고르라면 공격이 아닌 수비 쪽이다.

그런 의미에서 상위 선발 둘. 그리고 당장 승리조로 뛸 만한 불펜 하나와 어찌 됐건 로스터에 이름을 올릴만한 불펜 하나의 영입은 반길만한 일이다.

무엇보다

-존 맥도웰이 정말 달리기로 작정을 한 것 같구나.

‘그러게요.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네 이야기처럼 요즘 보스턴의 기세라는 것이 간질간질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겠지.

[김성민 ‘매우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현재 팀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내다보는 트레이드였습니다. 팀은 저희의 전성기를 낭비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이번 시즌 좋은 결과로 보답하겠습니다.’]

-와 미쳤네. 당장 라인업에서 투수를 네 명을 갈아치우는 트레이드를 한다고?-

-이건 진짜 오늘밖에 없는 트레이드다. 바그너 가이탄이면 앞으로 보스턴의 10년을 책임질 유격수였는데.-

-대신 브라이언 보일이 왔잖아.-

-대신이라니. 브라이언 보일 요즘 성적 모름? 게다가 그 녀석이랑은 서비스 타임도 1년 차이나고. 솔직히 급만 따지면 바그너 가이탄 쪽이 훨씬 더 높지. 게다가 로버트 보일이면 작년 전체 2번인데 작년 드래프트 야수 최대어잖아. 이번 트레이드 전체적으로 보면 보스턴이 좀 많이 퍼준 듯.-

-어차피 보스턴 레드삭스 내야는 좀 정리할 필요가 있었어. 내보낸 녀석이 루시 알베리가 아니라 바그너 가이탄이 간 건 좀 유감스럽지만 그래도 우리 투수가 약점이었는데 진짜 잘 보강한 거야. 당장 25인 로스터의 네 명을 갈아치우는 것만 봐도 우리가 얼마나 알차게 보강했는지 알 수 있어.-

-난 다르게 생각한다. 이건 우리가 올해 성적을 내면 잘한 트레이드겠지만, 그게 아니면 두고두고 멍청한 짓으로 기록될 트레이드야.-

-미래고 뭐고, 난 당장 이 미친 불펜이 좀 정상적으로 돌아갈 걸 생각하면 그것만으로 행복하다.-

***

스캇 모스는 올해 32세 메이저 11년 차의 불펜 투수다.

평생을 저니맨으로 떠돌던 그의 커리어 총연봉은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1,730만 달러에 불과했다. 그런 그가 작년 커리어 최초로 2.04라는 성적을 기록하며 이번 시즌 1년 1,050만 달러라는 계약을 체결했다. 물론 재작년에도 2.87이라는 좋은 성적을 기록했기에 가능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2년간 열심히 달린 여파일까?

1,050만 달러를 받는 이 특급 불펜은 이번 시즌 6월이 시작된 지금 시점에서 무려 3.97이라는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봐, 태너 너무 그렇게 인상 쓰지 말라고. 어차피 자네도 탬파베이에 오래 머무르지 못할 거라는 것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잖아. 마이애미도 그렇고 그런 팀들이 감당하기에 우리는 너무 비싼 몸들이라고.”

“그래,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지. 하지만 이렇게 탬파베이에 도착하자마자 짐도 풀기 전에 다시 떠나게 될 줄은 몰랐지.”

“아, 그러고 보니 태너 자네는 마이너에서도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나?”

“난 쭉 밀워키에서 뛰었지. 팀을 옮겨본 건 작년에 마이애미로 옮긴 게 처음이야. 그 외에는 콜업 정도만 경험해봤지.”

스캇 모스가 킬킬거리며 웃었다.

“그렇다면 이런 경험이 생경하긴 하겠군. 하지만 이건 오히려 아주 운이 좋은 거라고.”

“운이 좋다고?”

“그래, 생각을 좀 해봐. 짐을 애써 풀었는데 갑자기 다른 팀으로 옮기라고 하면 얼마나 엿 같겠어. 아니지, 짐만 풀고 다시 싸는 것도 양반이지. 힘들게 집까지 구했는데 대뜸 팀을 옮기라는 소리를 듣잖아? 크, 그 엿 같음이란. 진짜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짐을 풀기도 전에 옮기는 건 행운이라고.”

“행운은 무슨. 그냥 그 팀에서 꾸준히 뛰는 쪽이 훨씬 행운이지.”

“아니지. 아니야. 어차피 받는 돈은 같은 데 이왕이면 환경 좋고 이길 수 있는 팀에서 뛰면 더 좋지. 그런 의미에서 보스턴은 응원하는 놈들이 좀 엿 같기는 하지만 대도시라 인프라도 좋고 우승도 노려볼 수 있는 팀이니 더 좋지. 물론 올해는 좀 글러 보이지만, 그래도 나와 다르게 자네는 3년짜리 계약이잖아. 내년을 노려볼 수 있으니 여러모로 보스턴 쪽이 유리하지.”

“그러길래 자네도 작년에 다년 계약을 맺었으면 좋았잖아. 듣기로는 2년이나 3년짜리 제의한 곳도 있었다던데.”

“그거야 누가 올해 이렇게 죽을 쑬 줄 알았나. 작년에 던질 때만 하더라도 뭔가 껍데기를 하나 까부순 느낌이었다고. 게다가 올해 끝나면 나도 이제 서른셋이잖아. 괜히 서른둘에서 서른넷까지 딱 좋은 나이들만 묶이느니 서른둘 큰돈 받고 서른셋부터 서른다섯까지 좀 땡길 생각이었지.”

같은 비행기.

굳이 들으려고 귀를 기울인 것은 아니었지만 스캇 모스의 목소리가 워낙 컸던 탓에 너무 똑똑하게 들려왔다.

브라이언 보일이 인상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트레이드가 돼서 기분이 별로였는데, 앞으로 동료로 뛰게 될 녀석의 이야기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나마 마음에 드는 일이라면 보스턴으로 가는 것이 브라이언 보일 혼자가 아니라는 점 정도였다.

“이런 멍청한 새끼들이?”

두 사람의 트레이드 소식을 들은 라만 그레고리가 처음 뱉었던 이야기였다.

“어쩔 수 없죠. 최근 제 성적이 별로였으니까요.”

지난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경기.

브라이언 보일이 자신의 공에 확신하는 일종의 계기가 되기를 바랐던 그 경기에서 박살이 난 이후 그는 잠시 부진에 빠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라만 그레고리가 생각할 때 이 녀석은 리그 에이스로 충분히 성장할 투수다. 하지만 아쉽게도 윗선의 판단은 조금 달랐다.

4인 4색.

서로 다른 과거와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네 명의 투수가 같은 비행기를 타고 보스턴으로 향했다.

***

“기사 봤어. 떠들썩하던데?”

“너희 드라마로 치면 당장 주연 배우 2명을 다른 드라마의 배우와 스왑하는 수준의 트레이드였으니까.”

“와우, 그렇게 들으니까 뭔가 확 와닿네.”

조이 제임슨은 약속처럼 성민의 경기를 찾았다. 게다가 SNS에도 충실하게 인증샷을 남김으로써 오늘도 인터넷에 성민을 질투하는 남성들의 댓글을 수만 단위로 양산해주었다.

“그래서 너한테 좋은 교환이었어?”

“기존 주연 배우의 다섯 시즌 치 출연료를 한 시즌 만에 몰아받는 빅스타가 딱 한 시즌 출연해주는 느낌이야. 올해 꼭 1위 찍고 기세를 몰아서 기존 배우들이 탑급으로 성장해줘야 하는 상황이랄까?”

“성민, 예전부터 느꼈지만 넌 참 비유를 잘해.”

“어디 내가 잘하는 게 비유뿐이야?”

성민의 은근한 이야기에 조이가 답했다.

“하긴, 넌 뭐든지 잘하기는 하지. 그래서 지금 시간은 충분한 거야?”

“글쎄? 35분 정도? 뭐, 빠듯하긴 하지만 지금부터 최선을 다하면 충분하겠지. 끝내고 샤워할 시간은 부족하겠지만.”

“그건 걱정하지 마. 내가 요즘 운전이 늘었으니까. 5분 정도는 더 만들어 줄 수 있어.”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40분.

아쉽게도 샤워할 시간은 여전히 부족했다.

< 보강(3)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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