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200화 (201/287)

< 보강(2) >

에인절스와의 등판 경기.

경기내용은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마린······, 아니 레드삭스의 양상으로 흘러갔다. 일단 성민이 등판하여 7이닝을 3실점으로 막아냈다. 그리고 그사이 보스턴의 타선은 7점을 뽑아내며 성민에게 승리투수의 요건을 충족시켜주었다.

-오늘 에인절스 녀석들이 제법이로구나.

‘그러게요. 조이도 찾아오고 해서 대단한 기록 하나 선물해주고 싶었는데 말이죠.’

-호, 그 처자가 제법 마음에 드는 모양이로구나?

‘아니, 꼭 마음에 든다기보다는. 그런 걸 보여주는 게 아무래도 남들 눈에도 보기 좋고. 이제 슬슬 드라마 피날레도 멀지 않았고. 그러니까.’

-알았다. 알았어.

7:3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오늘 성민의 상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데도 에인절스의 타자들은 그런 성민을 상대로 무려 3점을 뽑아냈다. 하물며 보스턴의 불펜이라면?

-이제부터 본격적인 경기의 시작이겠구나.

‘이제 2이닝만 막으면 되잖아요.’

-승리를 위해서라면 네가 조금 더 던지는 쪽이 좋았을지도······.

‘나흘 쉬고 나와서 7이닝을 던졌는데 여기서 뭘 더 던집니까. 타순만 세바퀴를 돌리고 상위 타순은 네 번째 타순까지 끝냈잖아요. 게다가 우리 불펜 애들도 요즘에는 좀 괜찮잖아요. 슬슬 물이 오르고 있······’

-딱!!

성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쭉 뻗은 타구가 멋지게 외야 담벼락을 직격했다.

아름다운 이루타.

‘뭐, 야구를 하다 보면 한방 맞을 때도 있고 그런거죠. 그래도 담장은 안 넘어 갔······’

-딱!!

시원한 스윙이 96.7마일 속구를 걷어냈다. 말이 씨가 된 것 같은 아름다운 홈런이었다.

점수는 순식간에 7:5까지 좁혀졌다.

-그래, 이제 담장까지 넘어갔구나. 다음에는 뭐 백투백이냐?

‘아니, 설마 그러겠······.’

-딱!!

-이 정도면 거의 드림 컴 트루로구나.

‘아니, 뭐 그런 좋은 말을 이런 곳에다가 씁니까.’

아웃 카운트는 0개.

점수는 순식간에 7:6

보스턴의 불펜이 분주히 움직였다.

“루카스, 준비 끝났지?”

“네.”

바로 어제 경기에서 등판하여 하루의 휴식을 가지려던 루카스가 다시 마운드에 올라갔다. 이번 시즌 벌써 24번째 등판이다. 이 페이스대로라면 75이닝 소화도 꿈이 아니다. 그야말로 명백한 혹사다.

-뻐엉!!

“스트라잌!!”

하지만 어쩌겠는가.

현재 보스턴에서 쓸만한 불펜이라고는 루카스 버튼과 마무리 투수인 릭 코디노리 정도가 전부다. 작년 3점 초반대의 평자책을 기록하며 놀라운 활약을 보였던 마이클 킹을 셋업으로 써먹겠다는 계획은 이번 시즌 그의 평자책이 7.1이닝 12.39를 찍으며 저 멀리 날아갔다.

현재 그는 AAA에서도 평자책 7점대를 기록하고 있다.

-부웅!!

“스트라잌!! 아웃!!”

루카스 버튼이 어깨를 가볍게 돌렸다.

94.3마일.

어제의 피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리 불펜이라고 해도 연투는 명백히 몸에 무리가 온다.

‘앞으로 두 명.’

그가 자신의 어깨를 태워 가며 LA 에인절스의 타선을 틀어막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볼넷.

그리고 안타.

삼진.

그리고 다시 안타.

마침내 점수는 7:7 원점으로 돌아갔다. 당연히 성민의 승리도 함께 날아갔다. 필 니크로가 뒤통수를 움켜잡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역전은 당하지 않았다는 것 정도일까?

자주 있는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인터넷에 나야 할 불이 안 나는 일은 없었다. 각종 커뮤니티들이 순식간에 올라오는 글과 댓글로 도배가 됐다.

-와, 너무 자주 경험한 패턴이라서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9회 초에 희망 고문 좀 당해주고 9회 말에 추가점 내주면서 패배하는 그림이 뻔하게 그려지네.-

-보스턴 프런트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불펜만 좀 보강해도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텐데.-

-걔들이 생각이 있을 것 같냐?-

-아니, 마이너에 쌓아 둔 유망주도 많은데 A급 불펜 한 두명만 수혈해도 확 달라지겠구만.-

-루카스 버튼은 점수를 내줘도 이제 그냥 짠하다.-

-지금 시즌이 1/3 지났는데 쟤 벌써 24.2 이닝임.-

-이대로 가면 80이닝도 찍겠는데?-

-에이, 아무리 엔리케 감독이 개놈이라도 그렇지 설마 23살짜리 불펜을 80이닝이나 던지게 하겠음?-

-그 새끼는 자기 자리 보전하려면 그거보다 더한 짓도 하고 남을 새끼임.-

-그나저나 성민이는 또 이렇게 승을 날리네? 얘 이번 시즌에 이렇게 날려먹은 승이 벌써 3개 아님?-

-지금 그 친구 승리가 문제냐? 아예 팀 승리가 날아가게 생겼는데?-

루카스 버튼이 LA 에인절스의 가장 강력한 3번 타자를 상대로 범타를 끌어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범타를 끌어냈다기보다는 놀라운 호수비가 범타를 만들어 냈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헐, 이게 무슨 일이지?-

-이걸 매튜가?-

-지금 2루 주자 달리다가 당황한 거 봤음?-

2, 3루간 강습 타구.

매튜 쿠퍼가 멋진 다이빙캐치로 공을 잡아냈다. 그리고 살짝 늦게 움직인 후안 칼초에게 공을 건넸고 그게 멋지게 아웃으로 연결됐다.

경기를 지켜보던 팬들이 보스턴 답지 않은 수비에 약간의 기대감을 갖기 시작했을 때, 필 니크로가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성민이 네 녀석 노디시전이 결정되니까 호수비가 나오는구나. 역시.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아니, 제가 무슨 인간지표도 아니고. 제 승리 날아간 게 무슨 상관입니까?’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어차피 이렇게 이길 듯 말 듯 희망 고문을 주고 패배하는 것이 네가 등판한 날 마린스의 특기니까. 아차차. 레드삭스를 실수로 잘못 발음했군.

보스턴의 공격이 이어졌다.

***

“조지? 갑자기 무슨 일이야. 네가 연락을 다 하고.”

“무슨 일이겠어. 당연히 좋은 소식이 있으니 연락을 한 거지.”

“좋은 소식? 아, 설마 라만 그레고리? 뭐 삼각 트레이드라도 있는 거야? 흐음, 근데 그러기에는 너희랑 우리랑 맞는 조각이 거의 없을 텐데?”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 탬파베이 레이스가 있다면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에는 마이애미 마린스가 있다.

탬파베이와 마찬가지로 플로리다주에 위치한 그들은 탬파베이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스몰마켓이었다. 물론 구장 문제까지 겹쳐있던 탬파베이에 비하면 약간 상황이 여유롭긴 하다. 하늘이 두 쪽이 나도 1억 달러 이상을 쓸 수 없는 탬파베이 레이스와 달리 그들은 어찌어찌 쥐어짤 대로 쥐어짜 내면 1억 달러까지 쓸 수도 있다. 물론  몇 년은 앓아누워야 하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플로리다 마켓 자체가 야구에 대한 인기가 시들한 지역이라 발생하는 저조한 수익을 피해갈 수는 없었고, 자연스럽게 운영은 스몰마켓의 그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마리오 도블. 필요하지 않아?”

“마리오 도블? 서던 리그에 그 마리오 도블?”

“그래, 뭐 그 마리오 도블.”

“그 녀석 자네가 애지중지하는 유망주잖아. 내년 7월 이후로 빅리그 올릴 녀석 아니었어?”

마이애미 마린스의 단장 벤저민 코핀이 잠시 수화기를 막고 서둘러 마리오 도블에 관한 정보를 업데이트 해오도록 주문했다.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당장 슬래시 라인부터 시작하여 자세한 정보들이 벤저민 코핀의 스크린에 주르륵 펼쳐졌다.

0.224/0.289/0.331

그리 대단하지 않아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마리오 도블이 뛰는 서던 리그는 AA급 리그로 역대급 투고타저를 보이고 있었다. 마리오 도블의 저 성적은 리그 평균 수준에 살짝 못 미친다. 게다가 마리오 도블의 포지션은 유격수. 무엇보다 그의 올해 나이는 고작 만 21세에 불과했다.

또한, 세부 지표 역시 훌륭했다.

“흐음, 마리오 도블이라······. 조지 자네가 갑자기 자원봉사자로 변신한 건 아닐테고. 바라는 게 뭐야?”

“태너 뱅크.”

“태너 뱅크?”

“그리고 거기에 스캇 모스까지 데려 가주지.”

“거기다가 스캇 모스까지? 잠깐, 잠깐만.”

벤저민 코핀이 잠시 당황했다.

어디지? 대체 어디와 거래를 하기 위해서 태너 뱅크와 스캇 모스가 필요한 거지?

절대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필요한 선수는 아니었다. 태너 뱅크는 이번 시즌 2.93을 기록 중인 훌륭한 불펜 투수였고 스캇 모스는 이번 시즌 3.97로 조금 부진하지만, 작년 2.04의 평자책을 기록했던 훌륭했던 불펜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나이는 모두 30대 초반. 당장 달려야 하는 팀에서나 필요한 선수들이었다. 마이애미 마린스가 이번 시즌 플랜에 성공했다고 해도 딱 1년만 쓰고 내보냈을 선수들이었지만, 이번 시즌이 망해버린 이상 지금 당장이라도 내보낼 수 있다면 나쁠 것이 없는 선수들이기도 했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조금 더 승부가 격렬해지고 불펜의 몸값이 올라갔을 때 팔아치울 계획이었지만 마리오 도블이라면 나쁘지 않다. 아니 매우 좋은 유망주다.

게다가 두 사람의 연봉 역시 각각 700만 달러와 1,050만 달러로 매우 높은 축에 속했다. 이미 승부를 포기한 마이애미 마린스가 오래 데리고 있기는 부담스럽다.

“이봐, 조지. 대체 어디랑 무슨 거래를 하려는 거야?”

“벤저민. 그건 자네가 알아야 할 부분이 아니잖아. 자네는 지금 예스인가 노인가만을 이야기해주면 돼.”

“잠시 생각할 시간은?”

“5분 주지. 단 지금 이거랑 비슷한 제안은 다른 팀으로도 들어간 상태인 거 명심하고.”

“젠장. 이 망할 자식 같으니.”

“망할 자식이라니 사실 마리오 도블 정도의 유망주면 어디건 간에 그만한 불펜들은 충분히 구할 수 있다는 거 자네도 잘 알잖아. 심지어 스캇 모스는 오히려 내가 받아주는 게 손해 아닌가? 4점대에 육박하는 불펜을 누가 1,050만 달러나 주고 쓰겠어. 안 그래?”

***

“좋아. 그렇게 하지. 라만 그레고리에 브라이언 보일. 거기에 스캇 모스와 태너 뱅크까지라면야. 내가 조금 손해 보는 느낌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딜이지.”

존 맥도웰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손해라니. 내가 스캇 모스에 태너 뱅크를 데려오려면 얼마나 손해를 봐야 하는 줄이나 알아? 게다가 존 자네였다면 그 친구들 이렇게 데려올 수도 없어.”

어느 정도는 맞는 이야기였다.

탬파베이 레이스가 라만 그레고리를 처분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보스턴 레드삭스에 불펜이 부족하다는 사실 역시 모두가 알고 있다. 굳이 데리고 오려면 못 데리고 올 것도 없었겠지만, 당장 탬파베이에서는 마치 은혜를 베풀 듯이 데리고 온 스캇 모스조차도 보스턴은 뭔가 대가를 지불하고 데리고 와야 할 수도 있었다.

***

-딱!!

‘거봐요.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 애들 잘 한다고 했잖아요.’

-성민아 승부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아니, 그런 멋진 말을 이런 상황에 쓰지 말아주셨으면 좋겠거든요? 원래 그건 마지막까지 추격을 하는 쪽에서 쓰는 거잖아요.’

9회 초.

무려 넉 점.

보스턴 레드삭스가 어울리지 않는 뒷심을 발휘하며 11:7로 또다시 LA 에인절스를 따돌렸다.

이제는 마무리 투수인 릭 코디노리만 제대로 된 피칭을 보여주면 되는 상황.

하지만 승부는 필 니크로의 이야기처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혼탁한 상황으로 이어졌다.

8회 말 그 멋진 수비를 보여줬던 매튜 쿠퍼는, 9회 말에는 그 마일리지를 바로 사용하는 뇌절 수비를 보여주었다.

공을 잡고 2루로 송구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멋지게 1루로 송구. 다행히 1루 주자는 잡아냈지만 병살도 충분히 가능할 상황을 원아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LA 에인절스는 그 주자를 홈까지 불러들이며 1점을 따라갔다.

“아오, 망할 새끼들. 진짜 마지막까지 강제로 경기를 쫄깃하게 만드네?”

“하여간 이 팀은 진짜. 매튜 저 새끼는 호수비 한 번 하면 꼭 뇌절 수비로 그걸 보답한다니까.”

“그래도 매튜 정도면 플러스마이너스 제로. 아니다 타석까지 따지면 플러스는 되잖아. 이 팀은 진짜 불펜이 문제임. 아니, 투수 자체가 문제지. 그래도 선발이야 어찌어찌 꾸역꾸역 간다지만. 진짜 이렇게 8회, 9회가 쫄깃해 질 때마다 불펜 생각이 너무 간절하다.”

“내 말이. 야 근데 잠깐만.”

“뭔데?”

[마이애미 마린스 - 탬파베이 레이스 2:1 트레이드 체결!! ‘태너 뱅크, 스캇 모스 - 마리오 도블’]

[보스턴 레드삭스 – 탬파베이 레이스 대형 트레이드!! ‘바그너 가이탄, 로버트 보일 – 태너 뱅크, 스캇 모스, 브라이언 보일, 라만 그레고리.’]

“와우, 이런 미친?”

< 보강(2)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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