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198화 (199/287)

< 타이밍(5) >

성민에게는 다행스럽게도 6회 초 보스턴의 공격은 제법 길게 이어졌다.

물론 보통이라면 너무 긴 휴식은 그리 반길만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투구 리듬이 흐트러지는 결과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금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타석에 나가서 방망이를 휘두르고 달렸으며, 자세를 낮추고 끊임없이 주변을 살폈다. 심지어 익숙하지 않은 슬라이딩까지 하고 돌아왔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조금 지칠 수밖에 없다.

-딱!!

[에두아르도 크루즈!! 쳤습니다!! 담장 넘어가느냐!! 넘어가느냐!! 넘어갔습니다!!]

[6회 초 원아웃. 주자 2루 상황. 바뀐 투수를 상대로 에두아르도 크루즈 선수가 2점 홈런을 추가합니다. 이제 점수는 5:0. 김성민 선수에게는 아주 큰 선물이 되겠네요.]

[물론 단순히 선물이라고 하기에는 김성민 선수 본인이 공격의 물꼬를 트기는 했지만, 어쨌든 5:0. 이렇게 되면 오늘 경기 김성민 선수의 여섯 번째 승리가 매우 유력합니다.]

-확실히 보스턴 놈들은 마린스랑 다르게 빠따는 확실하단 말이지. 좀 늦게 터질 때도 있긴 하지만 공격력 걱정은 진짜 1도 안 됨.-

-저 답도 없는 수비만 좀 어떻게 해주면 좋겠는데.-

-야, 저 공격력에 수비까지 되면. 어? 그런 팀이 세상에 어디 있냐......, 했더니 다저스네?-

-그나저나 매튜 쿠퍼 그 수비. 에러로 안 바뀌나?-

-그거 아마 구단 측에서 항의 했을 테니까 운영회에서 조만간 결정 날 듯.-

-그거 이달의 투수 결정 나기 전에 바뀌어야 할 텐데.-

-오늘 하는 거 보면 그거 안 바뀌어도 가능할 듯. 지금 애덤 맥도날드 남은 경기가 내일 있을 양키스랑 원정 경기인데 걔 지금까지 양키 스타디움 원정 성적 별로임.-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애덤 맥도날드 이번 달에 좀 미쳐 날뛰고 있잖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타자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마운드에 선 투수는 4년간 지속해온 징크스 같은 하찮은 것으로 막아낼 수 있는 투수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스턴 레드삭스 지난 2028년 이후 무려 6년 만의 승리!!]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7:2 승리!!]

[김성민 7이닝 무실점!! 5월 평균자책점 1.50!! 5월 이달의 투수 청신호?]

[보스턴 레드삭스 – 탬파베이 레이스 링크설!!]

애틀랜타의 5성급 호텔 라운지.

경기를 무사히 끝낸 기념으로 스스로에게 논알콜 뱅쇼 한 잔을 선물한 성민에게 에두아르도 크루즈가 다가왔다.

“이봐, 성민 그거 들었어?”

“뭐? 우리랑 탬파베이 레이스랑 링크설 난 거? 근데 그거 탬파베이 쪽 기사잖아. 걔들 요즘 라만 그레고리 정리하고 싶어서 난리가 났던데. 뭐 그냥 여기저기 찔러 보려는 기사겠지.”

“그런가? 근데 난 이거 진짜였으면 좋겠는데. 뭐, 아직 22승 26패라고는 하지만 나 솔직히 요즘에는 뭔가 느낌이 좋거든.”

에두아르도 크루즈의 이야기에 성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승패마진 만으로 따지기에 최근의 보스턴은 나쁘지 않았다. 쉽게 패배하지 않는 경기가 많았고, 이길 때는 쉽게 이긴다.

아직 시즌은 2/3가 넘게 남았다. 만약 그 쉽게 패배하지 않는 경기들에 약간의 플러스 알파가 더해진다면 어쩌면······.

“근데 우리 라만 그레고리를 데리고 올만 한 선수가 없잖아.”

“없긴 왜 없어. 우리 마이너 뎁스가 얼마나 두터운데. 반년 쓰고 보내는 거면 어차피 사치세 라인에 걸리는 것도 아닐 거고. 거기에 바그너만 돌아오면 쾅!!”

확실히 가능성이 보였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보니 확실히 재작년 마린스보다는 가능성이 높아보이는군.

‘저희 직전 해에 준플옵까지 올라갔던 팀이었거든요?’

-그러면 뭘 하겠냐. 재작년에 네가 없었다면 또 저 아래서 놀았을 텐데.

‘아니, 그게 또 꼭 그러리라는 법은······.’

-작년에 걔들 8위 했다. 직전 해에 통합 우승했던 애들이. 딱 너 하나 빠졌는데 말이다. 거기다가 올해는 지금 17승 25패를 하고 있어.

‘하여간, 마린스 욕은 제일 많이 하면서 마린스 기록은 제일 잘 알고 계신다니까.’

-누, 누가!!

에두아르도 크루즈가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솔직히 선발진에 라만 그레고리 들어오고 필승조로 쓸만한 불펜 한, 둘만 들어와 주면 난 가능성 있다고 본다.”

“그런식으로 IF를 넣으면 어느 팀이나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그래. 뭐 나도 솔직히 지금 우리 팀 분위기 보면 가능성 있다고 생각해. 뭔가 불붙기 직전의 화약고 같다고 해야 하나? 2032년에 한국에서 내가 우승하던 때의 팀 분위기도 이거랑 비슷했지.”

-아니다 악마야!!

***

보스턴과 애틀랜타의 2차전.

경기는 제법 팽팽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성민은 보스턴과 애틀랜타의 경기에만 온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것은 성민만이 아니었다.

“아이, 왜 중계를 안 해주는 거야?”

“어? 보스턴이랑 애틀랜타 경기 지금 보고 있으면서 무슨 헛소리야.”

“아니, 그거 말고.”

“그러면?”

“양키스랑 토론토 말이야. 오늘 애덤 맥도날드가 좀 망해야지 성민이가 이달의 투수 가져가잖아.”

“아, 그러네.”

한국에 있는 성민의 팬들 역시 문자로밖에 중계해주지 않는 양키스와 토론토의 경기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지금까지 결과는 좀 어때?”

“몰라. 3회 지났는데 아직까지 무실점에 1피안타밖에 안했어.”

“공이 좋은가?”

“양키스 애들 컨디션이 별로인지, 애덤 맥도날드 공이 좋은지 모를 일이지. 근데 어쨌든 이제 다음 이닝부터 두 번째 타순이니까 기대해봐야지.”

애덤 맥도날드는 토론토의 1선발로 제법 괜찮은 투수였다.

하지만 제법 괜찮은 투수라고 누구나 이달의 투수를 가져본 것은 아니다. 일 년에 리그에서 딱 여섯 명만 받을 수 있는 상이다. 심지어 미친 투수가 나오는 해에는 한 투수가 2개 3개씩 쓸어 갈 때도 있다.

어쩌면 평생에 다시 올지 모르는 기회.

애덤 맥도날드가 이를 악물고 피칭을 이어갔다.

4회, 5회, 6회.

양키 스타디움에서 6이닝 1실점.

1실점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성공이다.

‘해냈다.’

평균자책점 1.41

그야말로 대단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5월이었다.

비록 성민이 노히트라는 인상적인 기록이 있긴 하지만 이닝 수도 삼진도 심지어 평균자책점까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다.

이대로라면 이달의 투수는 확정적이다.

-아깝다. 애덤 맥도날드가 이걸 또 이렇게 해내네.-

-어제 성민이가 7이닝 무실점 할 때 혹시나 했는데, 양키스 놈들 하여간 도움이 안되요.-

-애초에 보스턴에 온 게 문제임. 다저스 있었으면 평자책 0점대였을걸?-

-아쉽지만 어쩌겠냐. 어차피 성민이 실력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니고, 알동이라 걱정했는데 던지는 거 보니까 진짜 잘하면 올해 사이 영도 가능하겠드라.-

-뭐, 그건 그렇지.-

-얘들아, 잠깐만!! 지금 트윗떳음!!-

-무슨 트윗? 아, 그 링크설? 설마 진짜임? 라만 그레고리 보스턴 오는 거야?-

-아니, 아니. 그거 아니고. 기록 위원회에서 발표 나왔음.-

-기록 위원회?-

***

과거 초창기의 메이저 리그에서 공식적인 기록을 담당한 것은 신문 기자들이었다. 처음에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경기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명확하고 세세한 안타나 에러 같은 것 정도야 뭐 별 대단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몇몇 경기의 위대한 기록들. 예컨대 ‘오늘도 안타를 친 조 디마지오.’의 56경기 연속 안타라든지, 팀에게 방해가 되기에 벤치에서 쉬겠다는 이야기로 자신의 기록을 끝냈던 위대한 철인 루 게릭의 2,130경기 연속 출장과 같은 기록들이 그런 인식을 조금씩 바꿔놨다.

사람들이 환호하는 것은 단순히 누가 이기고 누가 졌다는 것만이 아니라, 위대한 기록 그 자체에도 환호한다는 것을 알게 된 구단과 기자들은 몇몇 부분에서 의도적으로 기록을 조작하려고 시도했고, 실제로 그것이 공공연하게 이뤄진 적도 있었다.

그리하여 1980년.

메이저 리그는 마침내 기록원을 직접 고용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공식 기록원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21년이 지난 2001년에는 기록을 재검토하기 위한 기록 위원회를 창설했고, 2008년에는 이 기록 위원회에 기존의 기록을 뒤집을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그야말로 막강한 권한이다. 실제로 2008년 이후 기록 위원회는 1년에 서너 차례에서 많을 때는 열 차례 가깝게 기록을 뒤집어왔다.

“어려운 문제로군요.”

“아니, 어려울 게 뭐가 있습니까. 단순히 이 플레이가 에러를 줄 일인지, 아니면 안타로 그대로 인정해야 하는지 하는 문제에 불과한데요.”

“지금 그런 단순한 상황이 아니라는 점 잘 알지 않습니까.”

무슨 이야기인지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번 안타가 에러로 바뀐다면 이달의 투수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다. 2점이라는 점수는 시즌 전체로 따져봐도 평자책 0.1점 가량을 좌우한다. 성민 정도의 투수에게 그것은 사이 영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우리 일이 언제 단순했던 적이 있습니까. 하지만 그런 외부적인 시선은 버리고 사건 자체만 놓고 단순하게 봐야지요.”

“맞습니다. 과거에는 이보다 더한 경우도 많았잖습니까.”

실제로 구단의 항의로 재심사를 거쳤던 수많은 기록을 보면 중요하지 않은 기록은 없었다. 9이닝 1피안타 3볼넷을 기록한 투수의 1피안타가 안타가 아닌 에러라는 주장이라든지, 21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 중이던 타자가 유격수 에러로 출루한 것이 아니라 안타로 출루한 것이라든지 하는 주장 같은 것들과 비교하자면 이번 성민의 경우는 오히려 더 가볍다.

“하지만 이건 사실상 우리의 판단으로 하나의 상이 바뀐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개인적인 하나의 기록이 추가되는 것과는 또 다르죠.”

“그렇게 보자면 또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그런 부분은 우리가 판단할 부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경기 장면 그 자체만 두고 판단하면 됩니다.”

두 위원의 언성이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했다.

“자자, 이야기는 충분하게 진행된 것 같으니 이 부분은 표결에 부치는 거로 하시죠.”

“하지만!!”

“어차피 나올 이야기는 얼추 다 나왔습니다.”

위원장이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끊었다.

남은 것은 모두의 선택뿐.

[메이저 기록 위원회, 보스턴 레드삭스-볼티모어 오리올스전. 잭 모리스의 안타, 에러로 수정!!]

[릭 러셀 위원 ‘매튜 쿠퍼의 포구는 명백한 에러였습니다. 물론 메이저리그의 평균적인 송구 속도를 생각했을 때 이건 정상적인 상황에서도 충분히 안타가 될 수 있는 플레이가 될 수도 있었죠. 하지만 마찬가지로 평균적인 메이저의 수비였다면 그 상황에서 전진하여 공을 잡았을 것이라 판단됐고, 이에 위원중 다수는 이번 기록이 안타가 아닌 에러로 표기되야 한다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야, 이러면 성민이 5월 이달의 투수 맞지?-

-말해 뭐하냐. 얼른 소리 벗고 빤스 질러!!-

-와, 될 놈 될이라더니. 이게 또 되네?-

5월.

평균자책점 1.00

성민이 커리어 두 번째 이달의 투수를 수상했다.

< 타이밍(5)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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