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195화 (196/287)

< 타이밍(2) >

전화기를 손에 쥔 존 맥도웰이 즐겁게 웃었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시간이 벌써 2분을 넘어가고 있었지만, 이는 너무나도 기꺼운 기다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긴 기다림이야말로 그들이 보스턴의 연락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화들짝 놀라서 자료들을 찾고 있나보군.”

“그렇죠. 설마 우리가 연락을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 했을테니 말이에요.”

“뭐, 그렇겠지. 어떻게 봐도 우리는 지금 달릴 타이밍이 아니었으니까.”

시즌의 30%가량이 돼가는 시점에서 21승 26패.

현재 탬파베이 레이스만큼은 아니었지만 보스턴 역시 윈나우로 달릴만한 성적은 절대 아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설마 이 녀석들 자기들이 이길 수 있다. 이런 생각인 건가?”

“보스턴이라면 아무래도 우리랑은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아슬아슬한 상황이면 달려봐야 하는 팀이니까요. 더더군다나 작년의 그 추태도 있었으니······.”

“그거라면 차라리 눈가리고 아웅을 하면 했겠지. 아무리 그래도 라만 그레고리를 데리고 가는 계약은 그들로서도 제법 위험한 시도라고.”

-탕!!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프런트 직원들을 바라보던 탬파베이의 단장 조지가 자신의 책상을 거칠게 두들겼다.

“지금 중요한 건 그들이 무슨 생각으로 우리에게 거래를 걸어왔느냐가 아니잖아. 그건 그쪽 제안을 들어보면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야. 그보다 그쪽에 요구할만한 선수 명단이나 빨리 가지고 오라고!! 지금 벌써 2분이 넘었어!!”

“여깄습니다!!”

직원 하나가 허겁지겁 태블릿을 들고 달려왔다.

현재 탬파베이에 필요한 포지션, 그리고 보스턴에 넘치는 자원. 혹은 삼각 트레이드의 가능성까지. 고작 2분 만에 뽑아낸 자료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훌륭한 자료였다.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서 아이비리그 혹은 퍼블릭 아이비를 수료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필드에서 선수로 뛰어 본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다. 이들에게는 야구공보다 숫자가 더 익숙했다.

“오, 조지. 드디어 연결이 됐군.”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말이야. 그보다 트레이드 관련으로 이야기할 게 있다고 하던데.”

“그렇지. 자네가 트레이드 블록에 올려 둔 라만 그레고리 말이야.”

“아아, 우리 사이 영 수상자에게 관심이 있나 보군.”

“하하, 그래, 뭐 정확히 말하자면 3년 전 사이 영 수상자이긴 하지만 말이야.”

가벼운 신경전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신경전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런 사소한 신경전으로 시간을 보내기에는 두 사람 모두 너무 바쁜 사람들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먼저 연락을 한 존 맥도웰이 먼저 자신의 카드를 뒤짚었다.

“부처 엣지와 로이 토마스.”

프런트 직원의 손가락이 태블릿을 두들겼다. 연결된 대형 스크린에 두 선수의 기록이 떠올랐다.

“이런 날도둑놈들이?”

“이건 말도 안 됩니다. 물론 우리가 내야 자원이 부족하긴 합니다만, 이건 애초에 논의의 여지조차 없는 수준이에요. 저 선수들이 메이저리거로 성장할 가능성은 2할 미만입니다.”

탬파베이의 프런트 직원들이 하나 같이 고개를 저었다.

“존, 지금 설마 시간이 남아서 나와 농담을 하려고 전화를 했던 건 아니겠지?”

“농담이라니. 자네 지금 내야수 라인이 완전 구멍이 났다고 알고 있는데 부처와 로이라면 지금 꼭 필요한 조각들이라고 생각하는데.”

“헛소리. 존 자네가 만약 내야 유망주를 제시하고 싶었다면 그 누구더라······.”

이번에도 역시 직원의 손가락이 태블릿을 열심히 두들겼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화면에 한 선수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래, 루시, 루시 알베리 정도는 불러줘야지.”

“루시?”

바로 몇 주 전 후안 칼초의 복귀와 함께 마이너로 내려갔던 루시 알베리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

-딱!!

메이저리그의 평균 타구 속도는 약 88마일. 그 중에서도 핫 코너라고 불리는 2, 3루 간의 타구 속도는 평균보다 약 2.4마일 정도 빠르다.

물론 루시 알베리가 지금 뛰는 포틀랜드 시 독스는 AA리그 소속으로 메이저리그에 비하자면 그 수준이 낮다. 하지만 그렇다고 타구의 속도가 극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온다.’

배트가 공을 두들기는 찰나의 순간.

야수들은 공의 방향을 판단하고 움직인다. 잘 맞은 타구가 2, 3루 간을 지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1초 남짓. 루시 알베리는 괜찮은 툴을 지닌 유격수였지만 아직은 메이저에서 와장창 깨지고 내려온 유망주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와장창 깨졌던 경험이 약이 됐던 것일까? AA에 내려온 이후 루시 알베리는 마치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달려 나가는 자세 그대로 가볍게 공을 잡아 일루를 향해 점핑 스로우.

-뻐엉!!

“아웃!!”

적극적인 수비가 주자를 잡아냈다.

메이저리그에 비하자면 터무니없이 적은 관중과 낙후된 시설. 그렇기에 더더욱 메이저리그의 화려한 무대가 아른거렸다.

‘다음에는 기필코!!’

손에 들어온 기회를 너무 쉽게, 너무 멍청하게 내줬다.

마이너 무대. 루시 알베리가 이를 악물고 다음을 기약했다.

***

-딱!!

5회 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타자가 성민의 공을 두들겼다. 물론 아주 좋은 타구는 아니었다. 조금 힘이 부족한 타구. 유격수인 후안 칼초가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가 공을 낚아챘다. 그리고 글러브에서 공을 뽑아 일루에

-뻐엉!!

매우 발이 빠른 타자 주자가 전력을 다해 일루를 밟고 지나갔다.

잠깐의 망설임.

“아웃!!”

심판의 판정이 떨어졌다.

[1루 포스 아웃!! 아 그런데 지금 애틀랜타의 덕아웃이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챌린지를 요청할 생각인 것 같은데요?]

[일단 방송국 카메라 상으로 보면 조금 애매하긴 하네요.]

[그래도 이 정도면 아웃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어쨌거나 지금 손발이 꽁꽁 묶인 애틀랜타로서는 어떻게든 하나라도 출루를 시키고 싶을겁니다.]

지난 2014년 3월 31일 최초의 비디오 판독 이후 20년. 처음 도입할 때만 하더라도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느니, 야구의 전통을 해친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제는 비디오 판독도 경기의 일부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경기의 심판들이 방송국 카메라 화면을 사용하여 판정하는 KBO의 심판 합의 판정제와는 다르게 MLB는 경기장마다 챌린지 전용 카메라 12대를 설치하여 경기의 심판이 아닌 뉴욕 본부에서 판정을 내려준다.

-흐음. 역시 마음에 안 든단 말이지.

‘누가 20세기 중반에 야구 하시던 분 아니랄까봐. 아직도 비디오 판독이 마음에 안 드세요? 한국 있을 때는 심판들이 스트라이크존 판정에 AR기계 사용하는 게 마음에 안든다고 그렇게 투덜거리시더니.’

-그거야 프레이밍이나 애매하게 걸치는 공 같은 건 결국 기술의 영역이니 그런 거 아니냐. 이런 단순한 확인은 다르지. 그리고 지금 마음에 안 드는 건 그쪽이 아니다.

‘그러면요?’

필 니크로의 시선이 일루가 아닌 그 반대편을 향했다.

후안 칼초였다.

-열심히 하는 녀석인 건 맞는데. 방금 같은 경우는 맨손 캐치를 하든지, 글러브에서 볼을 조금만 빨리 뽑았어도 챌린지까지 갈 것도 없이 확실한 아웃이었을거란 말이지. 아니, 뭐 그 이전에 애당초 어깨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더 쉽게 아웃이었겠지만 말이다.

‘뭐,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안정적이잖아요. 게다가 옛날에는 저런 상황에서 맨손 캐치 한다든지 글러브 튕겨서 볼 뽑아내는 어느 어깨 강한 유격수 욕을 그렇게 하셔놓고는.’

-크흠, 그거야 박동엽 그 녀석이 알까기를 하도 해대니까 그랬던 거고. 뭐 그런 순간 순간적인 수비 센스는 확실히 좋긴 했지.

‘이것도 딱 적절하게 공 보냈을 겁니다. 아웃일 거에요.’

[아, 판정 나왔습니다. 콜 오버턴드. 판정 번복이 나왔습니다.]

[중계 카메라 상으로는 아웃이 아닌가 싶었는데, 좀 아쉽군요.]

판정이 번복됐다.

혀를 차는 필 니크로에게 성민이 말했다.

‘애초에 기준을 페데리코 같은 녀석에게 놓으니까 만족을 못 하시는 겁니다. 영감님 뛰던 시절 유격수를 생각해보세요.’

-글쎄다. 내가 뛰던 시절이면 마티나 크레이그 대럴 녀석 정도가 기억나는데. 그 녀석들 가운데 저렇게 수준 미달인 녀석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구나.

‘뭐, 어쨌거나 후안도 정확히는 전문 유격수라기보다는 내야 유틸 요원이잖아요. 그거 생각하면 잘 해주고 있는 거죠. 당장 루시 내려가고 후안이 들어온 이후로 내야 상당히 안정된 건 사실이잖아요.’

-그래, 뭐 그건 그렇지. 그나저나 너희 주전 유격수인 바그너 가이탄 녀석은 언제 돌아오는게냐?

‘한 달 정도 남았다고 알고있는데 뭐, 아직 젊은 녀석이니까 조금 더 빨리 돌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5회 말

원아웃 주자 1루.

-뻐엉!!

“아웃!!”

성민이 가벼운 견제구 하나로 주자에게 아웃을 선물하며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희망을 잔혹하게 꺾어버렸다.

경기가 계속됐다.

아서 클라크가 다시 마운드에 올라왔다.

슬슬 손가락 끝이 조금씩 아려왔다.

공을 강하게 채기 위해서 손끝에 마찰이 가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실제로 많은 투수가 손가락 물집으로 고생한다.

아서 클라크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커브는 공을 쥐고 손날로 내려치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주며 손가락 사이에서 공을 뽑아내는 것으로 역회전을 만들어 낸다. 회전을 강하게 주기 위해서는 공을 강하게 쥐어야 하고, 결국 그것은 손가락 끝의 마찰이 더 커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아서 클라크의 경우 릴리즈 포인트를 최대한 앞에서 가져감으로써 공의 발사각을 조절하고, 부족한 회전력을 강한 악력으로 조절하는 만큼 그 마찰은 더 커진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아.’

5이닝 무실점.

심지어 1루를 밟은 타자도 지금까지 고작 두 명에 불과했다.

오늘 그는 데뷔 이후 가장 좋은 상태였다. 고작 손끝에 열점이 조금 잡힐락 말락 하는 것 정도로 마운드를 포기할 수는 없다.

타석에 9번 타자 성민이 들어왔다.

바로 직전까지 공을 던지던 투수다. 피곤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방심은 하지 않는다. 그는 작년 매우 놀라운 타격으로 투수 부문 실버 슬러거를 수상한 선수다. 심지어 올해 초 다저스를 상대로 그 기록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또 한 번 증명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긴장하지는 않았다.

‘타석에 안 들어간 지 이제 한 달이 훨씬 넘었지.’

아무리 뛰어난 재능의 선수라도 야구를 쉬면 감각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괜히 부상으로 회복 기간을 거친 선수들이 마이너에서 몇 경기 리햅을 갖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민은 마지막으로 타석에 선 것이 벌써 두 달이 다 돼가는 선수다.

결정적으로 성민 본인도 자신의 타석에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저 녀석 분명 커브를 던질걸 예상하고 방망이를 휘두르는데 이게 쉽지가 않네요.’

-당연하지. 아무리 네가 재능이 뛰어나도 저런 공을 펑펑 두들기면 매일 연습하는 다른 타자들은 대체 뭐가 되겠냐.

애초에 커브는 종으로 뚝 떨어지는 공이다. 횡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다른 변화구가 선이라면 커브는 점이다. 치는 것이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성민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힘껏 방망이를 휘두르는 것뿐.

-부웅!!

“스트라잌!!”

바닥을 내려찍은 커브에 헛스윙.

그리고 두 번째.

-뻐엉!!

“스트라잌!!”

왠지 존을 벗어나는 커브일 것 같아서 참아봤는데 속구에 속아 투 스트라이크.

그리고 세 번째.

아서 클라크의 손끝에서 야구공이 떠올랐다.

< 타이밍(2) > 끝

ⓒ 묘엽

작가의 말

15분 지각 죄송합니다 8ㅅ8.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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