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189화 (190/287)

< 변화(2) >

야구는 메이저 구기 종목 가운데 가장 기술적인 스포츠다.

물론 이 말에 반박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실제로 축구 농구 미식축구 등과 비교했을 때 야구는 기술적인 부분에서 그 요구수준이 매우 높다.

일반적으로 야구 선수의 기량이 정점에 올라온다고 보는 시기는 27세에서 33세 사이. 만으로 했을 때 나이다. 골프 정도를 제외한다면 30대 중반에 기량이 절정기에 걸쳐있는 스포츠는 보기 드물다. 심지어 최근에는 그 골프조차도 진짜 절정의 나이는 20대 초, 중반 정도로 보는 경우가 많다.

과거 ESPN에서 했던 조사가 있다.

스포츠에서 가장 어려운 동작이 무엇인가 하는 조사였다. 물론 흥미 위주의 조사이고 그 스포츠의 범위 역시 매우 좁았다.

하지만 어쨌거나 거기에서 1위로 뽑힌 것은 100마일로 날아오는 9인치짜리 공을 0.35초 만에 타격하는 일이었다. 심지어 그것은 복싱에서 잽을 피하는 일이나, 아이스하키에서 135마일로 날아오는 3인치짜리 퍽을 막아내는 일보다 더 어려운 동작이라고 평가받았다.

전술 능력은 미식축구.

운동능력은 농구.

그리고 기술이라면 야구.

그렇기에 드래프트 직후부터 주전으로 합류하여 1, 2년 만에 두각을 드러내는 일이 제법 많은 미식축구나 농구. 혹은 17세 이전에 프로 1부 리그에 합류하여 20세 이전에 이미 세계적인 선수로 이름을 날리는 경우도 가끔 존재하는 축구와 달리 야구는 환경의 차이를 고려한다고 해도 10대에 메이저 무대를 밟는 재능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뻐엉!!

랄로 가야르도가 던진 공이 미트에 정확하게 들어갔다.

“굿!! 좋았어.”

커다란 덩치의 라티노.

남미에서 미국에 이민을 온 이민자 2세대인 마이클 고메스가 미트를 팡팡 두들겼다. 올해 42세. 스포츠 생리학을 전공하고 웨이트 드라이브에서 팀장까지 올라갔던 우수한 인재다.

“저기, 잠시만요. 그러니까 지금 이게 그 꼭 필요한 특별 훈련이라고요? 고작 이게?”

하지만 그 우수한 인재가 랄로를 위해 짰다는 훈련은 매우 부정적인 의미에서 터무니없었다. 훈련을 구경 온 매튜 쿠퍼가 인상을 구기고 물을 만큼.

***

“랄로 가야르도는 천재입니다.”

마이클 고메스가 단언했다.

성민 역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순수하게 재능이라는 측면만으로 봤을 때, 랄로의 재능은 저나 에두아르도에게 비견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녀석의 반응속도나 운동능력은 거의 짐승 수준이죠. 다만 의문인 부분은 그런 짐승 같은 능력을 수비에서는 전혀 발휘를 못 한다는 점이죠.”

“제가 보기에 그건 심리적인 문제입니다.”

“심리요? 스티브 블래스 신드롬, 그러니까 입스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하지만 녀석은 종종 멍청한 짓을 하기는 해도 그 정도라고 보기에는······.”

“야수의 경우 색스 신드롬이긴 하지만 어쨌든 입스라고까지 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건 그저 잘못된 학습의 결과라고 봐야겠죠.”

마이클 고메스가 열정적으로 제 생각을 이야기했다.

사실 그로서는 모처럼 그의 고용주와 야구에 대해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기회였다. 그는 웨이트 드라이브를 퇴사하고 성민이라는 고용주를 잡을 때만 하더라도 웅대한 꿈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 달리 성민이 그에게 원하는 것은 ‘설계자’가 아닌 일종의 ‘기술자’였다. 아니, 그것은 차라리 기술자라기보다는 관리직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했다.

그렇다고 해서 섣불리 불만을 드러낼 수도 없는 것이, 우습게도 이 김성민이라는 남자는 스스로의 몸을 관리하는 방법론에서 허점을 찾아낼 수 없을 만큼 완벽했다.

스포츠 생리학으로 석사과정까지 끝낸 마이클 고메스보다도 훨씬 더.

관둘까? 고민도 많이 했다. 하지만 기계를 사기 위해 은행에 빌린 그 많은 차입금은? 웨이트 드라이브의 팀장까지 오르기는 했지만, 성민만 한 거물과 연결되기가 과연 쉬울까? 그런 의미에서 성민의 제안은 그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

“흥미로운 이야기로군요. 그렇다면 녀석을 직접 지도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지금 제 경우는 상당 부분을 주니어급 직원을 고용하는 거로 해결하실 수 있을 테니 그 임금 정도만 받고 녀석을 봐주면 되겠네요.”

“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성민 선수에게 막대한 피해가!!”

“피해는 지난 경기에 녀석이 공을 놓치는 거로 입은 게 더 크죠.”

성민의 단호한 이야기에 마이클 고메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러니까 성공의 경험을 학습시킨다고요? 고작 이런 거로?”

마이클 고메스가 랄로 가야르도에게 주문한 것은 전진하여 공을 잡고 그대로 등을 돌려 공을 토스하는 훈련이었다. 심지어 공을 던지는 것도 오버 스로우로 제대로 던지는 것이 아닌 언더 스로우로 가볍게 건네는 것에 가까웠다.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요?”

“랄로 가야르도 선수가 대체 왜 저런 실수를 하는지가요.”

“그거야 뭐······.”

매튜가 말을 줄였다.

사실 뭐 못하는 데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그냥 못 해서 못 하는 것이지.

하지만 마이클 고메스의 생각은 달랐다.

“수비는 결국 타구를 판단하고 공을 잡아서 공을 던지는 동작입니다. 랄로 가야르도 선수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타구 판단? 애초에 일루수에게 요구되는 수비 범위는 그리 넓지 않아요. 게다가 여기 보시면 빠르게 날아오는 타구는 오히려 굉장히 유연하게 잡아냅니다. 포구 능력 자체는 굉장하다는 뜻이죠.”

“그거야 우리 모두 알고 있죠. 랄로 녀석이 일루를 지킬 때는 어지간하게 엉망으로 공을 던져도 척척 잘 잡아내니까요.”

마이클 고메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 많은 실수에도 불구하고 랄로 가야르도 선수가 지명타자가 아닌 일루수로 각광 받는 이유죠.”

“하지만 포구가 좋다고 꼭 좋은 일루수라는 법은 없잖습니까. 실제로 거포들이 포구 능력은 죽여줬지만 어설픈 일루 수비를 보여주다가 지명타자로 전환하는 경우도 많았고요.”

“맞습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그들의 운동능력 자체의 문제였죠. 하지만 랄로 가야르도 선수 같은 경우는 달리는 속도도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대신 녀석은 송구가 문제잖습니까.”

“그렇습니다. 송구. 오직 송구뿐이죠. 그래서 이상한 겁니다. 물론 어깨는 나쁠 수 있습니다. 운동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송구는 그와는 또 다른 문제니까요. 랄로 가야르도 선수가 다른 곳이 아닌 일루를 담당하는 것은 약한 어깨 때문인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가야르도 선수가 지금까지 보인 여러 가지 문제들은 어깨의 강약 문제가 아니었죠.”

세상에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종목은 없다.

당장 가장 원초적인 달리기만 하더라도 같은 운동능력을 지녔을 때 제대로 달리는 기술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는 크다.

하지만 야구는 그 이상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랄로 가야르도의 송구 문제를 그저 ‘어깨’라고 뭉뚱그려 생각했다.

“생각해보시죠. 일루 파울라인을 따라 달려 나와서 다시 일루에 송구 하는 고작 그 거리입니다. 이 송구에 대체 얼마나 대단한 ‘송구 능력’이 필요할까요?”

“확실히······.”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랄로 가야르도 선수는 송구 그 자체에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것은 어린 시절, 지도자들이 저 천재 같은 재능을 지닌 선수에게 조금 더 빠른 송구를 요구했고, 그것에 부응하기 위해 ‘욕심’을 냈던 결과가 아닐까 싶더군요. 야구는 복합적인 운동이고 다른 능력이 다 뛰어나다고 꼭 어깨까지 단단하리라는 법은 없는데 말이죠.”

그렇기에 결국, 장기적으로 봤을 때 랄로 가야르도의 송구는 조금 더 근본적인 부분에서 뜯어고쳐야 한다.

“하지만 당장 가장 심각한 부분은 이걸로 충분합니다. 지금 랄로 가야르도 선수에게 급한 것은 ‘빠르고 정확한 송구’가 아니니까요. 랄로 가야르도 선수는 그냥 ‘정확한 송구’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애초에 가야르도 선수는 다른 느린 일루수들에 비해 공을 잡으러 나오는 속도 자체가 더 빠르거든요. 그러니 필요한 것은 그저 그렇게 ‘성공을 경험’해보는 것뿐입니다.”

매튜 쿠퍼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설득력이 있다.

“저는? 저에게는 해줄 이야기가 없습니까?”

***

“아, 그리고 혹시라도 다른 녀석들도 뭔가 도움을 줄 것이 있다면, 그리고 도움을 요청한다면 저는 괜찮으니 저에게 할애하는 시간을 더 사용해서 녀석들을 좀 돌봐주셔도 괜찮습니다. 사실 그쪽이 고메스 씨에게도 더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

“그 부분은 일단, 이 계약서에 사인부터 한 다음 이야기해볼 부분 같군요.”

12월까지 앞으로 7개월간 4만 달러.

염가라는 표현이 적합한 계약서가 매튜 쿠퍼의 앞에 놓였다.

만약 성민이 직접 계약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만약 웨이트 드라이브라는 업계 1위 출신이 아니었다면.

만약 그가 했던 이야기가 개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더라면.

그리고 만약 그의 마지막 이야기가 없었더라면.

“아,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이 가격은 성민이 있기에 가능한, 정말 터무니없는 가격입니다. 만약 추후 재계약을 원하신다면 이 정도 수준으로는 불가능할 거라는 점 미리 알아두셔야 합니다.”

매튜 쿠퍼가 계약서와 함께 내민 펜을 들었다,

***

-확실히 눈 가리고 아웅을 위해 고용한 녀석치고는 너무 능력이 있는 녀석이었지.

“그러니까요. 디아고가 소개해준 사람이라 나쁘지는 않으리라 생각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그래봤자 웨이트 드라이브라는 회사에서 밀려난 사람이라는 느낌이었는데 말이죠.”

애초에 성민의 훈련을 위해 필요한 사람은 그에게 계획을 만들어 주는 플래너가 아니었다. 성민에게 필요한 사람은 필 니크로가 해줄 수 없는 육체적인 도움을 주는 일종의 도우미였다.

그런 의미에서 마이클 고메스는 조금 넘치는 인재였다.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맥스 슈피겐과 함께 할 때는 유용한 인재였지만, 맥스 슈피겐이 루카스 버튼과 함께 자신이 직접 고용한 사람에게 트레이닝을 받기 시작한 이후로는 더더욱.

“뭐 어쨌거나 결론적으로 돌아가는 분위기는 이제 나쁘지 않네요. 사실 랄로야 그렇다 치고 매튜야말로 정말 훈련이 필요한 녀석이었으니까요.”

-그렇지. 그 박동엽 mk.2 같은 녀석이야말로 수비 훈련이 시급한 녀석이었지.

보스턴 내야의 두 문제아인 랄로 가야르도와 매튜 쿠퍼는 정말 그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기용할 수밖에 없을 만큼 재능과 능력이 넘치는 녀석들이었다.

평균 이상의 대단한 수준은 결국 재능의 문제다.

노력은 그가 타고난 재능을 100%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도구이지, 타고난 재능의 한계를 깨부수게 해주는 만능의 열쇠가 아니다.

그것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후안 칼초다. 그는 여러 가지로 가장 노력하는 선수였지만 보스턴의 내야에서 가장 범용한 수준에 불과하다.

랄로 가야르도의 송구가 매튜 쿠퍼만큼 되는 것을 원할 수는 없다.

매튜 쿠퍼의 글러브 질이 랄로 가야르도만큼 되는 것을 원할 수도 없다.

그저 랄로 가야르도의 송구가 재능을 타고 태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영역에만 도달한다면. 마찬가지로 매튜 쿠퍼의 글러브가 돌 글러브 소리만 듣지 않는 수준까지 올라가 준다면.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 팀도 어쩌면 2년 전처럼 기적을 그려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

“네?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허황한 꿈 아닙니까? 다저스를 좀 생각해보세요. 메이저 최정상의 팀은 그런 곳이라고요.”

-크흠. 그거야 뭐 운도 좀 따라줘야······.

“행운의 신이 우리를 가호해도 안 될 건 안 되는 겁니다. 만약 진짜로 그런 ‘기적’을 원한다면 이런 우리들의 노력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무언가가 더 필요하겠죠.”

< 변화(2) > 끝

ⓒ 묘엽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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