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183화 (184/287)

< 팀 스피릿(1) >

모기업에 상당 부분을 의존하는 KBO와 달리 MLB의 구단은 완전히 수익을 추구하는 기업들이다. 그렇기에 마켓의 크기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돈의 크기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 가장 가난한 팀은 탬파베이 레이스다.

그들의 이번 시즌 페이롤은 6,900만 달러.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을 통틀어 가장 적은 금액이다. 그것은 요 몇 년 내내, 아니 지난 15년 가까운 시간 동안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창단 이래 단 한 번도 1억 달러 이상의 돈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팀이었으니까.

“이봐, 보일. 뭐하러 이렇게 일찍 온 거야.”

“그러는 선배야말로 저보다 더 일찍 오셔 놓고는.”

“나야 습관이니까.”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탬파베이 레이스의 든든한 에이스.

올해로 메이저 6년 차를 맞이하는 라만 그레고리가 후배인 브라이언 보일의 어깨를 툭 두들겼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다고 징징거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지.”

“덕분에 선배한테 엄청 갈굼당했었죠. 9시까지 집합인 훈련에 8시 30분에 나왔는데 갈굼을 당할 줄은 상상도 못 했었으니까요.”

“아주 오랜 선배부터 내려 온 우리의 전통이니까.”

“압니다. 마음가짐의 문제라는 것. 모든 것의 시작은 생각이고 올바른 생각이 모든 올바른 일의 시작이라는 것도요.”

“그래, 그걸 알았으면 됐어. 난 아마 올해가 마지막일 거야. 보일. 이제는 네가 해야 해.”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나도 3년 전에 너와 같은 이야기를 했었지. 그때 리스 선배가 이런 말을 해줬지. ‘너는 이제 서비스 타임 3년을 보낸 선수야. 아직 베테랑이라고 하기에는 어렵지. 하지만 내가 이 팀을 나간다면 팀에서 누군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사람은 바로 너다. 그리고 네가 성공을 거둘수록 네 말에는 더 큰 힘이 실릴 거야. 올해를 너의 가장 빛나는 해로 만들어봐라.’라고 말이야. 뭐, 결과는 너도 잘 알고 있겠지?”

“와우.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부담감이 더 팍팍 생기네요. 3년 전이면 선배 사이 영 받았던 해잖아요.”

브라이언 보일의 이야기에 라만 그레고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사이 영을 받았던 바로 그 때지. 하지만 앞서 몇 번이나 말했던 것처럼 너도 할 수 있어. 네 슬라이더는 특별해. 그 슬라이더를 믿어보라고. 그게 어느 타자건, 설사 저 양키스의 리암 루카스 같은 타자라도 넌 그 공을 믿고 던지면 돼. 게다가 넌 행운아잖아?”

“행운은 무슨. 진짜 행운아라면 저보다 몇 년 늦게 시작하는 빅터 같은 녀석이 행운이겠죠.”

“뭐든지 최초가 가장 힘들지만, 가장 빛나는 법이야. 넌 탬파베이 레이스 최초의 프랜차이즈가 될 거야.”

탬파베이 레이스의 수익이 엉망인 이유는 그들의 구장인 트로피카나 필드의 접근성이 너무 심각하게 엉망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들의 접근성이 얼마나 엉망이냐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는데도 티켓이 매진이 안 될 정도다.

덕분에 2010년대부터 꾸준히 트로피카나 필드의 이전은 논의됐다. 당시만 하더라도 2027년까지 계약된 트로피카나 필드 사용권이 만료되면 당연히 구장을 이전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2034년인 지금도 그들은 트로피카나 필드를 홈으로 사용하고 있었으며 그것은 2036년 새로운 구장이 완공되기 전까지. 즉 내년 시즌까지 이어질 예정이었다.

아무리 훌륭한 성적을 거둔다고 해도 절대 팀에 남을 수는 없다.

그것은 지금보다 더 훌륭한 성적을 거둘수록 그러하다. 그 슬픈 명제를 등에 업은 탬파베이 레이스의 에이스가 트로피카나 필드의 마운드에 섰다.

-여기도 여전히 갑갑하군. 좋아하기 힘든 곳이야.

‘그래도 밖에는 제법 더웠었는데 여기 들어오니까 좀 시원하긴 하네요. 아직 5월밖에 안 됐는데 이런 더위라니. 여긴 토론토랑은 다른 의미에서 돔 구장이 아니면 안될 곳이네요.’

-그렇긴 하지. 아마 그래서 신구장도 돔으로 지어질걸? 물론 이곳처럼 갑갑한 완전 폐쇄형 돔 구장은 아니겠지만 말이지.

내년을 끝으로 더는 메이저리그 구장으로 사용되지 않을 이 낡은 구장은 펜웨이파크와는 사뭇 다른 낡음이 묻어났다. 펜웨이파크의 낡음이 긴 시간 조심스럽게 관리된 앤티크의 그것이라면 이곳의 낡음은 지금이라도 당장 쓰러질 것 같은 그런 늙음에 가까웠다.

-뻐엉!!

라만 그레고리의 공들이 보스턴의 타자들을 사정없이 공략했다.

속구와 체인지업 그리고 1미터 97의 큰 키에 오버 스로우로 뿌리는 낙차 큰 커브까지.

-부웅!!

“스트라잌!! 아웃!!”

그는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삼진형 투수 중 하나였다.

비록 재작년과 작년 모두 자잘한 부상으로 180이닝도 채 채우지 못했지만, 건강한 라만 그레고리가 강력한 사이 영 컨텐더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라만 그레고리에 맞서는 보스턴의 선발은 4선발 투수인 맥스 슈피겐이었다.

탬파베이는 그들의 전통에 걸맞게 올해도 강력한 선발 투수진과 수준 미달의 타자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수준 미달이라고 해도 어쨌거나 메이저리거였다. 아직 덜 여문 맥스 슈피겐이 완벽하게 막아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딱!!

[빠른 타구!! 매튜 쿠퍼 몸을 날려 봅니다만 빠졌습니다!! 좌익수 쪽!! 미셸 에쉬만 달려 나옵니다!!]

보스턴의 수비는 빈말로도 좋은 수비라고 하긴 힘들었다.

매튜 쿠퍼는 돌글러브라는 표현이 정말 잘 어울리는 포구가 엉망진창인 삼루수였고 미셸 에쉬만은 판단능력과 반응속도는 나무랄 곳이 없었지만, 신체 능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좌익수였다.

-흐음, 폭발 하려나?

‘에이, 설마요. 저 녀석도 요즘 꽤 괜찮아졌잖아요. 그냥 속으로 빡치고 말 겁니다.’

시뻘겋게 얼굴이 달아오른 맥스 슈피겐이 마운드에서 고함을 내질렀다.

-했네. 폭발

‘에이, 맥스가 저 정도면 그냥 빡친거죠. 진짜 폭발은 매튜 한테 가서 지랄 하는게 폭발 아니겠습니까.’

-폭발의 조건이 너무 관대한 거 아니야?

‘쟤 작년에 매튜한테 경기 중에 욕한 게 네 번인가 그럴걸요?’

물론 아예 경기가 안 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라만 그레고리는 좋은 투수였지만 보스턴 레드삭스의 타자들 역시 좋은 타자들이었다. 특히 최근 올라가기 시작한 랄로 가야르도의 타격감은 좀처럼 식을 줄을 몰랐다.

-딱!!

[쳤습니다!! 랄로 가야르도!! 좌익수 방면!! 높게 뜬 타구!! 넘어가느냐!! 넘어가느냐!! 넘어 갔습니다!!]

[맙소사, 랄로 가야르도!! 이번 경기 벌써 두 개째 홈런입니다. 랄로 가야르도 선수의 시즌 11호 홈런. 정말 놀라운 기세로 홈런을 기록 중인 랄로 가야르도 선수!! 이 페이스대로라면 한 시즌 60홈런도 꿈이 아니겠는데요?]

트로피카나 필드는 중립, 혹은 살짝 투수에게 유리한 구장으로 분류된다.

그리고 랄로 가야르도는 그런 구장에서 무려 한 경기 만에 두 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그것도 라만 그레고리라는 리그 에이스급 선수를 상대로!!

선수들이 우르르 달려 나가 랄로 가야르도의 헬멧을 두들겼다.

종종 1루 쪽으로 흐르는 쉬운 타구를 놓치는 멍청한 실수를 저지르는 녀석이지만 확실히 타석에서만큼은 1인분 이상을 해주는 녀석이다.

랄로 가야르도의 추가점에 맥스 슈피겐이 힘을 냈다.

-딱!!

물론 투수가 힘을 냈다고 모두 다 틀어막을 수 있을만큼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지만.

[보스턴 레드삭스 9:8 아쉬운 1점 차 패배!!]

[보스턴의 핵타선!! 에이스 라만 그레고리를 상대로 5이닝 6득점!! 문제는 여전히 완성되지 못한 어설픈 수비 조직력?]

[2차전 김성민, 브라이언 보일 맞대결!!]

[3년 만의 만남? 한국의 두 MVP가 메이저에서 만나다!! 마르타 노엘!! 김성민의 맞대결!!]

[KBO에서는 같은 MVP!! 하지만 메이저에서는 극명하게 갈려버린 두 선수의 만남!!]

-뭐야? 마르타 노엘이 탬파베이 레이스였어? 성민이 등판 경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 보스턴 경기는 꼬박꼬박 챙겨봤었는데? 근데 왜 지난번에 펜웨이파크에서 할 때는 선수명단에 없었지?-

-그땐 햄스트링 부상으로 DL에 올라갔었음. 근데 기레기가 기사를 진짜 이상하게 썼다. 물론 성민이가 좀 과하게 잘나가는 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마르타 노엘 정도면 극명하게 갈렸다고 할 만큼 엉망으로 망한 건 아닌데. 애초에 메이저에 2년 째 25인 로스터에 잘 붙어있는 것 자체가 어딘데.-

-찾아보니까 마르타 노엘 작년 성적이 0.247/0.311/0.483이던데? 홈런은 그래도 27개로 제법 되긴 하는데 그래도 OPS가 0.8도 안 되는데 일루수로는 좀 망한 거 아님?-

-에이, 아무리 그래도 연 400만짜리 선수가 이 만큼 해주는 거면 훌륭하지.-

-무슨 헛소리? 일루수가 연 400만 받으면서 이거하는 거면 훌륭하다고 하긴 좀 무리임. 그리고 연 400만이면. 템파베이한테는 제법 큰 돈일걸?-

-맞음. 템파베이 올해 페이롤이 6.900만인데 거기서 400만이면 꽤 큰 돈이지. 마르타 노엘 지금 팀에서 일곱 번째로 연봉 높음.-

-근데 마르타 노엘 KBO에서는 2년 연속 MVP였는데 빅리그에서 꼴랑 저거 찍는 거 보니까 KBO랑 MLB 수준차가 확 느껴진다.-

-맞아. 성민이 때문에 뭔가 MLB도 할 만한 것 같다는 착각을 할 수도 있지만, 진짜 수준 차 ㅎㄷㄷ 하다는.-

-그냥 마르타 노엘이 하락기에 간 거 아님? 2년 연속 MVP도 진출 직전에 한 것도 아니잖아.-

-잘 모르면 말 ㄴㄴ함. 진출 직전 해까지 꾸준히 성적 좋았었음. 아마 성민이 없었으면 3년 연속 MVP 찍고 MLB 진출했을 걸?-

-걍 성민이가 규격 외의 사기캐인거고. 마르타 노엘은 정상적인 거임. 그리고 마르타 노엘도 전반기 후반기로 나눠보면 전반기에는 훨씬 좋았음. 후반기에 좀 퍼져서 그렇지 올스타브레이크 전에 홈런 19개 쳤었어. 아무래도 1년 162경기쯤 되니까 시즌 끌어가는 체력이 조금 문제가 아닌가 싶더라. 작년에 한 번 엿 먹었으니까 올해는 적응하고 조금 더 괜찮아질거라고 생각함-

-마르타, 그냥 한국으로 돌아와라. 너 없으니까 우리 팀이 아주 엉망이다.-

-지금 메이저에서 잘 뛰는 선수에게 무슨 소리를!! 그냥 아주 쭉 메이저에서 은퇴까지 하는거로 하자.-

경기가 끝난 늦은 저녁.

성민이 마르타 노엘을 만났다.

사실 KBO에 있던 당시 마르타 노엘과 성민은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창원과 부산의 거리는 멀지 않았지만, 어찌 됐건 다른 팀의 용병이었고 마르타가 한창 날아다니던 시기 성민은 조금 빌빌거렸으며 심지어 부상으로 시즌 아웃까지 당했었다. 친해질래야 친해질 시간 자체가 없었다.

하지만 원래 고향에서 아무리 사이가 안 좋던 사람이라도 만리타향에서 보면 절친이 되는 법이다.

“솔직히 요즘 같아서는 한국이 그립긴 그리워. 음식도 여기보다 거기 음식이 더 입에 맞기도 하고. 특히 미국 맥도날드는 아주 엉망진창이라고.”

물론 마르타 노엘의 고향은 이곳 미국이었지만 말이다.

< 팀 스피릿(1) > 끝

ⓒ 묘엽

작가의 말

빅맥이 최근에 번을 바꾸고 맛이 확 달라졌더군요.

작년에는 너무 엉망진창이었는데 말이죠.

그나저나 이번 건은 돈도 많은 주제에

쉑쉑이 아니라 맥도날드 먹은 마르타 노엘 유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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