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클볼-179화 (180/287)

< 가심비? 가성비!(7) >

빌리 빈이 추신수의 영입을 원하냐는 한국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추신수? 당연히 원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에게 기회가 올까?”

빌리 빈이 처음 출루율에 주목할 때만 하더라도 그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스탯이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었고, 그것이 정말 효율적인 것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후 출루율이 메이저리그의 가장 중요한 스탯 중 하나가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또한, 투수진에서 오클랜드는 자신이 가용한 금액 대부분을 선발에게. 그리고 불펜은 선발이 되지 못한 선수를 적당히 키워 쓴다는 기조를 유지했다. 그리고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그런 움직임을 메이저의 대부분 팀은 따라 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오클랜드는 한발 늦었다.

캔자스시티 로열스는 또 다른 의미의 ‘머니볼’에 성공했다. 2010년대 그들은 가장 저 평가된 포지션인 불펜에 투자했다.

결과는?

2014년의 월드시리즈 진출, 그리고 마침내 2015년의 우승.

당시 시장에서 가장 뜨거웠던 것은 불펜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사람들이 주목한 것은 ‘수비’였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수비는 타격처럼 계량화하기 힘든 영역의 스탯이었다. 하지만 관측기술의 발달이 그것을 객관적인 비교가 가능한 영역으로 끌어내렸다.

그렇게 좋은 의미로 재평가받는 스탯이 있으면 나쁜 의미로 재평가받는 스탯도 있기 마련이다. 타율, 타점, 승리. 그리고 그만큼은 아니지만, ERA 등도 과거의 위상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위상을 잃어버린 스탯 가운데 하나가 ‘도루’다.

사실 도루라는 개념은 참 매력적이다.

‘베이스를 훔친다.’

기본적으로 야구는 투수와 타자의 1:1 대결에서 시작한다. 야수들이 날아온 공을 잡는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하지만 이 도루라는 것은 거기서 예외가 되는 공격의 수단이다. 공격에 새로운 옵션인 셈이다.

“도루는 생각만큼 효율적인 수단이 아니다. 성공 시의 기대 득점은 고작 +0.156임에 반해 실패의 경우 –0.501이나 된다. 3번의 성공이 1번의 실패만 못 한다는 의미다. 도루 성공률 75% 미만의 선수는 사실상 마이너스다.”

하지만 그 실패의 후유증이 너무 심각했다. 애초에 타자가 출루할 확률 자체가 4할이 되지 못한다. 도루는 그렇게 힘들게 출루한 것을 무위로 돌리고 아웃 카운트를 하나 더한다는 리스크를 지는 행동이다.

위험은 그뿐만이 아니다.

부상의 위험.

무려 부상률이 1%에 육박한다. 100번 도루하면 한 번은 부상을 입는다는 이야기다.

좋은 선수의 몸값은 비싸다. 게다가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아니, 기계라고 해도 잔고장이 늘어나면 기계의 전체적인 컨디션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하물며 사람이다. 반복된 부상은 사람을 마모시킨다. 비싼 선수의 기량이 하락하는 것은 너무 큰 손해다.

현대의 야구는 50도루의 포텐셜을 지닌 선수에게 도루 자제를 요청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도루는 단순히 성공하느냐 못 하느냐를 떠나서 내야의 수비를 흔들고 투수의 멘탈을 건드려 전체적인 흐름을 바꿀 수 있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세이버메트릭스에서 이야기했던 0.156과 0.501은 연역이 아닌 귀납의 영역이다. 저 숫자는 그런 주장까지 모두 포함된 실제하는 데이터다.

그렇기에 데이비드 빈은 도루에 주목했다.

“이게 바로 머니볼이죠.”

“하지만 도루는······”

“그 ‘하지만’이라는 소리. 우리 할아버지의 시대에는 출루율이 들었던 소리입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도루는 선수에게 위험도 너무 크고. 요즘 괜찮은 선수 하나 부상 당하면 그 리스크가 얼마나 큰지 알잖아.”

“알죠. 근데 애초에 선수 몸값은 그런 것 다 포함된 거잖습니까. 게다가 우리가 뭐 연 3천만 달러짜리 선수 쓰는 그런 구단도 아니고요. 무엇보다 방법도 있습니다.”

물론 고작 그런 이야기만으로 설득될 리는 만무했다.

“그리고 이 자료 좀 보시죠.”

“뭔데?”

***

-딱!!

나쁜 수비는 아니었다.

정석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조금만 더 어깨가 좋았더라면. 조금만 더 발이 빨랐더라면. 혹은 글러브에서 공을 뽑는 속도가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뻐엉!!

“세이프!!”

6회 초.

타자 주자가 1루를 무사히 밟았다.

‘루시보다는 분명 나은 것 같긴 한데 애매하네요.’

-그래도 열심히 하긴 하는군. 어차피 비슷한 수준이라면 더 안정적이고 파이팅 넘치는 쪽이 훨씬 보기 좋지.

‘흐음.’

성민이 후안 칼초를 힐끔 바라봤다.

뭐 루시 알베리처럼 어버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능력의 한계였다. 성민이 고개를 한번 젓고 다음 타자를 바라봤다.

[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덕아웃 움직입니다.]

[대타? 아, 대주자입니다. 0:0의 팽팽한 상황. 1루 주자 찰스 베일을 대신해서 호세 마리코가 올라옵니다.]

[올해 33세의 노련한 선수죠. 주로 내야 대수비 유틸리티로 활약해온 선수입니다.]

세 걸음.

성민의 시선이 호세 마리코를 훑었다.

그의 시선이 성민에게 못 박혀있다.

‘도루겠네요.’

-그렇겠지.

너클볼 투수의 가장 큰 약점은 역시 도루다. 공은 느리고, 공을 받는 것은 어렵다. 그런 공을 받은 포수가 다시 2루까지 송구하는데 걸리는 시간 역시 너무 길다.

실제로 많은 너클볼 투수들이 타자에게 도루 자유이용권 취급을 당해왔다.

성민이 입술을 살짝 핥았다.

작년 다저스 시절 초반. 성민을 공략하기 위한 방법으로 여러 팀이 사용했던 방법이 도루를 통해 성민을 흔드는 것이었다.

-멍청한 짓이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말해서 그런 시도들은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성민을 상대로는 애초에 출루 자체가 힘들었다. 게다가 지난 20여 년간 메이저리그에서 도루는 그리 유용한 옵션이 아니었다. 굳이 그것에 많은 공을 들인 선수는 드물었다.

하지만 KBO는 조금 달랐다. KBO의 도루 생산성은 MLB보다 평균적으로 0.1점 정도 높았다. KBO에서는 도루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는 말이다.

성민은 MLB의 그 어떤 투수보다 도루에 익숙했다.

-뻐엉!!

[날카로운 1루 견제!!]

“세이프!!”

세트업 포지션에서 견제까지의 물 흐르는 듯한 동작.

호세 마리코의 앞섶이 더러워졌다. 그의 얼굴에 약간의 신중함이 깃들었다. 성민은 그가 경험해본 어떤 투수보다 견제구까지 이어지는 동작이 깔끔했다.

‘확실히 까다롭군.’

게다가 성민의 경우 너클볼러 특유의 도루에 약한 부분도 어느 정도는 상쇄가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성민의 속구는 무려 90마일. 게다가 너클볼 역시 75마일에 달했다. 60마일대의 너클볼을 주야장천으로 던지는 일반적인 너클볼 투수와는 조금 다른 것이다.

하지만.

세 걸음 그리고 조금 더.

호세 마리코의 몸이 조금 더 2루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못할 건 아니야.’

***

도루에는 부상 위험이 있고, 반복되는 부상은 선수의 재능 자체를 깎아 먹는다. 데이비드 빈은 그 진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애초에 버려질 자원이라면 이야기는 다르죠.”

“애초에 버려질 자원?”

“네.”

2034년 현재 도루는 버려진 스탯이나 다름없다. 데이비드 빈이 집중한 부분은 바로 그 부분이었다.

“도루까지 잘하는 30대 선수는 비싸죠. 하지만 도루만 잘하는 선수라면요?”

“도루만?”

“네, 부상을 염려할 이유도 없습니다. 애초에 그들은 미래를 바라볼 상황도 아니죠.”

“그건 그렇지만······.”

망설이는 밥 오웬에게 데이비드 빈이 설득을 이어갔다.

“90퍼센트의 도루성공률은 얼마의 가치가 있을까요? 산술적으로 0.4의 출루율에 0.5의 장타율을 가진 타자가 있다고 칩시다. 이 선수의 가격은 얼마일까요?”

“본론이나 말하자고. 그런 선수 비싼 건 다 알고 있으니까.”

“0.4의 출루율에 0.5의 장타를 가진 선수라면 100번의 타석 중 40번을 출루하고 그중 10번의 이루타를 기록했단 이야기죠. 0.3의 출루율을 가진 타자가 90%의 도루성공률을 기록한다면 그건 0.27의 출루율에 0.54의 장타율을 기록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건 과장이 너무 심하군.”

“맞습니다. 과장이죠.”

장타율의 가치는 단순히 타자 본인이 1루를 더 가는 것에 있지 않다. 좋은 2루타와 좋은 1루 주자는 점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도루를 통해 2루를 훔치는 것과는 다르다.

게다가 9할의 성공률이라고 해서 모든 경우에 도루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과장조차도 압도적인 가격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죠. 게다가······”

“게다가?”

“포스트 시즌. 지난 10년간 포스트 시즌에서 경기당 평균 득점은 정규시즌보다 무려 0.31점이 낮습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죠. 1선발부터 5선발까지 다양한 선수들이 등판하는 정규시즌과 다르게 경기의 8할이 3선발 이내의 투수들이 등판하니까요. 1점을 쥐어짜내야 하는 대승부. 1승 1승이 1년의 농사를 결정짓는 경기. 선수들의 부담은 극에 달한 상황에서 도루의 가치는 어떨까요?”

33세의 내야 유틸리티 호세 마리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그의 2년을 사는데 들어간 비용은 고작 250만 달러에 불과했다.

***

-제법이구나.

‘그러게요. 여기 와서 봤던 그 어떤 선수보다 본격적이네요.’

-하지만 별 것 아니야. 내가 뛰던 때는 말이다.

‘압니다. 알아요. 리키 헨더슨 그 양반도 현역이었다고요. 1루에 나가서 2루로 걸어가고, 다시 2루에서 3루로 걸어가더니. 홈까지 들어오는 괴물이었다고.’

-그래, 녀석은 정말 진짜배기 괴물이었어. 그런 의미에서 넌 정말 행운인 줄 알아야 해. 도루가 손해라고 팀 차원에서 자제시키는 시대라니.

‘그래도 할 녀석은 다 합니다.’

-그래 봐야 도루왕이 일 년에 40도루 남짓하고. 그나마도 나이 먹으면 자제하는 게 현실이지.

세 걸음 그리고 조금 더.

아마 방금 그 견제구를 확인한 호세 마리코가 생각한 성민의 견제를 무시할 수 있는 범위일 것이다.

성민의 시선이 다시 한번 1루를 살폈다.

세트업 포지션에서 축발을 옮기지 않고. 보크의 그 까다로운 규정을 피하여. 하지만 어깨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체의 회전 그리고 팔목과 손목의 탄력을 모두 활용하여.

더 빠르게!!

-뻐엉!!

성민의 견제가 벼락처럼 랄로 가야르도의 미트에 틀어박혔다.

과정은 이전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호세 마리코의 몸이 일루를 향해 날았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아웃!!”

심판의 손이 올라왔다.

호세 마리코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하여간, 요즘 것들이란. 쯧. 이런 간단한 사기에나 걸리고 말이야. 나때만 하더라도 리키 같은 녀석은 오히려 역으로 페이크를 걸어댔었는데 말이야.

‘뭐, 그래도 미국에 진출해서 상대해본 녀석 중에서는 가장 도루 센스가 있는 녀석이었습니다. 기술적인 부분만 조금만 더 익히면 더 무섭겠는데요?’

-하지만.

필 니크로의 시선이 호세 마리코를 바라봤다.

‘뭐, 그러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긴 하죠.’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2차전.

6회 초. 그들의 공격이 또다시 무산됐다.

드와이언 머피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아직 6회밖에 지나지 않았어요.”

“그래, 아직 6회지.”

그래, 보스턴의 불펜은 엉망진창이다. 아직 점수는 0:0. 충분히 이길 수 있다.

그리고 9회.

성민이 또다시 마운드에 올라왔다.

< 가심비? 가성비!(7) > 끝

ⓒ 묘엽

작가의 말

6월 13일 토요일은 개인사정으로 하루 연재를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주 월요일에 봬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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